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집 밖 이야기를 떠드는 디에디트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지난달엔 강릉에 취재를 갔다가 바닷가를 달리는 자전거를 봤다. 서울로 돌아와 원고를 정리하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올랐다. 글을 마저 쓰지 못한 채 주말에 다시 강릉으로 나왔다. 일단 바다를 따라 잘 닦인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서 생각하기로 한다. 강릉에서 고성까지 거리는 약 100km. 이틀에 걸쳐 천천히 움직이기에 거리도 딱이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에선 뭘 먹는 게 좋을까. 나는 항구 도시에서 평생을 자랐지만, 회 맛을 잘 모른다. 새우나 조개 맛도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은 굳이 해산물을 먹기가 미안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거나 먹고 싶진 않다.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아무래도 먹는 일이니까. 많이 움직인 덕에 많이 먹을 수 있고, 새로운 가게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강원도의 제철 음식을 잘하는 곳을 찾았다. 이왕이면 분위기도 좋고, 따뜻한 이야기도 있는 곳으로.
[1] “갓생 사는 여행자를 위하여”
강릉, 썸머키친
[출처: 썸머키친 인스타그램]
여행에선 일찍 눈이 떠진다.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썸머키친은 부지런한 모험가를 위해 일찍부터 문을 연다. 조식을 주문하면 버터나이프로 껍질을 톡톡 깨서 떠먹는 반숙 달걀, 신선한 오렌지를 갈아 만든 주스, 크루아상, 바게트, 뺑오쇼콜라, 솥에 오래 졸여 만든 살구와 무화과 잼, 그래놀라를 얹은 요거트, 그리고 우유를 살짝 끼얹어 마시는 따뜻한 커피가 테이블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여기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것으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꾸물거리다가 조식 시간을 거뜬히 지나 점심 무렵에 겨우 도착했다. 멀리서 봐도 근사한 식사를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고 숨을 골랐다. 2층의 소품샵 ‘오프랑(@5franc)‘을 구경하다 보니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프랑스를 빼고 유럽 여행을 한 데다, 프랑스 음식이라면 파인다이닝을 떠올려 겁부터 내는 사람이다.
프랑스 가정식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긴장하며 메뉴판을 훑고 있는데 식전 음식으로 고구마와 옥수수 조각이 올라왔다. 귀여운 센스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설명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버섯 파스타, 비프 브루기뇽,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썸머는 프랑스에서 호텔 일을 했던 사장님의 닉네임이다. 부부는 연애하며 만들어 먹던 음식의 즐거움을 살려 8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뭉근하게 끓여뒀다가 두고두고 먹는 집밥이 컨셉인만큼 음식이 금방 나왔다. 부족하면 더 주문할 생각이었는데, 양이 충분했다.
동행인은 비프 브루기뇽을 낯설어 했고, 나는 맛있게 먹었다. 남의 동네 맛과 향은 어색할 수 있지만, 들인 정성이 충분히 느껴진다. 직원의 친절함에 녹아 앉은 자리에서 후식과 커피까지 주문해 먹었다. 식탁에 올라오는 접시와 그릇은 모두 2층 편집샵 오프랑에서 구매할 수 있다. 메뉴는 계절에 맞춰 계속 달라지므로,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자. 식당 옆에 서너 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공간이 있다.
썸머키친
* 강원 강릉시 죽헌길 67-6
* 8:30 ? 21:00 (14:30 ? 17:30 브레이크 타임) / 일요일 정기 휴무
* 프렌치 조식 세트 16,000원 / 프렌치 버섯 파스타 21,000원 / 크림뷔릴레 7,000원
* @summerkitchen(https://bit.ly/3GfgRYA)
[2] “두말할 것 없는 궁극의 고소함”
속초, 남경 막국수
메밀이 많이 나는 강원도는 어디를 가나 막국수 집이 있다. 그 맛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큰 산을 기준으로 서쪽은 속 메밀만 사용해 국수가 뽀얗다면, 동쪽은 겉 메밀까지 터프하게 갈아 만들어 국수가 짙은 갈색을 띤다. 속초 사람들은 국수가 흙빛이라 하여 토면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남경 막국수 사장님은 평창군 진부골의 할머니 댁에서 3년간 막국수만 배웠다. 3년이 지난 다음엔 곧장 서울로 가서 그 맛을 증명했다. 지금은 속초, 잠실새내, 정동진, 해운대에 네 개 점포를 가지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면을 뽑고 양념해 내는데, 다른 집보다도 면이 부드럽고, 통통하다.
