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미친놈이야… 】
# 05.
조용...... 모든 사물이 일시에 정지해버린 듯 고요한 교실 안. 이 쪽으로 오던 걸음을 멈추고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고소미. 모두들 하나같이 제 할말을 잊고 입을 쩌억 벌리고는 곧 튀어나올
붕어 눈 마냥 눈만 꿈뻑꿈뻑 대고 있는 얼이빠진 표정의 반 녀석들. 오로지 곧 부숴질 것만 같은
이 상황이 깨질까 두려운 나머지 조심조심 내쉬는 숨소리만이 귓가에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 ............ ”
“ ............ ”
개주동과 나도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 말 없이 놈의 눈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나와
내 차가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다 받아내고 있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녀석.
아주 미세한 잡음조차 용납되지 않는 공간에서 침묵을 깬 건 나의 성대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 우선... 이 손부터 놓지 그래? ”
“ 어!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턱을 잡고 있던 자기 손을 후다닥 치우는 녀석.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는 개주동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번에 딱 한 번을 봤지만,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저 놈은 웃으면서 사람을 피떡이 되도록 밟는 아주 사악한 놈이다.
성격은 지 이름 만큼이나 개 같았으며, 날 여자로 취급해주지 않았고, 감히 내 멱살을 잡았다.
또한 고소미의 뺨을 후려친 화려한 전적을 소유한 천하의 죽일 놈이란 말이다. 그 때 분명 두 번
다신 보는 일 없도록 하쟀는데 뜬금없이 이게 웬 말...? 과연 일주일 전의 녀석이 맞긴 한 건가?
“ 야.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지껄인 거야? ”
“ 아주 잘 알고 있지! ”
“ 우리...... 친했냐? ”
“ 아니. ”
“ 이번에 두번째로 보는 거 맞지? ”
“ 흐음... 글쎄. ”
“ 너 대체 무슨 수작이야. 혹시 더위라도 먹었냐? ”
“ 나의 진실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거부하지 마. ”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질문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아주 뻔뻔한
낯짝의 소유자 개주동. 이럴 때 바로 울화통이 치밀만큼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현을 쓰는 거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다. 고작 일주일 전에 난 당장에 죽이고 싶을 정도인 개주동의
얼굴을 처음 봤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얼굴을 마주한 건 절대 아니다.
헤어질 때 서로가 아쉬움을 느끼며 작은 호감을 가질 만큼 발전한 사이는 더더욱 아니란 말이다!
“ 개주동...... ”
“ 어, 왜왜? ”
“ 너 내 이름 알어? ”
“ 야. 얘 이름 뭐냐? ”
내 옆에서 아직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짝의 머리를 툭툭 쳐대는 아주 당당한 표정의 개주동.
놈의 기가 막히는 행동에 내가 뒷목을 움켜잡은 사실을 모르는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어댄다.
“ .......바...반장.... 말이야? ”
“ 아, 씨발.... 존나 속 울렁대는 반장 말고 얘 말이야, 얘. 이름이 뭐냐고? ”
“ 그,그니까.... 반장...맞잖아...... 이름은 이새흰이야.... 이.새.흰. ”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친절하게도 한자한자 끊어서 또박또박 ‘이새흰‘ 이란 세 글자를 말한 내 짝.
개주동이 장난 아니게 살벌했던 면상을 돌리자 마자 울먹울먹 거리더니 책상에 엎드려 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녀석. 역시 정상인으로 둔갑한 미친놈이었군.
“ 네 이름 이세힌 이잖아. 원래 알고 있었어. ”
“ 야! 어떻게 된 게 그렇게 딱딱 끊어서 말해줬는데도 제대로 못알아 들어!!
난 멍청한 녀석은 사양이다. 그리고, 존나 속 울렁 거리게 해서 미안하다, 응? ”
“ 헐. 진짜 네가 반장이냐? ”
“ 그럼 가짜냐?! 그리고 그 때는 이 반이 아니라 우리 반이라고 하는 거다!! ”
“ 야.... 나 우리 반 반장 존나 좋아하잖아. 몰랐어? ”
그저 내 이름 세글자를 말한 결과로 책상에 엎드려 작은 샘을 만들고 있는 짝의 머리를 또다시
툭툭 치면서 능청을 떨어대는 개주동 새끼. 내 몸에 말라있는 피를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 녀석의
행동에 돌아버릴 것만 같다. 이게 바로..... 아침에 느꼈던 불안함이 낳은 엿같은 결과물인가...?
