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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내기가 두려워진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처음 글을 접했을 때의 시작은 겁도 없이
글을 접했지만 지금은 제목 정하는 거 까지 웬지 모르게 이 글의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이 글을 써야한다는 조심성이 생기는 것이다,
엉거주춤 그러다보니 원고마감 날을 넘기고 제목부터 생각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번의 제목을 상처뿐인 영광으로 정했다.
제목에서 느끼든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을 것이고 또한 반대로 영광스러운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글도 살아오면서 느꼈던 진솔한 글을 적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한 사람의 개인의 느낌을 적은 글이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좋겠다는 충정어린 마음으로 적는 글이니 읽는 분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이해 하시면서 읽어 주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데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한국에 태어나 이만큼 누리고 사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는 별의별 인종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뉴질랜드에 한 달 정도 머무른 시간이 있었다.
그때에 백인들의 얼굴을 보니 정말 눈이 쏙들어가고 코가 뾰족하게
생긴 것을 자세히 보니 정말로 잘생긴 얼굴들이었다.
전체적인 윤곽을 봤을 때 백인 흑인 황인들 중에 가장 멋지게 생긴 것이 백인들인 것이다.
잠시나마 백인들의 모습에 반해 참 복도 많이 갖고 태어난 인간들이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으며 이들의 태도 하나하나가 멋진 에티켓매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습도 잘 생겼지 매너도 좋지 그러니 백인들을 볼 때 우리는 백인들을 우러러 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그 백인들 중에도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오면 백인들이 큰대우를 받는다는 지들 나름대로의 정보를 가지고 와 요즘에는 별로 없는지 모르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영어를
가르쳐주겠다고 자격도 없는 영어강사를 하면서 젊은 아가씨들을 유혹하는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메스콤을 통하여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왜 한국인들이 백인들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하고 우러러 볼까?
필자도 백인들을 보면 우러러 보는 습관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못살고 못 먹었을 때 백인들의 나라에서 원조를 받아 힘겹게 강냉이 죽 밀가루 등을 먹고살 대부터 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모습도 잘 생겼지. 매도도 좋지 그러니 눈에 확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백인들도 정말 형편없는 인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백인들은 아주 잘사는 민족 그것은 이전의 옛날 같은 일이다.
필자가 서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데에 엉청난 자부심을 느낀다고 애기한 것은 많은 나라들을 다녀보고 난 뒤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인들의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공식도 깨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각 나라마다 인종에 따라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각나라들이 얼마나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다른 나라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에 우선 인종에 관한 얘기를 먼저 쓰고 싶다.
우선 뉴질랜드를 얼마 전에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머무르고 왔기 때문에 자연히 뉴질랜드를 떠올리며 뉴질랜드에 관한 얘기를 먼저 써 보려고 한다.
뉴질랜드하면 우리에게 첫 번째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청정국가의 상징이며 자연이 좋은 축산의 나라정도라고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뉴질랜드가 6.25참전국가라는 사실을 요즘 젊은이들은 많이 모르고 있고 기성세대들도 많이 잊고 살아가는 느낌이들 정도로 모르게
살아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50년 그때에 뉴질랜드는 100만이 조금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총 군인이 8.000명 정도라고 기록이 되어있으며 6.25전쟁발발 후 최초로
4.000명을 한국전쟁으로 파견을 보냈으며 나중에 6,000명으로 증원이 되었고 그리고 희생자와 실종자 부상자들을 합쳐 500여명의 사상자가
났었다는 통계의 자료 근거가 있다.
총 군인의 7-80%에 가까운 군인을 보내서 자신들을 희생가면서 대한민국을 이렇게 발전을 할 수 있게 만든 나라에 뉴질랜드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참전용사들을 몇 년 전에 재향군인회에서 초청을 해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귀로 느끼해 했다는 소식을 재향군인회 국제실장으로
계시는 지인 분에게 직접들은 사실이 있었다.
그나마 그런 소식을 들은 나는 정말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참전용사들에게 어떠한 고마움의 표시는 물론 이거니와
이분들에게 어떠한 관심조차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번에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제가 머물렀던 로토루아에 6.25참전용사들이 있다고 하여 그분들을 내 개인자격으로 초청을 하여 작은 식사자리와
작은 선물을 드리는 그런 자리를 만들었었다.
