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않은 7월의 어느날.
소리없는 아우성이라 했던가 ,외관상 뭐하나 내세울게 없는 출발은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기대치와 비례해 인간의 속성은 나타나는 것인데,그래서일까.
조용한 혁명처럼 '어 이것봐라' '볼만한데' '재밌는데' '찡한데' '아 쪽팔리게 날 울리네' '이건 드라마가 아니야' 서서히 폐부에 전해오는 감성들이 이제는 제법 담담해지기 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길위에서 조금은 가쁜 숨을 돌려 진정 '네멋'의 의미와 그평가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보려 한다.
거창한 고찰을 들먹거리면서 까지 이 드라마를 살피는 것에 대해 많은 거부감도 있을 거라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논자의 주관을 떼어 놓고라도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고 우리가 아쉬워 하며 하지못했던 말들에 대해 한번쯤은 진지함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
소명을 짊어진 자의 책임으로 말해볼까 한다.
우선 논문의 형식을 탈피해 주관적 관점이 많이 가미된 글이라는것을 밝히면서 크게 '네멋'의 사회적 영향,평가,문제점과 개선방향 그리고 종합해 마무리 하는 것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네멋'의 사회적 영향
1).매너리즘과 매니아
단어의 원뜻은 ~에 빠지다. ~에 열광하는 것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세,흥분된 상태로 말할수 있다.
드라마 매너리즘.드라마 매니아.
드라마에 빠지다.드라마에 열광하는 집단이다.
풀이해 보니 둘의 단어가 비슷한것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하고 아뭏튼 그리 좋은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속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기존의 드라마는 수없이 만들어 지고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는 나라가 있을런지.
이는 동양철학과 한민족 특유의 정서에서 비현실의 논리가 정서적 순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는것.
예전의 악역을 맡은 배우가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례나 극속의 배고픈 주인공을 위해 먹을 것을 전해주는 따듯함에서 결코 웃음으로 받아들이기엔 심각한 수준까지 다다른 거라 말할수 있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반문할수 있다.
요지의 반문을 벗어나 선진국의 방송 편성을 보자. 어떨거라 생각하는가.
대표나라인 영국이나 미국을 보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편성되있다고 한다.
우리는 박식한 사람의 기준을 어떤이로 말하는가.
전문용어를 쓰는 사람,고급스런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자.아니다.
박식한것은 여러방면에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만화,소설,잡지,전문지식,문화지식등 심지어 포로노의 천박함까지 한가지 음식의 편식에서는 절대 건강한 사람이 될수 없다는 평설에서도.
우리는 모두의 박식한 건강한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문화적 편식은 치명적인 것이다.
다시 요지로 돌아와 매너리즘과 매니아는 무엇인가?
쉴새없이 만들어 대는 드라마나라에서 진정한 매니아는 없고 매너리즘만 존재하는가.
물론 기존의 드라마에도 매니아가 있었던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논자가 말하려는 시점에서 새롭게 매니아를 말하려는 것이다.
매니아는 박식한 건강한 정신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한요소이다.
수량으로 퍼붓는 드라마홍수속에 가치있는 드라마하나는 분명 기존의 방식과 앞으로의 방식에 영향을 줄거라 생각된다.
주목받지 않던 드라마가 매니아들에 의해 알려줬을때 비로써 그들은 고무된다. 그리고 그속을 보려한다.
이점에서 매니아는 다양한 사회기반속에 한축이되며 발전의 근간이 되는것이다.
매너리즘만 있는 드라마로는 편식밖에 될수 없는것이다.
100개의 드라마보다 1개의 진정한 드라마를 만들어 달라는 매니아들의 목소리가 박식하고 건강한 사람의 식단에서 당당하게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국은 맛있고 김치는 맛이없어 국만 줄창 끓여된다면 언젠가 비타민 결핍증이 되지 않을까.
국도 맛있게,김치도 맛있게,다른 반찬도 맛있게 드라마에서 만큼 매너리즘보단 매니아가 분명 건강한 식단의 한요소 일것이다.
드라마라는 한음식을 양적인 맛보다 질적인 맛으로 이끄는 원천이니까.
2).세대간의 문화적이해
질문을 던져본다.
드라마에 빠지는 연령계층과 성별을 물었을때 답은 무어라 생각되는가.
지금껏 통계를 빌리면 시대극과 현대극에서 시대극은 40대이상 현대극은
40대이하,성별로는 시대극은 남성 현대극은 여성.