“ ......그렇게 놀면 재밌냐? ”
“ 아씹, 도대체 뭐가 그렇게 까다롭냐?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
“ 내가 까다로운게 아니라 네가 뻔뻔한 거지! 그리고 언제 내가 너 좋댔냐? ”
“ 그랬어. ”
“ 내가 언제!!!!!! ”
“ 방금 네가, 실은 존나 좋아 죽겠는데 반에 새끼들 때문에 쪽팔려서 말 못한다고 그랬잖냐. ”
“ 아악~~! 씨발, 닥치치 못해!!!!!!! ”
“ 오우, 달링. 진정해. ”
나는 물론이고, 반 녀석들의 얼굴을 빠른 시간내에 경악으로 물들게 한 개주동의 아주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은 현대에 죄인을 고문하는 곳이 있다면 당당히 합격점을 받으며 쓰여질 게 분명했다.
고함을 버럭 지른 후 분노에 얼굴이 시뻘게진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여유만만한 망할 개주동.
아... 쪽팔린다. 정말 쪽팔린다. 녀석의 말장난에 넘어가 하나하나 발끈하며 대꾸한 내가 부끄럽다.
“ 휴... 더이상 장난치지 말고 네 자리에 가. 수업 시작할 때 다 됐어. 봉숙이 시간이야. ”
“ 오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냐? ”
“ 미친놈. ”
“ 그래. 우리 자기도 이젠 꽤 진정된 거 같으니까 그만 가봐야 겠다.
오늘은 손가락 운동을 해줘야 하는 날이라 좀 바쁘거든. 그럼 나중에 봐, 힌이 달링. ”
“ 야, 너 수업 않듣고 가긴 어딜가!!? ”
“ 말했잖아. 손가락 운동시키러 간다고... 벌써부터 참견하면 여보 숨막히는 거 모르냐?
그런 건 적당히 해야 애교지. 아... 그리고 오늘부터 1일이다, 1일! 그럼 난 간다. ”
헛소리를 지껄이며 살짝 손을 흔드는가 싶더니, 빠른 속도로 앞문으로 나가버리는 개주동.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 때문에 아까까지의 생각만해도 열받는 개주동과의 대화가 마치 간혹 가다
꾸는 악몽을 꾼 것처럼 느껴졌지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꿈이라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샘을 넘어선 하천을 만들고 있는 짝이나.... 아까있었던 일을 화제로 다시
노동 파업을 재현하는 반 분위기 등등의 비참한 현실은 전혀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 The newlyweds had kept their plan secret, just in case their wedding...... ”
1교시, 2교시가 지나 3교시 영어시간. 뽕박사의 머리에 봉긋 솟은 나름대로 띄우려고 애쓴 듯한
아담한 뽕 만큼이나 기름이 좔좔 흐르는 느끼한 목소리도 오늘은 그닥 신경을 긁어놓지 못했다.
3분단 셋째 자리에 앉은 고소미. 오늘은 평소처럼 쉬는 시간에 찾아와서 귀찮게 굴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아까 녀석이 나간 교실 앞 문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
“ ...plans were thwarted by avalanches, freezing winds or faulty oxygen masks. ”
그래, 녀석은.... 장난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행동을 저지르고는 뒷일을 모조리 내게
맡긴 채 손가락 운동을 시킨다는 핑계로 수업도 빠진 채 홀연히 사라저버린 문제의 개주동은....
‘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사겼었어. ’
‘ 말않한 건 미안해, 새흰아. 하지만... 나도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
일주일 전. 이것이 바로 내 질문에 대한 고소미의 대답이었다. 허탈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에
어차피 더 물어볼 생각도 없었지만, 여기서 대충 선을 그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다만 조금 놀라웠다. 너무 밝아서 지랄맞은 고소미가 그딴 어둠의 자식 같은 놈과 약간의 썸씽이
있었다니. 잠시 사겼다지만.... 지금 이렇게 각자 자기 갈 길로 간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점심시간이 되었어도 평소 먹던 것의 반만 받고는 (그래도 보통사람의 1인분 이지만) 젓가락으로
깨작이는 고소미.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벌떡 일어나 등짝을 치려는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
“ 주동이.... 아마 오락실에 갔을 거야. ”
“ 푸우......!!! ”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밥알을 세는 졸라 재수없는 짓거리를 일삼던 고소미의 입에서 몇시간 만에
튀어나온 말... 하지만 그 말은 나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는 것들을 일일히 노려봐주며 천천히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입 밖으로 분출 시키고, 또다시 뒷목을 움켜잡게 하는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 그 손가락 운동이란게.... 고작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거였냐...? ”
“ 응. 중학교 때 학교 마치면 늘 같이 놀았는데, 맨날 손가락 운동한다 하면서 오락실에 갔었거든. ”
“ 다 큰 녀석이 오락은 무슨 오락이야! 나도 그건 초등학교 다닐 때 다 땠다!! ”
“ 꺄하핫! 그 때 정말 굉장했지!! 주동이가 나타나기만 하면 주인 아저씨가 영업 끝났다고
뻥을 칠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잘했는데.... 아직도 그 버릇은 여전한가 보다....... ”
고소미의 저 표정. 즐거웠던 옛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눈빛. 결코 낯설지 않았던 저 모습은....
