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중앙 부분이 움푹 파였다. 뒤집어도 똑같고, 양쪽 가장자리, 혹은 위아래로 한 바퀴 돌다 지쳤다.
‘라자다’에서 두툼한 매트를 구매했는데 속았다. 반을 접어 움푹 파인 곳에 넣었다.
그 위에 매트 하나를 놓았는데 구름 위에 자는 것 같다.
한국으로 철수하는 지인에게 침대를 샀다. 오늘 가지러 간다.
지인 스타렉스에 들어갈지 모르겠다. 둘둘 말 수 있을까? 안 되면 용달차 불러야 한다.
잠이 보약이라 하는데, 6시간 이상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새벽기도형 인간이 되었다.
아프면 새벽기도 갈 시간이다.
누우면 코 골고, 그 소리에 놀라 꿈꾸듯 혼수상태에 빠진다.
새벽기도 끝날쯤 우리 집 강아지 짖는다.
밤새 참은 대소변 멀리 보내줘야 하는데 주인 놈 빨리 나오라
앞발을 들어 현관문 때린다.
계속 두면 문짝 나간다.
신선한 아침 바람과 맑은 하늘에
우리 강아지 사뿐사뿐 걸어가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흥겨운 찬양에
이런 사랑 과분하다.
교회 용지 앞에 머물러 한 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15년 대지를 사고
지난 5월부터 시작한 건축 설계가 마무리되고 허가받으면 시공에 들어간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사택에서 예배가 불편해도 개의치 않은 것도 곧 성전이 건축되기 때문이며,
완공하고 까비떼, 리빠에서 오시는 선교사님들 세미나 장소로 딱 맞고,
다음에 현지인 청소년을 위한 실내 코트도 만들고, 정말 기분이 좋다.
잘 짓고 잘 섬기고 싶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다면...
급 실망할 것 같다.
장기화된 불편, 희망 없는 미래, 새신자 없는 한계에 좌절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위한 척하지만, 자기 편안함이다.
편안함 속에 플러스알파를 붙인 것이다.
그것 없어도 가능해야 진짜다.
건물 없이 부흥했던 초대교회,
사람 살리고 제자 삼고,
가정교회를 이루었다.
편안한 오후를 보내던 다윗에 눈에 비친
초라한 텐트 안에 법궤는 성전 건축의 열망을 불태웠다.
하지만 하나님은 벼랑 끝에 내몰린 백성을 보게 하신다.
성전 건축은 과정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무너진다.
건물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낡은 침대 버려야 하듯,
건물 의존하려는 마음 버리고 영혼을 보자.
영혼을 위해 기도해도 시간이 모자라고,
영혼 구원 부담에 입술이 떨린다.
성전 건축 너머 벼랑 끝 영혼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도 품고 살아가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