이분들의 나이는 80대 중반들을 다 넘긴 나이였으며 그다지 건강해 보이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고 작년에도 한 분이 돌아가셨고 그리고 부축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에게 나는 말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고 그리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우뚝 솟아 있는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당신들
참전용사들에게 진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을 우리가 대신해서 말과 또한 카드에 글을 딸네미가 정성스럽게 번역을 해준 내용을 직접적어 카드를 주었더니 이분들이 정말 감격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구해준 대한민국에서 아주 작은 자리를 만들었는데도 이 자리자체가 감격이라는 표현을 영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참전용사의 딸네미가 아버지를 부축하고 참석을 했는데 우리아버지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인지 자신은 몰랐다는 얘기와 앞으로는 우리 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존경을 하겠다는 얘기가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부분에도 감격을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큰 도움을 주었던 나라들에 대해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한번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얘기의 주제를 다른 데로 돌려서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태국도 6.25전쟁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참전국이다.
특히 필리핀은 내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6.000명의 병사를 파견하여 미국과 영국 군인들과 같이 직접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희생자들을 낸 국가였었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 필리핀을 어떻게 바라다보고 있는 것인가?
못살고! 지진과 태풍이 많이 불어 희생자가 큰 나라!
도박과 은퇴자들이 많이 머무르는 나라 아마도 이정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필리핀에는 약 20만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얘기들을 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 중에는 현지투자기업인. 학생.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간 어린 학생들이 많이 있지만 한국과의 범죄 인도조약을
성실히 지키지 않는 국가라서 한국에서 문제가 된 범죄자들이 제일 많이 숨어 잠입을 한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라고 보면 된다.
그 필리핀에서 소수이겠지만 참으로 악랄한 행동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자들을 꼬셔서 동거를 하면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가볍게 낳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식구들의 애환은 끝없이 절규에 가까운 한국인에 대한 원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범죄조직을 뒤에서 조정을 하면서 한국인들끼리 등치고 테러를 가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바로 필리핀의 요즘의 행태인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이란 글을 쓰면서 참전국을 들춰내고 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냐고 반문들을 하실 거 같은 생각이 들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측에 드는 한국 동양의 끝자락에 있는 반도국가인 한국은 세계인들의 주목의 대상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안다는 것이 6.25전쟁을 겼으면서 폐허 속에서 빠져나온 국가 그리고 남북이 분단된 나라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대한민국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88올림픽을 계기로 시작해서 2002년도에 월드컵을 개최하여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고 4강 신화를 쏴
올리면서 한국은 세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2013년도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약 1조1천억 달러가 넘는 수출입금액이 많은 나라 세계 10대 통상국가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세계전체의 무역규모 량이 약36조 달러가 되니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4%를 차지하는 막강한 나라인 것이다.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한국을 앞서는 정도이며 앞서는 국가 중에 무역흑자를 이룬 나라는 중국.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이다.
세계 속에 화려화게 경제를 꽃피운 일본도 무역적자 국가로 돌아선 것이다.
얼마 전, 전(前) 주한 프랑스 외교관 파스칼 다예즈-뷔르종은 《한국인(Les Coreens)》책을 펴내며 ‘미래는 한국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인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언제 어디서든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다고 서술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 책의 서평 기사를
실으며 한국을 ‘알려지지 않은 용(龍)’이라고 표현했다.
비단 이것은 외국인이 신기하게 바라본 동양의 나라 한국이 아니다. 2020 경제대국 한국의 탄생에서 밝히는 한국이 지닌 경쟁 역량과도
모양을 같이 하는 것이다.
넥스트 10년,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핵심 성공요소인 수요 창출에 유리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세계적으로 우리에게만 유일하게 남은 수요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을 아는 세계인의 대부분 사람들은 빨리빨리 습성을
비난할 때 이 저자는 그 기질이야말로 바로 한국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의 무한한 도전정신과 평등한 공동체 지향성
역시 2020 경제 대국이 되기 위한 경쟁 역량이라고 역설한다.