내가 아주 가끔씩 추억에 잠길 때마다 꺼내던... 즐겁고도 쓸쓸하고... 또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나는 밖으로 꺼내고 싶어도 말 못하는 추억을 고소미는 조금 슬픈 얼굴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 주동인 중3 때 알았어. 소꿉친구의 친한 친구였지. 수빈이랑 만날 때 마다 주동이가 있었어.
늘 사고만 치는 장난꾸러기에다 성격도 난폭 했지만.... 늘 나를 보며 짜증난다고 했었지만...
못된 말만 툴툴 뱉는 주동이가 나도 모르게 점점 좋아졌고, 결국 내 억지스런 고집에 사귀게 됐어.
하지만.... 우린 일주일도 채 않가서 깨졌어. 내가 주동일 차버렸거든. 뻥~ 하고...... ”
“ ............ ”
“ 우리 하나뿐인 오빠.... 평생 다리 못 써. 병신됐어. 검은 옷 입은 새끼들이 우리 오빠를....
하루 아침에 불구가 되버렸어.... 달리는 걸 좋아했는데..... 이젠 평생 못하게 되버렸어. ”
“ ............ ”
“ 주동이가 한 게 아니란 거 알아. 지금은 알아.... 하지만... 그 땐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됐어.
믿어달라는 눈빛을 외면했어. 그렇게 날 싫어하던 주동이가.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던 주동이가...
내 어깨를 잡고 믿어달라고 했는데.....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차갑게 노려보기만 했다...? ”
“ ............ ”
“ 그 이후론 쭈욱 못봤는데.... 지난 달 주동이가 우리 반에 전학생으로 왔을 땐... 정말 놀랬어.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하지만....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난폭해진 주동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어. 일주일 전.... 내가 본 주동이는 여태까지 내가 알던 주동이가 아니야.
아무리 싸우는 걸 즐기고 화가 나도! 그렇게 까지 사람을 패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무서웠어.... 새흰아. 나 처음으로 주동이가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까지 쳤어... ”
“ 그래서.... 그 녀석한테 사과는 받았냐? ”
“ 아니.... 않받는게 아니라 못받는 거야..... 주동이에게 뺨이 아닌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난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니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난 말야... 이제까지 주동이가
웃는 모습을 딱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했었어. 그렇게 된다면 정말 소원이 없었거든....
근데 오늘.... 주동이가... 웃는 걸 봤다..? 주동이가..... 새흰이 널 보면서... 예쁘게 웃었어. ”
“ ......그게... 예쁘게 웃은 거냐? ”
“ 새흰아... 주동이..... 착한 주동이 네 옆에서 게속 웃게 해 줘. 부탁이야. ”
“ 야. 내가 미쳤냐? 지지리 궁상도 그런 궁상은 없다. 헛소리 말고 밥이나 쳐먹어!! ”
원망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고소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난 끝까지 모른 척 했다.
고소미. 개주동은... 절대로 예쁘게 웃은 게 아냐. 다시 아침 시간으로 돌아가 떠오르는 개주동의
얼굴. 즐거워서 웃는게 아니었다.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웃음. 그것이 바로 놈의 웃음이었다.
