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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상 시의 무의식
이상 시에 나타난 무의식의 표정
오봉옥
1. 들어가며
이 글은 정신분석비평과 구조주의가 혼효된 라깡의 이론을 토대로 이상 시에 나타난 무의식의 표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라깡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거치면서 주체가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상상계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주체는 어머니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동일시함으로 해서 자신의 모습이 깨진 유리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즉 주체는 어머니와 동일시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동일시로 인해 나의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과 동일시 됩니다. 즉 자신이 어머니가 욕망하는 모든 것이며, 어머니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계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억압당하게 되고 따라서 상상계에서의 주체의 욕망은 무의식의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의식의 자리로 들어간 욕망은 은유와 환유의 과정을 거쳐 변환된 시니피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글은 부부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追求>, <紙碑-어디갔는지 모르는 안해>, <紙碑>, 등을 통해 그의 무의식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지를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2. 시니피앙으로서의 ‘안해’
이상이 사는 시대는 유교적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유교적 전통에 속하는 부부관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부일처제입니다. 남편은 아내 이외에, 아내는 남편 이외에 다른 이성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강요되어온 정조 개념은 금기되는 제도의 차원을 넘어 양심에 가까운 그 무엇이 됩니다. 이상은 생전에 세 명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금홍과 권순옥, 그리고 변동림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교적 관념 속에서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특히 이상의 문학과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금홍의 경우는 기생으로서 정조 관념이 지배되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부도덕적이며 부정한 여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해를즐겁게할조건들이틈입하지못하도록나는창호를닫고밤낮으로
꿈자리가사나와서가위를눌린다어둠속에서무슨내음새의꼬리를체포
하여단서로내집내미답의흔적을추구한다. 안해는외출에서돌아오면방
에들어서기전에세수를한다. 닮아온여러벌표정을벗어버리는추행이다.
나는드디어한조각독한비누를발견하고그것을내허위뒤에다살짝감춰버
렸다. 그리고이번꿈자리를예기한다.
- <追求> 전문
‘금홍’으로 추정되는 이 ‘안해’는 부도덕적이며 부정한 시니피에를 갖습니다. 그로인해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안해를즐겁게할조건들이틈입하지못하도록나는창호를닫고”, 아내를 즐겁게 할 조건들은 ‘나’ 아닌 외부로부터 옵니다. 외부로부터 늘 유혹당할 수 있는 아내는 이미 유교적 전통 속에 놓인 평범한 여성은 아닙니다. “밤낮으로꿈자리가사나와서가위를눌린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어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것은 이내 꿈에서도 나타나 ‘가위’를 누릅니다. “어둠속에서무슨내음새의꼬리를체포하여단서로내집내미답의흔적을추구한다”, ‘나’는 아내가 달고 들어온 “무슨내음새의꼬리”를 단서로 아직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그 비밀의 정체를 알고자 합니다. “안해는외출에서돌아오면방에들어서기전에세수를한다”, 하지만 아내는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 세수를 합니다. “닮아온여러벌표정을벗어버리는추행이다”, 그것은 ‘안해’가 외부로부터 전염돼온 여러 가지 표정을 감추기 위한 것입니다. 즉 외부로부터 전염돼온 표정을 남편에게 숨기기 위해 방으로 들어서지도 않고 세면부터 하는 것이지요. “나는드디어한조각독한비누를발견하고그것을내허위뒤에다살짝감춰버렸다. 그리고이번꿈자리를예기한다.”, 그러나 ‘내집’에 들어온 그 정체의 흔적,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흔적을 추구하던 ‘나’는 ‘독한 비누’를 발견함으로서 ‘안해’의 비밀을 알아차립니다. ‘독한 비누’는 ‘안해’가 비밀을 숨기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안해’의 ‘비밀’을 알아내고도 ‘허위’ 즉, 거짓 뒤에다 감추어야 합니다. ‘나’는 ‘안해’ 앞에서 억지웃음을 웃어야 하고, 그 외부의 비밀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내색하는 순간 파경에 이르기 때문이고, ‘나’는 또 그것이 두려워 ‘허위’의 얼굴을 보여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안해’가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세수’를 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안해’가 자신의 비밀을 ‘나’에게 속이듯 자신도 ‘안해’의 비밀을 알면서도 숨김으로서 자신의 위태로운 마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 시에서는 ‘안해’라는 시니피앙이 ‘무슨 내음새의 꼬리’, ‘외출’, ‘세수’, ‘표정을 벗어버리는 추행’, ‘독한 비누’라는 시니피앙으로의 변환을 통해 부정한 여성,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시니피에를 획득합니다. ‘나’는 ‘가위눌림’, ‘무슨 내음새의 꼬리를 단서도 미답의 흔적을 추구’, ‘허위 뒤에 비누를 감춤’, ‘꿈자리를 예기’라는 시니피앙의 연쇄적 변환을 통해 부정한 아내의 행위에 괴로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상은 유교적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당대를 뛰어넘는 사고의 틀을 지녔다고 해도 남존여비사상이며 정조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를 뛰어넘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또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금홍의 생활 즉 여러 남자를 만나야 하는 기생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실정이었을지 모릅니다. 이 시에서와 같이 그는 금홍을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기에 또 두려워해야만 하고, 괴로워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시의 형식 즉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등의 언어규칙의 혼란은 상징계의 질서에 자리잡은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紙碑 -어디갔는지 모르는 안해> 역시 부정한 아내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紙碑 -
안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 남자를 속이려 가는
것이다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한남자이상은 대우하지않는다고 안
해는말한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돌아오지않으려나보다하고 내가 완전
히 절망하고 나면 화장은있고 인상은없는얼굴로 안해는 형용처럼 간
단히 돌아온다 나는 물어보면 안해는 모두솔직히 이야기한다 나는
안해의 일기에 만일 안해가나를 속이려들었을때 함직한속기를 남편
된 자격밖에서 민첩하게 대서한다
- <紙碑 - 어디갔는지 모르는 안해> 중에서
