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16편 - 왈칵 마음을 빼앗긴 곳!

금강사의 입장권은 부적입니다. 갖고가서 집에 걸어놓으면... ^^
아이디어가 참 좋죠?

제가 가진 카메라로 최대한 당겨보니 1층에 모셔진
보관석가여래(멀리서 보기엔 관음보살 같은데, 보관석가여래라고 하네요)와
그 우협시한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상이 보입니다.
무가의 실질적인 절대권력을 가장 먼저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얽힌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왕을 꿈꾸었던 인물'이라는 평가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명나라에 서신을 보낼 때 자신을 일본국왕이라고 칭하여 보낸 문서들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는 국왕의 칭호를 명나라로부터 인정 받고, 천황은 그보다 위인 황제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양수겸장의 교묘한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그가 쇼군을 물려주고 출가를 한 것에도 매우 다양한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선은 승려가 갖는 권위까지 거머쥠으로써 귀족은 물론 사찰세력까지 완전히 장악하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를 따라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가신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또 명과의 교류를 위해 승려신분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당시는 천황의 신하가 아닌 승려신분이 명과는 무역을 하는데 더 유리한 지위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1401년 명나라 황제 건문제는 요시미츠를 일본국왕으로 책봉하면서 정식으로 수교를
하게 되었고, 정부간의 무역인 감합무역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 조정에서는
천황(덴노)를 두고 요시미츠가 일본 국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명나라로부터 책봉된 것에 불만이
팽배했으나 요시미츠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여 문제삼지 못했다고 하네요.

금각사 지붕의 황금봉황을 당겨봤습니다. 참으로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 같습니다.
뵤도인 봉황은 좀 싸움닭 같은 거친 면이 있는데, 금각사 봉황은 부드럽지만 당당해 보입니다.
봉황에 암수가 있다면 뵤도인이 숫컷, 금각사 봉황이 암컷 같은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남쪽을 바라보는 금강사 봉황의 꼬리부분...

가로새로 10cm가량의 금박지 10만장을 붙여서 도금을 했다고 하는데,
벽을 당겨서 촬영해보니 금박지들의 경계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1950년 금각사에 불을 낸 학승은 일찍이 스님이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금각사에 머물면서 교토의 대학에 다니다가 이 금각사 사리전에 불을 내고 맙니다.
이 학승이 법인으로 체포된 뒤 어머니가 면회를 가지만 자신은 한번도 따뜻한
어머니의 정을 느껴본 적 없다며 면회를 거부합니다. 집에 돌아가던 어머니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불을 낸 학승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뒤
몇 달 살지 못하고 폐병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금각사 사리전의 화려함과는 정반대의 기구한 인생이야기가 얽혀 있네요. T.T
정말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고 싶네요...

화려한 사리전을 돌아 금강사 이끼정원과 수려한 경관을 눈에 담습니다.



이런 이끼 정원이 참 맘에 들더라고요.
이날 들렸던 용안사(류안지)에서도 참 멋진 이끼정원을 만났습니다.
이런 이끼 하나까지 다 경영할 줄 아는 그들의 섬세함은 칭찬해줄만 합니다.

멀리서 보면 금각사 사리전 봉황의 위용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마치 사리전 전체를 낚아채서 날아갈 듯한 기세입니다.


다양하게 담아봅니다. 거대한 보석함 하나를 보는 듯 하네요.

아! 초암 다실입니다. ^^

뒤로 보이는 작은 초막이 일본 다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센노 리큐(1522~1591)의 와비차 스타일 다실입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
'소박하고 검박하고 절도있게 차를 즐긴다.'는 와비차 (わび茶, 草庵の茶) 정신을 통해
차를 마시는 단순한 행동을 일본을 대표하는 미적 가치로 승화시킨 센노 리큐.
사진의 다실이 그가 주장하는 '다다미 2장반이면 족하다' 라는 초암다실입니다.
입구를 좁게 만들어 반드시 머리를 숙이면서 겸손하게 입장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법칙이지요.
그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으므로 이후로 들이게 되어 일본 다도체험과 정원관람을 하는
등지원 후기 편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금각사 출구 근처에 차 한잔 하면서 쉬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차마시는 곳은 붉은 색 천을 깔아놓는 전통이 있는 것 같아요.


금각사 관람을 마치고 환한 금덩이 미소를 보여주시던 님들. ^^

자, 이제 우리 다음 코스로 가요. 그만 미련을 두시고... ^^


이번 여행기간 내내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서 이동합니다.
마지막날은 온전히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서 이동을 했지요.
아름다운 금각사 단풍이 우리를 배웅하네요.

이곳은 중간에 들런 와라텐신궁입니다. 겉에서 보기보다는 규모가 좀 있더라고요.
쉴 공간과 화장실이 있어서 쉬어가기에도 참 좋았어요.



비가 오면 저 왼쪽의 건물 안에 들어가서 쉬면 되고요. 암튼 자유시간을 잠깐 드렸어요.


엄청 큰 삼나무였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수명을 다하셨군요.
이 나무도 신으로 모셔서 기원의 대상이 됩니다.
이렇듯 일본은 수많은 신들을 모시면서 마음의 상처를 달래가는 듯 합니다.


일본의 신사는 각자 전문분야들이 있는데요.
와라텐신궁은 산모들의 무사출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신사 한쪽에 술통들이 그득 합니다. 아마 이 양조장에서 기진한 듯... 와우... ^^


다시 우리가 30분 정도 이런 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등지원(도지인)이라는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사찰입니다.

차가 좀 덜 지났으면 좋았을텐데, 좀 다니더라고요. ^^


도포자락 휘날리며 등지원을 향해! 고고씽!

일본에서 꽤 유명하다는 대학 둘레를 지나 갑니다.

절집 앞에서 늦는 회원들을 기다립니다.

절 입구는 비교적 소박합니다.
워낙 화려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찰과 정원을 보고 온터라 다들 큰 기대는 않하신듯...

두장의 도깨비 와당이 인왕문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신발을 벗고 올라간 도지인(등지원) 입구 입니다.

1인당 입장료 500엔과 다도 체험 500엔을 단체로 지불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나온 다실에서 다들 정원을 보곤 할말들을 잃고 맙니다.
왜냐고요? 사실 가보지 않으면 말로 다 할 수 없고, 사진으로도 표현하는데 정말 한계를 느끼는
정말 아름다운 정원이었스빈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다실입니다. 도지인 정원의 일부일 뿐이지요. 정면에 보이는 초막이 앞서 잠깐 설명드렸던
센노리큐의 초암 다실입니다. 도지인인 무로마치 막부의 초대쇼군인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1343년 만들었다는 설과
다카우지의 동생인 다다요시가 1338년 무렵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본래 아시카가 가문의 보리사(씨사)로써는 도지인 위에 별도 본사가 있었으나,
그 사찰이 16세기 중엽 오닌의 난 때 본사가 불타면서 이곳이 본사의 이름을 계승하며 본사가 되었다네요.
정원 중간에는 다카우지의 묘탑으로 추정되는 탑도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시간 남짓 머무르며 차도 마시고, 정원 산책도 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어요.
오로지 우리 일행만을 위한 공간, 시간, 그리고 정원이었어요.
다음 후기편에서 도지인(등지원)의 자세한 이야기와 정원들이 펼쳐집니다.
아! 또 가고 싶네요...
첫댓글 금각사 봉황은 화룡점정 인듯~~~
발견이님 카메라는 땡기면 다 보여 주네요 ㅎㅎ
일단 때기는 만큼 보여주는 건 맞습니다. 가끔 제 흐리멍텅한 눈으로 안보이는 걸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