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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라는 지명은 발트 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 주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주의 주도 이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칼리닌그라드 시는 칼리닌그라드 주의 주도이며, 발트 해에 면한 항구 도시이다. 인구는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칼리닌그라드 시는 431,402명이고 칼리닌그라드 주는 941,873명이라고 한다. 현재 도시 인구의 77.9%는 러시아인이며, 이외에는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인, 타타르인, 폴란드인 등이 거주하며 원래 살고있고 주류를 이루던 독일인은 2차대전 당시 소련을 피해 육상과 배를 이용하여 독일 본토가 있는 서쪽으로 도망치거나 소련군에게 학살당했다. 전후 숨은 독일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소련 정부에서 혼혈을 강요해 현재 독일인의 비중은 칼리닌그라드 인구의 0.6%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라고 불렸으나 소련의 도시가 된 이후로 칼리닌그라드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로 의외의 인지도가 있다.
2. 역사
역사적으로는 독일 기사단국과 프로이센 공국의 중심지 쾨니히스베르크였으며 프로이센 공국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통합해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수도는 베를린으로 옮겨갔지만 이 도시는 동프로이센의 주도로서 당연히 독일계 주민들이 살았다. 따지고 보면 독일 제국(제2제국)이 프로이센의 주도로 만들어진 나라이니만큼 근대 독일의 발상지라고 할 수도 있는 지역이었다. 이 곳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마누엘 칸트. 2차 대전 종전 이전의 역사는 쾨니히스베르크와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문서를 참고.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함께 독일인은 추방되거나 비참하게 죽었고, 대신 러시아인이 이주해 들어왔다. 1945년 이 도시는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SFSR의 도시가 되었다. 1946년 4월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소속 쿄니그스베르크 주(Кёнигсбергская о́бласть)가 설치되었으며 동년 7월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소련의 서단에 위치한 이 도시는 냉전 시대에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했다.
이후 소련이 사라지고 리투아니아·라트비아·벨라루스가 독립한 후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도시가 되어 본토와 떨어진 기묘한 존재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3. 독일과 칼리닌그라드
원래 독일령이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독일이 이 도시를 되찾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던 적이 있지만,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앞두고 결국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했던 도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국으로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감히 포기했다. 프로이센 문서 참조.
게다가 위치상 독일에서도 육상으로 직접 접근할 수 없으며(독일에서 육상으로 접근하려면 폴란드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 동프로이센의 남부지역은 폴란드 영토가 된 지 오래인데 만일 이 곳을 되찾으면 다음 순서는 동프로이센, 서프로이센, 슐레지엔, 포젠, 포메른의 나머지 영토도 위태해질 것이 크기 때문에 폴란드가 독일의 통일을 방해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 당장 2차대전 개전도 비슷한 일(단치히 회랑 문제)폴란드 회랑 시즌 2 때문에 벌어져서 폴란드가 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역을 포기하는 방침의 독일 정부와는 달리 독일 민간 차원에서는 여전히 독일로의 수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적잖으며, 실제로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 영사관을 별도로 설치하거나 BMW 공장을 유치해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거나 프로이센-독일 시절의 건축물들을 유지 보수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밖에도 칼리닌그라드 주의 대표 맥주 오스트마르크는 쾨니히스베르크 시절 맥주 브랜드명과 독일식 맥주순수령에 따른 레시피 그대로 부활하여 절찬리에 현지에서 판매 중이다.
4. 명칭
1945년 5월 소련이 칼리닌그라드를 점령하고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정식으로 주로 편입할 때의 명칭은 독일어 명칭과 똑같은 쿄니그스베르크(Кёнигсберг)였으나 동년 7월 최고 소비에트 의장 미하일 칼리닌이 사망한 후, 그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련 시절에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었던 도시들은 소련 붕괴와 함께 대부분 원래 이름으로 환원되었는데, 여기는 원래 러시아 땅이었던 적이 없어서 애당초 되돌릴 이름이 있을 턱이 없으니 그대로 남아버린 드문 사례. 사실 러시아가 쿄니그스베르크란 독일어 지명을 복구하여 그 이름 그대로 사용하거나 러시아어로 '카롤스그라드' 등처럼 부를 수도 있을텐데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원래 러시아의 영토였고 독일어 지명을 써도 영유권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원래 독일 땅이었던 칼리닌그라드는 독일의 흔적을 최대한 없애야 러시아가 이 땅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 곳의 이름이 쾨니히스베르크로 되돌려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명이 원래 독일식 이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단 쾨니히스베르크뿐만이 아니라 칼리닌그라드 주에 속한 모든 구 동프로이센 지명이 똑같은 처지다. (인스테르부르크도 체르냐홉스크, 굼비넨도 구셰프, 틸지트도 소비예츠크 등등) 폴란드에 할양된 구 프로이센 지역은 그나마 원래 이름을 폴란드식 발음으로 바꾼 정도가 대부분이지만, 러시아에 할양된 북부 동프로이센-칼리닌그라드 주-만큼은 완전히 뜬금없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앞으로도 원래 이름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 월경지와 분리주의
소련이 붕괴하면서 주위의 나라들이 독립하는 바람에 마치 섬처럼 떨어지고 사방이 막혀버린 폐쇄된 도시가 되었다. 덕분에 칼리닌그라드는 본토로 가려면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고, 경제권은 주변국에 종속되어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나마도 예전엔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를 경유하면 비자를 안 받아도 러시아 본토로 건너갈 수 있었으나 2004년에 그 두 나라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통에 러시아 본토로 건너가려고 해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안습. 위의 지도에도 나와 있지만 이중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칼리닌그라드 주에서 러시아 본토로 가려면 한 나라만 거쳐서는 안 되고 적어도 두 국가를 거쳐야 한다. 아니면 그냥 배타고 발트 해를 가로질러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가거나 비행기 타고 가야 한다.