이분법적인 통게지만 전부가 그렇다는 것보다 대략 이렇다는 통계이다.
그럼 또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전세대를 아울리는 드라마를 본일이 있는가. 정말있는가.
과연 이질문에 '네'라고 말할수 있는가.
논자의 관점에서는 없다.
가족드라마로 포장된 여타 드라마는 있어도 '네'라고는 말할수 없다.
아니 앞으로도 전세대를 아울리는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냉소적 입장의 발언이 아니란걸 밝힌다.
세대간의 이해와 조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자기세대의 문화를 허물어 버리고 다른 세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것.
이는 조화와이해가 아닌 자괴스러운 흉내밖에 될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형성과정이 세대마다 다르다.
각각의 독특한 문화속에서 자기세대를 표현하고 지키려한다.
그러면 자기세대의 문화만 표현하고 지키면서 다른 세대의 문화는 단절하는 것이 사회전체로 봐선 잘된일인가. 이도 아닐것이다.
그래서 세대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어도 안되고
단절시켜도 안되는 것이다.
논자 관점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하는것.
너무나 원론적인 말같지만 이 원론에서 중요한것을 말하고 싶다.
과연 각세대의 문화를 표현하며 그모습을 담아내는 이시대의 문화공급자
들이 정녕 논자가 말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하는데 최선을 다했는가.
그대들의 땀방울을 원하는게 아니라 가치인식 부터 표현 방식까지의 최선으로 그대들의 무지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다.
세대 표현의 한 방면인 드라마에 공식이 존재할정도로 틀에 박히고 상투적인 방법으로 청춘 드라마,시대극,가족드라마등 세대를 표현하는 막중함에 비해 그모습들은 너무 가볍고 현실의 왜곡이 심했던것이다.
각세대의 고충과 가치인식을 제대로 표현할때 세대간의 문화적이해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네멋'의 표현방식은 그런점에서 다른 세대와의 조화에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요즘 우리세대 말투가 이러 하답니다' '우리세대의사랑''우리세대가 생각하는 부모님과의 관계'등 많은 메세지로 당신들이 이해 해주십시요라는 모습을 담고있는 것이다.
일종의 시도이며 도전이다.
언젠가는 전체를 아울리는 드라마가 있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3).게시판 혁명
'네멋'을 말하는데 빼놓을수 없는 한가지. 게시판!
배우의 열연과 작가,연출자 역량 이모든것은 위에서부터 공급자 입장에서 말할수 있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게시판이라 할수있다.
소제목에 '혁명'을 붙였는데 혁명은 또 무어라 말할수 있는가.
밑에서부터 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 .기존의 틀을 깨 버리는것.
드라마 한회한회 막을 내린후 게시판을 들려 보았는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칭 네멋의 폐인들에게는 논자의 속마음이 들키겠지만 논점으로 돌아와
게시판 혁명의 속마음을 털어내기로 하자.
정보화시대에 사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예전의 시청자 표현방식은 엽서라 하면 약간은 놀랄것이다.
엽서를 통한 표현방식은 지금까지도 경이롭고 신비스럽기 까지한 시청자 표현 방식으로 생각된다.
그 얼마나 정성의 극치인가.
그래서인지 드라마와 제대로된 감정이입의 글들이 많았을 거라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지금의 시청자 표현 방식을 말해보자.
정보화시대에 세계1위의 인터넷망을 구축한 I.T강국 수많은 수식어가 무색한 말그대로의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의 위력.
가히 메가톤급의 힘의 소유자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수많은 게시판을 구경해 본일이 있는가!
사이버상의 왕좌가 1분에 몇타를 올리는가에 판가름나고 욕설과 비방이
풀도 없는 도배로 채워지고 논자같은 거북이는 마음만 앞서고 표현은 저기 먼 바닥을 기고 있는것을.
다시한번 '네멋'의 게시판을 본일이 있는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의 답이라 할수있다.
드라마상의 감동을 배가 시키는 위력 .
너무나 당연한 배우의 열연에 찬사를 보내고 제작진의 수고를 돌볼줄 아는 게시판.
구슬도 꿰매야 한다는 말처럼 수많은 주옥의 글을 올리고 그것을 읽는 네멋의 시청자모두는 혁명의 주동자이고 공범인 것이다.
물론 100% 완벽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건 게시판 하나로도 감동을 줄수있다는 사실에 큰의미를 두고 싶은 것이다.
