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만난 그녀 / 김지명
최태수에게 여자가 생기면 친구에게 소개해주는 미덕을 갖고 있었다. 멋진 사내가 남들과 다름없는 남자였다. 아무리 예쁜 여인을 만나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픔을 아무도 모른다. 최태수가 마음에 끌리는 여인과 함께하더라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빈민촌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끌리는 여인을 만나면 한 번이라도 더 보려면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그들이 만나는 곳에 나를 불러주면 다시 볼 수 있었다. 항시 지갑이 비어있으므로 친구 덕에 배만 채우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은 그림자처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나라를 흔드는 사람도 돈이 있기 때문이다. 돈 없는 사내는 여인을 멀리하고 외롭게 살아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사내들이 그렇게 길들인 것인지? 여자들만 풀 수 있는 화두다. 최태수는 여자에게 잡혀가길 학수고대하였다. 밤낮없이 두 손 모아 고개 숙이며 여자 친구가 나타나길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내였다. 최태수는 젊을 땐 아주 바쁘게 생활하였다. 젊어서 직장생활 할 때는 갖가지 취미활동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였다.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연습에 몰두하였다. 다양한 취미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잘할 수 있었다. 취미활동 하기 위해 모이는 곳에 남자는 극소수지만, 대다수가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은 직장 다녀서 시간이 없지만, 여자들은 가사(家事)가 끝나면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곳에 모였다. 취미가 같으면 한곳에서 경쟁의식을 갖고 즐겁게 배우지만, 놀이 문화가 다르면 만나기도 어려운 것이 친구 사이다. 최태수는 취미가 독특하여 남자 친구가 별로 없고 여자 친구가 더 많았다. 운동신경이 발달하여 무슨 운동이든 잘하였으므로 여자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볼링으로 맺어진 일곱 명의 모임에서 여자 다섯 명 남자는 둘이었다.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탁구모임에서도 여자 다섯 명 남자는 태수가 한사람뿐이었다. 배드민턴과 테니스는 반반이었다. 이르듯 여자 친구가 많아 언제나 꽃 속에 묻혀 향기에 취했다. 성격이 더욱 여성화되어가는 최태수를 여자들이 더 좋아하였다. 남자가 있어 방패막이가 되고 여성처럼 행동하기에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링 운동을 함께하는 차명자 여인이 개인적으로 최태수를 불렀다. 최태수는 개별적인 만남을 싫어하지만, 부름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는 좋아하지만, 소문이 두려워 일체 만남을 거부하고 살았다. 차명자는 남과 다르게 최태수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체로 가더라도 곁에서 지켜보곤 했다. 삼복이 시작되는 초복 날이었다. 명자가 그랜저를 운전하여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운전석 문을 열고 앞자리에 앉아도 되나요? 하였는데 명자는 빙그레 웃으며 어서 타시오 하였다. 최태수를 곁에 앉힌 명자는 삼복에 피는 연꽃단지로 구경 가자고 하더니 광안대교로 차를 몰았다. 최태수는 차명자의 곁에서 수다를 늘어놓았다. 차명자의 차에 앉아 광안대교를 달리는 느낌은 구름타고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좋은가 하고 웃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흥겨운 음악으로 최태수의 기분을 더욱 상승케 했다. 최태수는 차명자와 수년간 함께 운동하였기에 서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명자는 광안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신이 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최태수가 차창 밖으로 내다볼 때 마른장마라서 채소이파리가 말라가고 있었다. 농민은 삼복의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밭고랑에 땀을 묻고 있었다. 차명자는 경주요금소를 빠져나와 안압지로 향해 달렸다. 대단지 연밭에서는 화려한 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최태수와 차명자는 연꽃 속에 묻히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최태수의 차는 소나타 구형이라 소음이 심하고 냉방이 잘되지 않았다. 차명자는 최태수의 차를 타기 싫다고 했다. 몇 삼 년을 연인으로 보내면서 만날 때마다 차명자는 뉴그랜저를 가지고 왔다. 만남의 장소에 오면 차명자는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가서 앉는다. 어느 날 차명자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최태수는 오늘도 구름타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진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진해구 용원동에 고급모텔이 즐비하였다. 최태수는 모텔 앞으로 지나면서 차명자에게 물었다. 저렇게 멋진 모텔에 내부가 보고 싶지 않은가? 했다. 듣고 있던 차명자는 새삼스러운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최태수는 다시 질문한다. 