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생명의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두를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흔들거리며,비틀거리며 살다가 태어난 모성으로 돌아간다는 ...
어딘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기다림과 가슴설레는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쁨으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빅이슈'는 환하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과 당당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준 소중한 선물입니다."
장대비가 멈추고 다소 서늘한 바람이 불던 4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 굴다리. '빅판('빅이슈' 잡지 판매원의 줄임말)'을 상징하는 빨간색 조끼를 입은 김수원(51)씨가 빗자루를 들고 주위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원인을 알 수 없는 큰병을 앓은 탓에 서 있기 조차 불편할 정도로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김씨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내 청소를 마쳤다.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준 곳인데 제가 청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깨끗해진 거리를 걷는 시민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김씨는 친형 밑에서 10년동안 한복집 운영보조로 일하다가 형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와 2년 가까이 사우나에서 노숙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몸이 불편하다보니 사우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잃었다고 했다. 고단한 몸을 뉘여 한 숨 돌리기라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 발소리에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던 노숙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주거지가 불규칙하고 굶는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영양상태마저 좋지 않아 김씨의 몸은 날로 쇠약해졌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형이 김씨에게 빅판 자리를 권했다. 당시 김씨는 노숙인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 용기를 내 빅판이 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연세대 앞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처음으로 판매에 나설 때 불편한 몸과 어눌한 말투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도 회복하고 자립의지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빅판이 된지도 어느덧 1년. 그 사이 김씨에게 자립을 위한 적지 않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처음 빅판이 됐을 때 두 발을 뻗으면 벽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고시원 방에서 시작했지만 지난달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방 둘에 거실과 부엌까지 갖춘 다세대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주택공사의 '주거 취약계층 지원 매입임대사업'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한 것이다. 100만원 보증금을 내고 매달 20만원가량의 월세를 내야 하지만 돈을 모으면 보증금 비율을 높여 월세를 낮출 수 있는 조건이다. 김씨에게는 진정한 자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김씨는 "처음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해냈다는 자긍심으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며 "잠을 자기 전 자립을 위해 내일도 열심히 뛰겠다고 마음을 수십번씩 다잡는다"고 전했다.
거리에서 빅이슈를 들고 판매를 하는 것은 안면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노숙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김씨는 장시간 서서 판매하는 것도 힘들지만 노숙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에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자립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장애가 있어 휘청거리거나 넘어질 때 마다 시민들은 내가 술을 마셨다고 오해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럴수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와 더 열심히 판매하다 보니 이제는 단골고객도 생기고 응원하는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며 "그럴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씨의 고군분투(?)는 노숙인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학생 임현주(24·여)씨는 "노숙인들은 만날 술에 취해있어 거칠고 더럽다고 생각했었는데 편견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며 "몸이 불편한데도 자립 의지를 가지고 매일 목청껏 소리내며 잡지를 판매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저씨를 '춤추는 빅판'이라고 부른다"며 "아침이나 낮에 보이지 않으면 혹시 무슨일이 생겼나 걱정할 정도 연대 다니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 유명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서정훈(34)씨는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자립의지가 높은 노숙인들에게 동정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불편한 몸짓을 처음 본 시민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고 오해를 해 속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민들이 늘어 실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한다고 했다.
김씨는 "시민들이 불편한 몸짓마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난 4월부터 발레 재능기부자에게 규치적으로 배운 발레가 아무래도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훗날 영구아파트에 살면서 작은 문구점을 개업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씨가 시민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행복 전도사 김수원입니다. 행복한 잡지, 희망의 잡지 빅이슈…."
(인터넷 뉴스에서 퍼온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