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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양남면의 주상절리대 장노출 사진. 우리는 신생대의 시간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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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다가오니 가슴 설레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구름과 안개 속의 야생화인 ‘몽유운무화’를 만날 확률이 좀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로운 야생화는 피어나니 비 내리는 산에 오르고 또 오르지만 실패를 거듭할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0.1%도 되지 않는 확률이었으니 그리 낙담할 일만도 아니었다.
지리산 남부능선의 형제봉에 올라 조금 더 짙은 운무를 기다리다 포기할 무렵이었다. 숲속에서 풀밭으로 나오다 내 발목을 스치는 애기 산토끼 한 마리를 만났다. 어미를 잃었는지 내 주먹 크기의 어린 녀석이 나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후다닥 도망을 치고, 가만히 있으면 저도 경계를 풀고 풀밭에 몸을 살짝 숨긴 채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나 귀여워 데려다 키울까 하는 욕심도 생겼지만, 잠시 잡았다가 몸부림치는 녀석을 인증 샷만 찍고는 보내 주었다. 재빨리 뛰어가는 모습을 담으려 나도 따라 뛰어보지만 어린 녀석이 생각보다 빨라 해발 1,100m 고지에서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산길을 가다 보면 이따금 마주치는 멧돼지 일가들과 홀로 유유히 임도를 막아서다 슬그머니 돌아서는 고라니들은 자주 보았지만 애기 산토끼는 처음이었다. 몽유운무화 시리즈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마치 산신령이 둔갑술로 나타난 것처럼 애기 산토끼 한 마리가 장마철의 산빛을 환하게 했다.
하산 길에 비도 그쳐 심심계곡에 들어가 나만의 폭포 아래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산수국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고운 최치원 선생처럼 저잣거리의 온갖 잡소리들을 쏟아지는 폭포의 물소리로 지워버렸다. 산수국이 갸우뚱 고개를 내미는 이 폭포가 나의 세이암[洗(덧말:세)耳(덧말:이)岩(덧말:암)]인 된 셈이다. 산수국과 폭포의 열애를 담아보려 애를 썼지만 뭔가 조금은 부족하다. 이른 새벽에 다시 오라는 즐거운 명령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이맘때에는 산수국의 몽유운무화를 만났다. 비가 오는 새벽에 다시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 따지고 보면 세상천지 그립지 않은 곳이 없다.
시인이 사진 찍는 게 이상한 일인가!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먹구름도 물러가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감미롭고 낯익은 멜로디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그 순간 여수에 가보고 싶었다. 지난 3월에 나의 첫 개인사진전을 열었던 여수의 바다가 궁금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주었던 몽돌밭, 일출명소로 유명한 여수 무슬목에 가보고 싶었다.
남도순회 사진전은 울산의 정자해수욕장의 인문학서재 ‘몽돌’에서 열고 있지만 울산 동해바다, 거제도 몽돌해안도 너무 머니 후다닥 여수 돌산으로 달려간 것이다. 물때는 새벽 1시30분쯤이니 여수 곳곳을 어슬렁거리다 해안통 갤러리에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이순신광장을 둘러보았다. 광장에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에 맞춰 에어로빅댄스로 몸을 푸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물녘의 장노출 사진으로 찍어 보니 춤추는 사람의 머리가 없거나 시간의 궤적에 따라 온몸이 풀어지며 물처럼 흘러갔다. 삶은 고정된 물건이나 규정된 정신이 아니라 무정처의 흔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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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홀로 자주 찾아가는 계곡의 산수국과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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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대교 야경을 찍고 무슬포 밤바다에 가보았으나 날은 흐리고 달빛도 없는데다 파도마저 약해 마음에 드는 몽돌밭 장노출 사진은 결국 허탕이었다. 사실 몽돌 사진은 일출 전후에 찍어야 하는데 물때가 맞지 않으니 달빛으로 찍어보려 했었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훌훌 벗는 등 별짓을 다해 봤지만, 억지 춘향식으로는 역시 무얼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니 여수보다 거제도의 학동 몽돌이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노랫말을 흥얼거리면서도 발자국 하나,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새벽 4시까지 여수 밤바다의 몽돌 밭을 서성이다 집에 돌아오니 날이 훤하게 밝아왔다. 모처럼 야영의 노숙이 아니라 꼴딱 밤을 지새웠는데도 온몸이 가뿐했다.
역시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자연 속에 동화될 때 가장 큰 위로를 받고, 자연 속에서 온갖 치장의 옷을 훌훌 벗을 때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따금 주위 사람들 중 일부는 시인이 자연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뒷말을 하기도 한다. 별로 개의치 않지만 “요상타, 야하다, 별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시인이 그림을 못 그려 사진이라도 찍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 지난 10년 동안 3만 리 순례길 위에서 죽다 살아나 3년 넘게 죽어라 사람이 아닌 야생화만을 찍다가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다보니 네 번의 남도순회 사진전시회까지 열고, 몽유운무화를 찍다가 “나도 꽃이다”며 자연 속에서 옷까지 훌훌 벗으니 “미친 놈, 드디어 맛이 갔네, 똘아이” 등 어쩌구저쩌구, 참 말도 많은 것 같다.
