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00명 중 절반이 답했다… "올여름은 그냥 푹 쉬고 싶어요" 떠나는 대신 머무는 여름… 호텔에 갇히는 호사, 늘어나는 '호캉스族'
눈 감았다 뜨면 꿈에서 깬다. 그 찰나는 감전처럼 몸을 흘러가는 환희이며,
그래서 몹시 슬픈 꿈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근 전 침대에 누워 지난 일주일의 일장춘몽을 떠올린다.
무엇을 했던가. 몸이 무거운 걸 보니 꽤 힘들었던 게 분명하다. 더 자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모든 작동하는 것을 끄고 싶다.
나 이외에는 모조리 차단하고 싶다. 갇혀 있고 싶다.
쉬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그것은 투옥이라기보다 요양에 가까울 것이다.
갇혀서 얻는 자유. 거기서는 비로소 휴가를 '슈가'로 바꿔 부를 수 있으리라.
다디단 나날. 하루만 더 달라!
이미지 크게보기휴가가 끝났는데 더 피곤하면 곤란하다. ‘휴가 후유증’ 없이 완벽한 피로 해소를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두는 감금 휴가를 떠나고 있다. 피곤한 모든 요소에서 벗어나, 쾌적한 방 안에 갇혀 책을 읽고 마음껏 먹고 별의별 생각을 하는 사이 심신이 회복될 것이다. 감금이 감사하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직장인 평균 휴가일은 7.9일. 일찌감치
비행기표를 끊어 날아가거나 먼 지방으로 서둘러 달려가 헐레벌떡 먹고 마시고
뛰놀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이다.
충전을 위한 휴가였는데, 끝나자마자 다시 방전 상태가 되는 악순환.
그래서 대기업 3년차 직장인 장성진(31)씨는 이번 여름휴가 때 스스로를 가둘 생각이다.
"외딴곳에 갇혀 완전히 푹 쉬고 싶습니다."
'감금 휴가'가 휴가의 새로운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멀리 나가지 않고 집이나 집 근처에서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일컫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의 연장선인 셈. 'friday' 섹션이 SK플래닛
설문 플랫폼 틸리언에 의뢰해 20~50대 직장인 102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번 여름휴가 때 가장 원하는 것'(복수응답) 1위는 '휴식'(57.3%)이었다.
여행·관광(54.5%)을 앞섰다. 운동 및 자기 계발(9.7%)은 큰 호응이 없었다.
어디 나돌아 다니는 것도, 뭔가에 열중하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다.
'휴가에서 가장 고려하는 것' 역시 심신 회복(42%)이 1위를 차지했다.
2위 재미(30.8%)나 4위 보람(8.2%)과 격차를 크게 벌렸다.
이동거리 및 비용(19%)을 선택한 응답자도 많았다.
할당된 휴가 일수가 4~6일(39.7%) 혹은 1~3일(36.3%)인 상황에서 피곤한 요소로부터
탈주해 오로지 쉬고 싶다는 열망, 심리적 백지화의 목적성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결과는 '휴가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휴가를 다녀온 뒤 더 피곤해졌던 경험.
'휴가 후유증을 경험했는가'에 대한 문항에서 70.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휴가는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에 대한 문항에서는 가족(60.4%)이 가장 많았지만,
혼자(17.3%)도 적지 않은 응답률을 보였다. 6년차 직장인 이홍민(32)씨는
"다 필요 없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데서 그냥 푹 늘어져 있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판은 굳어졌다. 좀 쉬자.
◆ 호텔에 콕 박혀 '호캉스'… 24시간 만화방서 하룻밤
①샤워실까지 갖추고 손님을 맞는 경기도 안산의 24시간 만화카페. ②‘몰캉스족’을 붙잡기 위해 현대백화점 서울 미아점엔 아예 임시 만화카페가 들어섰다./투툰만화카페, 현대백화점
휴가와 호텔은 뗄 수 없는 관계.
과거 여행지에 따라 옮겨다니는 경유의 장소였던 호텔이 목적지 그 자체로 변하고 있다.
휴가 대부분을 호텔에서만 보내는 이른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탄생이다.
회사원 윤현정씨(38)는 이번 여름휴가를 위해 인천공항이 아닌 인천공항 옆 호텔로 떠날 계획이다.
윤씨는 "탁 트인 창밖으로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싶다"면서
"굳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호텔 패키지와 멤버십 혜택만 잘 이용해도
최고급 서비스를 누리면서 꿀 휴가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호캉스족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상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지난 4월 인천 영종도에 개장한 파라다이스시티는 호텔 안에서 웬만한 휴식과 체험이
가능토록 패키지를 꾸렸다.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 존이나 볼링장, 프리미엄 피트니스센터, 이국적으로 인테리어한
수영장 이용 혜택을 하나로 묶어내는 식이다.
호텔 관계자는 "문화 소비를 원하는 투숙객을 위해 데이미언 허스트,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2700개 미술품을
곳곳에 비치해 호텔 안에서도 미술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쉬려면 아이도 함께 푹 쉬어야 한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등이 선보이는 '캠핑 패키지'는 어린이 전용 야외 체험 공간을
운영해 전문가의 인솔 아래 야외 볼링 게임, 쿠킹 클래스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예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서도 호텔에서만 묵는 경우도 늘었다.
지난달 인터파크투어 조사에 따르면, 외국 호텔 한 곳에 일주일 이상
숙박을 예약한 고객의 비중이 2015~2016년 8~9%에서 지난 5월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