***
“ 흰아.... 너 정말 내 부탁 않들어줄 거야...? 넌 내가 불쌍하지도 않어? 흑흑.... ”
“ 아니, 너무 불쌍해서 단 돈 10원이라도 던져주고 싶어. ”
“ 불쌍하면 내 부탁 들어줘.... 그냥 조금씩 만나주는 것도 안 돼...? ”
오늘도 봉숙 여사의 변함없이 뛰어난 색조화장의 진수를 느끼며 종례를 끝마쳤고, 반 녀석들의
듣기싫은 수근거림을 한 쪽 귀로 대충 흘리며 교실을 빠져나오는 날 붙들면서 애원하는 고소미.
“ 어!! 그니까 당장 놔!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왜 자꾸 못가게 잡는 거야!!? ”
“ 씨잉~!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진짜 매정해, 새흰인!! 내가 공부보다 못해??
딴 애들 다 야자하는데 혼자 집에 가면 좋아? 응? 좋냐구! 나도 내일 우리 엄마 데려올 거야!! ”
“ 누구는 집에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알어!? 썅! 그래, 내일 너네 엄마 않데리고 오면
고소미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근데, 너.... 진심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거냐? ”
“ 뭘? 내가 네 손에 죽는 거?? ”
“ 그거 말고...... 네 부탁 말야.... 내가... 개주............ ”
‘ 부아아앙~~~! ’
젠장할... 정말 엿같은 타이밍이었다. 내 목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바이크에서 나는 광음에 무참히 먹혀버렸고.... 한창 시끄러운 소리에 현관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던
나와 고소미가 천천히 이맛살을 찌푸렸을 때, 우리 앞에 멈춰선 검정 바이크. 헬멧을 벗는 개주동.
“ 달링. 나 마중나온 거야? ”
“ 돌았냐? 이 가방 않보여? 그러는 넌 이 시간에 학교엔 그 꼴로 웬일이야... 설마 야자하러? ”
“ 나중에 학교 마치고 찾아오라며. 그래서 우리 힌이 보러왔지. ”
우웩...!! 놈의 느끼한 말에 꾸역꾸역 구역질만 해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늘 아침 교실에 나타난 김주동이 아무 이유없이 날 찾아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일주일
전의 일을 복수하러 생전에 오지도 않던 학교에 행차하셨구나... 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혹시나
교실에서 난동을 부릴까봐 단 둘이 조용히 해결할 생각에서 나중에 찾아오라고 한 건데......
흘러가듯이 나간 말을 기억해 진짜로 찾아오다니... 소문처럼 머리가 많이 나쁜 건 아닌가 보다.
“ 내가 언제 오늘이라고 했냐? 시간 낭비말고 손가락 운동이나 더 하시지. ”
“ 그럼 내일 학교 마치고 다시 오지 뭐. 오늘은 이왕 온 거니까... 타. 집까지 데려다 줄께. ”
“ 미쳤어? 그리고 미안하지만, 난 바이크 뒷자리는 않 타. ”
“ 쑥쓰러워 하기는.... 빼지 말고 좋으면 좋다고 말해. 왜? 내가 꼭 안아 올려줘야 하냐? ”
“ 아... 내가 왜 가방을 들고 나왔지? 야자하는 걸 깜박 잊었네. 들어가자, 고소미. ”
“ 어쩔 수 없군. 우리 자기가 저렇게 원하는데 들어줘야지. ”
고개를 떨구고 있는 고소미를 끌고 재빨리 되돌아서서 아까 고소미를 피해서 투다닥 뛰어내려왔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뜨는 느낌과 동시에 세상이 거꾸로 보였다.
“ 야!!!! 이거 놓지 못해?? 야!!!!!!! ”
“ 우리 자기는 어쩜 목소리까지 이렇게도 곱냐? ”
“ 개주동!! 네 눈깔에는 저기 창문 너머로 보고있는 선생들이 않보이냐?!!
오늘 수업도 빼먹은 녀석이 교복 차림으로 바이크를 끌고 나타나서는 날 태우고 사라지면
나는 내일 뭐라 말하냐고!!!! 학주한테 들들 볶이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보고싶어?!! ”
“ 내가 다 처리해 줄께. ”
“ 다 처리해줘? 웃기시네~! 그럼 오늘 야자 빠진 건!!! ”
“ 난 한다면 해. 그리고 넌 원래 야자 않하잖냐. 닥치고 이거나 써. ”
나참...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이렇게 황당한 경우가 세상에 과연 존재나 할까?
