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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모색, 장미산 가는 길
어느 산에나 시간이 있으며, 그 시간에 산은 특히 아름답다. 그 시간은 한낮이 아니다. 한낮에
는 산이 빛에 아주 눌려 있다. 산의 시간은 아침 동틀 무렵과 저녁 땅거미 질 때다. 이 시간에
해는 산을 잠에서 깨우고 떠나간다. 햇살이 봉우리를 어루만질 때 산의 생동감을 무엇에 비기
랴! 또한 저녁에 해가 서쪽 산릉 뒤로 넘어갈 때 등산객의 마음은 스산하다. 주위가 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어둠이 대지를 덮는다. 어슴푸레한 하늘에 검은 봉우리가 나타나서 별들과 하나가
되어 첩첩 산 사이에 자기 비밀을 숨긴다.
――― 가스통 레뷔파, 『사람들의 산』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12월 13일(토), 맑음, 추운 날
▶ 산행인원 : 11명(영희언니, 다훤, 미소, 악수, 대간거사, 더산, 상고대, 신가이버, 해피,
승연, 메아리)
▶ 산행시간 : 9시간 12분
▶ 산행거리 : 도상 17.5㎞(1부 5.9㎞, 2부 11.6㎞)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두메 님 대차)
▶ 구간별 시간
06 : 33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53 –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桂村里) 들모고개, 1부 산행시작
09 : 26 – △799.4m봉
09 : 51 - △824.7m봉
10 : 37 - △798m봉
11 : 26 – 대교 마을 근처,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20 – 평창군 방림면 방림리(芳林里) 발안동 마을, 2부 산행시작
13 : 12 – 827m봉
13 : 57 – ┼자 갈림길 안부, 골미재, 억새밭
14 : 33 – 승두봉(僧頭峰, △1,013.6m)
14 : 54 – 경동광업소 규석광산 폐광터
15 : 14 – 조망 좋은 암봉
15 : 36 – 912m봉
16 : 20 – 947m봉
16 : 54 – 장미산(長美山, △978.2m)
17 : 30 – 게마을
18 : 05 –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介水里) 봉황교, 산행종료
1. 승두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메아리 대장, 승연, 더산, 상고대, 다훤, 해피, 신가이버, 미소, 대간거사, 악수
▶ △824.7m봉
給我一天 還千年. ‘나에게 하루를 주면 너에게 천년을 돌려주리라.’는 말이다. 출전은 모르겠
으나 중국 항주에서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이란 가무 쇼의 기치로 보았고, 보성 천봉산 아
래 대원사(大原寺) 절집 벽면에서 보았다. 우리 오지산행에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
다. 특히 오늘 같은 혹한의 겨울산행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계촌리 들모교로 계촌천을 건너고 가두둑 마을 가기 전 고갯마루가 오늘 1부 산행의 들머리인
데 지도에 잘못(?) 표시된 들모고개가 여기이리라. 추운 날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칼부림한다. 잰걸음 하여 산자락 농로 따라 오르고 빈 밭 지나 서둘러 산속에
든다. 생사면 잡목 숲 뚫는다. 발밑 낙엽 헤치려니 눈에 버무려져 미끄럽다.
명자 붙은 산이 없기도 하거니와 42번 국도와 계촌천 사이에 솟은 길지 않은 산줄기여서 등산
로가 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적이 있다 해도 신설에 덮였다. 한 피치 숨 가쁘게 올
라 쌍무덤 지나고 바로 능선마루다. 나무 끝 마구 훑는 바람이 소리 먼저 차갑다. 지레 수그리
고 걷는다. 느닷없이 산불감시초소와 맞닥뜨리고 지도 살피니 △799.4m봉이다. 삼각점은 판
독불능.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지나는 걸음에 산불감시초소 안을 들여다보니 세로로 쓰인 ‘急難之朋一個無’ 글귀가 눈에 띈
다.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 『명심보감(銘心寶鑑)』 ‘교우
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악우 간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보감에 이어지는 교우 몇
가지 덧붙인다.