국수집답게 회전이 빠르다. 주말 점심엔 뭐가 맛있냐고 물어볼 여유도 없다. 사실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이미 메뉴판에 짧고 강렬하게 설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물: 담백’, ‘비빔: 고소’, ‘들깨: 제일잘나감’, ‘쟁반: 새콤달콤’. 중국집 A세트처럼 30,000원에 물+비빔+수육 조합도 있지만, 들깨 막국수가 궁금했기에 단품으로 주문했다.
오이와 김 가루 정도가 얹어진 다른 집과 달리 국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채소가 잔뜩 쌓인 비빔 국수가 나왔다. 깻잎, 참나물, 상추 등 생채소를 수북이 올려 먹는 진부골 할머니 방식이라는데 어쨌든 싱싱한 채소를 양껏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양념을 그때그때 비벼서 제공하기 때문에 따로 양념장을 추가할 수는 없다. 본연의 맛을 위해 냉육수를 넣어 먹는 일도 말린다.
동행인과 그릇을 바꿔 들깨 막국수를 맛봤다. 와, 미쳤다! 쫀득한 면은 간이 짭조름하고 구수한데, 씹을 때마다 메밀의 단맛이 느껴진다. 슴슴한 맛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요란하고 강렬할 수가 없다. 국수에 코를 박고 먹느라 밑반찬으로 나온 열무 김치와 무절임은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이 외에도 수육, 만두, 감자전 등 국수 친구들도 있고, 온면이나 만둣국 같은 따뜻한 메뉴도 있다. 주차 공간은 넉넉한 편이지만, 손님이 많은 시간엔 금방 찬다. 자전거 여행자는 빠르게 먹고 자리를 비웠다.
남경막국수
* 강원 속초시 동해대로 3888
* 033-633-1060
* 10:00 ? 21:30 / 수요일 정기 휴무
* 물, 비빔, 들깨 막국수 9,000원
[3] “통후추 뿌려 먹는 젤라토”
속초, 라또래요
2년 전 여름, 수영을 하고 기진맥진한 채 자전거를 타다가 먹었던 젤라토가 있다. 기가 막힌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 감자 소년의 사투리가 들릴 것 같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 라또래요는 강원도에서 난 재료로 젤라토를 만든다. 속초의 블루베리, 커피, 쑥, 단호박, 들깨, 딸기와 양양에서 난 햇감자, 토종 다래를 쓴다. 제철 재료를 쓰기 때문에 계절별로 메뉴가 바뀐다. 인스타그램으로 오늘은 무슨 젤라토를 만들었는지 미리 보고 가야 한다.
한 가지 맛을 고르든, 두 가지 맛을 고르든 용량은 같다. 500원을 더 내고 두 가지 맛을 주문했다. 맛보기 젤라토를 랜덤으로 얹어준다. 색깔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얹어주는 것 같다. 감자와 커피 맛을 골랐다. 감자 젤라토는 라또래요의 시그니처로 통후추를 벅벅 갈아 얹어준다.
맛은 ‘메시드 포테이토 아이스’ 정도. 작은 감자도 씹힌다. 같이 시킨 쑥 젤라토도 맛을 봤다. 황홀할 지경이었다. 쫀득쫀득한 젤라토에 고급스러운 쑥 향이 가득 배어 진하게 퍼진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깨울 맛이다. 대체로 이곳의 젤라토는 맛이 진하다. 쑥 향이 아니라 진짜 쑥 맛이 난다.
가게가 협소해 안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대체로 밖에 설치한 벤치에 앉거나 바닷가에 가서 먹는다. 주차장이 따로 없으니 속초해수욕장 근처에 차를 대고 슬슬 걸어오는 편을 추천한다. 지난번에는 바닷가 달리기를 즐겨 하던 사장님은 요새 서핑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속초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추천하는 이 도시의 계절 음식은 믿음직스럽다.