목소리를 한가득 깔면서 헬멧을 건네는 개주동의 모습에 할말을 잃은 난 개주동이 손수 헬멧을
씌여줄 때도 아무런 반항없이 멍한 표정만을 지었고,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녀석의 교복 상의를 잡아챘다. 여태껏 뒷자리에 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바이크를 탈 때
여자가 남자의 허리를 안는 일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건 없다고 여겨왔던 나였기에 끝까지 놈의
휘날리는 옷자락을 꽉 쥐고는 버텼다. 이대로 여기서 굴러 떨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그건 싫었다.
‘ 가만.... 이놈은 우리 집이 어딘지 모르잖아!? ’
한참을 달렸을까... 순간 저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말도 없이 멈춰서는 바이크.
재빨리 내려서 내가 쓰고 있던 헬멧을 벗겨준 개주동을 있는 데로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 야... 여기가 우리 집이냐? ”
“ 니가 너희 집이 어딘지 가르쳐 주기라도 했냐? 그리고.
서방 허리 잡는 게 그렇게도 싫어? 이거봐, 이거봐~ 내 교복 다 구겨졌잖냐! ”
“ 지멋대로 태워서 데려와놓곤 고작 교복 구겨진 거 가지고 그 지랄이야? 밥맛 없는 놈... ”
“ 뭐? 내 교복 집에 가져가서 다려 온다고? 올... 역시 내 마누라야~
자! 오늘 김주동 이세힌 1일인 기념으로 데이트나 하자. 같이 손가락 운동하러 갈까? ”
“ 헛소리 말고 입 다물어! 사람 많은데서 창피 않주는 걸 감사히 생각하고 집에 가서 공부나 해!
다음 주가 시험인데 무슨..... 그리고, 개주동 너! 내 이름이나 다시 똑바로 알아와!!! ”
사람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 무슨 서방이고 마누라고 1일이고 데이트를 한단 말이냐!!!
시내 한복판에서 고함을 버럭 지르고는 얼굴을 찌푸리는 녀석을 뒤로 빙글 돌아섰다. 그러나....
내 눈안에 들어온 건 상가만 가득한 길가. 대책없이 우글거리는 인간들. 서울로 이사온 뒤론 단
한 번도 집 근처와 학교가는 길을 벗어난 기억이 없다. 한마디로.... 집에 가는 길을 모른다.
만에 하나 개주동이 없으면 졸지에 미아가 되버리는 구질구질한 신세에 선뜻 발을 못 움직인 채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러다 혹시라도 개주동이 가버렸을까 고개를 든 순간......
“ 넌 첫 날부터 네 서방 바람 맞히기냐? 야. 내 말 않들려? 야!! 너...... ”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개주동이 내 몸을 툭툭 쳐대도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두근두근... 죽어있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메말라있던 눈물샘이 다시 작동되기 시작한다.
내 눈을 빤히 내려다보는 개주동의 까만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 시선은 오로지 정신없이 우글대는 사람들 속에 있는 단 한 명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속으로 열심히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를 연신 외쳤지만... 모든 신경이 저절로 그 곳으로 쏠린다.
아아... 사라져 간다. 늘 잊지 못하던 햇빛에 반짝이는 갈색머리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어쩌다 꿈에서나 불렀던 이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미치도록 그리웠고 보고 싶은 얼굴.
늘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그 아이의 이름을 약 3년 만에 처음으로 힘껏 불렀다.
“ ......세..찬..아...... 세..찬....아... 강..세......강세찬!!!!!!!!!!!!!!!!!!!! ”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장편 ]
넌 미친놈이야… # 05
에어즐
추천 0
조회 1,014
05.09.14 02:27
댓글 4
다음검색
첫댓글 주동이가 이상해졌어요ㅠ0ㅠ!!!!! 주동아 제정신으로 돌아와!!!!!!!! 엉엉....ㅠ0ㅠ 긍뒈 세찬이는 누구??
주동이가 한창 작업중이죠. 아하하... 세찬인 새흰의 어릴 적 소꿉친구인 격이죠.
주동이가 헷갈릴 만도 하네요~ 이새흰이라니 정말 특이한 이름ㅋㅋ 그래도 예뻐요. 머리가 네모반듯한 레고도 머리에 뽕을 띄운 뽕박사도 재밌었어요. 또 소미 얘기 너무 슬펐구요 새흰이도 남모를 과거가 있는 것 같은데...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소설 너무 잘쓰세요^^
아하... 이 소설에 나오는 선생님들은 모두 제가 학교 다닐 때 특이했던 선생님만 꼽은 건데.... 하하하 소설 처음쓰는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