우리 스스로가 “한국은 더 이상 안 될 것”이라며, 패배주의에 빠져있을 때 이 책은 가슴 뛰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저자는 그 희망이
멀기만 한 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경쟁 역량을 통해 경제대국으로 설 구체적인 가능성들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국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준 참전국가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필자가 앞에서 기술한 내용이 얘기 하고 저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다.
세계 경제 최강 10대 국가 안에 드는 한국의 모양새는 경제대국이란 말을 빼고서는 어느 하나 다른 국가들 앞에서 내 새울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을 도와준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인들과 동거를 하여 낳은 자식들이 약 오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가장 악랄한 범죄자들이 숨어들어 필리핀 범죄단체와 짜고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필리핀인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필리핀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나라에 가서 이런 일을 저지르는 행위는 더 이상 우리국민들의 의식이 더 이상 깨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더 큰 배려의 마인드로 이들을 바라다보지 않는 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금 유엔에는 한국인의 상징적인 존재 반기문 유엔총장이 태어난 나라인 것이다.
우리가 6,25를 거치면서 많은 국가의 협조를 받아 이만큼 발전 할 수 있었던 것도 유엔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큰 도움을 받아놓고서 노무현 대통령시절에 미국에서 아프간 파병요청에 국회와 국민들이 파병에 반대를 하는 난리를 겪은 기억이 난다.
우리의 아들들이 타국의 총알받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625때 한국에 참전한 미국의 희생자만 오만 명에 가깝다고 기록을 잠깐 본적이 있다.
그런데 타국에서는 우리의 전쟁을 참전하여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도 우리는 해외의 파병에 안 된다는 난리를 피다가 이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요청에 순응하여 조금씩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우리의 아들들이 해외에 파병되어 희생자가 생긴다면 그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만 도움을 받고 다른 해외 국들의 어려움에 우리가 참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이제는 대한민국입장에서는 없어져야 하는 논리들이다.
지금 현재는 경비. 건설, 의료 목적으로 파병을 지원하고 있는데 기록으로는 총 15개국에 약 1.500명이 파병이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고
파병국도 레바논 동명부대에 359명 6개월 주둔한 기록이 있고 아이티 단비부대 240명 등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남수단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해적을 물리친 청해부대 등 이제는 제법 국제사회에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고 보인다.
이처럼 한국이 선진국반열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이미지 재고를 위한 국제 활동을 하게 된 것을 필자는 높게 사고 싶은 심정이다.
대한민국은 이제는 외부세계에서 받은 환대를 이제는 갚아나가야 하는 시간이며 그 상처 속에서 치유를 받고 무럭무럭 성장한 힘들을 국제사회에
되돌려 줘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소식들이 자꾸 들린다.
세계경제 불황속에서 대한민국의 성장의 동력이 끊어지고 있다는 사실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 1위의 저 출산 국가로서 인력이 에너지라는 국가의 가장 시급한 인력 문제에 직면하게 된 한국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묻지마 성장의
결과 부채의 역습 터질 수밖에 없는 부의 양극화모순 고용 없는 성장의 지속 장기간 지속되는 내수 침체 동력을 잃어가는 성장 모멘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언 글로벌 시스템에 종속된 한국 경제 분단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폭발 직전의 국가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필자는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정치권은 매일 같이 반대를 위한 취고 받고 싸움 투성이에다.
국민들은 양극화현상에 가진 자와 못가진 자들의 반목이 거듭되고 있으며 정치하는 자들이 선거 때면 떠들어 대는 것이 선심성의 공약성으로 우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들을 우롱하고 조롱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어렵게 번 돈을 쉽게 나뉘어 주겠는가?
전에도 이런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필자는 복지재단을 통해서 작은 사회적인 책임을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사회에서는
이 짓도 해먹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내 돈을 쓰고서도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누가 어렵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을 하려고 하겠는가?
