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저마다의 추억, 즉 그때 그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은 과거에 활동하다가 지금은 대중들에게 잊힌 가수들의 현재의 근황과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 이야기들을 소환하며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줘서 개인적으로 정말 즐겨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우리 족구계의 '슈가맨'이라면 누가 있을까? 선수 개인으로 본다면 너무 광범위할 것이니 굳이 한 선수(개인)로 지칭할 것 없이 '다시 보고 싶은 팀'으로 좁혀 본다면 어떨까? 많은 팀들이 거론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성락신, 김형일, 황민석, 박현웅이 뛰었던 LG 디오스가 가장 소환하고 싶은 '족구계의 슈가맨'이다. 최고의 테크니션 성락신의 현란한 발놀림과 영상으로도 예측하기 힘들었던 공격들, 노도처럼 코트를 누볐던 김형일, 황민석, 박현웅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패와 관계없이 그들의 경기는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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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며 아쉽게도 이들은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부활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멤버는 바뀌었지만 2기가 발족한 것이다
2015년 허남현과 박경범이 창원 LG전자에 입사했다. 이들의 입사는 사실 전국대회 참가보다는 LG전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사내 족구대회'를 위함이었다. LG전자 내부에서는 '최강부 대회 우승보다 오히려 사내 족구대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 사업부 간의 자존심 대결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매년 상하반기 한 번 씩 각 사업부의 지원하에 LG 디오스(냉장고 사업부), 창원 볼케노(쿠킹 사업부), LG C&M(부품 사업부). 세 팀이 풀리그 후 결승을 치르는 방식으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7년 연말, 창원 LG전자 1지부의 지원하에 2기 'LG 디오스'를 족구대표팀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이에 2018 시즌부터 출전할 선수 4명을 선발했는데, 공격수 허남현, 세터 박경범, 수비수 김경환, 정배근이었다. 허남현과 박경범은 이미 족구계에 어느 정도 알려져 인지도가 있었지만 수비수 김경환, 정배근은 당시에는 상당히 생소한 이들이었다. 여기에는 팀의 사연(?)이 있는데 과거 1기 멤버 중 공격수 성락신과 세터 김형일은 족구 선수였지만 수비수 황민석, 박현웅은 축구 선수 출신으로 족구 자체를 LG전자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접하게 된 이들이었다. 이 팀이 당시 좋은 성적을 거둔 성공사례가 있어서 회사와 1기 선수 및 감독은 사내 축구 선수들 중 여러 가지 기준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김경환, 정배근을 선발하게 되었다. 두 선수 역시 과거 축구 선수 출신이었고, LG전자에 입사한 후 족구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이들이었다.
선수들은 모두 창원 LG전자의 정직원이고 각자 맡고 있는 업무가 다르다 보니 업무 시간에는 각자의 현장에서 근무를 하고, 퇴근 후 저녁시간에 모여서 운동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의 지원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창원 LG전자 1지부의 족구 대표팀으로서 회사 차원에서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 및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회를 치르고 온 다음 날 월요일은 선수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물론 매번 휴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창원 LG전자가 추구하고 있는 슬로건 '1등 합시다'를 족구팀에도 접목시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결과에 따른 보상으로 휴가를 주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생활체육지도사 실기시험장에서 일등가의 임상욱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LG 디오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 차원에서의 지원 때문인지 기량이 정말 많이 올라왔습니다. 대회를 치를 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2019 시즌, 이들은 6회 출전에 우승 2회, 준우승 1회, 공동 3위 1회, 8강 2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출전한 대회마다 모두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하이트맨 랭킹 6위에 올랐다. 출전 횟수가 적어 높은 랭킹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올 시즌 하남호크마, 이천시민족구단, 일등가와 함께 강력한 4강 후보이다.
취재하는데 공격수 허남현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래는 허남현과 1문 1 답이다.
Q.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A. 매주 월, 수, 금 주 3회 진행 중이며, 대회가 없는 주에는 주로 연습경기 위주로 진행하고 있고, 대회가 벌어지기 1주일 전부터는 각 포지션 별로 기본기와 로빙볼, A, B, C 각각의 코스마다 공격 세팅 연습 등 경기 중에 나올만한 상황에 대비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는 하루 날을 잡아 컴퓨터 앞에 모여 대회에 출전하는 팀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상대팀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동영상 분석은 성락신 감독님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져 지금은 당연히 해야 하는 훈련이라고 인식하고 선수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함께 운동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반대로 선수들끼리 불화가 있었는지?
