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성 광주시 근처에 사시는 바라바라 자매님께서 지난 해 잠시
대련 성당을 방문하셨다가 알게 되서 메일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깊은 신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허락을 얻어서 카페에 올려 함께 나눕니다.
신부님, 영명축일을 축하합니다
이 멀리에서 마음으로 축하 꽃다발을 드립니다
신부님, 성당 건축을 위한 부지는 해결 되셨나요?
외국인들의 사제 활동이 어느정도 제한적인 이나라에서 사목하시는데 여러모로 순탄치만 않으시니 많이 피곤하실겁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힘도 어떤 누구도 막아낼 수 없는 영원히 우리의 빽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과 천상어머니께서 보살피시며 지켜주시고 계심으로 우리에겐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것을 포기하시고 오직 당신만을 선택하여 우리 이 양무리들이 탈선하지 않토록 당신께로 이끄시는 사제들을 제일 우선으로 아끼시며 보호하시고 사랑하실겁니다. 사제들에게 지혜를 내리시고 힘과 용기를 주실거라고 믿습니다. 신부님께서 사목하시면서 많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저도 기도로 응원을 해요.
이 지방엔 성당이 없어요 성당가는 날은 광주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 네시반에 시작 하는 토요일입니다. 이날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심정으로 집을 나섭니다.차를 타고 갔다 왔다 왕복 네시간 그동안 성모님 품안에서 묵주알을 굴리지요. 집에 도착하면 저녁 일곱시가 넘었네요. 그런데 몸은 조금도 지치지도 힘들지도 않네요 마냥 기쁘고 감사 하네요. 기분이 너무도 좋은겁니다 에수님의 식탁에 초대받고 돌아 왔느데 안 그럴수야 없겠지요.
신부님 저의 하루하루가 주님의 은총안에서 엮어가는 삶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계시며 그 뜻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려고 합니다.
신부님 매일 미사는 없더라도 일주일에 두세번 만이라도 미사를 볼수 있어도 좋을텐데요.성당이 있고 신부님을 모시고 사는 자매님들은 정말 행복 하겠지요. 저는 너무도 부럽답니다.신부님, 저의 고향의 그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성당이 떠 오릅니다.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 되었다고 사방이 해방을 맞이한 축제의 분위기었는데 당시 교회는 불의에 덥친 수난으로 슬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어요. 성당이 방화로 불타 잿더미로 변화였고 본당
독일 신부님이 사제관 정원에서 쏘련군에의해 순교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한 그 당시 비참했던 상황들 어제 일 같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슬픈일들을 잊을수도 없군요.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또다른 박해로 신앙의 자유를 누릴수가 없다면 그 해방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불에탄 성당이 다시 신축되어 고향의 성당 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그 날이 언제일까 기다리고 있지만 이기다림이 막연한 것으 아니예요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과 연민의 아버지께서 최소한 가깝도록 그날 그 시간을 점지하셨음을 믿습니다. 신부님, 할머니가 되면서 시간의 흐름이 너무도 빨라 그 속도가 고속 렬차로 바뀐것 같네요.
아무튼 기다리고 기다리는 종착점( 진정으로 맞는 해방 되는 날)에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세월도 빨리 갔으면도 하네요.
신부님, 할머니가 쓴 이메일이어서 잘못된 점이 있더러도 이해하여 주세요 오늘 이만 할까 합니다. 신부님, 항상 건강하세요.
김 바르바라
첫댓글 "일주일에 두 세번 만이라도 미시가 있었으면..."하시는 간절함에 깊은 신심을 느끼게됩니다,
저희 대련한인성당교우들은 매일 미사의 은총과 축복속에서 하루하루 주님의 품에서 살고 있습니다,
9월 순교자의 달을 맞이하여 소련군의 총에맞아 순교하신 독일신부님과 이 땅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아직 어둠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언제나 갈수 있는 가까운곳에 있는 우리들의 성당이 있음에도 .............. 우린 무얼하고 있는지 ..오늘도 할머니는 발바닥신자 입슬 신자들을 안타까워 하시며..나이는 할머니 이시지만 오늘도 거울을 보시며 맘이 많이 젊어지신다고 .. 전화하시며 대련의 신자들에게 안부전해주시라고 오늘도 기도하신답니다.... 늘 건강하세요 바르바라어머님..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