문제의 답이 맞으면 모텔 내부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단서를 달고 물었다. 우리가 모텔에 들렀다고 할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말 중에 “워” 자로 끝나는 말 다섯 가지를 말해보라고 했다. 차명자는 얼굴을 붉히면서 샤워라고 했다. 맞아 한 가지는 잘 맞추었는데 나머지를 말해보라고 했는데 머뭇거리더니 누워 라고 잘 맞춰나간다. 여자였기 때문에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시간이 지나가 벼렸다. 어느덧 자동차는 모텔단지를 지나 해양박물관 언저리로 달리고 있었다. 진해를 통과하고 마산을 지나 진동 바닷가에 도착했다. 갯장어 회가 유명한 진동은 손님을 기다리는 횟집이 모두 만원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횟집에 앉을 수 있었다. 차명자가 폭탄 발언을 했다. 지금까지 즐겁게 함께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훔치는 차명자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살다 보면 만난 날 있겠지요, 하면서 울먹였다. 최태수는 이유를 물었다. 남편의 직장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자고 하여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최태수는 떠나는 마음보다 보내는 마음이 더 아프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긴 세월에 볼링과 드라이브를 이어왔지만, 모두를 추억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옷을 벗은 모텔이 손님을 기다리듯이 우리도 기다리므로 보내야 했다. 차 안에서 마지막 키스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별의 상처가 심하여 최태수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3일이 멀다 하고 만났고 함께하는 날마다 소란스런 신음과 비명은 방안을 꽉 매웠다. 사회생활에 장애를 줄 만큼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회사에서도 근무시간에 멍청한 망상에 사로잡혀 직원이 불러도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직장 동료들은 최태수가 달라졌다고 소문이 났다. 이혼? 아니면 애인과 이별? 그것도 아니면 삶의 회의? 회사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상한 소문이 난무하고 있었다. 최태수는 차명자를 다시 만나기 위하여 직업을 전환하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같은 사무실에 여직원이 고백할 말이 있다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최태수는 무슨 약점이라도 있는 것이지 아주 궁금해하였다. 카페에서 마주앉은 아가씨가 어디를 떠나느냐고 묻는다. 멀리 간다고 했다. 아가씨는 십 년 전에 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지금까지 부장님을 짝사랑했다고 고백하였다. 삼촌같이 믿음직하고 항시 좋은 말로 들뜬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성인군자같이 보였기에 짝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태수는 고맙다며 좋은 인연 만나 결혼하길 바란다고 했다. 최태수는 35년간 근무하던 직장에서 명예퇴직하였다. 차명자와 데이트하기 위하여 자유업을 선택하였다. 퇴직금으로 중소기업 생산 공장에 동업하였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가 부도나자 재산을 다 날려버렸다. 최태수가 실의에 빠져 삶을 포기하려고 망설이고 있었다. 차명자가 직장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불쌍하게 여긴 차명자가 최태수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불렀다. 차명자의 오빠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든지 아니면 제품을 저장하는 창고에 관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전량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인천 중구 항동에 창고를 두고 화물선에 싣기 전에 저장하는 곳이라고 했다. 인천에서 근무하겠다고 했더니 최태수를 데리고 오빠에게로 갔다. 차명자는 부산에 있을 때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의 신랑이라고 소개했다. 차명자의 오빠가 창고장으로 명하였다. 최태수는 인천에서 몇 년간 신혼 생활을 하면서 창고 관리자로 근무했다. 차명자와 자주 데이트할 때 회사직원이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생활에 이상을 느낀 사장이 사람을 붙여 최태수의 뒤를 미행한 것이었다. 최태수는 사장에게 불려가서 사직서를 쓰고 부산으로 직행하였다. 차명자는 오빠에게 불려가 무릎을 꿇었다. 최태수와 차명자의 일거일동을 사진으로 늘어놓고 보라고 했다.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제매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차명자는 오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차명자는 오빠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일단은 막이 내렸다고 최태수에게 전해왔다. 차명자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집을 비울 수 없으니 이게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하겠다고 했다. 