A. 제23회 문화체육부장관기 대회 예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기 중에 리시브가 네트에 너무 붙은 상황에서 경범이 형이 공을 살짝 뒤로 빼는 토스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B 각으로 차는 것을 좋아해 공격을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공이 뒤로 더 많이 빠졌습니다. 그 공을 무리하게 공격을 했는데 그 공이 경범이 형의 옆구리를 강타했습니다. 선수 4명 모두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그 얘기가 나오면 웃고는 합니다. 불화라고 한다면 경범이 형이야 이미 6년째 룸메이트로 지내며 전혀 불화 없이 지내고 있고요, 수비수 형들도 족구선수로서는 저랑 경범이 형이 더 선배라는 사실을 인정해주며 나이와 상관없이 전위 라인의 피드백을 잘 들어줘서 불화는 전혀 없습니다.
Q. 사내 체육대회를 하면 어느 팀이 우승을 가장 많이 하는지?
A. LG 디오스(냉장고 사업부)-성락신, 창원볼케노(쿠킹사업부)-허남현, LG C&M(부품 사업부)-전웅규. 이렇게 세 팀이 풀리그를 하는데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는 10년 정도 성락신 감독님의 냉장고 사업부가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입사한 후 6년 동안은 대부분 제가 있는 쿠킹 사업부가 우승했습니다.(웃음)
Q. 1기 팀들과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도 있지 않은지?
A. 현재 1기 선배님들은 모두 본업에 집중하고 계시고 저희 후배들에게 각자의 포지션에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2018년 2기가 만들어지고 여름 즈음에 1기 선배님들은 40대부로 저희는 최강부로 함께 참가했습니다. 그때 연습경기를 했는데 선배님들의 체력이 남아 있을 때는 이기기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만 못 할 뿐, 역시 선배님들의 클래스는 여전하신 것 같습니다.
Q. 2020 시즌 목표는?
A. 올 시즌 목표는 팀적으로는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목표를 크게 잡고 그 목표를 위해 선수들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최강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8 시즌과 2019시즌을 비교하면 오히려 2018시즌 성적이 더 좋았습니다. 올 시즌에는 족구인들에게 LG 디오스가 앞에 두 시즌보다 전체적인 실력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A. 우리 팀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2기 LG디오스가 구성되고 초창기에 허건도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너희 경기는 아직 재미가 없다. 1기 선배들이 경기를 할 때는 LG디오스가 경기를 한다고 하면 관중들이 자연스럽게 코트 주변으로 모여 구경을 했다. 감독이었던 나 조차도 오늘은 성락신 선수가 어떤 공격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너희들의 경기도 그렇게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현재의 LG 디오스도 1기 선배님들의 명성처럼 경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그때마다 멋진 플레이로 항상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1983년 멕시코에서 벌어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돌풍을 일으키며 4강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외신들은 이런 별칭을 붙였다. 레드 퓨어리스(Red Furies, 붉은 악령들). 이를 우리나라 언론이 '붉은 악마'로 해석해 현재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의 별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1기 LG 디오스 시절 부터 붉은 유니폼을 입고 상대팀을 잡아먹고 있는 LG 디오스. 공식적으로 이를 공개할 기회는 없었으나 난 이들에게 예전부터 '붉은 악령들'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그리고 2018시즌부터 발족한 2기 LG디오스의 모습은 가히 '붉은 악령들의 재림'이라고 할 만 했다. 2020 시즌에도 붉은 유니폼을 입고 상대팀을 잡아먹을 붉은 악령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2020 시즌 선수단 구성
감독: 성락신
공격수: 허남현(28세, 경주화랑→고령 모터스→LG 디오스)
세터: 박경범(30세, 창신대→LG 디오스)
우수비: 정배근(32세, 화성 FC 축구선수→LG 디오스)
좌수비: 김경환(33세, 이천시민축구단 축구선수→LG 디오스)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주신 LG 디오스 선수단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