네멋게시판에는 유명한 도배공 몇명이 있는거로 아는데 가뭄에 콩나듯 들어와 온갖 욕설로 채우고 나가버리는 그 민첩함과 순발력에 논자는 속수무책일때 정중히 타이르는 분,같이 맞서는 분,여러 대응을 보았지만 네멋의 게시판 글수를 올려줘 고맙다는 어떤분의 대응방법에 더이상의 형언을 찾을 수없는 순수함과 열정을 느낄수 있었다.
작금의 인터넷 문화를 열거하지 않아도 그문제와 심각성을 모두들 알거라 생각하면서 새로운 인터넷문화에 좋은 본보기가 될수 있는 '네멋'게시판의 모습을 게시판 혁명이라 말하고 싶다.
다시 묻고싶다.'네멋'의 게시판을 본일이 있는가.
혁명의 근원지를 본일이 있는가!
3.'네멋'의 평가
1).절대적 평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많은 여인의 구애를 받으나 모두 거절해 버린다.
어느날 그는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려다 자기모습을 보게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그 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자기도취.
여기서 유래된 수선화 꽃말과 나르시시즘.
절대적 평가의 이면엔 나르시시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논자가 주관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의 한계가 될수 있는 것이다.
A.제작진
드라마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비유한 말들이 많다,
산모의 고통,뼈를 깍는 고통,조물주의 능력까지도.
그들의 고통뒤에 따르는 여러가지의 반응.
드라마 초기에는 시청자들의 평을 빌리면 영화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제작진의 세심함과 참신함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철학까지 이해하려는 위험한 나르시시즘의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어떤기준에서 평가하는지는 논자도 무식의 소치가 드러날 뿐인데, 극의 전개방식과 대본의 전달방식은 여타의 작품들과는 사뭇다른 느낌이었다는데 반론을 두지 않겠다.
그리고 극속에 쓰여지는 소품의 의미와 극과 호흡하는 음악들은 그들의 용이함까지 읽을수 있었다.
논자가 왜 나르시시즘을 제기 했는지에 대한 제작진의 수고가 극의 완성도를 높인것이다.
B.배우
극속의 배우들을 평하기전 배우의 개념과 3대요소를 짚어보자.
배우란 극중인물에 대해 내적,외적인 면으로 완벽하게 분장하여 극중인물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해 내는 역할을 하는 인물로써,그 행위자체를 창작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다.
내적분장이란 극중인물의 사상과 성격을 표현함이고 외적분장이란 극중인물의 의상,두상등 분장술을 말한다.
배우는 인체의 5가지 감각을 표현 수단으로 한다.
5가지 감각.
a.시각-눈으로 보았을때 본것에 대한 표현.
b.청각-귀로 듣고 음질의 감정을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
c.후각-냄새를 맡아보고 냄새의 농도를 표출.
d.미각-입으로 쓰고,달고,맵고,짜고,신 감정을 표현.
e.촉각-피부로의 느낌.뜨겁고,차고,부드러움의 표현
배우의 3대요소-표정,동작,언어가 있다.이 3가지를 바탕으로 시선,동작,대사에 대한 약속을 익히게 된다.
배우에 대한 개념이 어떠한가.
현시대의 유명 인기배우들을 배우의 개념에 대입해 보자.
어떠한가.
철저히 광대인자가 진정한 배우일진데, 우리모두는 말초신경의 잣대로 배우를 말하고 가칭 빠순이,빠돌이의 기형적언어를 창출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시각은 좀더 높아질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연기를 잘해 그배우가 좋다는 말과 얼굴이 좋아 그배우가 좋다는 말.
배우를 좋아하는 시각부터 분명 달라져야 할것이다.
네멋의 연기자를 간단히 대입해보자.
주연배우중 양동근은 모든 개념에 근접해있고 특히 5가지 감각을 통해 표현하는 배우에 가깝다.
이나영과 이동건은 내적,외적인면에서 극중인물과 유사한 표현을 하는 배우에 가깝고, 공효진은 배우의 3대요소에서 대사에 대한 약속을 잘 익힌 배우라 말할수 있다.
그밖의 조연들은 그임무가 너무 충실해 각각의 에피소드가 추가된 기존의 조연 개념을 넘어선 시도였다.
C.시청자
앞서도 말했던 문화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입장인 시청자.
