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산책(270)
정죄함이 없는 세계(5)
주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영역이 다르기에 바리새인들의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만약 바리새인들처럼 판단했으면, 백성들에게 “봐라! 예수나 우리나 똑같잖아! 그러니 우리의 말을 들어라.”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주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자기들의 정당성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역으로 이용해서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땅에 속했고, 주 예수님은 하늘에 속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죽음 안에 있고, 주 예수님은 생명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 예수님께서 죄인을 처리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곡해하고 지금 자충수를 두고 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가 올무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을 정죄하다가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폭로되고 말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지고서도 율법이 왜, 주어졌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 속에 있는 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끄집어내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언약으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증거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너희들 내 말 안 들으면 죽이겠다.”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똑같습니다. 성도는 말씀 지킴과 상관없이 구원되었습니다. 이미 구원된 자이기 때문에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주어서 너희가 어떻게 구원이 되었는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구원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말씀을 주신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마치 율법에 의미도 모르면서 율법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왜 주었습니까? 사도 바울의 증거를 봅니다. 갈라디아서 3:19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율법은 원래는 필요가 없는 것인데 인간이 범죄 하여서 더해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범법한 죄인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죄인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입을 틀어막으려고 주셨다고 하십니다. “에이~ 이 나쁜 놈 하면서 그 입 닥치라.”라고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넌 죄인이야!”라고 해서 할 말이 없도록 하신다는 말입니다.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해서 “너희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할 자”라고 주셨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받았다는 것은 “너희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할 자들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키고 자시고 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대로라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출애굽 때 어린 양과 같이 죽은 셈입니다. 어린 양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어린 양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대신 죽어주었으니 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 누가 누구를 고소하고 정죄하고 심판 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정죄한다는 것은 율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보았다면 간음한 여인을 고소할 것이 아니라 용서했어야 했습니다. 그 여인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간음한 여인을 통해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려고 행동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여자를 율법으로 고소하자 주 예수님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땅에다 글씨를 쓰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자들이 갑자가 찍소리 못하고 숙연해졌습니다. 주 예수님은 다시 땅에 글을 쓰십니다.
그러니 모두가 양심에 가책을 받고 다 돌아갔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땅에 어떤 글씨를 쓰셨기에 그렇게 기세가 등등하던 바리새인들이 떠나가게 되었을까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떠나갔다는 것은 그 글을 보고 양심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어떤 글을 보고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까요?
본문은 무슨 글을 썼는지 말하고 있지 않으니 내용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참소하던 자들의 입을 단숨에 막았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고발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을 막고 양심이 가책을 받을 내용이라면 그들의 의중을 찌르는 말씀을 쓰셨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주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자 성령님이 그들 마음을 확 변하게 해서 돌아가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지 성경은 더는 어급하지 않기에 그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유사한 사건을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성경에서 어떤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