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 들판이 민들레 천지이다. 한국 농촌에서는 민들레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유럽지역을 가보면 들판에 그냥 민들레를 자라게 방치해 둔다. 아니 꽃밭처럼 가꾸기도 한다. 민들레 밭에서 나오는 민들레 잎과 뿌리 등으로 맛난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노란 물결의 민들레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유독 한국 농촌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들레의 생명력이 너무도 강해 그야말로 뽑아도 뽑아도 아무 소용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한가롭게 민들레 성장과 번식을 바라만 볼 수 없는 것이 농촌에서 생활해 본 사람의 마음이다. 잔디면 잔디, 채소밭이면 채소밭 가리지 않고 그 왕성한 번식을 자랑한다.
나는 사실 이 민들레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연실의 그 민들레 노래를 들어면서 한때 한국의 민주화를 꿈꾼 적도 있다. "~~눈덮힌 겨울산에서 시름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올줄을 잊고 살았네 그랬네.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추운 겨울 그러니까 군사독재시절을 견디며 살아온 이 땅의 민주화 인물들을 상징하면서 만든 노래 아니든가. 그래서 민들레에 대한 짙은 연민의 정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촌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 민들레가 해도 너무 할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의 작은 텃밭에서 단 10분만에 캐낸 것이다.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주일정도 방치하면 잔디밭을 덮어버린다. 그런데 뽑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뿌리가 워낙 깊게 파고 드니 일단 민들레 씨앗이 떨어지고 뿌리를 내리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민들레를 뿌리채 제거하기가 어렵다.
이제 갓 뿌리를 내린 민들레이다. 일반적인 식물은 뿌리와 잎 그리고 줄기가 비슷한 속도로 자란다. 하지만 민들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뿌리를 깊게 내린 뒤 줄기와 잎을 키운다. 그러니 민들레 잎을 발견하면 그때는 이미 이 정도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말한다. 잔디속을 비집고 들어가 이 정도 뿌리를 내리면 제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풀들과 비교해 보면 민들레의 뿌리내림은 다른 것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들레이지 싶다. 그 척박한 땅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생존을 이어가는 그 생명력에 대해서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장소가 농촌지역 그리고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이 민들레의 강한 생명력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제거의 일순위에 자리 잡는다. 특정 식물과 채소를 키우려는 농부에게는 이 민들레가 그야말로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민들레의 핵심은 바로 이 민들레 홀씨이다. 조그만 민들레 꽃에서 맺히는 이 씨앗이 바로 민들레의 진면목이다. 이 홀씨는 바람에 아주 잘 날라간다. 거의 수백미터씩 날아가 그들의 생명을 퍼뜨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씨앗을 맺지 못하게 하려고 민들레 꽃을 따서 그냥 근처에 버릴 경우 그 꺾여진 꽃에서 이런 홀씨가 그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식물들은 꽃을 꺾어 버리면 그냥 시들고 말지만 민들레는 전혀 그렇지 않다. 꺾인 꽃에서 이런 홀씨가 만들어진다. 어찌 그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왠간한 가뭄에도 워낙 뿌리를 깊게 내리니 다른 식물들은 고사하지만 민들레는 살아남는다.
농촌사람들은 이 민들레가 발견되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포기하기도 하고 그냥 민들레와 채소를 같이 가꾸는 사람들도 있다. 농촌에서 민들레는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그렇게 강한 생명력을 지녔기에 힘든 세상사 그리고 어렵고 어두운 정치상황속에서도 민주화를 앙망하는 인사들은 민들레를 바라보며 의지를 다시 되새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 한국 들판에는 이 민들레가 천지이다. 농부들에게는 힘든 존재이지만 그래도 민들레가 상징하는 그 정신만은 과소평가하면 안된다. 민들레 홀씨의 꽃말은 자유로운 정신, 퍼져가는 사랑, 무한한 가능성이다. 민들레의 강한 의지대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희망해 본다.
2023년 4월 3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