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울 을 떠 나 면 서,,,
기 행 문
글 / 유 제 하
오늘은 ☞
지금 시각은 ☞
그 긴 여행끝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광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온몸을 휘감는 한파와 다시 한번 싸워야 한다.
우선 손가락 열개가 땡땡 얼어서 굽히기가 어려울정도다.
그 당시는 겨울철 장갑을 낀 사람이 국민의 10%도 안된다.
난 그래도 미국 군인들 덕분에 중산층 정도 수준이었는지
울 엄마가 손으로 직접 털실로 짠 벙어리 장갑을
끼고 있어도 도저히 그 추위를 이길수가 없었다.
동상걸린 손처럼 얼얼 하면서 떨어져 나갈것같은
통증으로 인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또한 미군 부대에 근무하신 아버님 덕분에 양말 2개를
포개서 신고, 털신까지 무장햇으나 완전히 남의 발이다.
미군들이 겨울에 야전 훈련 나갈때나 쓰는 털모자를
쓰고 양쪽 귀를 가렷으나 귀땍이가 어찌나 시린지 살짝
누가 옆에서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엔 잘려나간 귀를
찾느라 서울역 광장을 몽땅 뒤지고 다녀야 할판이다.
난 그때 그래도 일류신사 쪽에 들었다.
왜냐하면 야전 털모자에, 미군 겨울용 외출복인 사지나
오지 바지에다 미군 상의를 적당히 아동용으로 줄여서
다시 재봉하여 만든 울 엄마의 솜씨는 대단햇다.
45년도 광복직후 일본에 살다 한국으로 들어올때 한대
사온 다리가 긴 재봉틀은 그후로도 우리집에 약
30년동안 재산 목록 제1호였다.
추위를 견디라고 울 엄마는 날 완전 무장 시켯으나 엄청난
동장군의 위력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온몸을 싸감아 겨우
눈 입 코와 양볼 정도만 보일 정도 인데도 그 추위는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밖으로 나온 부위는 뻐얼겋게 익어서
팅팅 터지고 앞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코나 입으로
들어가면 숨이 칵칵 막힐 지경으로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추위가 그후로도 한동안 우리 서민들을
괴롭혀 오다가 언제부터인진 모르지만 더이상 그런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살 정도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런 몸으로 뻐스라고 올라타면 뻐스안은 바람만
덜 불뿐이지 밖에보다 훨씬 추?m던 기억이 난다.
모든 내부의 비닐 의자나 쇠붙이 등등은 몽땅 얼어있고
꼭 으시시한 냉동 창고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내부의 엔진 몸체마져도 온기라곤 찾아볼수가
없다. 첫차라서 그런지 몇안되는 승객들은 얼은 발을
동동 굴르며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겨 보려하지만
출발지에 마냥 서있는 뻐스는 좀체로 움직일 생각도 않는다.
이제나 저제나 빨리 출발이라도 하면 좋겟다 싶어
운전석을 힐끗 힐끗 봐도 기사는 밖에있는 모닥불앞에
쭈구리고 앉아 불 쬐느라 정신이 없다.
뻐스안의 침묵은 가히 살인적이다.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입을 여는 순간에 그사람은
손해를 보는거다,
말을 하고 나면 훨씬 더 춥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서울 사람들이 평상시 무뚝뚝하고 누가
뭘 물어보면 싫어하는등, 꼭 할말만 하고 사는 이유를
알만하다. 남의 일에 참견 안하고 묵묵히 자기일만 하며
살자는게 그냥 생겨난 습관이 아닐것이다.
참견하고 친절을 베풀어 고맙단 말 보다,
원망이나 원성을 들을때가 훨씬 많았단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희 KTX를 이용해주신 승객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더욱 양질의 서비스를 다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겟습니다.
이제 잠시후 동대구역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내리실분은
열차가 완전히 정차한후 출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 옆에서 침묵만을 지켜온 아름다운
나의 여인은,
오늘의 여행에 동행하신 여인은 바로 바로
울 엄마이시다. 창밖을 응시한채로 조용히 앉아있다.
그여인은 다름아닌 울 엄마 이시다.
나를 낳아주시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끔 키워주시고
제2의 제3의 인생을 살아갈수 있도록 병상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우리 6 남매의 어머님이시다.
기차안의 침묵을 깨는 안내방송을 뒤로한채 난
울엄마의 손을 꼬옥 쥐구서 나한테는 막내 여동생이며
울엄마에게는 막내 딸인, 경상도 대구놈 한테 시집와서
딸, 아들 둘만 낳고 잘 살고있는,
동대구역의 플랫홈에 두발을 내려 놓을수 있었다.
울 엄마의 금년 연세는 어느덧 82세이다. 우리가 오늘
서울역을 버린게 오후 1시정각인데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지금시각이 2시 50분이다. 불과 2시간이 안걸렷다.
