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백기완(白基琓) 선생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을 위해 싸운 거리의 투사였다.
1964년 한일회담과 유신반대 운동에 앞장을 섰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을 주도했다.
선생 작품 - 임을 위한 행진곡,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구라 세계
재야 운동가 백기완, 협객 방동규, 삼포로 가는 길의 황석영을, 조선의 3대 구라라고 한다.
백기완 구라
선생의 구라는 장엄한 백두산 같고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 같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 - 어떤 소설가의 찬사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선생의 일화
스물 한살 때였다. 어께들이 리어카 행상에게 자릿세를 뜯는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물어물어 찾아낸 것이, 스무 살 방동규였다.
그는 주먹세계에서 자신의 '나와바리(구역)'를 가진 두목급이었다.
듣자 하니 자네가 주먹 좀 쓴다고 하던데,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나?
뭐 그저! 삼십 명?
그러자 백구라가 똥께나 뀌는 방구라에게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방동규
피죽도 얻어먹지 못한 파리한 책상물림이! 한 주먹 감도 안 되는 놈이 어디서?
그때 백구라 일갈이 튀어나왔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삼천 명이나 삼만 명은 상대해야지, 겨우 삼십 명? 다시는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라!
동네 양아치에게 그렇게 했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히딩크도 만만한 구라가 아니었다.
조선 호랑이처럼 뛰어라!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이 한 가지만 당부했다. 선수들은 결국 일을 냈다.
히딩크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백기완 선생이라고 한다.
구라의 종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흘러간 유행가이고
봉이 김선달은 시치미 구라.
북청 물장수는 돈방석 구라
문성근의 부친 문익환 목사가 서울역장에게, ‘평양행 기차표를 내놔라!’ 불가능하지만 힘이 넘치는 구라
유흥준 청장 주선으로 문화제 안내원이 된 방동규 구라 (유튜브 참조)
황석영은 음담 반 패설 반, 거시기 구라
그는 평소에 200여 개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3분 이내에 좌중을 휘어잡는다.
등짝에 난 등창, 모가지에 난 연주창, 배때기에 난 복창, 뒤에 난 왕십리 창, 앞에 난 거시기 창. 전국적으로 욕창,
재채기, 콧물, 가래, 기침, 발열, 몸살, 오한이, 남의 집에 살림을 차리고 히히덕거린다.
몸을 뒤집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았다. 거시기 구라
대장부 사이에서 이런 구라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되었다.
애송시 ; 고향 구월산 과수원집의 머슴 할멈이 자주 읊었던, 작자미상의 ‘왱왱 찌꿍’
빈소에서
양희은 아침이슬을 불렀다.
이외의 인물도 보였다. 최재천 교수와 가수 전인권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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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NP-B-JOa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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