제작진,배우모두가 그어떤 각고를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해도, 시청자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의 이름을 달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점에서 시청자는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 최초의 수혜자이며 최종의 결정권자인 것이다.
네멋의 시청자는 어떤이들일까.논자도 여기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한사람이면서 늘 그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람의 눈은 마음을 보는 창이라는 싯구절을 떠올려 본다.
진품을 알아보는 눈이 세상의 가치가 혼동된 시대인 만큼 제각각일텐데 드라마하나에 마음을 나누는 네멋의 시청자들은 논자의 관점을 더욱 흐리게 할 뿐이다.
그래서 네멋시청자들을 말할수 있는 객관적 근거 몇가지만 말하기로하자.
첫째.제작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다른 드라마에 뒤지지않고 이는 게시판만 확인해 보면 알것이다.
둘째.대한민국 드라마 미스테리 .주인공을 죽이네 살리네에 초연하다.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협박성 애교는 있어도.
셋째.미리보기,대본보기의 유혹에 늘 시달린다.
속을 들여다 보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따듯한 마음을 볼수있다.
2).상대적 평가
절대적 평가가 논자의 관점이라면 상대적 평가는 이시대의 변질된 가치척도 수치로 비교하는 것과 언론의 평가를 둘수있다.
네멋이 타 방송작품들과 비교되면서 시작되었고 그과정에서 언론의 입장도 접할수가 있었다.
상대적 평가도 그자체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지만 요는 변질되고 왜곡되었다는 데에 논점을 두고 말해볼까한다.
A.비교전쟁
"비교한것있어요"한때 개그맨 남희석과 박수홍의 비교전쟁이 장안의 화두였던것을 떠올려 본다.
그시대의 코메디소재는 그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최고 가치척도는 숫자인 것이다.
드라마평가에서 빼놓을수 없는 한가지 시청율.
통계학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는데 네멋시청자들의 체감온도는 높다. 하지만 숫자로 받아보는 성적표는 보통수준.
논자도 이점에 애청자 입장일뿐 그이상 이하도 아님을 밝히겠다.
하지만 시청율속내에 가려진 진실이 있다.
그것은 시청반응.
네멋과 비교단상에 오른 타방송국 시청 반응과 네멋의 시청반응을 비교해 보았는가.
드라마하나에 각각의 인생과 철학을 돌아보며 누구에게도 자유로울수 없는 가족의 의미,사랑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그사연들을 공허한 외침으로 치부하겠는가.
10만이 넘는 게시판 글수의 속내와 네멋의'네'자만 보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들의 눈을 숫자로 외면해 버리겠는가.
논점으로 돌아와 적어도 비교단상의 대상들에게는 '장님의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는 없었으면 한다.
그작품의 표현기법,전개구도,대사,배우연기등등 비교의 조건이 될수있는 100가지를 다 보지 못하는 눈이라면 차라리 꿀먹은 벙어리가 더 나을듯 한가지 침소붕대는 위험한 오만이 될수 있으니까.
B.언론의 평가
논자의 논지가 드라마에 의미를 두는 가벼움으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언론을 말해야하는 것에서 무척 왜소해지는데 한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인 만큼 용기를 내보기로 하자.
무소불위한 힘을 두고 거기에서 나오는 초강력 울트라 펀치가 스치기만 할때 그위력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아파하고 상처를 입는다는것.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칼보다 무서운 펜을 들때 비수의 아픔보다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진다는것.
네멋에 대한 언론들의 반응 .
처음엔 주목받지 않는 외로움은 견딜수 있었지만 진실의 왜곡 만큼은 비수보다 더 아픈 마음의 상처가 되어버렸다는 것.
논자가 흥분하면 논점은 길을 잃어 버리는것 까지 감수하면서 말해본다.
왜 그들은 아직도 무책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언론의 최고가치인 사실을 외면하는가.
차라리 약자라면 다독거려 타일러 보기도 할텐데 그들의 당당함에
위대스럽기까지 하다니.
'네멋'은 재평가 되어야 한다.
언론에 의해서.
지금은 많이 활발해지는 상황에 대해 반가운 면도 있지만 명품의 가치를 시청자보다 늦게 알아본 '사후약방문'식의 평가는 씁슬하기도
하다.
그들의 민첩성에 비해 부여받은 힘은 참으로 부럽기 까지하고.
논점으로 돌아와 언론이 언론 본연의 자세에 충실해 준다면 두말하면 숨가쁠정도의 무의미함을 인정하겠다.