라또래요
* 강원 속초시 동해대로 3938-1
* 11:00 ? 19:00 / 수요일 정기 휴무
* 한 가지 맛 4,500원 / 두 가지 맛 5,000원 / 세 가지 맛 포장 19,000원
* @latoraeyo(https://bit.ly/3nch8Uy)
[4] “테일이네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성, 카페 테일
[출처: 카페 드레 인스타그램]
속초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갔다. 봉포, 아야진, 송지호 해변이 차례로 펼쳐졌다. 바닷바람을 실컷 맞으며 달렸다. 동해안에서 가장 작은 해수욕장인 고성 ‘가진 해변’ 근처 한적한 마을에 카페가 하나 나왔다. 카페 테일은 50년도 더 된 낡은 집을 부부가 직접 고쳐 알록달록한 도자기를 만들어 굽고, 커피콩을 볶는다. 까맣고 순한 강아지 테일이가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4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부부의 포트러리이자 로스터리 ‘카페 테일’이 유명해진 것은 아마 피크닉 세트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바닷가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바구니를 빌려주는데, 그 구성은 이렇다. 보온병에 담긴 커피, 테일 포트러리의 머그, 마들렌 한 개, 매트, 그리고 담요. 음료는 변경할 수 있으며, 여름엔 만 원을 더 내고 파라솔을 빌릴 수도 있다. 피크닉 하면서 나온 쓰레기는 바구니에 넣어 가져와 달라고 적어둔 쪽지가 속이 깊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닷바람을 실컷 맞았으니 피크닉 세트 대신 실내에서 음료를 마셨다. 테일 카페는 작은 공간을 알뜰살뜰 나눠 사용했다. 마당과 실내 테라스 그리고 주방 앞자리가 마치 다른 공간처럼 느껴진다. 온도가 습도,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햇볕을 마저 쬐려고 테라스에 앉았다.
우유 시럽이 들어간 라떼 위에 시나몬 가루를 뿌린 테일 라떼와 쑥 라떼를 주문했다. 강원도 산나물의 힘인 걸까. 쑥 향이 풍부하고 맛이 좋았다. 커피도 좋지만, 테일 카페에 들른다면 쑥 라떼를 꼭 마셔보길. 제발. 영업시간 확인이 아니더라도 카페 테일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우해두면 좋다. 도시 생활이 삭막하게 느껴질 무렵 들어가서 휙 구경하고 나오면 금세 감성이 촉촉해지니까.
카페 테일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길 40-5
* 11:00-19:00 / 수요일 정기 휴무
* 피크닉 세트 9,000원 / 핸드드립커피 6,000원 / 쑥 라떼 6,000원 / 테일라떼 6,500원 / 마들렌 2,000원
* @__tail__(https://bit.ly/3Gb60Pr)
[5] “어서 오dre요”
고성, 카페 드레
[출처: 카페 드레 인스타그램]
동해를 끼고 설악산을 등에 업은 고성은 어촌, 산촌, 농촌이 모여 지낸다. 공현진 해수욕장 근처 작은 마을에는 테일 부부의 두 번째 공간인 카페 드레가 있다. 역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노티드 도넛의 아트워크로 알려진 ‘이슬로 작가’의 그림이 간판 대신 흰 벽을 채우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 주방, 화장실, 큰 방이 있다. 밖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별채가 나오는데, 지하 공간에 도자기 공방이 있고 가운데엔 커다란 마당도 있다. 구석구석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앉으면 된다.
드레는 깨끗하고 단정하다.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뿐인 정갈한 부엌은 햇살이 잘 들어 음식이 모두 맛있어 보인다. 소금빵, 발로나 초코 쿠키, 감자 타르트, 얼그레이 파운드, 스콘, 빅토리아 케이크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간 날엔 몇 개 남지 않았다.
리뷰를 보고서야 인기가 많은 소금빵은 굽기가 무섭게 팔린다는 걸 알았다. 방심했다. 패션후르츠 칠러를 추천 받았는데, 바닐라빈과 레몬만으로 맛을 냈다는 설명에 혹해 바닐라 레몬 주스를 시켰다. 빵과 오늘의 수프, 청양 푸실리도 주문했다.
카페 드레의 음식은 고기와 버터가 많이 들어간 무거운 음식보다는 제철 채소와 과일을 활용한 산뜻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오픈 샌드위치 역시 토마토 또는 가지가 간단히 올라가는 식이다. 날씨에 맞게 메뉴가 달라져 계절별로 여러 번 찾는 재미도 있다.
카페 드레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길 18-3
* 11:30 ? 18:00 / 월, 화요일 정기 휴무
* 오픈 샌드위치 4,000원 / 패션후르츠 칠러 7,000원 / 바닐라 레몬 주스 7,000 / 빵과 오늘의 스프 8,000원 /
* 청양 푸실리 9,000원.
* @dre.cafe(https://bit.ly/3G5uA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