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영혼의 프로제리아병
누구나 늙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했던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땅끝까지 신하들을 보내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젊고 탄탄한 몸에 시간의 자국을 남기는 육체의 노화는 과학 힘으로 조금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노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의 노화입니다.
성장이 멈추는 병
프로제리아 (progeria)라는 불치의 희귀병이 있습니다. 길포드증후군(Gilfordn Syndrome) 이라고도 알려진 이 병은 아이들에게만 걸리는 병으로 조로증 이라고 불립니다. 조로증은 출생하여 잘 자라다가 성장이 멈추는 병인데, 이상한 것은 성장이 멈추는 것에 반해 세포조직이 정상인보다 10배 빨리 늙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주로 생후 2개월에서 3년 사이에 성장이 멈추고 노화현상이 점점 가속화되어, 체구 왜소증, 탈모, 피부주름, 동맥경화, 노쇠 현상 등이 나타나며, 나이가 어려도 모습이나 행동이 노인같이 됩니다. 이 병에 걸린 어린이들은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80<90세 노인의 생물학적 노화과정을 다 겪고 죽습니다. 이 질병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며, 평균수명은 15세 전후로 10세를 조금 넘기거나 20세 전에는 반드시 죽는 슬픈 병입니다.
얼마 전에 조로증에 걸렸다가 죽은 캐나다의 소녀 에쉴리 헤기의 죽음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는데, 그녀는 조로증에 걸린 사람 중 최장수의 나이인 18세까지 살았습니다. 죽기 전에 찍은 에쉴리의 모습은 18세의 나이지만 몸은 6세 정도로 작고, 머리는 다 빠져 없고,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덮여 있는 80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장을 멈춘 채 급격한 노화현상으로 죽어간 에쉴리의 삶의 슬픈 종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영혼도 성장이 멈추는 병에 걸릴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탄생은 했지만 자라기를 멈춘 사람, 성장 도중에 갑자기 성장을 멈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프로제리아 병에 걸리면, 육체적인 조로증과 똑같이 성장이 멈출 뿐만 아니라 영적인 노화현상을 나타냅니다. 노화현상이란 세포가 살아서 분열하고, 변화하며, 자라는 성장을 정지한, 세포가 죽어가는 현상입니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고, 변화를 그만두었다는 것은 도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노화현상도 생명의 능력이 영혼 속에서 역사 하지 못한 채 영혼이 영적인 죽음과 사멸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되어감과 됨
우리는 becoming 이지 being 이 아닙니다. 우리는 되어감 이지 다 된 존재이거나 됨 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야 함에도, 됨 의 완성을 이루고 싶은 욕심과 교만에 빠진 나머지, 자꾸 자신의 처지가 becoming임을 잊고 being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한 번의 굴복과 한 번의 포기와 한 번의 받아들임에 만족한 채, 자라기를 멈추고 중간 정거장에 마냥 머뭅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항상 현재진행형입니다. 중단이 없는 자아 포기의 길이며, 끝마침이 없는 버림의 길입니다. 전능하신 토기장이의 손에 빚어지기 위해 다함 없이 나를 맡기는 길입니다. 돌아가는 굽이마다 도사리고 있는, 올라가는 계단마다 거침이 되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우상들을 버리며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대로 중단 없는 승리 연속의 길이 되어야 하는 삶입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도중에 멈추면 안 됩니다.
정거장이 너무 길면 안 됩니다. 때로 다리가 너무 아파 잠깐 쉴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인의 길은 늘 그렇게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 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말처럼...
마지막에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 십사만 사천의 특성도 되어감 의 과정을 철저히 경험하는 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경험도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노화
자라기를 너무 오래 멈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영적 노화입니다.
영적 성장을 멈출 때, 영혼의 노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노화현상은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자라기를 멈춘 사람들은 자신을 보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쳐다봅니다. 정거장에 머물러 앉아 있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춘 사람들에게 한눈파는 일은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되어감 의 본분을 잃어버린 사람의 눈에, 다른 사람 눈에 들어 있는 티가 들보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번의 받아들임(영접)이, 한 번의 깨달음이, 한 번의 동의가, 됨 을 만든다고 착각하는 것이 영적 노화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한 번의 받아들임이 수십 번의 받아들임이 되어야 하고, 한 번의 깨달음이 수백 번의 깨달음이 되어야 하고, 수천 번의 굴복과 동의가 반복되어야, 영원한 생명이 우리 영혼의 세포 속에서 활성화되어 영적으로 계속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라나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노화되어 도태되지 않고,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자라나게 됩니다.
텔로미어와 텔로메라아제
세포의 노화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한 레오날드 헤이플릭 박사는 1961년, 생물에 세포의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고, 세포분열이 다 한 후 세포가 노화해 죽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 후에 발견된 것이 바로 노화의 비밀인 텔로미어 (telomere)인데,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UCSF)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 존스홉킨스 의대 캐롤 그리더 교수, 그리고 하버드 의대 잭 조스탁 교수 세 사람이 텔로미어를 통해서 세포의 노화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2009년 노벨 생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화의 비밀인 텔로미어 는 세포 염색체의 말단에 있는 DNA의 조각들로서, 세포가 분열할 때 세포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는 염색체의 끝 부분을 잘 보호해 주며, 염색체가 분해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런데 세포가 계속 분열하면서 텔로미어 DNA가 짧아지고 소실되면 세포가 노화되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또 이 짧아지고 소실되는 텔로미어의 DNA를 복구하는 효소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텔로메라아제(telomerase)라고 합니다. 세포가 분열해도 이 효소가 텔로미어를 보충해주고 그 길이를 유지해주면 세포는 계속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활성화된 텔로메라아제가 세포분열 도중에 상처 입었거나 떨어져 나간 표피세포를 보충해주기 때문이지요.
성장통
자라는 것은, 버리고, 없어지고, 잘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장통을 수반합니다. 마치 세포 분열을 할 때에 텔로미어가 잘라지고, 없어지고, 짧아지듯이, 영적인 성장 도중에는 많은 고통과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자라가다가 아픈 일을 만나도, 마치 텔로메라아제처럼 그 모든 성장의 아픔을 치료하고, 보충하고, 유지해주는 아름다운 효소 역할을 해주시는 생명의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한 번의 성장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커다란 성장통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해도 우리는 끝없이 자라나야 합니다.
한 번 머무는 정거장이 너무 길면 안 됩니다.
너무 오래 쉬면 다시 일어나기 싫어지니까요.
오늘, 우리 한 번 조용히 스스로 키를 재보면 어떨까요?
얼마나 자랐는지... 다른 사람의 키 말고 우리의 키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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