그리하여 최치원의 지리산 세이암 근처의 산수국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아직은 사람을 찍을 수 없어, 야생화에게는 미안하지만 날마다 하루에 1,000컷 이상을 찍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그 대상은 졸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의 ‘야생화 사부’ 김인호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50년 만에 <꽃 앞에 무릎을 꿇다>를 실천했다. 도보순례,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3만 리 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내 몸이 망가진 걸 보니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1주일 내내 야생화 한 송이 앞에 텐트를 치고 무릎 꿇고 바닥에 누워 날마다 1,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다가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 이 세상에 그 누가 1,000년 자생지의 야생화만큼 당당할 수 있을까. 그 자리 그대로 존재의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을까.
자연 앞에 옷을 벗지 못하면 과연 어디에서 벗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날마다 옷을 벗고 싶어 하면서 벗지 못하는 심사는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야생화는 그대로 알몸이 아닌가. 해도 달도 별도 날마다 알몸이 아닌가. 알몸이 아닌 야생화는 진짜 야생화일까, 조화일까. 정녕 외로운 산신령은 누더기 옷을 벗은 알몸이었을 것이다. 알몸을 벗어난 정신은 결국 위선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너무나 두꺼운,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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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철의 너덜지대에 물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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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경주 양남 주상절리대 찾아
그리하여 자연의 일부인 아주 사소한, 허접한, 비쩍 마른 내 몸의 일부를 허공에 띄우며, 발악하듯이 섬진강 위로 알몸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100번을 뛰어도 셀프 카메라의 기록은 단 한 장만 남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셀카의 달인 수준이 되었다. 산정의 구름 속에서 외쳐 보는 것이다.
“날자, 날자, 룸펜의 이상 시인처럼 골방에만 처박히지 말고 대자연의 아들딸이 되어 날자, 날아보자꾸나!”
장마철의 산정에는 자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먹구름이 밀려오고 산안개가 몰려왔다. 지리산에서만 사는 지리터리풀을 만나러 갔다가 어차피 올 것이라면, 더 짙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그런 운무를 기다렸다. 손을 내밀면 운무에 가려져 내 손가락이 보이지 않고,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잘리는 그런 산안개를 보며 생각해 봤다. 산 아래 바깥세상은 이미 날마다 암흑천지가 아닌가. 이 정도의 비바람과 운무는 차라리 행복한 절대고독!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하산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사람 사는 세상이 지옥도처럼 보였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만이 절망적이었다. 내가 너무 멀리 온 것일까 반문도 해보지만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라는 생각뿐, 나서 봤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뿐! 지리산 입산의 초심이나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리무중의 운무 속에서 야생화가 피듯이 세상 곳곳에 환한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 살아 있어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도 저 오랜 신생대의 시절까지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경주 양남면의 주상절리대에 다녀왔다. 울산의 사진전을 핑계삼아 부산 갤러리카페 ‘52’의 시인교실 벗들과 시노래 가수 박경하씨, 구룡포 시인 권선희씨, 김진숙 간사님과 더불어 조촐한 술판을 벌였다. 인문학서재 몽돌에서의 사진전 마무리 잔치를 끝내고, 아주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른 새벽에 주상절리대를 찾아갔다. 새벽 4시 동해안의 파도는 절정이었다.
여명 속에 슬슬 얼굴을 드러내는 ‘동해의 꽃’ 부채꼴 주상절리대. 말 그대로 신생대 말기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식으면서 한 송이 해국처럼 바닷가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 오래된 돌꽃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장노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인간의 시간은 저 부채꽃 돌기둥들의 시간 앞에서는 찰나가 아닌가.
누군가의 한 생애처럼 파도가 한 번씩 지나가며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 위에 또 다시 파도가 몰려오고, 장노출 90초의 사진과 25초의 사진 속에 마침내 파도는 안개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한겨울이 멀어 정면의 일출은 아니었지만 블루톤과 붉은 하늘빛이 잘 스며들었다. 신생대의 주상절리대를 바라보며 소리쳐 보았다. “내 생의 한 파도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피어라, 돌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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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철 산정에서 애기 산토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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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잠시 카메라를 놓고 내 청춘의 도시 대구로 갔다. 7월 25일까지 대구참여연대 주최, 인터넷신문 뉴스민 후원으로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극장 ‘55극장’에서 개인사진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세 번의 전시회와는 소회가 남달랐다. 나의 문학청년 시절의 방황과 객기가 곳곳에 서려 있는 대구, 그곳에서 오래된 친구들과 더불어 잔치 한 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대구의 NGO단체 기금마련에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 하고 내 어쭙잖은 사진을 내놓았다.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대구 전시는 몽유운무화 시리즈에 새로운 작품을 더 넣었다. 운무 속의 야생화만 선을 보이다, 새벽안개 속에 슬쩍 내 알몸도 끼워 넣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름하여 ‘몽유운무화-나도 꽃이다’를 선보였다. 액자도 다변화했다. A4 사이즈의 작은 사진 50점과 작은 사진에서 대형 사진까지 4가지 버전으로 작품 20점을 내놓았다.