최태수는 가슴을 끌어안고 부산으로 내려오니 아내가 직장을 구해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실의에 빠진 최태수는 두문불출하고 살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좋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아내의 권유에 취미생활로 새로운 삶을 되찾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배워둔 각종 운동으로 다시 동우회에 합류하였다. 취미생활 하면서 한 여인과 눈이 맞았다. 차명자를 잊기 위하여 새로운 여인과 데이트를 시작하였다. 다 떨어진 승용차에 칼국수 한 그릇으로 데이트를 반복하였다. 하루는 또 칼국수야 하더니 회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여인이 사주는 줄 알고 따라갔다. 회를 푸짐하게 시켜놓고 하는 말 데이트를 하려면 고급스럽게 놀아야지 하면서 미소를 보였다. 다음에는 더욱 맛있는 것으로 대접할 테니 오늘은 여인에게 사라고 했다. 여인은 그 정도의 돈도 가지지 않고 무슨 데이트를 하는가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여인에게 돈을 빌려보려고 사정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여인은 최태수의 곁에서 말없이 멀어져 갔다. 최태수는 식당에서 나올 수가 없어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다. 여인은 알지 못하는 승용차에 함께 타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은 최태수는 바닷가에서 눈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땅거미가 사라지고 적막이 밀려와도 자리에서 일어날 힘마저 없었다. 호시절에 함께 즐기던 모임에서 여자 친구는 단체로 볼 수 있어도 개인적인 만남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여자와 친구 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 돈이었다. 여자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돈이 없으면 언제 창피를 당할지 몰라서다. 개인적으로 만난 여자에게 잊히지 않는 수모는 아직도 눈앞에 아롱거린다. 친구가 없는 최태수는 또다시 외로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최태수는 물 흐르듯이 낮은 곳으로만 바라보면서 고개 숙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꼬치 친구들이 정년퇴임을 하고 명예퇴직도 하여 하나둘 함께할 여유가 생겼다. 박수철이 사는 집 근처에 좌우로 세 명의 꼬치 친구가 있었다. 삶에 찌들어지게 생활하는 하지명은 취미가 다양하지만, 회사 간부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박수철은 별다른 취미가 없었다. 최길태는 일찍부터 사업에 성공하여 큰 기업체를 갖고 있었다. BMW 외제 차를 타고 다니며 돈과 시간에 여유가 넘치는 친구였다. 최길태는 세상을 내려 보면서 큰소리치고 살지만, 최태수는 고개 숙이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십사 년의 삼복더위가 시작하는 칠월의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명의 친구가 산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부산 근교의 산을 자주 다니던 어느 날 영도의 명산을 찾았다. 칠월의 따가운 햇볕을 머리에 이고 봉래산으로 등산하려고 세 명은 부산항대교를 지나 동삼동 고신대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학교에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아주 심했다. 학교를 지나 네거리 갈림길에서 정상을 오르지 않고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걸었다. 숲이 우거져 그늘은 이어져 있었다. 봉래산 허리를 한 바퀴 돌아가는 오솔길 언저리에는 개망초 꽃을 비롯하여 많은 야생화가 피어있었다. 그뿐만은 아니다.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다양하게 들려왔다. 봉래산에는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였다. 울산 친구들 세 명이 동심을 이야기하면서 절반을 걸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비켜서 지나간 다음에 다시 걷기를 반복하다가 너덜겅을 보면서 신기하여 감탄하였다. 봉래산 허리를 한 바퀴에 가깝도록 걷고 있을 때 쭉 빠진 두 여인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최길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솔길 앞에서 턱 버티고 서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더니 시비를 걸었다. “아주머니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대구에서 왔어요.”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여 주제 없는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후리후리한 여인들은 미인들이었다. 외무같이 길게 뻗은 다리에 몸매는 호리낭창하다. 건강관리를 아주 잘한 여인들이다. 최태수는 여인들을 오솔길 언저리에 의자를 찾아가 앉게 하고 조건을 붙여 말했다. 오늘 부산구경 시켜 주면 다음에 대구 팔공산 구경시켜줄 수 있겠는가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하면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다가 함께 걸어가자고 했다.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걸어서 절반을 넘어왔는데 다시 그 길을 걸어도 싫어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얼굴은 달걀처럼 갸름하게 생겨서 순수한 한국형 미인 같고 한 명은 키가 조금 작았다. 