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다운 여인이 교수님 어깨너머로 날 슬쩍 쳐다보며 묻자, 교수님은 잊
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 참, 미안. 지금 내 밑에 있는 조교. 사실은 작은 어머니 밑에 있는데 내가
잠시 도와달라고 했거든.]
[그래? 안녕하세요? 전 에밀리라고 해요. 이 샵의 디자이너예요. ]
[저는... 김채영이라고 합니다.]
난, 그녀의 당당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말할 수 없이 섹시한
향수냄새, 간드러지는 종달새같은 목소리, 이 모든 것에 나는 순간 쫄았었나
보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성숙한 여인이라는 건 저런 걸 두고 하는 소리구
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태클 걸지 않고, 아주 우아하고 품위있게 잠시 샵 내부를 보여주더
니만 날 데리고 안 쪽으로 데려갔다.
[좋아하는 스타일은요?]
[네? 저요?]
[네. 그쪽요.]
[아..저…저는.. 글쎄요… 키는 한 180 정도…? 그리고 운동 좀 했다싶은 몸매
에다가… 하.하.하. 글쎄요..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머리 긁적 긁적)]
[좋아하는 옷 스타일 말이예요.]
(파닥 파닥. 뒤뚱 뒤뚱 - 남극 펭귄 지나가는 소리)
[네? 하. 하. 하. 오..옷이요? 글쎄요… 제 몸매가 좀 커버가 되는 듯한…. 그
런…]
[아. 이런게 어떨까? 채영씨라고 했죠?]
[네]
[채영씨는 음…. 팔 다리가 좀 긴 편이니까, 이런 옷 어때요?]
그녀는 내가 감히 어디 가서 시착도 못해볼 만한 파티복을.. 그것도 소매도
없고, 그냥 젖가슴 위에서 딱 멈춰버리는, 그래서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반
짝반짝 빛나는 연한 요구르트 빛 옷을 하나 가져왔다. 그런데 밑 치마는 플레
어 스커트처럼 하늘하늘 한게, 무릎 선까지 드리워진 것이…한 번 봐도 뿅 가
는 그런 옷이었다. 내가 입 벌리고 멍~ 하니 있자, 그녀는 얼른 그 옷을 내 손
에 쥐어 주면서 시착실로 내 등을 떠밀었다.
가만히 보자~ 선 브라자도 좀 벗고… 음? 근데 내가 여기서 왜 이 옷을 입고
있지?
[저기요..]
나는 커튼 사이로 빼꼼히 모가지만 내밀고 그녀를 불렀다.
[네? 어때요?]
[아니 그게 아니구요. 이 옷은 뭔데요? 아니, 그러니까, 왜 입어 보는건데요?]
[아. 아직 얘기 못 들었구나? 오늘 저녁에, 교수님들이랑 뭐 그런 사람들 모이
는 파티에 간다고 그러던데… ]
[네? 파티요? 이상하다. 그런 말 못들었는데…]
[어쨌든 빨리 입고 나와봐요. 봐 줄게요.]
일단은 입고 나왔다. 전신거울로 비춰 본 나는, 아..정말 옷은 날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 보였다. 대학생땐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만
찍찍 끌고 다니다가, 이번에 대학원에 합격하면서 그나마 사회적 지위와 체
면을 위해 정장 좀 입어주고 계셨는데, 이건 정말…. 지금까지 내가 꿈꿔왔던
그런 파티복, 그런 느낌이었다. 난 마치 내가 동화속 신데렐라가 된 기분에
빠져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도 up되어 있었다.
그 후로, 구두와 - 이것도 처음 보는 듯한, 아니, 난 원래 신발에도 관심이 없
었으니까 뭘 보든 처음 보는 거였겠지만 - 또 귀걸이, 목걸이 등 각종 악세사
리를 착용하고, 또 기막힌 솜씨로 샤샤샥 화장을 해 주었는데, 와… 난 정말
넋이 반은 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왜 이런 순간에 한숨만 계속 나오냐?
난 그게 더 신기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게 변신했기 때문일까? 일상속의
나와의 갭이 너무 크게 느껴져 그런걸까? 난 머리 속이 좀 복잡해졌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그녀와 그녀의 시다들이 이끄는대로 이리저
리 끌려다니며 몸단장을 끝냈다. 교수님이 보시면 뭐라 그럴까 긴장해서 주
춤거리면서 응접실로 나왔을 때 교수님은 뒤돌아 앉아 잡지를 읽고 있었다.
