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名문장] 나를 사랑하기까지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오션 브엉(Ocean Vuong(1988-)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Night Sky with Exit Wounds)’
“사랑해”라는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랑의 대상이 ‘너’가 아닌 ‘나’인 경우, 그 시간은 생의 시간으로 모자라 생 이후의 시간까지 요구되며 불가능한 고백으로 남겨지고 만다.
“나는 나를 사랑해(사랑할 거야).” 이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한 아주 협소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사막처럼 광대한 말이 될 수 있다. 때때로 너무 낭비되고 있는 것 같은 말. 그래서 거부하고 싶기도 한 이 말.
오션이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요구됐는지를 알기 위해선,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영어로 시와 소설을 쓰는 그의 개인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의 첫 자전적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읽어야 한다. 그의 개인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베트남 전쟁 때 갓난쟁이인 딸과 먹고살기 위해 미군을 상대하다가 미군 병사의 아기를 낳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가족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장기처럼 장착된 전쟁과 폭력의 트라우마와 미국 사회에서 너무도 손쉽게 약물에 노출되고 그 중독으로 죽어간 친구들이 남긴 트라우마.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에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더해진 겹겹의 분열을 예리하고 정제된 언어로 재정립하며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고통으로 꽉 찬 삶을 아름답고 숭고한 삶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랑’에 도달한 그다.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오션 브엉(Ocean Vuong(1988- )
오션, 두려워 마.
길의 끝이 너무나 멀리 앞선 나머지
이미 우리 뒤에 와 있어.
걱정 마. 네 아버지는 둘 중
한 명이 서로를 잊을 때까지만 네 아버지야. 우리
무릎이 아무리 아스팔트에 키스해도
척추가 날개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오션,
듣고 있니?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어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든 부분이란다.
여기, 한 가닥의 지뢰선으로 깎아내린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이있네.
걱정 마. 그냥 그걸 지평선이라고 부르면
절대 닿을 일 없으니.
오늘은 오늘이야. 뛰어. 구명보트가
아니라는 걸 약속할게. 너의 떠남을
거둘 만큼 넓은 가슴을 가진
남자가 있어,
불이 꺼진 직후, 그의 다리 사이
희미한 횃불을 아직 볼 수 있을 때.
넌 그걸 쓰고 또 써서
네 손을 찾지.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하니
네게 스스로를 비울 입 하나가 주어졌지.
두려워 마, 총소리는
조금 더 오래 살려는 자들이 내는
실패하는 소리일 뿐. 오션아. 오션아-
일어나.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몸의 미래야. 그리고 기억해,
외로움마저도 세상과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걸. 여기,
모두가 있는 방이야.
네 죽은 친구들은 바람이
풍경을 통과하듯
너를 통과하고 있어. 여기 절름발이
책상 그리고 그 책상을 지탱하는
벽돌이 있어. 그래, 여기 방이 있어
따뜻하고 피처럼 가까운,
맹세해, 넌 잠에서 깨면-
이 벽들을
피부로 착각할 것이라고.
―오션 브엉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 중
✺<머리부터 먼저>/ 오션 브엉(Ocean Vuong(1988- )
넌 책 속에서 마음껏 스스로를 잊지만
절대로 신이
자신의 손을 잊듯
너 자신을 잊지는 못할 거다.