酒食兄弟千個有 술이나 음식을 먹을 때는 형이니 아우니 하는 친구는 많으나
急難之朋一個無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
不結子花休要種 열매를 맺지 않은 꽃은 심지 말고
無義之朋不可交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
君子之交淡如水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小人之交甘若醴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단술과 같다
되똑하게 솟은 암봉이 나온다. 슬랩 오른쪽을 살짝 트래버스 하여 발자국계단으로 오른다. 암
봉 노송 사이로 보이는 오봉산이 설산이다. 이제 큰 오르내림은 없다. 사면 연신 기웃거리되,
‘더덕아 제발 보이지마라, 너 보이면 너 죽고 나 죽는다’ 하며 간다. △824.7m봉 가기 전 이장
한 공터에서 과메기 안주하여 탁주 입산주 분음한다.
얼근하여 봄날 기운으로 △824.7m봉을 대번에 오른다. 삼각점은 평창 408, 1989 복구. 산도
깨비란 분이 조그만 돌에 매직으로 ‘사그내산’이라고 쓴 표지석을 놓았다. 이 산 남쪽아래 ‘윗
사그내’, ‘아래사그내’ 라는 마을이 있어 그에 따온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지난주 이래 아
무리 산 이름에 굶었다고 하더라도 미심쩍어 냉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눈길. 우리가 난행하지 않는 길 낸다. △798m봉 왼쪽 사면은 벌목하여 여태 감질나던 조망이
트인다. 눈가루 휘날리는 바람 속이니 고산준봉을 루트 개척하여 등정하는 기분난다. △798m
봉 또한 조망이 좋다. 북쪽 건너편의 승두봉, 장미산, 덕수산, 대미산, 청태산의 장쾌무비한 장
릉을 감상한다. 삼각점은 ‘410 재설, 77.6 건설부’다.
길게 내린다. 능선마루에 몇 겹의 철사 줄이 쳐져 있어 막 내닫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이끼
낀 암봉인 710m봉에서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으로 간다. 선답의 뭇 산행표지기도 오른
쪽으로 갔다. 차 소리 들리고 개 짖는 소리 가까워지고 한바탕 사면 쏟아내려 대교 마을 근처
다. 통행 막은 산모롱이 구 도로에 들어 차로 바람 가리고 점심밥 먹는다.
2. 1부 산행 들머리인 들모고개
3. 산으로 들면 덜 추울까 서둘러 빈 밭을 지난다
4. △799.4m봉 산불감시초소 안, 急難之朋一個無. 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오는 글귀가 보인다.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5. △799.4m봉 지난 암봉에서 서쪽 조망, 오봉산(1,126m)이 아닐까 한다
6. △824.7m봉 오르기 전 이장한 공터에서 과메기 안주하여 탁주 입산주 걸친다
7. △798m봉 오르는 벌목한 사면에서 전망이 트인다. 멀리 가운데는 청태산
8. △798m봉 오르는 도중 칼바람이 세게 불어 땅바닥 눈이 날린다
9. △798m봉 정상에서 전망, 왼쪽 멀리는 청태산, 가운데는 대미산
10. 영월 배거리산 주변(?)
▶ 승두봉(僧頭峰, △1,013.6m)
1부 산행은 2부 산행의 예행연습이었다. 다목적 겸하여 승두봉을 향한다. 샛멋다리 마을 옆
평창농협 농산물유통센터 건물 지나서 왼쪽 샛길로 들어간다. 산골짜기 발안동 마을 깊숙이
올라간다. 사유지라며 묵은 임도 입구에 CCTV 카메라 설치하고 바리케이드 쳤다. 오늘도 점
심이 과했다. 가외로 미소 님이 즉석 요리한 계란프라이를 두 개나 먹었다. 뒤뚱거리며 힘들게
간다.
