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이 혼자서/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한국 대표 명시 1 (55쪽), 빛샘]===
주요한(朱耀翰)
출생 1900년 10월 14일
사망 1979년 11월 17일
〈불놀이〉를 지어 한국근대시 형성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능성. 필명은 벌꽃·주락양(朱落陽). 호는 송아(頌兒).
목사인 아버지 공삼(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은 그의 아우이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선교목사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등부를 졸업했다.
중학시절에 회람잡지 〈사케비〉를 펴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도쿄 제1고등학교[東京第一高等學校]에 다니면서 1919년 2월 김동인·전영택 등과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펴냈고, 그해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1925년 후장대학[滬江大學]을 졸업했다. 1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1926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으며, 1929년 광주학생사건 때 잠시 투옥된 적도 있었다.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전무를 역임하고, 1935년부터 실업계에 입문하여 화신상회 이사로 근무했다. 8·15해방이 되자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민주당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1960년 재선되었으며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1965~73년 대한일보사 회장, 1968년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안장되어 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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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은 조금씩 끊임없이 흐릅니다.
깊은 산골에서 흐르는 샘물은
주변이 고요하므로
그 소리조차 맑고 크게 들립니다.
아무리 가뭄이 오래되어도
변함없이 흐르는 샘물.
강추위가 몰아쳐도
얼지 않는 샘물입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꾸준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옹달샘"이라는 동요를 불렀던 시골 초등학교 시절이 소록소록 납니다.
독일민요에다 윤석중 님께서 작사하신 노래였지요.
옹달샘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긴 연휴가 오늘로 끝이군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이 진실이었습니다.
길거나 짧거나....
=적토마 올림=
첫댓글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서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