[끝났어]
그녀의 명쾌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고, 그 소리와 동시에 교수님은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난 그 순간이 마치 슬로우모션을 건 것처럼 기~일게 느껴
졌고, 그리고 그가 첫마디를 열 때까지의 시간 또한 백만년 같이 느껴졌다.
교수님은 잠시 날 무표정하게 응시하더니만 훗하고 긴장을 깨는 듯한 미소
를 짓더니 말했다.
[예쁜데? 가자.]
그는 뾰족구두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에스코트 하여 차까지 데려갔고, 또
첨 봤을 때도 그랬듯이 젠틀하게 조수석 문까지 열어주었다. 그가 조수석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그 사이에도 난 앉아서 한숨을 내쉬며 흐
트러진 하늘하늘 스커트를 일일히 펴서 무릎 위로 올라오지 않게 신경쓰고
있었다. 교수님은 자리에 앉아 문을 쾅 닫으며 나를 쳐다봤다.
[왜. 신경쓰여?]
[아..네? 하.하….네….근데…]
[응?]
[오늘 어디… 가는거예요?]
[아. 그걸 쏙 빼 먹었네. 지금부터 출판기념파티에 가는거야. ]
[출판기념요? 누가 책 냈나요?]
[응. 나.]
[교수님이요? ]
[응.]
[어머… 전혀 몰랐어요. 축하드려요. ]
[응. 뭐. 고마워. 근데, 오늘 갑자기 같이 오자고 그래서 미안해. 좀 놀랐지?]
[아. 네. 그리고… 교수님 책 출판기념 파티라면, 교수님이 주역인데, 왜 제가
같이 가요? 괜히.. 이상한 오해나 받고 그러시면..]
[이상한 오해? 무슨?]
[아..아니.. 그러니까….]
[그러고 보니까, 정말 오랜만에 파트너 바꿔보네.]
[네?]
[지난 5년동안 파티에는 한 사람이랑만 다녔거든. ]
[아.. 그러세요? (그… 디자이너 일까?) 아. 그런데 아까 그 디자이너 분요.
정말 멋있는 분이네요. ]
[아.. 캐나다 있을 때부터 친구야. ]
[친…구요?]
[응. 부모님들도 물론 서로 잘 아시고… 에밀리는 거기서 태어나서 샵 내기
전까지 죽 있었어. 지난 번에 말했지만 난 어렸을 때 캐나다에 갔고, 거기
한인 교회에서 알게 됐고, 두 가족이 서로 친해졌지.]
[그랬군요. 정말 멋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오늘 같은 날은 그런
멋있고 예쁜 분이랑 가셔야 되는거 아니예요?]
[훗. 왜 그렇게 생각해? ]
[아뇨.. 그냥.. 근데, 교수님요. 정말 지훈이랑 똑같이 생기셨어요. 친 형이
라고 해도 믿겠어요. 이름도 지영훈. 지정훈. 비슷하구요. 호호호.]
내 착각일까? 순간 교수님의 얼굴이 경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뭐
말 실수했나? 난 괜히 눈치가 보여서 쓸데없이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저… 그러니까…]
[뭐. 그렇겠지. 같은 유전자를 물려 받았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그냥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 괜시리 미안해졌다. 그
래서 그 다음부턴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고 해서 그냥 우물 쭈물 하는
사이에 회장에 도착한 듯 했다. 난 교수님이 에스코트 해 주는대로 회장에
들어섰고, 많은 기자들이 갑자기 몰려서 후레쉬를 터뜨리는 바람에 난 눈
을 휘둥그레 뜨고 어쩔 줄 몰라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무슨 죄 지은 사람
처럼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파티가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시할아버님이 되어 버리신 할아버
지의 불.친.인 이자람 호텔 설립 30주년 기념 파티에도 갔었고 - 물론, 그 때
준기는 고3이라고 참석하지 않았다 - 또 가끔씩 열리는 우리 할아버지가 주
최하시는 파티, 할아버지가 지원하는 단체가 주최한 파티, 또 일부 상류층
자제들이 주최하는 파티 등 … 대학생이 된 후로는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참
석할 정도로 파티를 즐겼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부모님도, 내가 나중에 시집
갈 때를 대비해서 나를 열심히 파티에 들이 밀었던 것 같다.