✺<총상으로서의 자화상>/ 오션 브엉(Ocean Vuong(1988- )
대신, 이것이 빗소리가 가린 모든 발자국의
메아리가 되게 하고, 가라앉는 배에 내던진
이름처럼 공기를 마비시키고, 도로에 묻힌
뼈들을 잊으려 도시의 부식과 쇠를 지나
케이폭 나무 껍질을 흩뿌리고, 연기와 부르다 만
찬송가에 병든 난민 캠프를 지나,
할머니 Ba Ngoai(베트남어 외조모外祖母)의 마지막 촛불로 밝힌, 검게 녹슨
판잣집, 형제로 오해해 붙든 돼지의 얼굴들을 지나,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승리를 위한 증언으로
하얀 원더 브레드 식빵과 마요네즈를 갈라진 입술에
갖다 대는 이들의 방, 오직 웃음으로만 장식된,
눈밭 덕에 환해진 방에 진입하길, 생선 내장과 말보로
냄새가 휘감은 아버지의 팔에 들어 올려진 갓난
아기의 상기된 볼을 스치길, 존 웨인의
M16으로 쓰러지는 또 한 마리 갈색 동양놈들을 보며
화면에서 불타는 베트남을 보며
환호하는 모두의 귓속에서 흘러내리게 하라, 깨끗하게,
약속처럼, 소파 위 반짝이는 마이클 잭슨 포스터를
뚫기 전에, 자신과 같은 코를 가진 모든 백인 남자가 제
아버지라고 믿을 준비가 된 혼혈 여자가 서 있는
슈퍼마켓으로 침투해, 그녀의 입속에서 잠깐
노래 부르게 하고, 그녀를 토마토소스 병과 파란색
파스타 상자 사이에 눕혀, 짙은 빨간색 사과가
그녀의 손에서 구르게 하고, 하느님이 주기를 거부한
마지막 영성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달을 응시하는
남편의 감방에도 침투해, 우리가 서로에게 주는 방법을 잊은
키스처럼 그의 턱을 치고, 1968년 하롱베이로
쉬익 날아가길- 하늘은 불로 바뀌고, 죽은 자만
하늘을 우러러보고, 그의 군용 지프차 뒷자리에서 임신한
시골 여자를 박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네이팜이
폭발하는 광풍에 노란 머리가 나부끼는 그자에게 닿길,
그의 미래 딸들이 자라날 먼지에 그를 꽂아버리고,
그들의 소금과 고엽제로 물집이 난 손가락으로
그의 올리브색 군복을 찢게 하고, 그의 목에서
대롱대는 이름을, 살아 살아 살아 그 말을 다시 배우기
위해 그 이름을 쥐어 잡고 그들의 혀에 누르고-
하지만 이걸로도 모자라면, 이 죽음의 광선을 제
딸의 갈비뼈에 너덜거리는 살점을 도로 꿰매는 눈먼
여자처럼 내가 짜게 하라. 그래 -이 소총을
장전하기 위해 내가 태어났다고 믿게 해달라,
미끈하고 매끄럽게, 진정한 찰리처럼, 빗소리에
흐릿해진 귀신들의 발자국처럼 가늠자 안으로 몸을
낮춰 -기도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기를,
✺<가정 파괴범>/ 오션 브엉(Ocean Vuong(1988- )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춤췄지: 어머니들의
하얀 드레스가 우리 발에서 흘러내리고, 늦은 8월이
우리 손을 검붉게 물들이며.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사랑했지:
보드카 한 병 그리고 다락방의 오후, 네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쓸고 - 내 머리에 들불이 일었지. 우리가
귀를 가렸을 때 네 아버지의 울화는
심장박동으로 변했지. 우리가 입술을 맞췄고 그날은
관처럼 닫혔지. 마음의 박물관에는
머리 없는 두 사람이 불타는 집을 짓고 있어.
벽난로 위에는 항상 엽총이
걸려 있었지. 또 버려야 할 한 시간 - 그래봤자
신에게 다시 달라고 할 시간. 다락방 아니면 차에서라도. 차가
아니면 꿈에서라도. 그 남자가 아니면 그의 옷이라도.
산 채로가 아니면, 수화기를 내려.
1년이란 제 자리로 돌아오는
여행의 거리이니까. 말하고 싶은 건: 우리는 이렇게
춤췄지: 잠자는 몸 안에서 혼자. 말하고 싶은 건:
우리는 이렇게 사랑했지: 혀에서 난 칼날이
혀로 변하면서.
♣저자 : 오션 브엉(Ocean Vuong) : 1988년 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시립대학교 브루클린 칼리지와 뉴욕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여러 지면에 시를 발표하였으며 2016년 첫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을 출간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로 이어지는 자신의 가족사와 이에 얽힌 베트남전이라는 역사, 미국이라는 나라, 퀴어로서의 삶 등을 날카로운 동시에 따뜻한 언어로 담아낸 이 시집으로 T.S. 엘리엇상, 휘팅상, 톰건상, 포워드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뉴요커』『가디언』 등 영미권 주요 매체에서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2019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2022년에는 두번째 시집 『시간은 어머니』를 출간하였다. 현재 뉴욕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내가 만난 名문장, ‘나를 사랑하기까지’(김숨 소설가), (동아일보, 2025년 10월 13일(월)〉, 《Daum, Naver 인터넷 교보문고》/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