이 시에서의 ‘안해’ 역시 <추구>에서의 ‘안해’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여성이 아닙니다. “안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 남자를 속이려 가는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한 남자씩을 상대해야 하는 ‘안해’는 화류계 여성이겠지요. 그리고 그 아내는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한남자이상은 대우하지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을 보아도 역시 기생의 신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구>에서와 다른 점은 이 ‘안해’가 솔직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부정을 숨기고자 하지 않고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나’ 역시 ‘안해’와 마찬가지로 솔직하며, 굳이 이 솔직한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고 탓하지 않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돌아오지않으려나보다하고 내가 완전히 절망하고 나면 화장은있고 인상은없는얼굴로 안해는 형용처럼 간단히 돌아온다”, 내가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것은 아내의 부정이 아니라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밖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와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형용처럼 간단히 돌아옵니다’. “나는 물어보면 안해는 모두솔직히 이야기한다”, ‘안해’는 돌아와서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밖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와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온 아내, 와서는 또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아내는 역시 사회적 윤리적 가치 체계로부터 벗어나있는 여성, 그러면서도 남편을 사랑하는 여성임을 확인시켜줍니다. “나는 안해의 일기에 만일 안해가나를 속이려들었을때 함직한속기를 남편된 자격밖에서 민첩하게 대서한다”, ‘나’는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와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듯이 아내의 일기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마치 남편이 아닌 객관적인 그 어떤 인물이 일기를 대신 써 주듯이 받아 적습니다. 제 삼자의 자격으로 아내의 일기를 ‘대서’하는 것은 아내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거기엔 아내를 사랑하는 심리, 아내를 의심하는 심리, 현실의 아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깔려있습니다. 이 시 역시 유교적 전통 속에서 길들여진 남편의 고통이 드러납니다. ‘외출하는 안해’, ‘한 남자를 속이려 가는 안해’, ‘하루에 한 남자 이상은 대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안해’,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 얼굴로 돌아오는 안해’ 등의 시니피앙을 통해 부도덕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안해에 대한 절망’, ‘돌아온 안해의 하루상에 관심을 보여야만 하는 나의 모습’ 등을 통해 그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추구>에서는 아내의 거짓을 나의 거짓으로 극복하였지만, <지비>에서는 아내의 솔직함을 통해 아내의 부정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나’는 민첩하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추궁하고 민첩하게 대서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아내를 향한 복합적인 심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 역시 <추구>와 마찬가지로 아내의 부정을 또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하나 이미 상징계의 질서에 자리잡은 혼란스러움은 상징계의 질서인 언어규칙의 혼란을 가져와 쉼표나 마침표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紙碑>라는 작품은 ‘남편’과 ‘안해’의 시니피앙을 통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대립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작아서다리는짧고바른
다리가아프니 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사람처럼걸
어가면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 무사한세상
이 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다.
- <紙碑> 전문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작아서다리는짧고바른다리가아프니”, ‘나’는 ‘큰키’로, 다시 ‘왼다리의 아픔’으로 변환되고, ‘안해’는 ‘작은키’로, 다시 ‘바른다리의 아픔’으로 변환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변환된 시니피앙은 ‘나’와 ‘안해’의 모습을 더욱 대립시킵니다. “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사람처럼걸어가면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 나의 한쪽 다리와 상대의 한쪽 다리가 합치면 관념적으로는 정상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나’와 ‘안해’는 부부로서 일심동체를 꿈꾸지만 그것은 꿈일 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개체로서의 서로 다름이 ‘절름발이’로 만들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사한세상이 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다.”, 부부는 하나이면서 둘입니다. 부부를 하나라고 하는 것은 둘의 실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안간힘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무사한 세상’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관념이고 ‘병’이지요. 실체를 실체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병’입니다. 그런 ‘절름발이’의 관계는 ‘병’으로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일이지요. 여기에는 양면이 공히 존재합니다. ‘절름발이’의 관계로서의 부부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병’이지만 현실 속에서의 부부는 또 하나가 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의 부부는 모두 그렇게 살고 있고, 따라서 둘인 부부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병’이 아니기도 한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나’와 ‘아내’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追求>와 <紙碑 - 어디갔는지 모르는 안해>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안해’의 시니피앙은 부정과 부도덕성을 의미하는 시니피에로 그려지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紙碑>에서의 ‘부부’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치유될 수 없는 절름발이의 무병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3. 나오며
한국문학사에서 이상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우선 <날개>를 비롯한 몇 편의 뛰어난 단편과 산문을 썼고, 그런 점으로 인해 그의 난해시 역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시는 기존 작품의 내용과 형식미를 따르지 않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실험적인 방법으로 시를 썼고, 그만큼 그의 시는 우리에게 낯설고 난해한 것이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우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시니피앙의 사용, 시점 이동에 따른 복합적인 세계관 등 우리에게 매우 난해한 느낌을 줍니다. 형식면에서도 기존의 문법을 무시하는 등 기존 작품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상의 심리세계의 한 측면을 보기 위해 ‘안해’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시 몇 편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안해’를 다룬 시들을 통해 그의 숨겨진 무의식을 추적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시에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묻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시에서 ‘안해’라는 시니피앙을 통해 계속해서 변환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의 무의식의 욕망이 시의 형식면으로도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