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상주 쪽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주로 국도를 이용합니다. 고속도로 이용 시와 시간 차이가 크지 않고 거리도 가까운 점, 통행료가 들지 않는 점도 장점이지만, 오가는 길에 ‘금오산맥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맞는 얘기입니다. 아, 한 번씩 문수사 갈 때나 나올 때도 여기는 꼭 들릅니다. 점심이나 저녁 먹을 수 있도록 시간 조정해서... 문수사는 절벽에 의지해 지은 반쪽짜리 사성암과 차방이 유명하지요. ‘금오산맥우’는 구미시에서 개발한 한우 브랜드로, 한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보리를 사료로 먹여 키운답니다. 이 구미시 개발 ‘금오산맥우’를 사용하기에 식당 상호도 ‘금오산맥우’로 하였습니다. 원래 금오산 기슭에 있다가 몇 년 전 해평농협 도개 휴게소로 옮겼는데 여기는 주유소, 하나로마트, 정미소와 식당이 모여 있습니다. 휴게소가 25번 국도에 면해 있는데 이 도로는 교통량도 많은 데다, 이곳에 오면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근처에 농지가 많으며, 총 36홀 규모로, A·B·C·D 4개 코스로 구성된 도개파크골프장이 인접해 있고 11km 거리에 18홀 규모의 해평파크골프장도 있어 늘 손님이 많습니다. 제가 자주 찾는 이유가 복잡하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지요. 가격도 싼 편인데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계절메뉴인 물냉면은 9천 원입니다. 사시사철 나오는, 대파와 무, 소고기를 뭉건히 끓이고 콩나물을 넣은 소고기국밥도 9천 원입니다. 그 외 영양탕, 곰탕, 육회비빔밥, 소불고기, 육회 등이 있는데 다 가성비가 좋습니다. 서너 가지 나오는 밑반찬도 깔끔하니,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계절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변 농민, 운송업자, 25번 국도 이용 출장자, 파크골프 즐기고 나온 이들, 그리고 가성비 좋아 일부러 멀리 찾아온 이들까지, 늘 붐빕니다.
제가 즐겨 먹는 냉면은 10분여, 소고기국밥은 2분여 만에 뚝딱 나옵니다. 그래서 먹는 시간 포함, 식당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25~30분이지만, 참 재미있는 광경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운전 중 들른 이들이야 대부분 일행 없이 혼자이지만, 가족 단위, 농사 품앗이하는 이들이 함께 혹은 파크골프 치고 함께 오신 이들이 맛있게 드시고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여럿 오시는 분들 중 가족 단위는 최연장자 아니면 중간 위치의 남자가 대부분 계산합니다. 품앗이하다 오신 분들은 당연히 그날 논밭의 주인이 내는 것 같습디다. 재미있는 건 파크골프치고 오신 분들 테이블입니다. 지난번에 갔을 땐 8테이블 정도가 골프 치고 오신 분들이었는데,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눈에 뜨여, 눈여겨보았습니다. 여자들끼리만 오신 테이블에서는 두 테이블 다 개개인의 현금을 거출해 밥값을 내더군요. 남녀가 함께 온 일행이나, 남자들끼리만 온 곳은 서로 쟁탈하듯 주문서를 챙겨 계산대로 달립니다. 거의 그렇습디다. 여럿이 먹고 계산하는 데 있어, MZ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층은 대부분 더치페이, 즉 각자 먹은 만큼 분담하는 게 일상화되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요. 우리 세대는 아직도 깃대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동일 금액의 회비를 내고 먹은 후 초과분은 서로 내려 하는 정도입니다. 여자들이 우리 또래의 남자들보다 요즘 문화에 더 개명한 것도 같습니다.
‘더치페이’는 ‘비용을 각자 서로 부담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임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더치페이의 유래를 알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치페이는 ‘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Dutch란 ‘네덜란드의’ 또는 ‘네덜란드 사람’을, treat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하지요. ‘더치 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습니다.(예전의 우리 문화와 매우 닮았지요.)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식민지 경영과 무역 등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의 식민지 경쟁에 나섰습니다만, 3차례에 걸친 영국ㆍ네덜란드전쟁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 두 나라의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이에 영국인들이‘Dutch’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영국인들은 그들의 오랜 관습이었던 ‘더치 트리트’에 대해서도 ‘대접한다’라는 의미의 ‘treat’를 ‘지불한다’라는 뜻의 ‘pay’로 바꾸어 함께 식사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는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해 네덜란드인들을 인색한 사람들이라 조롱하였답니다. 사실과 다르게, ‘더치페이’는 이후 각자 비용을 부담하는 계산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I'm a Dutchman'도 '나는 네덜란드인이다'가 아니라, '성을 간다',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이랍니다. 네덜란드를 조롱하는 영어식 표현으로, 이도 그 무렵 나온 말이랍니다. ‘힘’이 현상이나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현상 말입니다. 앞으론 왜곡된 의미의, 한 국가를 조롱하는 걸로 비칠 수 있는 ‘더치페이’를 ‘각자 내기’로 순화해 써야겠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리 권하여 왔습니다. 온전히 사랑하면, 믿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실행하게 됩니다. 기꺼이.
비누에 대한 비유(모셔 온 글)============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가령, 비누를
한사코 미끄러져 달아나는 비누를
붙잡아 처바르고 안고 애무해보지만
사랑한 것은 비누가 아니라 비누의 거품일 뿐
비누의 심장에 다가가 본 적 있는가
비누에게 무슨 심장이냐고?
그렇다면 비누가 그런 것처럼
제 살 한 점 선선히 내어준 일 있었는가
누구의 더러운 냄새 속으로 녹아들어가
한번이라도 뜨거운 심장을 증명해 본 일 있었던가
고작해야
때얼룩 허물을 벗어 안겨주면서도
눈앞에 있을 때
참으로 간절히 참으로 간절히
비누에게 있는 비누의 이름을 불러준 적 있는가
닳아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불러보는 없는 이름
여보, 비누
없어 비누
----- 복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