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봉래신풍선을 건조(建造)하는 곳은 섬의 남서쪽 영해만(榮海灣)이었다.
양쪽으로 길게 뻗어 나와 둥그렇게 바다를 감싼 암벽은 바람과 파도를 막았고
, 간만(干滿)의 차 없이 언제나 적당한 수심과 섬 쪽으로 평평하게 펼쳐진 단
단한 모래사장은 배를 건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제공했다.
최상몽은 당당한 웅자를 갖추어가고 있는 열 척의 이장선(二檣船=쌍돛배)을
바라보며 꿈꾸듯 상상에 잠겨들었다.
궁노를 쏘는 궁노수(弓弩手), 장도와 도끼로 무장한 도부수(刀斧手), 사슬 달
린 갈고리를 던지는 비조수(飛爪手)가 뱃머리에 늘어서고, 중앙에는 봉래도의
기치를 쳐든 기수(旗手)를 비롯해 고수(鼓手)와 동라수(銅 手)가 기세를 돋
우며 바람처럼 물살을 가르는 열 척의 봉래신풍선.
그러다가 적을 만나면 두꺼운 철판을 두른 양현(兩舷)의 요형(凹形) 사구(射
口)에 장착된 열 문의 화포로 불을 뿜어내는 장쾌한 모습.
혹, 접근전이라도 벌어지면 또 어떤가.
송곳으로 구멍을 뚫듯 파도 위를 달린다고 해서 낭리찬(浪裡鑽)이라고도 불리
는 의선(蟻船=개미선)을 내려 놀라운 기동력으로 물위를 평지처럼 누비며 적
의 모선(母船)을 무력화시킬 것이었다.
사천오백 해남신풍군의 일부는 수로를 따라 대륙의 심장부로 쳐들어가고 일부
는 육로를 이용해 진군하는 양동작전(陽動作戰)이 계획대로 성공한다면 중원
무림을 봉래도의 발아래 굴복시키는 것은 올해 안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오백 년 봉래도의 역사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중원정벌의 위대한 꿈을 이
룰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절로 벅차 올랐다.
"오셨습니까."
아직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하건만 구릿빛으로 빛나는 건장한 몸통을 드러내고
땀을 흘리던 중년의 거한이 기운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염천주(炎天主) 거력패웅(巨力覇雄) 곽자성(郭炙城)이었다.
중앙의 균천(鈞天), 동방의 창천(蒼天), 동북의 변천(變天), 북방의 현천(玄
天), 서북의 유천(幽天), 서방의 효천(曉天), 서남의 주천(朱天), 남방의 염
천(炎天), 동남의 양천(陽天)으로 이루어진 구천(九天)을 본따 오백명씩 편제
한 해남신풍군의 염천을 책임진 고수이자 봉래도 최고의 조선(造船) 기술자인
그는 조선작업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고 있었다.
더운 김을 피워 올리는 곽자성의 몸에서 물씬 풍기는 열기를 느끼며 최상몽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수고가 많다. 공정에는 차질이 없겠지?"
"손을 놀리기 무료해서 배 밑창에 돼지기름을 덧바르고 있으나 당장이라도 배
를 띄우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곽자성의 기세가 더 없이 믿음직했다.
"어르신은 요즘도 자주 오시는가?"
봉래신장 얘기였다.
근래 들어 노략질이 극심해진 왜구(倭寇)들을 섬멸하기 위해 전선(戰船)을 건
조한다고 둘러댔건만 아무래도 미심쩍은지 수시로 들러 이것저것 캐묻고 다녔
던 것이다.
왜구들의 행패가 극심하긴 해도 봉래도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해남일대는 피해
가는 판에 굳이 왜구를 치기 위해 대대적으로 배를 건조한다는 이유가 선뜻
납득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봉래신장이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으리라 기대
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 잠시만 시간을 끌면 됐다.
계획대로 신부에게 변이 생긴다면 아무리 봉래신장이라 해도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니, 손녀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생각하면 거스르기는커녕 가장 먼저 검을
빼들고 중원으로 달려갈지도 몰랐다.
곽자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삼일 전부터는 뵙지 못했습니다."
근래 들어 상부의 움직임이 뭔가 미심쩍긴 했으나 곽자성은 아무래도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겁한 암수를 쓰고도 천하제일가입네 하며 콧대를 높이는 무
적세가를 상대하는 싸움이라면 더욱 통쾌하겠지만 왜구를 때려잡는 것도 마다
할 그가 아니었다.
하루 빨리 배를 띄우고 싸움터로 달려갈 날만 기다리며 괜스레 솟구치는 힘을
주체못하는 것은 해남신풍군 모두가 한결같았으니 그가 특별히 호전적인 성
품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배는 걱정 마시고 군사께서는 왜구들을 때려잡을 계획이나 세우십시오!"
