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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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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조선사(朝鮮史)의 달단(韃靼)은 이족(異族)이었을 뿐
문 무 추천 1 조회 419 18.04.15 16:21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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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4.15 16:37

    첫댓글 조선사는 조선왕조의 이야기다.
    일만년 조선왕조(朝鮮王朝)이야기는, 삶의 선택된 이야기일 뿐, 신(神)이나 신산(神仙)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더구나 외게인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판타지화하는 것에 정말 화가 난다. 어떻게 자신의 선대 조상들을 판타지화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 작성자 18.04.15 16:46

    조선왕조는 고대조선으로부터 근대의 조선왕조까지, 왕조(王朝)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다.
    고종(高宗)은 자신의 조상인 태조 이성계가 개국시킨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버리고, 생뚱맞게 대한제국(大韓帝國)이란 국호를 사용했는데, "대한(大韓)"이란 이름은 삼한(三韓)을 모두 통합했다는 뜻에서 대한(大韓)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게 과연 옳은 설명일까? 도대체 삼한(三韓)의 영역은 어디였으며, 삼한안에 몇 개의 나라가 있었는지 고종은 알고 있었을까?
    혹시 大韓이란 이름도 반도 땅에 三韓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미끼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대한(大韓)을 국호로 채택한 것일까?

  • 18.04.15 21:32

    청나라 시대에 중국 (神州, 京畿)는 현 지도상에 어디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 (가령 세종, 영조대왕 등)은 어느곳에 있었는지요...?
    조선의 연행사들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갔었는지요...?

  • 18.04.15 21:42

    여러 분 들의 글을 보아도 결론울 낼 수가 없어 그저 막연한 대륙조선사일 따름인것 같습니다.
    연행록에 나오는 사막지대(검은 모래사막...정확히는 사적지대)는 현 지도에 나오는 그런 사막(고비, 카라쿰,타클라마칸 등등 ) 인가 하는 검증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 작성자 18.04.16 12:02

    안녕하세요. <맑은영혼>님!
    결론을 낼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 같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연경(燕京)인 북경(北京)의 위치와 그 지형지세는, 님께서 말씀하신 그 위치도 배치될 수 있는 곳에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연행록으로 보는 여정의 지형지세는 해결될 수 없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당연히 조선사의 하나 하나는 검증되어야 마땅하며, 현재의 단계에서는 가능한 다양한 주장을 수용하고 난 뒤,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 18.04.15 22:02

    조선의 연행사들은 현 황하(압록강)를 건너 운성시(해주)를 지나 분하(요하)를 따라 북행하여 현 홍둥시(평양 ;산해관)을 지나 북경(태원시)에 갔던것이 아닐까 합니다. 연행록에 나와 있는 검은 모래사막은 석탄 분진이라는것인데, 연행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중국 석탄의 70%가 현 산서성 일대에서 나오다 하니) 빗물에 쓸린 석탄 분진은 침전되어 건조한 겨울에 모래먼지 날리어 이른바 검은 모래사막이 되었던 것이죠......

  • 18.04.15 22:20

    대륙 조선사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각자의 논리(주의 주장 논거)에 따라 說을 하지만, 연행록에 비추어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합니다. 가령, 환향하(연행록에 ...모든 물이 동으로 흐르는데 이 환향하만은 서(西)로 흐른다....했으니)에 대한 이야기만 보더라도, 이런 지형이 가능할려면 그곳은 분지가 아니면 설명할수 없는 곳입니다... 환향하가 나올즈음에 태원 분지가 나와 대부분의 하천이 북으로 흐르는데 오직 환향하(=요하)만이 남으로 흘러 그들이 왔던 고향방향으로 흐르죠...방향은 왜곡되어 동서가 아닌 남북이 본래의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거리와 방향은 왜곡의 가능성이 많아 믿기 어렵습니다....