실명을 들지않아도 될 정도의 유명인사에게도 한마디 덧붙이겠다.
당신은 당신이 기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말고 살아주기를 .
당신이 기자의 펜을 놓았을때 그어떤 말을 한다해도 다 받아줄 용의
는 있으나 당신이 부여받은 힘으로 세상을 왜곡시켜 논할때는 논자또한 논점을 흐리면서까지 맞설때니까.
언론 평가 부분은 논점과 그구성에 있어 엉망이었음을 밝힌다.
4.네멋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향
'세상에 완벽은 없다'라는 진리앞에 네멋은 어떠할까.
논점의 시각을 어느곳에 맞춰나가냐에 따라 한없이 치우쳐 버리는게 일반적인데 절대적 시각에서 출발한 논점은 이제 문제점을 말하는 곳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균형의 철학은 중용의 위대함에서 찾으려하고 비판의 철학은 사랑의 토양위에서 말해야 한다는 논자의 소신으로 네멋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하기로하자.
1).네멋에 대한 문제제기.
A.홍보 부족
네멋을 아끼는 많은 사람의 말중에 '네멋은 왜 홍보를 안하는 거야''왜 자사 연예프로에 안나오는 거야'등 애청자 모두 안타까움의 표시지만 논자도 질문해 보고 싶은 요지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있어 불가분의 요소인 홍보에 대해서 왜 그토록 인색했는지 묻고싶다.
인터뷰기사중에 연출자가 한말도 확인해 보았지만 간과해둔 사실은 개인의 소신이 대중매체의 본질을 뛰어넘어서는 안된다는점.
예전의 한석규,심은하 주연의'텔미썸싱'의 신비주의도 홍보의 한 방편이지만 그건 영화라는 특수성에서 선택권을 갖고있는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전략이고,드라마는 단편이아닌 시리즈인 이상 초반에 선택권이 정해지고 그 기반위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물론 많은 선택을 받은 작품이,작품성이 떨어지는 일이 허다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해서 이런 공식이 맞다고는 볼수없는일.
작품의 완성도는 최종 결정권자인 시청자에게 맞겨야함이 옳다는게 논자의 생각이다.
제작진은 엄밀히 따져보면 문화공급자,장삿꾼인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심어 어떤작품을 잘 만들었다면 그것을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 했어야 한다.
제작진의 홍보는 장삿꾼에게 유통과 같은것이다.
개인의 철학,소신 모두중요한것도 인정하고 그위에서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것도 인정하지만 그작품을 볼수있는 시청자권리도 중요한 것이다.
그 연결의미인 홍보에 인색했다는 데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수 없다.
B.제작진의 역량과 매니아
네멋의 특징중 하나가 빠른 전개방식,독특한구성,간결한 대사처리를 꼽을수 있는데 이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에게 매니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점에서 문제가 될수없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이시대 젊은이의 현주소를 잘읽어 낸데는 동의하나 불특정 모두의 시청자가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있었다는 점.
논자도 여러번의 재방을 통해 이해할수 있었고 극의 전개와 대사처리를 받아들일수 있었다.
즉 매니아가 탄생할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는것.
앞부분에서 매니아의 긍정적 부분을 언급했고 세대간의 문화적 이해도 언급하였다.
두 논지를 연결해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해 탐구하려 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를 통해 자기것으로 만드는 매니아는 있어도 ,빠르고 간결한 것에대해 적응속도와 의지표명이 다른 기성세대에게는 이해시키는 것의 무리함을 볼수가 있었다.
긍정과 부정의 딜레마처럼 제작진의 역량이 너무 앞서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바이다.
2.)개선방향
A.홍보의 방향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 가야한다는 속담.
네멋 제작진이 현재 만들고 있는 작품의 중요성을 제작진 스스로 느꼈으면 한다.
왜 이렇게 네멋을 본 시청자들은 이작품에 열광을 하는지 .
더나아가 우리가 만든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막중함을 .
그것은 제작진을 위한게 아니라 우리를 위한것이고 ,비약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모두의 책임이니까.
종영후에도 네멋의 의미는 여러각도에서 다루어지리라 본다.
이점에서 언론의 재평가가 이루어 지도록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는 충분한 기사자료를 제공해주고,tv연예프로,시사프로를 통해 5-10분 정도의 기획특집을 다룰수 있어야하고,극종영후 게시판 재정립과홍보에 또다른 관심을 가져야하고,네멋의 소장가치에도 신경을 썼으면 한다.
