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면서도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뿌듯한, 복잡한 느낌으로 보낸 하루였다.
일요일 군향우회 등반단합대회 결과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말은 등반대회이지만 그냥 단합대회라 해야 옳다.
그래서 대회주관도 산악회가 아니라 향우회가 한다.
산을 조금 올라가다 큰 공터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먹고 마시다 내려오고
읍/면별로 순위를 매기는데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참가자의 머릿수다.
우리 면은 우승을 차지한 창평에 이어 수북과 함께 준우승.
상금으로 10만원을 받았다.
사실 그 상금은 봉사 제 닭 잡아먹은 결과다.
군향우회에 찬조한 금액을 되돌려 받았을 뿐이니까.
그래도 찬조는 하고 받지 못한 곳에 비하면 본전은 한 셈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하여 산 중턱까지 운반하고 배식에 이르기까지 도우미를 자임한 후배들의 노고를 풀어주려고
도봉산역 가까운 노래방에서 뒤풀이를 했다.
한껏 기분을 풀고 헤어지려는데, 후배들이 속이나 풀고 가라며 붙잡아 인근 음식점에 들어가 다시 술판을 벌였고
어느 후배가 가져 온 가용주를 마셔대다 그만 취했었나 보다.
오후 여섯 시쯤 그들과 헤어져 7호선 도봉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가 강변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후배들이 뭔가를 챙겨준 것 같은데 집에 들어올 때는 배낭 외에는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으니까.
어제 아침까지도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는데, 찍어 온 사진을 정리하다가 짚히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저께 마지막까지 자리를 함께 한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봤더니 내가 식당에서 그 물건을 들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아래 사진 왼쪽 '재경 대전면향우회' 깃발이다.
내 딴엔 총무인 내가 잘 챙긴다고 가지고 온 모양인데 어디에 두었단 말인가.
우선 지하철 유실물 센터 연락처를 알아봤다.
그런데 수도권 지하철의 운영주체가 복잡해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코레일,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인천지하철공사 넷으로 나뉘는데다,
또 노선별로 유실물을 안내해 주는 역이 따로 있었으니까.
우여곡절끝에 7호선은 태릉입구역에 알아보면 되어서 전화를 하는데
두 대의 전화가 30분이상을 연속으로 돌려도 통화중이었다.
그래서 역무실로 전화하여 혹시 고장난 것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모르겠다며 가서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바로 통화가 된다.
아마 식사중에 그냥 수화기를 올려 놓았을 지 모르지만, 응대는 아주 친절했다.
용건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대답을 준다.
그 물건이 도봉산역 역무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그래서 도봉산역으로 전화하여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
내 주소와 연락처까지 다 받아 적더니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단다.
택배회사에서 간간히 오긴 하지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언뜻 도봉산역 가까이 사는 친구가 생각 나 그 친구에게
좀 찾아서 보관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퇴근 길에 찾아 왔다는 연락까지 해 왔다.
물건이나 잊어 먹는 칠칠맞은 내 자신이 한심하고
하룻 밤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 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성가신 청을 선뜻 들어 준 친구가 있어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