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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 권태호 음악관 최근 문 열어.
현대음악의 선구자로 작곡가이자 성악가인 소천(笑泉) 권태호(權泰浩) 선생을 재조명하고 어린이를 위한 창작공간으로 활용될 안동지역 최초의 음악관이 최근 개관했다.
안동시 관광단지로(성곡동) 안동문화관광단지내 연건평 1,527평방m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문을 연 소천 권태호 음악관은 다목적 강당, 연습실, 전시실, 교육실 등의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다.
소천 권태호 선생은 1903년 9월 16일 안동시 법상동 (법석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선교사 인로절(R.L.Winn)의 부인한테 다년간 서양음악을 배우고 익혔으며 안동교회에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는 20세 되던 해에 경북 청송의 윤옥선(尹玉璇)과 결혼하였다. 21∼24세 동안 그는 일본의 도쿄(東京)에서 고학하며 한국인 최초로 니혼(日本)음악학교에 합격하였으며 25세에 대구와 서울에서 한국인 최초의 국내 독창회를 개최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독일가곡을 최초로 소개하였는데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당시 23세)가 찬조출연(첼로연주) 하였다. 그의 나이 35세까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독창회를 개최하였고 특히 27세에 개최한 도쿄 청년회관에서의 독창회는 한국인 최초의 무대로 그 무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일본의 음악잡지에서 '입에서 불이 나왔다'라고 평해질 만큼 명테너로 평가 받았다. 36세에 모교 니혼음악학교의 교수로 초빙 받아 다시 도일(渡日)하였고 41세에 한국으로 귀국한 후 42∼46세에 광복 이후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음악학원'을 개설하고 <국민가요집>을 발간하였다. 49∼63세에 국민개창운동을 전개하고 64∼68세에 안동으로 귀향하여 「권태호음악연구소」를 개설하였다. 1972년 2월 29일 그의 나이 69세에 안동시 도산면 선양리에서 영면하였다.
그가 작곡한 곡으로는 동요인 '봄나들이', '조선아기노래'와 '조선아들행진곡', '승리의 노래' 등의 군가를 작곡하였으며 그 외에 대구삼덕초등교를 비롯하여 안지, 대봉, 신암, 안동중, 대구여중, 안동농고, 대구고, 능인고, 경명여고의 교가와 가곡 등 114곡을 작곡하여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 음악관 김유리 공연기획실장은 "시민을 위해 이곳에서 많은 음악회를 열어야 하는데 예산이 없고 직원도 관장과 저 혼자 뿐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소천 권태호 음악관 입구.
최근 문을 연 소천 권태호 음악관 건물.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권태호 음악관.
음악가 권태호 선생 상(像).
소천 권태호 선생이 평소 즐겨 사용하던 피아노.
강당.
<청춘> 음악회를 권태호음악관에서 개최한다는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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