작은 아주머니는 애교스럽게 보이며 얼굴은 스마일 형이다. 눈초리는 처지고 입 모양은 반달처럼 양 끝이 위로 올라있다. 얼굴만 보아도 미소를 짓는 모습이다. 박수철은 키가 아주 큰 편인데도 작은 아주머니와 밀착하여 걸었다. 두 쌍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오솔길 걸어가지만, 최태수는 쌍쌍이 걷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두 친구는 여인을 처음 만나는 사춘기 소년처럼 기분이 들떠있었다. 앞서 걷는 길태와 거리를 두고 걸어갈 때 최태수는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였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만디(정상)로 오르는 길을 선택하여 깔딱 고개에도 쉬지 않고 단숨에 올랐다. 지천명의 여인과 이순의 사내지만, 서로가 뒤질세라 호흡은 헐떡거리면서 만디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온 두 여인은 마루에서 내려 보더니 감탄을 연발하였다. 풍광명미한 이곳에서 떠나기 싫다면서 약 사백 고지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보아도 바다가 있고 부산의 한 부분이 한눈에 들어오니 이 기분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면서 감탄을 늘어놓았다. 내륙에서만 살았기에 바다의 그리움이 어느 사람보다도 많았던 여인들이다. 최길태와 박수철은 여인 곁에 나란히 붙어 서서 팔을 쭉 뻗어 고층빌딩과 공원을 가리키며 자상하게 설명하였다. 두 사내는 연인이라도 하자는 듯 서로의 연결고리를 입력하고 멜로디로 확인까지 하였다. 최태수는 두 여인에게 이름을 물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아주머니는 오십을 넘어서는 김영자라고 하였다. 곁에서 듣고 있던 키가 작은 여인도 오미숙 이라며 생긋이 웃었다. 최태수는 다섯 명의 성씨가 다 달라서 단합이 잘되겠다고 자주 만나자는 의미를 비추었다. 한참을 산마루에서 경관에 취했다가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또다시 너덜겅을 지나면서 엉켜있는 바위의 모습에서 갖가지 형체를 바라보면서 잠시 머물렀다. 야산에도 너덜겅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좋아하였다. 돌너덜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다람쥐가 바위틈새에서 나오더니 재롱을 피워 눈길을 끌면서 발길을 멈추게 했다. 요즘은 청설모는 흔하게 보이지만, 다람쥐는 보기가 어렵다.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기 때문에 멸종위기에 몰려있다. 최길태는 오미숙의 손을 불끈 잡고 만지작거리며 다람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박수철은 김영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다람쥐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람쥐가 사라지자 최태수는 가자고 하며 앞에서 경사가 심한 오솔길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뒤따라오던 오미숙은 미끄러지자 박수철은 얼른 일으켜 세운다. 최길태와 김영자가 우습다고 깔깔거린다. 최태수는 등산을 마치고 고신대학교 뒤편 네거리 언저리에서 의자에 둘러앉아 모두 앉으라고 했다. 모두가 헤어질 시간이라며 마지막 토론을 하고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데 최길태가 부산역까지 태워준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오미숙은 바로 가기를 원하지만, 김영자가 태워주면 타고 가자고 미련을 남겼다. 다섯 명은 주차한 곳으로 갔다. 많은 승용차 중에 BMW에 문을 열자 두 여인은 놀라운 기색을 보인다. 우와 멋쟁이 아저씨들이네 하더니 승용차에 올랐다. 최길태가 운적석에 앉았지만, 최태수는 조수석 자리를 김영자에게 양보하였다. 박수철은 오미숙을 보호하려고 먼저 태우고 최태수는 맨 나중에 타라고 한다. 최태수는 달리는 차 창 밖을 내다보다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부산에 오면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두 여인에게 물었다. 오미숙은 당연히 회가 먹고 싶지요, 하지만 김영자는 부담스러운지 회는 무슨 회라 칼국수나 한 사발 먹으면 되잖아 하였다. 듣고 있던 최길태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바다를 보았으면 물속에서 노는 고기를 맛보아야지요? 하면서 횟집 앞으로 차를 몰았다. 외지에서는 부산이라면 해운대는 해수욕장이고 민락동과 자갈치는 횟집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다. 김영자와 오미숙은 모처럼 회를 맛본다는 기분에 들떠 있었다. 부산역에서 가까운 자갈치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자갈치 시장입구에서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하면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최태수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내륙에서 온 여인들에게 보여주려고 수족관 앞으로 데리고 갔다. 안으로 들러 다양한 물고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가두어놓은 물고기가 자유를 찾으려고 위로 뛰어올라서 푸드덕거리자 여인들은 놀라서 움직거리며 몸을 피하기도 했다. 자갈치를 처음 접하는 두 여인은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아 보였다. 어류와 어패류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어종을 보고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기도 했다. 