그 옛날 울 엄마의 손을 행여나 놓칠새라 꽉 잡고
서울행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을 올라올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여느 남자 못지않게 빠르고 강인하던 울 엄마도 이젠
엄마의 파란 만장한 삶을 접으실때가 점점 닥아오고
있는것인가?
그 누가 그일을 인력으로 막을수 있단 말인가?
할수만 있다면 내 생명이라도 바꾸어 드리고 싶다.
허지만 그런 불가능한 일을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난 언제부터인가
울 엄마가 고향에 한번 다녀오고 싶어 하시는걸 알았다.
물론 전에는 내 차로 직접 운전하여 여러번 함께
여행겸 드라이브를 다녀온적은 있었다.
그러나 요근래 몇년동안은 시간이 없었다.
내가 여러가지 복잡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머님 역시 날 위해서 나한테는 절대 얘기 하신적이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일까?
난 그만큼 무심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래서 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아직은 울 엄마가
스스로 움직일수라도 있지 않는가?
언제 어느때 움직일수 조차 없는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나이드신 노인네들의 내일을 그 누가 보장 할수있는가?
그때가서 가슴을 치는 후회를 안할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결심을 했다. 시간을 쪼개서 다녀오자.
모든게 여의치 못하지만 나 하나 결정으로 그 만한 일도
못한다면 울 엄마에게 불효 아닌 불효를 반복할 생각인가
하고 말이다. 난 사실 울 엄마의 영원한 적이었다.
웬쑤도 그런 철천지 웬쑤 덩어리가 없었다.
울 엄마의 쏙을 새까맣다 못해 갈갈히 찢어 놓으질
않았는가?
내가 근 60평생을 살아 오는 동안 어머님의 맘을
편히 해드린적이 과연 있었는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향길을 다녀오지 않구서 그냥
가버리시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이상의 비극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10월 말경으로 날을 잡았고
오늘 드디어 고향가는 여행을 떠나오게 된 것이다.
분명 앞에서 밝혓듯이 울 엄마의 고향은 따뜻한 남쪽이다.
전라도 고흥땅이다.
울 엄마의 친정이 고흥이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조상
선조 대대로 살아온 친가 역시 고흥이다.
울 엄마는 그동안 막내 딸을 몇번 봤지만 경상도 대구
땅으로 시집가서 살고잇는 부족한 딸내미를 잘
거두어주신 사돈님을 찾아뵙고 마지막 안부 인사차 들려
막내 사위
얼굴도 보고 싶다면서 그길을 택하셧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겸사겸사하니 대구까지 첨타보는 KTX로 가서
하루 이틀 쉬엿다가 대구에서 전라도 고흥까지
시외뻐스를 이용 하기로 한것이다.
울 엄마의 머리속에는 그 옛날 철없이
뛰놀던 마을 뒷동산하며 바지락, 조개,꼬막 등을 잡던
바닷가 풍경들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가시겟지 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동대구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그때 개찰구 옆에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채
우리 쪽으로 닥아오는
한 중년의 여인네가 있었다.
그여자는 반가웁다는 듯이 손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여동생이자
울 엄마가 애지 중지 키운 바로 대구 막내딸 이었다.
그 여동생과 나는 쪼글 쪼글한 어머님의 두손을
꼬옥 쥐고 오랫동안 만지고 있었다.
동대구 역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어머님,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 해요.
내앞에 서있는 여동생의 예쁜 눈에서
작은 물방울이 번지는걸
난
볼수가 있었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여인과의
기차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막을 내린다.- 끝 -
(지금까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한 기차여행 이야기를
쭈욱 지켜봐 주신 님들에게
무한한 찬사와 아울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상으로 "서울을 떠나면서,,,"
기행문의 대단원을 마치도록 하겟습니다.
-사~랑~의 메신저; 유 제 하 씀)
첫댓글 아름다운 여인과의 기차여행 저도 잘 했습니다...이부를 기대 하면서.....긴 글 애쓰셨습니다.......^*^
아름다운 여인과의 기차여행에 저도 함께하는 맘으로 잘 봤습니다 ~~
잘...보고갑니다. ^*^
최종회까지 잘보고갑니다..어머님을위한 자식의배려 따듯한 마음을 보고 잠시 눈물이 찔끔합니다..유재하님도 건강하세요..
설향님, 하트킴님, 하늘타리님 그리고 그리움하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그은 60년 생애를 살았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식의 도리, 어머님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갈기갈기 찢어져버린 어머님의 가슴팍을 그 무엇으로 보답하오리까요. 쪼글아진 손마듸를 꽉잡고 다녀온 고향길의 기차여행글, 끝까지 읽어주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