소련 붕괴 이전 소련 영토였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칼리닌그라드 주는 EU 안의 섬이 되었다. 같은 러시아 영토인데도 불구하고 칼리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에 육로로 이동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칼리닌그라드 주의 특수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EU의 협상 끝에 현재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로 육로이동할 때는 간이 통행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비자나 간이 통행증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던 차에 차별 아닌 차별까지 받게 되자 소외감이 극에 이른 주민들이 이 참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를 독일로 환수하거나,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칼리닌그라드가 소국으로 독립하거나 홍콩처럼 특별 행정구가 되어 유럽연합이나 솅겐조약에 가입하길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이 전략상 요충지고 우크라이나나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종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칼리닌그라드 주는 엄연한 러시아땅이라고 천명하며 독일 환수 운동에 스스로 포기선언을 날렸다. 러시아가 나서서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독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현재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인들이 문화, 사회, 경제면으로 칼리닌그라드 내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고 있고, 프로이센 시대 문화유산 유지보수에 신경쓰는 것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처럼 당장 무리수는 두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적으로 병합할 걸 노리는건 아닌가 하는 주장도 간간히 나온다. #
이제 유럽 같은 안정된 사회에서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자폭행위이거니와, 이미 세계 대전을 두번이나 치른 독일이 다시 영토수복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주변국들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기 때문에 독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나 폴란드 등 주변국의 독일 영토수복에 대한 경계심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에도 영국은 아예 통일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고, 프랑스와 폴란드는 더 이상의 영토수복이 없다는 걸 명시하라고 수차례나 압박하고 맹세를 강요했다. 거기다가 전쟁중 있었던 대규모 학살이나 강간 혼혈 및 전후의 강제 이주로 인해 현재(21세기)는 쾨니히스베르크나 동프로이센 지방에 독일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나치 독일 시절처럼 현지의 독일인들의 민족 심리를 자극하여 민족 자결주의를 운운하며 영토를 병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개최도시들 중 하나이다. 굳이 본토와 떨어진 이곳을 정했다는 것에서 이참에 분리주의를 가라앉히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당연한 얘기지만 독일전은 없다.
• 조별리그 스페인 vs 모로코
• 조별리그 크로아티아 vs 나이지리아
• 조별리그 세르비아 vs 스위스
• 조별리그 잉글랜드 vs 벨기에
6. 관광
위 월경지 단락에서 설명되어있듯 러시아 본토와 육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행하러 가기 힘든 동네였다. 러시아에서 가려면 러시아 비자도 복수비자를 받아야 했고 러시아 본토를 안 가고 동유럽 여행 중 여기만 지나간다고 해도 비싼 러시아 비자를 시간들여 받아야 했다. 때문에 서유럽에 편중되어있던 한국인 여행자들이 바로 옆 폴란드와 발트 3국까지 슬슬 많이 찾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칼리닌그라드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2014년 한국인 대상 무비자가 시행되면서 한국인들이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도중에 들리기 어렵지는 않게 되었다.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나 리투아니아에서 정기 국제버스가 다닌다. 그러나 영어안내 등 관광 인프라는 아직 부실하다.
볼거리는 구 쾨니히스베르크 시청이나 쾨니히스베르크 성당, 증권거래소, 쾨니히스토르(왕문), 칸트 동상 등 프로이센 시절의 주요 유적들이다. 독일인들이 비록 러시아에 넘겨준 땅이지만 프로이센 시절의 유물 유지보수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쿠로니아 모래톱 공원도 이 주에 위치한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의 그 다리도 걸어볼 수 있다. 이젠 3개밖에 안 남았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으로 들어가는 1개의 다리를 빼고 나머지 2개의 다리는 공사 중이다...(2017년 5월 31일 기준)
시가지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떨어진 얀타르니는 소련 시절 약 600톤의 호박이 채집된 곳으로 유명하며 2007년 부터 2013년까지 러시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및 유럽연합의 재정으로 세 나라에 걸친 광활한 '발틱 앰버 비치'가 조성되어있다. 운이 좋으면 허허벌판 모래사장에서 아주 작은 호박 조각을 채취할 수도 있다. 다만 관광 인프라가 많이 활성되어 있지 않은 칼리닌그라드답게 공중 화장실이 몇 개 없으며 1회 이용시 가격이 15루블(2015년 9월 기준, 2017년 현재 원화로 대략 300원 정도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