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를 떠날때 기억이 생생하다
결혼을 앞두고 직장동료와 이별을하면서 난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앞으로 이렇게 멋진(많이 배운, 즉 가방끈이 긴) 사람들과의
한데묶여진 공동의식을 느끼며 살아갈일은 없을것이라고 그래서 더많이 서운했다
결혼과 동시에 모든것이 끝날테니.....
2. 그런데 우연찮게 결혼후 오래토록 공부를해온 컴퓨터와 관련해서 금호석유에 계약직으로
3년간 근무를 하게되었다.
그곳에서 나의 명칭은 캐드캠 전문가? 첨엔 이말이 이상했는데 ㅎ 암튼그랬다
내파트너는 잘생긴 외모의 하과장. 그와 둘이서 울산대앞 분위기있는칵테일바에서
서로 신세한탄도 많이했다. 그리고 주변 젊은 총각사원들은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가끔 우리집앞으로 술한잔 하자며 찾아오는 일도있었고 결혼할 신부를 선보인다며
나에게 인사시키기도했다
애초에 계약했던 기간보다 연장에 연장을 더해 오랜시간 근무하다 이곳을 떠나면서
난 속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현대를 떠날때 그맘보다 더한 아쉬움들이 나를 괴롭혔다
대공원앞 야외 야구장에서 돈을넣고 야구벳을 휘두르며 진사람이 술내기를했고
우리집앞 삼겹살집에서 떼를모아 찾아온 총각사원들과의 소주잔을 기울이든 그시간들
다시는 나에게 이런시간이 없을것같은 미련.....
난 술만은? 잘못한다
송별식 자리에서 아쉬운맘에 빈속에 소주 세잔을 마시고 2박3일 들어누었다.
3. 금호석유를 그만두고 일주일가량 씻지도않고 폭탄맞은 머리꼴을하고
있는데 예전에 쪼매 알고있는분이 지금의 재향군인회에서 함께 근무해보잖다
눈이 번쩍 떠였다
인금수준이며 근무시간은 중요하지않다
이곳은 봉사단체로 임금으로 내능력을 측정한다면 바보똥개다
난 일정한 근무시간이없다 내바쁜일이 우선이다시피 시간적으로 자유롭다
물론 해야될일양도 만만찮지만 뒤로미뤘어도 결코안되고 그렇게하지도않는다
이곳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적 여유덕분에 내모교 중학교 카페지기도 3년간했다
우리중학교에서 안나경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단다. 그야말로 원도한도없이
많의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지난주 목요일 옥동가족문화센타에서 행사가있었는데 울주국회의원이 내빈으로왔다
축사가 10분을 넘어간다. 점심을 먹으면서 의원님 축사넘길어요.
차가운 의자에 앉자있을라카이 궁디 다 얼었심더 했더니,
그래 우리 나갱이가 길다면 줄여야지한다.
곁에있더 보훈지청장. 낑겨든다. 저번행사때 참석여부 늦게알려준다고
저 많이 혼났습니다. 무시버요 ㅎ
행사날아침 어머님께 문화센터에 오시어 점심드리라고 했는데
마침 대공원 수영장에 어머님이 수영을 다니신다
기다렸는데 안오셨다
울주12개 읍면별 점심을 준비해왔는데 그야말로 산해진미다
서생,온산바닷가엔는 회를 준비하고, 두동두서언양은 소고기
삼동은 고디탕, 내고향 상북은 제주에서 직송한 칼치찌게로
난행사때문에 뛰어다닌다고 점심도 옳게 못먹었지만
나중에 본부석에 내먹어라고 가져다논 음식이 그야말로 산더미다
이곳에 7여년 근무했더니 회원들이 내가 어른과 함께 살고있는걸 알고는
일부러 좋은음식은 어른가져다주라고 챙겨준다
회의라도 있는 날이면 미나리 버섯 나물 검정미닐에 담아다 안긴다
난 어제 현대호텔에서 예전 기계공장에 근무하던 송희언니를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순득이랑 영욱사장님도 함께
그리고 꿈속에서나마 배회했던 예전근무지를 견학하는 행운도,
다시 오지 않을것같은 인연은 또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기도하고
또 그인연을 곱씹을 기회도온다 물론 착하게살면 ㅎ
여우님 정말 고마워요
저맘 아시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