불끈 쥔 주먹을 쳐들고 호기롭게 대답하는 곽자성을 향해 빙긋 웃음을 지어
보인 최상몽이 넌지시 한 마디 던졌다.
"왜구가 아니라 천하를 상대하고도 남을 기세로구먼."
"……!"
잠시 멈칫하던 곽자성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성미가 괄괄하고 호방하긴 해도 그 역시 오백 명의 수하를 거느릴만한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배는 북쪽으로 가는 겁니까?"
왜구의 출몰지점은 남쪽이었다.
그리고…… 북쪽은 중원!
가타부타 말없이 돌아서 가는 최상몽의 입가에 떠오른 뜻 모를 미소를 읽은
곽자성은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뭣들 하느냐! 먼 항해를 하려면 방수(防水)가 기본임을 모르느냐!"
아무래도 불안했다.
그 자신이 앞장서서 추진한 일이고 내일모레면 신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
이었으나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늙은이의 괜한 걱정으로 치부하기
엔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으흠……."
깊은 한숨을 몰아쉰 봉래신장의 미간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돌이켜 보면 화친(和親)의 방법으로 양가의 혼사를 생각해 내었을 때, 조카인
도주는 물론이고 무적세가를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건만 의외로
양측 모두 흔쾌하게 동의하지 않았던가.
부친의 죽음으로 무적세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련만 선선히 그의 제안을
따른 도주 설태천이 고마웠고, 천하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그의 진심을 알아
준 무적세가의 인물들은 더욱 고마웠다.
더욱이 신부가 중원에 발을 딛는 이후부터 무적세가의 며느리이니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당대 세가주 금천후의 제의는 작지 않은 감격을 주기에 충분했
다.
그 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신부를 표국에 맡겨 표물
로 위장하자는 의논이 있을 때는 무적세가를 위협하는 흑마방에 대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격렬한 적개심을 느낄 정도였고, 천하제일가라는 자부심보다 신
부의 안전을 우선한 금천후의 결단에 감탄한 그였다.
혼사를 둘러싸고 지난 일 년여 간 진행된 과정에서 굳이 문제가 된 부분을 들
라면 세권표국에서 요구한 과도한 표행료 정도랄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하나 최선의 선택으로 이어진 과정이었고, 털끝만큼의
의혹도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어쩌면 모든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린 것이 오히려
쓸데없는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일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달래려 애썼다
한데, 자꾸만 불안해 지는 것은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도주의 비무를 앞두었던 삼십 년 전의 그 날과 같은 불안감이.
"봉래신풍선 때문인가……."
그 역시 남쪽 섬들과 대륙의 해안일대에서 자행되는 왜구의 만행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열 척의 봉래신풍선을 건조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도한 대응이라는
생각이었다.
"혹시, 대륙을 향한……?"
삼십년 전의 사고 이후 배전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에 이르러서는 봉래도
역사상 가장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으니 모험을 하고픈 유혹도 있을 법했다.
당장 그가 아끼는 손녀 설운교 조차도 서슴없이 무적세가와의 일전을 입에 올
리지 않았던가.
하나 가능성은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명분(名分)이 없었다. 세가를 적으로 돌릴 명분이.
"아암! 시정잡배들의 드잡이질도 아니고, 중원의 패자인 무적세가를 치려면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지."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경우를 애써 부정하던 봉래신장의 전신이 벼락을 맞
은 것처럼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은 힘주어 내뱉은 자신의 말이 텅 빈 방안
에 일으킨 공기의 파동이 채 멎기도 전이었다.
순간, 봉래신장의 노안(老顔)에 수많은 표정이 스쳤다.
"……."
오로지 천하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노영웅의 가라앉은 숨결에 따라 시간마저
조심스럽게 흐르는 듯한 적막의 순간.
마침내 얼어붙은 얼굴로 탁자를 집고 일어선 봉래신장의 입에서 가느다란 음
성이 새어 나왔다.
"명분을 만든다면……?"
설운경이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거처를 찾은 봉래신장을 맞은 것
은 그날 밤이었다.
고향을 가슴에 담아가려는 생각에 부드러운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바닷가 언
덕에 서서 불덩이를 삼키는 바다의 장관을 홀린 듯 바라보고 돌아온 그날 밤.
무적세가와 봉래도의 해묵은 갈등을 풀고 천하의 화평을 도모하는 평화의 사
절이 되어 멀리 바다건너 중원으로 시집가기 이틀 전인 그날 밤.
혼사를 앞둔 새색시의 설렘보다 자신의 한 몸에 걸린 막중한 사명으로 짓눌려
진 스무 살 처녀의 방심(芳心)이 괜스레 서글퍼지는 그날 밤.
그녀는 봉래신장과 밤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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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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