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반야심경ㅡ21
이렇게 반야심경에서는 이사(理事)가
무애(無礙)한 세계, 즉 현상과 본질이 둘이
아닌 세계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엄경에 가면 ‘사사무애법계’가
나옵니다. 현상 속에 있으면서도 걸림이
없는 세계입니다. 삶이 그냥 이 세상 속에서
걸림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배를 갖고 바다를 항해한다 하더라도
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법계 는 놀러 갔다가 물에 빠져서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세계이고, 이법계는
물에 안 빠지려고 호수에 사는 세계이고, 이사무애법계는 바다에는 가고 싶고
물에는 안 빠지고 싶어서 큰 배를 갖고
바다에 나가는 세계입니다.
이 셋의 공통점은 물에 안 빠지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물에 안 빠지는 게 좋은데 첫 번째는 물에
빠져서 괴롭고,
두 번째는 물에 안 빠지려고 울타리를 치고
살고, 세 번째는 물에 안 빠지려고
큰 배를 탑니다.
바다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줍고
그런데 사사무애법계는 물에 빠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물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안 해요. 어차피 바다에 있는 진주조개를
줍기 위해서는 내 발로 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 빠지려고 했는데 빠지면 고통이지만, 이
사람은 내가 볼 일이 있어서 내 발로 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남이 볼 때는 물에 빠졌지만 본인은 물에 빠진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이 지장보살의 원입니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지옥에
갔는데, 우리가 볼 때는 바보 같죠. 다른
사람은 지옥에 안 가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지장보살은 안 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발로 가서 지옥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합니다. 이것이 사사무애법계입니다.
걸레처럼 다른 사람의 더러움을 닦아주고
사사무애법계라는 경지는 이 세상에서
남이 울 때 같이 울고, 남이 웃을 때 같이
웃고, 남들과 똑같이 삽니다. 남이 울 때도
안 울고, 남이 웃을 때도 안 웃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남에게 물듦으로 해서 걸레처럼
다른 사람의 더러움을 닦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법계는 깨끗하게 살고 싶은데 물드는 존재, 이법계는 깨끗하게 살려고 더러운 곳에
가까이 안 가는 존재, 이사무애법계는
가까이 가도 물 안 드는 존재인데, 마지막
단계인 사사무애법계는 내가 물 들고 상대를
살리는 존재입니다.
내가 지옥에 가고 상대를
지옥 밖으로 내보냅니다.
세상에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보여요.
그런데 본인의 마음속에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이것을 ‘현현(顯現)한다’, ‘천백억 화신(千百億
化身)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사무애법계에서는 우리가 어떤 잣대로
‘저 사람은 수행자이다’
이렇게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법계, 이법계, 이사무애법계는 ‘물에 빠졌나,
안 빠졌나’ 하는 잣대가 있는데, 사사무애
법계는 기준이 없으니까 잣대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삶으로 해서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
‘본인은 괴로워하느냐?’
이런 걸 봐야 돼요. 운다고 다 괴로운
건 아니에요. 남이 슬퍼하니 함께 슬퍼해
주고, 남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니 같이
가서 들어주고, 남이 감옥에 갇히니 같이
가서 감옥에 갇혀도 주지만 본인은 괴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표시가 안 납니다.
그것을 화작(化作) 또는 화현(化現)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아직 부처의 길과 보살의
길이 다릅니다. 보살은 아직 부처가 못 된
단계로 설정되어 있는데,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에 가면 보살은 이미 부처가
됐지만 부처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보살행을
하는 모습까지 나오게 됩니다. 이런 식의
얘기를 공부하는 것이 다음 시간에 배우게
될 화엄경입니다.
반야심경의 요지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주인공이 스님이 아니고 보살입니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원을 세운 선남자,
선여인, 누구든지 다 주인공입니다.
둘째, 이들이 행하는 수행은 반야바라밀다행입니다. 확 깨달아서 눈을 떠버리고 진실을 아는, 그런 수행입니다.
셋째, 그렇게 확연히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제법이 공하다’ 하고 공을
체험합니다.
넷째, 실체가 없고 항상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체험하니까 괴로울 일이
없어져 버려요. 반야심경 첫 문장에 이
네 지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반야심경은 한문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내용이 아주 짧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마다 이런 요지를 항상
마음에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동하합장()()()♥
꽃사진ㅡ임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