최길태는 김영자에게 어패류에 대하여 설하고 박수철은 오미숙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다. 최태수는 바다가 내다보이는 오 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두 쌍은 마주 보면서 앉았지만, 최태수는 두 친구를 양쪽으로 보면서 센터에 앉았다. 갖가지 회가 식탁에 수놓았다. 토막토막 잘라놓은 낙지가 살아 움직이자 여인들은 징그러워하면서도 별미라며 입에 넣었다. 토막 난 낙지가 입천장에 달라붙자 오미숙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오두방정을 떨었다. 박수철은 곁에서 멍하니 바라보더니 초장을 먹으면 된다고 한다. 최길태는 곁에서 우습다며 껄껄거리더니 김영자가 해삼 멍게를 좋아한다면서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영자에게 꼬막을 가져다주었다. 최태수는 두 친구가 여자에게 빠져 배려하는 모습에서 질투심을 느꼈다. 최태수는 속으로 비웃듯이 ‘나도 옛날엔 저랬는데’ 하면서 회 맛인지 초장 맛인지 느낌 없이 배를 채웠다. 여인들과 이별하였다. 부산역에서 잘 가라 잘 있어라. 하면서 악수로 이별인사 하였다. 여인들은 대구로 떠났지만, 세 명은 승용차에 앉아 다음에 만날 기회를 계획하였다. 최태수는 집으로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젖었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함께 산행할 때는 좋지만, 이동할 때는 승차초과가 되어 혼란이 생겼다. 최길태는 괜찮다고 하지만, 최태수는 그렇지 않았다. 두 쌍이 즐거워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의 의리고 친구다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산행할 때마다 두 쌍은 웃음으로 이어지지만, 최태수는 카메라와 함께하여야 했다. 어느 날 최태수는 마음이 달라졌다. 최태수는 두 친구에게 등산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친구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반드시 최태수를 데리고 다녔다. 최태수는 분위기도 살리지만, 연애박사라서 상호 간 우애에 대한 교량 역할 하기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를 위해 육십 년의 친구 정을 끈을 수 없다고 최길태는 강조했다. 최태수는 삶을 깨우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친구들과 함께하였더니 등산에 취미가 생겼다. 십사 년의 여름은 어느 해보다도 더위가 심했지만, 삼복의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친구와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산에는 남자들만 가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도 떼를 지어 가지만, 두세 명이 다니기도 하고 혼자서 가는 여인도 있었다. 최태수는 여자들과 놀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함께하지 않았다. 여자를 바윗덩이같이 볼 수밖에 없었다. 태수이의 가정생활에 빨간 불이 켜졌기 때문이었다. 돈이 없어도 벌려고 하지 않는 최태수는 겁 없는 사내였다. 태수이가 아내를 잘 만난 덕에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최태수는 아내의 이해심이 삶을 연장했다. 집에 있을 땐 노숙자가 아니더라도 그들과 생활이 비슷하였지만, 아내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라고 권한 탓에 즐거운 삶으로 현존하고 있다. 최태수도 여자를 보면 대화도 하고 싶고 맛 나는 것도 함께하고 싶지만, 주머니가 비어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친구 덕분에 태수는 돈벌이하지 않아도 여자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부모 팔아 친구 싼다.”는 말이다. 친구란 친구다운 친구이어야 하며 친구처럼 감싸주는 진정한 친구가 가장 멋진 친구다. 이토록 의리 있는 친구가 바로 최길태와 박수철이다. 최태수는 등산할 땐 항시 친구와 함께 다니며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최태수도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났다. 마른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골프에 빠져있는 최길태는 가끔 함께 다니던 꼬치 친구도 멀리하고 필드에 나갔다. 칠월이 저물어가던 날 최태수는 박수철에게 가까이 있는 여자 친구를 찾아보자고 했다. 둘은 아주머니 사냥하려고 여자들이 많이 다니는 산으로 갔다. 마른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중복 날이었다. 최태수는 박수철과 따가운 햇볕은 머리에 이고 암남공원으로 갔다.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산책로가 있었다. 두 사내가 숲길로 파도소리 밟으며 걷고 있을 때 두 여인이 앞서가고 있었다. 최태수는 수철에게 말을 붙여보라고 했지만, 용기가 없어 바라보며 그냥 스쳐 갔다. 최태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쑥스러움이 앞서 그냥 스쳐 가고 말았다. 최태수는 박수철에게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고 왜 왔는지 물었다. 박수철도 용기가 없어 미루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중년의 여인을 사냥하려다 실패했지만, 경관이 좋은 곳에 앉아 풍광명미에 취해있었다. 한 여인이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의자에 앉아 깊은 망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최태수는 용기를 내었다. 혼자 앉아있는 여인 곁으로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아주머니요? 