내가 가 본 파티 중에 가장 컸던 건, 무슨 장관 아들이 연 거였는데, 참 나,
부모님 빽으로 어렸을 때부터 외국가서 유학합네~ 하면서 외화나 낭비하
고 들어온 인간 쒸레기였다. 그 자리에서 이 여자 저 여자 찔러보고 다니
는데, 확! 쏠려서 죽는 줄알았다.
확실히, 파티같은 걸 많이 다니다 보면, 가끔 연예인 같은 사람이 참석할 때
도 있었고, 승경이는 그럴 때는 꼭 날 이용해서 같이 참석해서 싸인을 받아
내곤 했다. 근데 난 오히려 좋아하는 연예인한테는 다가가지 못하고 뒤에서
발만 동동 구르곤 했다. 난 꼭 본방에 약하단 말이야…
어쨌든 내가 그렇게 멍~하게 서 있었더니 교수님은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내 어깨를 살짝 감싸서 살짝 손에 힘을 넣었다. 뭐, '괜찮아, 긴장하지 마. '
그렇게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하도 들이대는 바람
에 결국 나는 자연히 어.어.어. 하면서 옆으로 튕겨 나갔고, 사실 차라리
그게 더 맘 편했다. 휴우. 한 숨 놓으면서 눈길을 돌리려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미소지으며 손 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정훈이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 어떻게 왔어?]
난 너무 반가워서 재빨리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가까
이 다가갈 동안에도 그는 그 백만불짜리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좀 전에. 어떻게 된거야? 오늘 너무 달라 보이는데?]
[그래? 정말? 이상해? 어떡하지? ]
난 너무 민망하고 긴장돼서 스커트 자락을 잡으면서 이리 저리 내 몸단장을
살펴보았다. 그런 날 보고 정훈이는 껄껄 웃었다.
[아니야 아니야. 예뻐. 진짜. 굿! 이야. ]
정훈이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날 칭찬했다.
[뭐야~ ]
난 흘겨보면서 어깨를 한 대 툭 쳤다. 그 때 우리 옆으로 음료수를 든 사람이
지나갔고, 우린 각자 음료수를 하나씩 집었다.
[우리,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할래?]
정훈이의 말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정훈이를 따라 베란다로 나갔다.
[하~~ 공기 참 시원하다. 이제 여름인가봐, 정훈아.]
[응. 진짜 그렇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오늘 형 파트너로 온거야?]
[아. 글쎄, 그게…나도 잘 몰라. 얼떨결에…]
[그래? 내가 알기론, 지난 5년동안, 형은 큰 어머님만 모시고 나갔었는데
말이야.]
[큰어머님?]
[응. 그런데, 그리고는 너가 아마 처음일거다, 파트너 바꾼거.]
하….나 이거 감동해야돼? 모르겠다. 그냥…. 왠지 조금. 아주 조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누나!]
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역시 파티에 걸맞게 쫘악 빼어 입은 준기가
음료수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첫댓글 파리...좋아요~~
재미있게 읽어네요...어디로 대리고 갈려고 꾸미고 가는것가 했는데 파티장에 가는군요....그리고 혹시 교수 채영이맘이있는거 아닌가요..채영이가 정훈이 애기하니 갑자기 얼굴이 경직 하는것이....마지막엔 우째 준기가 거기에있는것인지....정훈이가 대리고 온건가.....다음편도기대....[아이구 감기 걸렸군요....빨리 낳으시길~~~~~]
또 아쉬운 곳에서 잘렸네 흐흑
어머머머머머 서로 오해하진 않겟죠?ㅋㅋㅋㅋ
준기..역시 빠짐없니 나타났군요.
화이링입니다 준기 뺏어버려
오호호호호호~~~ 세님자가 한꺼번에 붙어버렸써~~~~ 넘 궁금해지는데요!!!
아팠다니.. 지금은 괜찮으신거죠/ 그럼 이번에 진짜가면 몇일간 못보는군요 ㅠㅠ 아쉽습니다. 오늘도 잘보았어요. 어떻게될지 무진장 궁금해요, 오실때까지 기다릴께요. 잘 다녀오세요^^
난 은근히 정훈이가 좋던데~ 나쁜남자 ㅋㅋㅋ 당분간 못본다고 생각하니............빨리 오세요~☆
ㅎㅎ 재미있어요 그리고 작가님 잘갔다오세요 ㅎㅎ
후후후 잘다녀오세영!!
언제 오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