궁극적인것은 네멋의 의미가 종영후에도 다른이들에게 전달될수 있는 여러노력들이 있었으면한다.
차기작은 짧지만 강한 호소력이 담긴 홍보를 부탁한다.
'양동근 나오네,시트콤 아니야'이런 오류가 없었으면 한다.
B. 전세대를 아울리는 드라마
꿈은 이루어 진다는 붉은 악마의 소망처럼 드라마에서도 모든 세대가 공감하며 감동을 느낄수 있는 드라마가 만들어질거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대간의 문화적 이해에서 말했듯이 각세대의 특성을 잘간파해내고 이를 표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것이다.
그런다음 다른 세대도 공감할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인이 열광하는 드라마에는 불특정인의 이해요소가 있어야 서로 단절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참신하고 새로운 드라마는 사전에 세대간 완화장치가 있었으면한다.
첫회를 할애하든 10분 정도 할애하든 먼저 작품에 대한 설명,기획의도,전개방식,대사처리등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를 기성세대에게도 공개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굳이 출마의 변을 밝히듯 제작진도 불특정다수에게 어필하는 것이다.이런 시각에서 이작품을 봐달라고.
언론에서 말하기를 네멋을 청춘 드라마로 말하는데 논자 관점에서는 가족 드라마이다.
가족,사랑,죽음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를 어찌 청춘 드라마라고 말할수 있는가.
네멋이 보여준 많은 명대사 명장면들이 매니아들만 소유하기엔 너무도 아쉽지 않은가.
부모와의 아픔과사랑,죽음의 의미,연인의 애틋함을 다른세대들도 같이 공감했다면 한층더 이사회가 건강해지지 않았을까.
모든 세대를 아울리는 드라마가 가까웠음을 확인 할수있었던 네멋 제작진에게 또다른 기대와 더불어 아쉬웠던 부분도 요구하는 바이다. 꿈은 이루어 진다는 소망을 실어.
5.맺는말
정신없이 달려온 길에서 뒤를 돌아보는 여유로 네멋을 살펴보았지만 논자의 역량으론 네멋의 깊이를 다 확인할수 없다는 자조만 남는게 지금의 심정이다.
적어도 논자의 이름을 빌렸다면 좀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논지를 제시하고 살폈어야 하는데 궤변론자의 메아리만 들리는것에 많은 아쉬움으로 마지막을 정리해 보려한다.
위의2,3,4에서 살펴본 내용을 압축시켜 말해본다면 네멋을 통해 새롭게 조명된 현상을 사회적 영향으로 말해 보았고 평가부분은 절대적 평가는 논자관점으로 상대적 평가는 현 시대의 일반적 평가와 그오류에 대해 논자의 괸점을 추가시켜 말해 보았다.
그리고 네멋의 문제제기는 같은 맥락에서 두가지를 나누어 제기한 것이고 이에 대한 개선방향은 논자의 연구가 미흡했던것을 시인 하는 바이다.
논자의 관점과 요지를 여기서 이만 줄이면서 논자가 아닌 네멋의 시청자로 돌아와 말해볼까한다.
네멋이 나에게도 특별하듯 제작진,출연진,시청자모두에게도 특별할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에 대해 당연시 받아들이는 사회.
이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모두는 한번쯤은 자기 성찰을 시도해 보아야 할것이다.
이시도에'네멋'이 끼어든 것이다.
드라마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성찰까지 하라는데 공감대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히 어떨거라는 것.
상상이 가는 바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회유나 협박으로 공감대를 만들고 싶진않다.
그저 네멋을 처음부터 천천히 보여 주고 게시판의 글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게 뭐야'라고 말한다면 우리들이 무엇에 마음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보여주는 수밖에.
-저 넓은 우주 한 별에 아름다운 지구를 관찰하는 일을 낙으로 사는 어느 착한 외계인이 있었다. 그 외계인에게는 마음을 보는 망원경이 있는데 ,한날 한시 마음을 나누고 그시간 이후로도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내는 사연들을 보게된 그 외계인은 말을 한다.
'엄마.나 저별갈래.' '왜!' '저기우리별에 사는 얘들과 똑같이 생긴 두명이 저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네.'
'나도 네멋볼래' '참아라 아그야!' '며칠후면 복수가 이별로 와'
그 착한 꼬마외계인은 엄마의 말을 듣고 오늘도 복수를 기다리며
네멋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