곁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하면서 시작하여 삼십 분이 넘도록 대화가 이어졌다. 아주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지 삼 년이 되었다고 했다. 아주머니 마음을 달래주려고 함께 카페로 갔다. 아담한 분위기에 창밖에는 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바다 건너에는 구름이 봉래산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팔을 쭉 펼쳐 영도를 가리키면서 안갯속에 집이 있다고 했다. 최태수는 환상의 섬에 살고 있어 참 좋겠다며 여인의 기분을 부풀렸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이름을 물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조양숙이라는 이름을 밝혔다. 최태수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듣고 있던 조양숙이 환하게 웃으며 뭐라고요? 태수라니 수용이 아니고 태수, 아하! 태수성이라면 어떤 물질이 기름에 녹는 성질이네요 하면서 능청을 피운다. 재치 있고 명랑한 성격을 가진 여인은 조양숙이라는 미인 이였다. 조양숙은 둥근 얼굴에 몸매가 아주 날씬하였다. 최태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군침을 삼켰다. 바다에는 은빛 윤슬이 눈을 부시게 하지만, 큰 배들은 섬처럼 넓은 바다에 군데군데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박수철은 곁에 앉아서 조양숙에게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조양숙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니 대구에 친구가 있는데 하면서 말끝이 흐렸지만, 박수철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태수는 이열치열이라며 말복 날 봉래산으로 등산하자고 두 친구를 불렀다. 최길태가 좋다며 승용차에 박수철을 태우고 최태수의 집 앞까지 왔다. 친구 세 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새로 만들어진 대교를 향해 달렸다. 부산항 대교가 아직은 완공되지 않아서 무료로 통행하고 있었다. 부산항대교에서 항구를 바라보면 새로운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최태수는 조양숙과 약속장소로 가고 있다. 조양숙을 만나기 위하여 공사 중인 영도로 언저리를 살폈다. 영도로에는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간의 연결을 다리로서 이어지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이었다. 최길태의 성격은 다혈질이지만, 운전은 아주 편안하게 잘하였다. 승용차를 탄 세 명은 남항대교가 바라보이는 곳까지 조양숙을 살피며 왔다. 영선동에 들러 조양숙이 기다리는 약속장소를 찾았다. 영선동지구대 앞을 지나갈 때 조양숙이 친구와 함께 서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양숙의 친구는 앞면이 있는 여성이었다. 영선동지구대 앞 삼거리는 도로가 넓어 잠시 정차할 수 있었다. 최태수가 조양숙을 불렀다. 조양숙과 함께 온 친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차창 밖으로 내다본 사내 세 명은 일전에 만났던 대구 아주머니가 김영자였기 때문이다. 조양숙은 친구를 데리고 왔다면서 인사 하라고 할 때 김영자도 깜짝 놀라더니 밝은 미소로 인사하였다. 서로가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할 때 조양숙이 놀라면서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하고 영자에게 물었다. 김영자가 빙긋이 웃으며 구면이라고 했다. 두 여인을 태운 승용차 안은 환한 웃음이 가득하였다. 다섯 명이 한꺼번에 웃으니 차가 들썩거렸다. 달리는 승용차에서 넘쳐흐르는 웃음소리가 차 창밖으로 흩날린다. 두 여인은 날씬한 몸매를 가졌고 얼굴마저 미인이라서 사내라면 모두가 탐을 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조양숙과 김영자는 남매 같아 보였다. 둘 다 날씬한 몸매에 얼굴은 달걀 같이 생겨 순수한 한국형 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외모가 비슷하여 두 여인 앞에서 세 사내가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최태수는 재빠르게 판단했다. 가지지 못할 바엔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여인은 인기도 좋았지만, 김영자가 갑자기 부산으로 이사 온 동기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김영자는 남편이 사업하다 망하여 도피한 입장이었다고 조양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영자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외로움에 빠졌고 때로는 우울하여 삶을 포기할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양숙이 친구 김영자를 찾아가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세 명의 사나이 앞에 데리고 나왔다. 잊으려하다 다시 만난 김영자의 얼굴은 음울하게 느껴졌다. 외제 승용차는 남항대교를 지나 암남공원으로 달리고 있었다. 최태수는 차 안에서 다시 짝을 맞추겠다고 했다. 조양숙은 최길태와 어울리고 김영자는 박수철과 연을 맺으라고 했다. 네 명은 서로 좋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삼복의 따가운 햇볕은 온 세상을 삶으려 하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중년 남녀는 에어컨 바람에 시원함에 젖어있었다. 혈청소길 굽이굽이 달려가다 암남공원 주차장에 주차하였다. 