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이소연
결혼하기 전에는 천경자의 그림을 봤고
아이 달고 와서는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
구슬아이스크림과 아이스아메리카노
슬리퍼와 나른한 오후를 봐
미술관에서 나는 그림에 섞이지 않고
색이 가진 침묵이 불편하다
흔들의자가 있고 미루나무가 있고 산책로가 있는
북서울미술관 야외 데크
지렁이를 뱀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고
죽은 지렁이에 개미가 모여 있다
관람이란 말이 조금 낯설어
미술관에 오니까
여기저기 다 관람 중
어떤 사람은 귀뚜라미 뒷다리만 걸어 놓고
가을이라 하겠지
그런 건 즐겨도 되는 걸까?
바람은 제 갈 길로 가 저물면서
왜 나뭇잎을 뒤집고 가는지
나는 왜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할까
그러나 내 품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를 보고 있으면
삶이 화폭 같고 전시회 같고 미술관 같아
머리에 뱀을 쏟아 놓고 간다, 저 여자
작은 머리통을 달고 다니는 그림자들
삶을 버리고 싶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나
사실 그림은 색으로 덮은 것이 아니라
색에서 빠져나온 여백이라는 것
걸음마를 뗀 아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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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 이소연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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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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