태풍 몰아치는 지리산 오르며 반성하고 다짐
사진전을 핑계로 대구에서 이틀간 대취했다. 내 문학청년기의 꽃시절이었던 곳에서 늘 반갑고 그리운 선후배, 그리고 문인들과 어울려 장마철의 밤을 불콰하게 보냈다. 살다 보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분다. 자꾸 바람을 피하다 보면 갈 곳이 없고, 자꾸 비를 피하려고만 하면 단 한 방울의 물방울에도 공포감이 생길 뿐이다. 한 번 제대로 젖은 자는 더 이상 젖지 않는 법, ‘먹구름 우산’을 덮어쓴 채 애마를 타고 부산-대구-청도의 지방도를 다리고 달렸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토란잎 같은 먹구름 우산을 쓰고 산에 오르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친 듯이 달렸다. 덕분에 내 인생의 몽유운무화를 한 장씩 얻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10일(금) 저녁 7시, 소중한 대구의 자산이자 자랑인 독립영화전용관 55극장에서 시낭송, 노래, 노태맹 시인과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등의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대구 55극장의 밤은 고맙고, 눈물겹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30년 전의 시간이 태풍 ‘찬홈’처럼 몰려왔다고나 할까.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앉고, 끝내 극장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내 청년문학기의 대구, 그때 그 사람들과 밤새 통음을 하고, 너무나 반가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또 많은 신세를 지고 말았다.
지리산에 돌아와 달뜬 마음을 추스르며 태풍 찬홈이 몰아치는 산에 올랐다.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는 해발 700m의 너덜지대에도 물길이 열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곳에서 우비를 입은 몸이 다 젖도록 오래 머물다 왔다. 네 번의 사진전을 열며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남은 인생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리이타, 내게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삶은 못 살더라도 남에게 큰 해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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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 밤바다의 대표적 명소인 돌산대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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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사진전 열고 잠시 숨고르기
그리고 내친 김에 서울까지 다녀왔다. 7월 15일부터 열흘 동안 인사동 인덱스갤러리에서 ‘시인들의 사진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부안의 사진가 최경자 선생과 사진평론가 최건수 선생의 주선으로 우리나라 첫 번째의 ‘시인 사진전’이 열리게 됐다. 나의 야생화 사부인 <섬진강 편지>의 김인호 시인, 아버님이 사진관을 운영하신 충청권의 이강산 시인이자 소설가, 백년어서원을 운영하는 부산의 김수우 시인, 경북의 안상학 시인, 권선희 시인과 더불어 6인6색의 사진과 포토 포엠을 선보였다. 안상학 시인은 문청기 때부터 인연을 쌓아온 오래된 친구이고, 구룡포의 터줏대감 권선희 시인은 16년 전인가 지리산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에서 처음 만났다.
이 날의 오픈 행사에는 아주 멋진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 가수 이지상씨가 시인들과 더불어 멋진 시간을 공유했다. <스파시바, 시베리아>의 저자이자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무지개’의 선율과 목소리의 주인공, 이지상씨의 흔쾌한 동참이 너무나 고마웠다.
이왕 시작한 일, 올해 다섯 번의 사진전까지 잘 치르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갈 때가 왔다. 다시 생각해 봐도 시인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리 어색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서화에 능통했던 옛 어른들에 비하면 기계를 이용해 사진 찍는 일은 한참 하수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장마철이면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다시 운무 속의 산정에 오른다.
지리산 멧돼지
이원규
남원시 운봉읍 지리산 기슭에
정종개씨 산다 멧돼지에게 들이받혀
갈비뼈 세 대가 나갔지만
멧돼지들의 보모인 그에게서 배웠다
순종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순도 백퍼센트의 다이아가 깨지기 쉽듯이
새끼마저 물어 죽인다는 사실을
집돼지 어미를 둔 순도 칠십오의 그들은
새끼 잘 키우고 육질도 연하므로
하산한 모든 멧돼지는 혼혈이라는 사실을
함박눈 내리는 지리산의 밤
멧돼지 쓸개주를 마시다 한 수 배웠다
순결한 꽃은 어째서 일찍 시드는지
알코올 백의 술은 어째서 있을 수 없는지
오르가슴 백의 섹스는 어째서 복상사일 뿐인지
혼혈의 멧돼지처럼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보지만
순도 백의 혁명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순결한 야인을 꿈꾸지만
그는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란 것을
첫댓글 주상절리대 사진 안개가 아니라 파도이네요.
'한 번 제대로 젖은 자는 더 이상 젖지 않는 법'
산토끼 눈빛이 인상적이네요.
커피 한잔 하며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때 경주 주상절리 다녀 와서 그런지 느낌이 다르네요~
"누군가의 한 생애처럼 파도가 한 번씩
지나가며 흔적을 남기고...
그 위에 또 다시 파도가 밀려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