평소보다 주차장이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조양숙이 안내자를 대신하여 설한다. 송도 공원에서 암남공원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공사 때문이라고 했다. 최길태는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모두 내리게 했다. 박수철은 처음 온다고 말하지만, 최태수는 너무나 잘 아는 곳이다. 최태수의 여인을 최길태에게 양보하였다. 개인적은 만남은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기 때문에 가질 수 없었다. 최길태와 박수철은 서로 마음에 드는 여인을 잡았다고 흐뭇해했다. 김영자는 최길태와 처음 눈을 맞추었는데 인연이 아니었는가 보다 박수철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눈여겨보았으나 길태에게 빼앗기고 이제야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서로가 눈이 맞아 마음에 흡족한 모양이었다. 최태수는 조양숙을 최길태에게 기꺼이 양보하였다. 최태수는 모두 포기하고 혼자서 암남공원 갈맷길로 앞서 걸었다. 자연스럽게 쌍을 이룬 두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거리를 두고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최태수는 현실의 삶은 경제력이 있어야 여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삶에 회의를 느끼지 않았다. 부가 있으면 빈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부를 누리는 친구와 어울릴 수 있었다. 평형이 되려면 자연의 순리가 그러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최태수는 혼자서 암남공원을 수색하며 남쪽 두도(頭島)에서 동쪽의 두도 까지 포복하듯이 헤매었다. 색다른 식물이나 풍광이 유별스러운 곳을 찾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박수철과 최길태는 여인의 손을 잡고 사춘기 소년처럼 즐거워하지만, 최태수는 아무도 닿지 않은 두도에서 색다른 식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는 최태수와 둘도 없이 가까운 친한 사이다. 술을 못하는 최태수는 함께 놀 사람이 없었다. 술 담배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남자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세 명은 꼬치 친구라서 혈육과 같은 느낌으로 동행하며 살아간다. 해변에서만 살아가는 갯까치수영과 해국, 등 카메라에 담아놓았다. 여기저기 안내하는 색다른 이정표도 카메라 속에 저장하였다. 암남공원을 3km 정도 혼자서 한 바퀴 돌아서 나오려는 데 박수철이 주머니 전화기로 부른다. 성급한 최길태의 전화가 오기 전에 주차한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을 때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최길태다. 한순간을 참지 못하는 친구에게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잠시 후 나타난 BMW는 최태수를 태우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최길태와 조양숙은 호흡이 잘 맞는지 그냥 싱글벙글하고 있다. 박수철이 좋아하는 여인은 별로 반응이 없었는지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최길태는 그냥 갈 수 있는가 하며 한턱낸다고 한다. 송도로 가는 해변로는 유별스럽게 꼬부랑길이다. 최길태는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박수철과 김영자를 부딪치게 하려고 꼬부라진 길에서 핸들을 급하게 돌린다. 조망이 아주 좋은 산길이 끝나고 도심지에 이르자 조양숙은 경관이 좋은 식당으로 안내한다. 따라오라고 하면서 절경이 빼어난 곳으로 데려갔다. 조망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최태수는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옛 연인을 그리워한다. 수년 동안 이런 곳으로 자주 다녔기 때문에 경관이 좋은 곳에만 오면 생각이 난다. 바다 건너 영도가 보이고 봉래산에는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 눈길이 그곳에 멈춰있다. 최태수는 경치에 매료되어 있었다. 바다 좌측에는 남항대교가 버젓이 자태를 들어내고 교량으로 차들은 분주하게 질주하고 있다. 바다를 텃밭으로 농사짓는 어부들은 저녁인데도 배 몰이하여 남항대교 교각 밑으로 달려가고 있다. 야간에 조업하러 가는 것인지? 새벽에 펼쳐놓은 건물을 건지러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식탁에 펼쳐진 접시위에 도다리와 잡어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모두를 배가 고픈지 말없이 젓가락 놀림이 빠르게 움직인다. 최태수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 맛을 몰라 초장 맛으로 먹곤 했다. 곁에 있는 조양숙에게 부추긴다. 회를 싸서 입에 넣어주어야지요, 하였다. 조양숙은 길태에게 회를 깻잎에 싸서 준다. 아이티 국가답게 중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속전속결로 행하고 있다. 최태수는 연인들의 행동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마다 옛 연인이 생각났다. 얼마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고 문득문득 생각난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그렇다, 삶이란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마저 놓치면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 평생 돈벌이만 하다가 죽은 사람이다. 