외국의 선진국사회에서는 특히 미국에서는 세계최고의 갑부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매년 자산보다 많은 재산을 기부하여
오던 중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폐지를 시도하자 약 8년 전에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부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어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잘산다.…”고
상속세 폐지에 대한 강한 비난과 부자 감세에 대해 반대를 하면서 “세 자녀에게 전 재산의 1% 정도만 물려주고 모두 99%를 기부하겠다.”라고
약속하고 자국에 천문학적인 재산의 기증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기증하고 있으며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도 “부는 흔히 후손에 의해 없어지기 마련이므로 자선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라는 철강 왕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앤드류
카네기의 생각을 담은 『부의 복음』이란 책을 빌 게이츠에게 주면서 그와 수년간 교류하며 빌 게이츠와 같이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면서 그도
전 재산 99%의 기부를 약속하였으며 특히 자선사업으로 크게 이바지하는데 그 성실성 때문에 빌 게이츠 등 부호들이 그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2009부터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은 재산 10억 달러 이상인 미국 내 400여 명의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생전 또는 사후에 개인 재산 절반 이상의
기부를 선언하는 운동으로 많은 부자의 호응을 받고 있으며 전 세계의 부호들에게 자선 기부를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이전 정부로부터 계속되는 부자 감세로 부자들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고 재벌들은 이따금 대형범법의 처벌에 관련하여 거액을 기부하는데
이건희 회장 1조원 정몽구회장 1조원씩 기부를 하였는데 이렇듯이 문제가 있으면 빠져나오려고 하고 싶지 않은 기부를 하는 것인데 빌케이츠나
워런버핏 같은 두 분과 이에 따르는 다른 미국 부자들을 본받아 애국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범법하지 않으면서도 기부하여 국민의 존경을 받는
사회 풍조가 꼭 와야 되며 이글의 제목처럼 상처뿐인 영광처럼 문제가 생기고 땜방 하는 식의 기부는 국민들도 절대적으로 호응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 한다
한국은 대기업 일부분을 빼고는 한국사회에서의 경제 자립도가 생긴 지가 시간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진 자의 절반이상이 피땀을 흘려 번 돈 이라는 생각이 들고 필자 역시 찢어진 가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자나깨나
연구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돈을 벌면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생각하며 작지만 지금의 현실에 부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자들을 살펴본다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卒富라는 표현을 편하게 생각하며 그런 말도 쉽게 한다.
대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나이 정도 사람들이라면 못 먹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넉넉한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함부로 돈을 쓰곤 하지 않는다.
너무 자린고비같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지 부자가 되니 자신의 옛 처지에 비유해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을까 해서 그런 입장에 처해있는
사후를 대비하는 부자들이 많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그 입장을 대변하고 저 하는 것이 아니다.
대박과 쪽박의 글에도 썼었던 내용인데 가진 자들 것을 막무가내 식으로 달라고 하거나 뺏아 버리라는 요즘 못 가진 사람들의 발상이 더 무섭다는 얘기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만 하고 조건에 대한 불만만 표시하다보니 지금의 우리사회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반목의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부분을 정치인들이 더 조장을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가진 자의 사회상이 먼저 정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는 누리고 살고 누구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진 자의 책임 있는 사회상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빌케이츠나 워런버핏 같은 기업인들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도 기업인들을 존중하고 또한 존경해야하는 인물로 많이 각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責任! 정말 중요한 단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가진 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의무적인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分配의 法則이 존재되어야 한다
돈을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쓰듯이 자신의 재능을 가진 자들도 그 재능을 못가진 자들에게 나누어줘야 하는 책임의 의무를 얘기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이틀 밤을 뜬눈으로 보며 열광하며 분노하고 빼앗긴 금메달을 찾기 위하여 별의별
소리들이 인터넷에 글이 오르고 내린 사실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그 시간대에 인도네시아에 있었기 때문에 그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결과를 가지고 흥분하는 네티즌들을 볼 수는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그 경기를 재방송에서 보았는데 정말 김연아 선수는 흠잡을 데가 없는 아름다운 연기를 펼친 것이 누가보아도 금메달감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홈의 텃새 때문에 빼앗긴 금메달을 보면서 우리는 2002년도 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이루었던 한국대표 팀들을 보고 상대국들이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새기는 순간도 가져보았다.
