안녕하세요 가양오토갤러리 조실장입니다. 지난 3월 열린 제네바모터쇼는 자동차 생산국에서 개최하는 모터쇼가 아니라서 내용이 다채롭습니다. 콘셉트카 개발 부담이 커서, 또는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의 모터쇼에는 불참하는 추세에 따라 모터쇼 규모가 점점 축소되는 양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제네바모터쇼에는 180여개 업체가 참가하고, 새로운 모델과 콘셉트가 175대가 등장했습니다. 콘셉트카 대부분은 EV, 즉 전기차 였습니다. 2025년까지 20여개 전기차를 내놓는다는 전략을 펼친 폭스바겐의 ID, 메르세데스-벤츠의 EV전용 브랜드 EQ, 아우디의 양산 전기차 e-트론, 재규어 I-페이스 등 주류 프리미엄 브랜드가 전기차를 선보였습니다. 국산차 업체도 적극적로 나섰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양산형 EV코나와 콘셉트카 르 필 루즈, 쌍용자동차는 콘셉트카 eSIV EV를 출품했습니다. 인도의 신흥 강자 타타와 그 산하로 편입된 피닌파리나도 EV 플랫폼을 활용한 차세대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부품 수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30% 정도만 필요한 전기차는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자유롭습니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고 모터를 앞뒤로 배치한 레이아웃은 무게중심을 낮추고, 50:50의 무게배분을 위해 드라이섬프방식을 개발하고 배터리를 트렁크로 옮겨야 하는 수고를 한 방에 해결했습니다. 폭발 위험이 있는 배터리는 격벽 설치하거나 케이스의 강도를 조절해 강화합니다. 자연스럽게 하체 보강까지 이뤄지는 셈입니다. 유독 전기차 콘셉트에서 방식이 자유로운 도어 스타일이 많은 이유입니다.
피닌파리나 HK GT 컨셉트는 지난해 등장한 나노플로우셀의 퀀트와 마찬가지로 걸윙 도어를 뽐냅니다. 두 모델은 세단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라면 2도어 쿠페나 가능한 스타일이지만, 전기차에서는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애스턴 마틴도 전기차 콘셉트를 해마다 발표합니다. 이번에는 라곤다 비전 콘셉트를 내놨습니다. 아주 얇은 펜더와 극단적인 캡포워드 스타일로 전면부를 꾸몄습니다. 보닛에는 절대로 엔진을 넣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엔진이 필요 없기 때문에 추구할 수 있는 스타일입니다. 전기차는 단순히 친환경만을 위한 대안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옥죄는 틀을 파괴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입니다.
재규어 I-페이스 앞뒤 오버행을 짧게 줄여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습니다. 양산체제에 이미 돌입한 전기차의 디자인도 전형적인 틀을 파괴하는데 앞장섭니다. 테슬라 모델 S는 FF나 FR 안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비례를 거부합니다. 엔진 무게와 구동계 때문에 FF는 프런트 오버행이 길어야 하고 FR은 휠에서 도어까지 길이가 길어야 하지만, 모델 S는 FF와 FR 사이에 해당하는 비례를 추구합니다. 마치 완벽한 인체의 비례를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균형 잡힌 디자인입니다. 이 밖에 세단을 스포츠카처럼 만들고자 노력해 이상적인 4도어 쿠페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헤드램프와 그릴부의 노즈 높이는 미드십 스포츠카에 버금갈 정도로 낮습니다.
재규어의 첫 양산 전기차 모델인 I-페이스는 앞뒤로 아주 짧은 오버행을 자랑합니다. 오버행을 줄이면 줄일수록 실내공간은 최대로 커집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중에서 넓은 실내공간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구동 레이아웃은 FF뿐입니다. 더욱 확장하고 싶다면 캡포워드 스타일을 입히면 됩니다. 캡포워드는 A필러를 보닛 깊숙이 밀어 넣은 변칙적인 방법이라서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아닙니다. 모터뿐인 I-페이스는 구동축의 레이아웃을 자유자재로 정할 수 있습니다. 섀시 아키텍처를 바꿔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현대차 코나 EV와 쌍용차 e-SIV 콘셉트와 같은 국내 전기차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이어서 창의적이지 못합니다. 이제 막 자동차문화에 다양성을 입히려는 우리나라의 실정이 전기차의 자율성을 해치는듯합니다. 다행히 현대차는 자사 디자인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콘셉트를 들고 나왔습니다. 르 필 루즌라는 복잡한 이름이 붙었는데, 전기 파워 트레인을 기반으로 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입니다. 세그먼트는 4도어 쿠페입니다. 스포츠카 비례와 마찬가지로 낮고 넓고 역동적입니다. 한눈에 봐도 테슬라 모델 S를 겨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슬라가 독점하는 시장은 곧 무너질 전망이고, 선택의 폭이 넓으면 구매자가 행복합니다.
애스턴마틴 라곤다 비전 콘셉트. 엔진 없는 구조의 디자인 자유도를 보여준다 이번 제네바모터쇼 콘셉트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트렌드는 4도어 스타일입니다. 이전에는 전기차 하면 시터커뮤터 개념이 컸습니다. 자율주행과 공유경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데 전기차를 활용한다는 개념입니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르노의 EZ-GO 콘셉트만 시티커뮤터 성격이 뚜렷했습니다. 전기차 콘셉트를 세단 형태로 내놓는다는 점은 그만큼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대체할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아직 사람들은 전기차가 실용적인 차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인프라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경쾌한 시동 소리와 높은 회전 수에 탄성 한 번 질러 보지 못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진다는 현실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마치 내연기관이 아날로그라면 전기차는 디지털처럼 이질적인게 사실. 취향이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지구가 죽어가는데 취양을 들이댄다? 실로 위험합니다. 업체들은 어떠한가요? 내연기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고 안정적인 수익을 뽑아내야 하는데 내연기관을 당장 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괴로운 현실입니;다.
디지털 e-북이 등장했지만 종이로 만든 책장을 넘기는 감성을 무시할 수 없듯, 내연기관은 사라지지 않을테지만 시장의 규모는 줄어들게 뻔합니다. 내연기관에서 배기가스가 나오는 이상 유로 6을 잇는 7,8,9 규제는 계속됩니다. 누구도 지금 지구 환경상태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도덕적 의무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는 전기차에 붙는 친환경 모델이라는 수식어가 진부해졌습니다. 업체들은 앞다퉈 대량 생산 체제를 알리고, 전기차는 곧 대중화 됩니다. 이미 경쟁은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도기에서 더욱 과감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입힌 전기차가 등장한다면 전기차 보급도 빨라집니다. 지구 환경보호도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