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근주 교수 비판
김근주 교수가 저술한 <구약으로 읽는 부활 신앙>이란 책이 있다. 그는 “구약시대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고 소망도 없었다... 구약에서는 전혀 부활 신앙에 대해서 절절하게 외치지도 않았고, 부활의 믿음을 강조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 사실일까?
마22:23~32을 보면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약(출3:6)”을 인용하여 부활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셨다.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는 헬라어로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가문이었으므로 아마도 히브리어로 대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부활”을 말했을까? 히브리어譯을 보면 테히야(תְּחִיָּ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테히야”란 “부활, 환생, 부흥”란 뜻을 갖고 있다.
“테히야”는 動詞 하야(חָיָה)에서 파생 단어로 “하야”는 “되살리다, 생명을 회복하다, 살아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구약에서는 무려 263회나 등장한다.
이 “하야”에서 파생된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 단어는 하이(חַי)라는 단어로 창2:7에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령”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이(חַי)로서 그 뜻은 “살아 있는”이다. 그렇다면 무생명체인 흙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명체(사람)가 된 것, 그것이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무생명체인 흙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무생명체(흙)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생기를 가진 생명체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 있는 자(생명체)의 하나님”(마22:32)이라고 말씀하셨다. 전12:7을 보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또 전12:14을 보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12:7과 전12:14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고 소망도 없었다”는 김근주 교수의 주장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마22:29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