냉정이 따지면 특출 난 실력을 겸비한 김연아 선수는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벤쿠버 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의가 금메달을 땄을 때의 느낌과는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벤쿠버 때의 동작은 한 마리의 제비와 백조를 연상하듯 빠르고 우아한 느낌이 이번에는 우아한 예술적인 가치는 분명히 최고였지만 동작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점프도 약했고 힘겨워하는 동작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안 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도 실수없이 연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한국에서는 백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선수가 바로 김연아 선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는 그런 선수가 다시 나올 수 없는 현실이며 그런 김연아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중계를 보았고 또한 열광을 한 것이다.
이것도 김연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느껴야 할 책임이다.
좀 더 선수생활을 연장해서 더 좋은 연기를 계속해서 보여줄 수 있었으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벤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김연아의 애매모호한 행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던 것도 사실이라 생각이 된다.
아직도 선수생활을 한참 더 할 수 있는 시간에 조기 은퇴를 앞두고
있는 찰나에 코치와의 불화설 등 좋지 않은 모습들이 나오자 광고주들이 김연아 광고를 축소하자 다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솔직히 김연아의 몸은 개인의 몸이기도 하지만 우리국민들이 만들어준 몸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광고주들의 힘으로 기획사를 차려 많은 수익금을 올렸으며 명예. 권위. 돈. 모든 것을 얻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러면 김연아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본인의 판단에 맞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본인이 은퇴를 결정했으니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따로 코치직이나 선수협의회 IOC위원으로 간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나 김연아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선수로서의 출중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찾아주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적인 책임의 일부가 아니겠나 필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며칠 전에 호주에서 유현진의 메이저리그 개막 다음날 게임을 중계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게임에 5회까지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금년도 신고식에
국민들은 환호하는 분위기 였었다.
소치에서 500m 2연패를 한 이상화선수를 우리 국민들은 김연아 보다 인기는 못하지만 국민의 영웅으로 더 큰 생각을 하고 있으며 벤쿠버에서
금메달을 따고 서구선수들 보다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꾸준히 악발이로 연습을 하더니 세계신기록 기록도 갖게 되고 올림픽 2연패에도
은퇴를 하지 않고 선수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이상화선수는 김연아 선수에 비하면 화려하지도 않고 별로 보상이 없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이며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는 이상화선수에게 국민들은 대단한 영웅 못지않게 사랑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40세가 가까운 이규혁 선수. 이강철 선수도 꾸준히 그 나이에 메달의 한을 느끼며 은퇴도 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연장하는 것은 바로 1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까지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태환선수도 한때 북경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고서 그 인기에 편승하여 광고를 찍으며 연습을 게을리 하다가 뭇매를 맞고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다 말 할 수 는 없지만 국민들 가슴에 듬북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1등이 된다는 것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천부적인 재질도 한 몫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주를 부려 일등이 되어 국민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기업인이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노력할 수 있는 재주!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재주를 나뉘는 것도 바로 기부문화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어제 저녁 어느 분이 이태석 신부가 만든 울지마 톤즈의 브라스 밴드가 한국에 온 다큐멘타리를 KBS에서 특별 기획방송을 한 카톡을 보내 그
영상을 보며 감동과 한숨과 눈물을 지으며 그 영상을 끝까지 감동스럽게 보았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태석 신부는 원래전공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도 하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또다시 카토릭대학을 다녀 신부가 되어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의술과 음악을 나누기 위해 아무도 원하지
않은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라는 곳에서 그 곳의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의술과 음악을 가르쳐 내전으로 힘든 그곳의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슈바이쳐가 되어 버린 분이다.
종교를 떠나 자신의 건강관리는 뒷전으로 미루고 오직 나눔의 사랑만 실천하고 간 이태석 신부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고행의 길을 자발적으로 하신 분이다.
왜?
어렵고 힘든 고행을 왜 했을까?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하는 바로 책임이기 때문에 국적을 떠나 가장 헐벗고 굶주린 곳에 가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돌아가신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
대한민국을 이렇게 불러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다.
경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곳까지 왔지만 의식만큼은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빛을 진만큼 갚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왜 그 빛을 갚아야 하느냐 따지는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자고 상처뿐인 영광이란 제목을 가지고 어렵게 어렵게 탈고를 마쳤다.
항상 써놓고 후회를 하면서도 더 이상 진전이 없는 부끄러운 글에 고개를 다시 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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