환갑이 넘도록 벌었으면 노후에는 즐겁게 쓰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다. 최태수가 농으로 우시게 말할 때 곁에 있던 친구들이 함께 웃으며 손뼉을 친다. 조양숙은 아주 반란한 여성이고 김영자는 상대적이다. 김영자는 분위기를 보아 억지로도 웃어주면 좋을 텐데 웃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삶이 괴롭고 장래가 어둡기 때문인 것 같다. 박수철이 김영자를 웃기려고 엉뚱스럽게 질문하기도 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웃음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미소마저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김영자처럼 심기가 괴로울 때다. 우울증 환자 또는 연인이 멀어져 가면 배신감으로 분노에 차있을 때다. 최태수는 네 명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조양숙은 부정적으로 사는 최길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잡히지 않을 최길태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에 잡힐 수 있었다. 그러나 박수철은 괴로운 김영자를 설득하지 못하여 얼음위로 걷는 기분이다. 박수철은 직장에서 간부로 있을 때 여자를 멀리하고 직위의 체통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최태수는 두 쌍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심기를 털어놓았다. 돈이 없어 여인과 함께하지 못하지만, 친구 틈에 끼어서 여인과 덕담을 나눌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긍정과 부정은 함께 존재하며 어느 한쪽이라도 많으면 기울기 때문에 항시 평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섭리가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이라면 사람도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 또한 섭리가 아닌가 싶다. 쌍쌍이 나란히 앉아 미소로 속삭일 때 최태수는 자리를 옮겨 시시로 변해가는 구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친구들은 연인과 속삭이지만, 최태수는 카메라에 정을 더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태수는 집으로 가자고 친구들 앞에서 재촉하였다. 최길태는 기분이 좋아 운전자라는 것도 잊은 채 조양숙과 오가는 글라스에 공병만 쌓여가고 있다. 박수철은 살살한 여인의 마음을 달래느라 술병이 그대로다. 조양숙은 최길태의 팔짱을 끼고 반듯한 자세로 걸어가지만, 김영자는 박수철이가 팔을 잡고 부추겨 주어도 하체가 흔들거렸다. 기분이 좋아 마시는 술은 취하지 않지만, 괴로움에 젖어 마시는 술은 독약처럼 속을 쓰리게 하였다. 술에 자린 친구들은 승차하여 자리에 앉았지만, 알코올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 최태수는 뒤처리의 명수였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운전은 술을 입에 넣지 못하는 최태수의 차지다. 성격이 아주 차분하지만, 핸들만 잡으면 난폭운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승차한 친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항대교를 지날 때 하늘에는 붉은 노을로 수를 놓고 바다에는 황금 윤슬이 최태수의 눈을 부시게 했다. 봉래산 허리를 감싸 안은 안개는 아직도 놓아주지를 않고 산을 흥분시키고 있지만, 여인들은 밝은 미소로 안녕히 가라고 인사했다. 최길태와 박수철은 너무나 아쉬운 듯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다음을 약속했다. 여인들은 내리기 전에 차 창밖으로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는지 두루 살펴보았다. 여인들은 마을 앞 길목에서 내렸다. 술에 취하여 혀가 꼬부라진 두 친구를 싣고 집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수년간 함께 하면서 중년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비며 세월을 잡아놓고 추억을 만들었다. 최태수에게 여자가 생기면 친구에게 소개해주는 미덕을 갖고 있었다. 멋진 사내가 남들과 다름없는 남자였다. 아무리 예쁜 여인을 만나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픔을 아무도 모른다. 최태수가 마음에 끌리는 여인과 함께하더라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빈민촌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끌리는 여인을 만나면 한 번이라도 더 보려면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그들이 만나는 곳에 나를 불러주면 다시 볼 수 있었다. 항시 지갑이 비어있으므로 친구 덕에 배만 채우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은 그림자처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나라를 흔드는 사람도 돈이 있기 때문이다. 돈 없는 사내는 여인을 멀리하고 외롭게 살아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사내들이 그렇게 길들인 것인지? 여자들만 풀 수 있는 화두다. 최태수는 여자에게 잡혀가길 학수고대하였다. 밤낮없이 두 손 모아 고개 숙이며 여자 친구가 나타나길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내였다. |
첫댓글 더위를 식혀주는 좋은글 마음에 새기고 감니다
삼복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더위를 이겨가며 적은 잘 읽어주시어 대단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