  • 18.04.15 22:34

    현 산서성 중부에 홍둥시가 있읍니다. 이곳에 현 중국당국이 옛 건물과 똑같은 형태로 복원(?)한 건물이 있는데 그들은 왜 이곳에 같은 모양의 건축물을 복원 했을까요....? 그것은 청명상하도에 나오는 바로 그 건물이며, 저의 추정에 그곳이 바로 산해관 본래 자리가 아니었나 합니다....
    또 하나....
    연행록에 보면 화표주 이야기도 나오죠?.....정령위가 신선이 되어 나오는 ..... 그 화표주가 나올 즈음에 산서성 중부 림분시 근처에 커다란 화표주를 현 중국당국(?)이 다시 세워 놓았읍니다....
    저 멀리 중앙아시아(그곳이 중국이라면...)에 있었을 화표주를 이곳(산서성)에 복원(?)하여할 이유가 있을까요...?

  • 작성자 18.04.16 12:11

    산해관이 님께서 말하시는 곳에 있다고 한다면, 그곳이 요서지방의 마지막 관문이 되어야 하고, 대륙사나 조선사에서는 이곳에 약 2천여미터의 험준한 산과 계곡아래를 흐르는 하천이 있어, 이곳을 유관(楡關)이라고 했다는 연유와 지형지세가 어울려야 합니다.
    더불어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남겨 놓은 문집속에, 왕경을 흐르는 물줄기가 동류(東流)한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검색이 됩니다.
    댓글로 많은 근거와 연유와 사료를 말하기엔 어렵지만 님께서 말씀하신 그 위치의 북경은 또한 조선왕조 초 시대의 북경이었다는 것은 기록으로 확인이 됩니다.
    다만 그 '북경'이 '연경'인가는 별도의 문제라고 보아집니다.

  • 작성자 18.04.16 12:17

    중앙아세아의 "연경"이라고 하는 곳은, 서안 곧 장안 주변의 한성부에서의 여정을 보면 분명 무리라는 것은 당연한 합리적 의심이 됩니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아마도 좋은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1910년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조선사 왜곡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없는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며, 우리가 정말로 진실의 역사 가까이 다가갔다고 해도,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자들이 바로 원흉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결정적인 증거나 유물유적이 아닌 것으로 그들을 이해시키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8.04.16 12:19

    <맑은영혼>님의 관심과 성원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18.04.16 12:28

    晉旦(진단)을 西洋人들은 " chinooiys tatar(치노이즈 타타르)" , 지나스 타타르로 표기함. 晋(진)은 곧 " 지나" 오늘날 차이나로 발음함. 朝鮮멸망뒤 高宗은 " 東晋帝國 " 에서 " 大韓帝國 " 으로 宣佈함. 연개소문 장남 " 연남생 " 묘비명에 그를 " 晋(진) " , 즉 晋朝鮮人이라 기록되어있음. 蒙古, 만주족, 漢人은 모두 朝鮮의 帝藩國임. 증거하자면 " 政祖(정조) " 때 파촉지방에서 변란이 발생.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고 京事로 돌아와 훈, 포상을 했음. 이때 동원된 군대가 바로 " 滿洲八騎軍, 蒙古軍, 漢軍 " 으로 實錄에 기록되있슴. 따라서 靑나라는 없는 나라임. 또 정조때 " 이리조, 오목제(우루무치)에서 정조대왕 생일을 축하하기

  • 작성자 18.04.16 12:34

    안녕하세요. <대부여>님!
    좋은 정보입니다.
    관심과 항상 성원해 주시는 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18.04.16 12:48

    위하여 만수제를 제의 했으나 정조대왕이 거절했음. 그러므로 연행록은 재조명되야됨. 朝鮮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도 滿壽山의 燕京에서 조선건국을 선포함. 이방원의 시 "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滿壽山 드렁칡이면 어떠하리" 즉 中源 개경(낙양)의 포은 정몽주한테 고려의 燕道에 있는 이성계를 섬기면 어떠하냐고 묻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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