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계절도 은혜였다.
9월 문턱을 넘으면 큰 수술 후 매년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는 자 같았다.
가슴이 시리고 아렸다.
여의도 광장을 무단 횡단하고 직장에 입사한 날,
광야에 홀로 선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떻게 촌놈이 낯선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남았을까?
수습사원의 미숙함과 열등감에 말없이 눈물 흘렸다.
고졸 학력이 부끄러워 퇴근하면 곧장 학원으로 향했다.
하루 네 시간씩 자며 배움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난 세월의 그 모든 길은 핏줄처럼 얽힌 하나님의 은혜였다.
선친께서 6·25 전쟁에 참전하여 흘린 피의 대가였고,
가문의 어둠을 걷어내려 애쓴 고모와 이모의 섬김의 손길이었다.
그들의 눈물과 희생은 내 인생의 마른 밭고랑을 적시는 빗물이었다.
기도의 응답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
주경야독으로 6년 세월을 쌓고 15년의 직장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34년의 사역도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지난주일 예배의 특별 찬송
‘하나님의 은혜’를 들으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갚을 길 없는 은혜가 내 삶을 에워쌌다.
에스겔 선지자처럼 보고 듣고 마음에 새긴 것을 말하였다.
미움에서 사랑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다시 일어설 소망의 삶을 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은혜 고백하기를 원했다.
오후에 힘겹게 투병하는 환우의 옷깃을 세워주려고 병원을 찾았다.
주문한 본죽에 반찬 하나를 더 담았다.
작은 것 챙기는 마음도 사랑이었다.
집중치료실에 들어서니 침대 위치가 창문 쪽으로 바뀌었다.
콧줄만 빼도 답답함이 사라졌다.
소변 줄은 달렸지만 얼굴이 깨끗하고 밝았다.
간식으로 게맛살을 오물거렸다.
암모니아 수치가 돌아오면서 배변도 한결 자유로웠다.
설사로 요양보호사를 힘들게 한 일도 떠올렸다.
두 병에서 여전히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손을 잡았다.
예전의 힘이 아니었다.
팔목 곳곳에 주사 맞은 흔적이 푸르게 남았다.
성도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다들 예배 나오셨지요? 나만 빠져서 죄송하네요.”
자신의 아픔보다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때 옆방의 치매 할머니가 문지방에 불쑥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났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던진 말에 웃었다.
밤낮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어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이번 간성혼수가 왔을 때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기적은 믿음의 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원장님도 토요일 오전 일부러 병원에 나와 상태를 살폈다.
의식이 돌아온 날, “목사님, 언제 오세요?” 간호사에게 물었단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소통이 가능하자 아들딸도 찾았다.
아픔은 순전한 신앙을 검증하는 시금석이었다.
“목사님, 가실 때 간호 부장님께 콧줄 끼우지 말라고 당부해 주세요.”
의식이 없을 때 영양 공급을 위한 조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엇보다 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지난번 주신 쁘띠젤요. 치즈도요.
우산동 농협 매장에서 원 플러스 원으로 팔 거예요.”
“챙겨 드릴게요.”
“목사님! 또 언제 오세요.”
기다리는 눈빛을 외면하지 못해 화요일 다시 들렀다.
수요 예배 차량을 운행하던 길에도 찾아갔다.
간호사의 눈총을 맞고 밤 빵만 놓고 나왔다.
약한 자를 돌보는 일은 아버지의 심정이요,
사역을 이어 준 생명의 끈이었다.
다음 날, 지인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느껴 카톡을 보냈다.
‘이 목사님! 아프네요. 머리, 어깨 통증에 쉬었다 병원 가려고요.’
해 질 무렵 전화를 걸었다.
진료 후 집으로 간다는 목소리가 개미처럼 작았다.
지칠 때 잠시 기대어 쉴 어깨가 되어주려고 기도문을 썼다.
“사랑의 주님,
아픈 몸으로 힘없이 돌아간 자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 의로운 오른팔로 붙들어 주소서.
낙망치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다시 찬양하게 하소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아픈 곳마다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새 힘을 더하소서.
잘 먹고 쉬며 몸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두려움이 떠나고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하소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믿고 하나님만 붙들게 하소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주님과 함께 살게 하소서.
더 가볍고 밝은 마음의 눈뜨게 하소서.
아픔의 시간에 주님을 깊이 만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고백하게 하소서.
치료와 회복의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엊그제 아내가 봉지에 담긴 부추를 계단에 두었다.
저녁때 피망, 고추, 부추, 방아잎에 메밀가루와 달걀을 풀었다.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려 부추 전을 부쳤다.
한입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텃밭을 정리하고 재를 뿌려 부추가 돋아나길 기다렸다.
어머니 손끝에서 무쳐진 겉절이!
그 푸르름과 알싸한 맛이 그리워졌다.
어머니를 잘 섬기셨던 부산 권사님의 별세에 그 기억에 더 사무쳤다.
이제 알 것 같다.
살아온 계절마다 누군가의 눈물과 기도가 배었음을..
선친의 피 흘림, 고모와 이모의 섬김, 어머니의 손길 말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게 붙드신 주님의 은혜가 컸다.
소외된 이의 손잡아 준 일도,
힘겨운 사람의 옷깃을 세움도,
먼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이었다.
아픔의 계절도 눈물의 계절도 은혜였다.
한량없는 그 은혜, 갚을 길이 없다.
26. 9. 5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