임도가 차츰 너덜로 변하자 임도 벗어나 왼쪽 생사면 친다. 낙엽송 숲속 가시덤불 헤친다. 지
도의 등고선 간격 뜬 대로 넙데데한 사면이어서 손맛 좀 보자하고 덤볐는데 암만 두 눈에 힘주
어도 낙엽송숲 사막이다. 산허리 가로지르는 묵은 임도 지나고 저마다 수월한 등로를 도모하
여 산개한다. 먼저 능선마루에 오른 대간거사 님의 연호가 짙은 풀숲 등대다.
땀난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다. 발이 낙엽송 부엽에 푹푹 빠진다. 827m봉 능선마루에는 엄
동한풍이 횡행한다. 능선마루에 올라 땀 식히고 사면으로 비켜 휴식한다. 보섭봉(984m)을 오
를까 말까? 수일 전 산행지 공지할 때부터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한 보섭봉이다. 일행은 보
섭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왼쪽 사면 돌아 곧장 골미재로 갈 것이다.
보섭봉을 그만 놓아준다. 일행과 함께 왼쪽 사면을 길게 돈다. 얕은 골짜기 두 차례 건너고 따
뜻한 양지쪽에서 휴식한 다음 게걸음 하여 너른 억새밭인 골미재에 오른다. 골미재가 바람골
이기도 하여 억새는 꽃이 다 지고 대궁만 남았다. 묵은 임도와 만나 잠시 동행하다 산모퉁이에
서 사면 오른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만하니 설원이 펼쳐진다. 누비기 좋다.
공제선을 두 차례 뒤로 무르고 나서 산불무인감시시스템이 있는 승두봉 정상이다. 오랜만에
산 이름 맛본다. 승두봉을 한때 중대갈봉이라고 불렀다. 둥그스름한 정상 부근이 초원지대와
고랭지 채소밭이라 멀리서 이 산을 올려다보면 마치 스님의 머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
다. 이설로는 6.25 동란 때 격전지로 산이 민둥하게 변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평창 21, 1989 복구.
11. 1부 산행종료, 대교 마을 근처 구 도로에서 바람을 차로 막고 점심 중
12. 골미재에서 바라본 백덕산
13. 승두봉 오르는 길
14. 승두봉에서 전망, 왼쪽 멀리는 잠두산, 그 오른쪽으로 백석산, 주왕산
15. 왼쪽은 멀리는 태기산, 그 앞 오른쪽은 금당산, 거문산
16. 앞은 절구봉(등용봉), 뒤 멀리는 잠두산 라인
17. 멀리 왼쪽은 청태산, 그 오른쪽은 대미산
18. 멀리는 백덕산
19. 영월 배거리산 주변(?)
20. 앞 능선이 장미산, 덕수산, 대미산, 청태산으로 이어진다
▶ 장미산(長美山, △980m)
승두봉 정상에서 둘러보는 조망이 썩 좋다. 세상 한가운데인 듯 사방 준봉들이 옹위하고 있는
형세다. 평탄한 고원을 간다. 발길에 차이는 눈가루와 낙엽이 쾌속선 선미 스크루에 포말 이는
듯 날린다. 탄광지대가 나온다. 마루금 살금살금 붙들었으나 깊은 절개지로 끊기고 만다. 조망
은 좋다. 왼쪽 사면을 지쳐 내린다. 가팔라 절반은 미끄럼 타서 내린다.
임도와 만나고 폐광한 탄광지대 지나 맞은편 절개지 가장자리의 덤불숲을 확 뚫으려했더니 소
로가 보인다. 장미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다. 장릉 굴곡이 심하다. 조망 좋은 암봉에 달달 기어
올라 평창 산군 일람한다. 살짝 내렸다 오른 Y자 능선 분기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 튼다. 설원
슬로프 지치고 그 추동으로 912m봉을 오른다.
해는 문재 위로 한 뼘 정도 남았다. 등로의 모색이 발길 낙엽 버석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쓸쓸
하다. 912m봉 내리는 길이 꽤 깊다. 두 피치 뚝뚝 떨어져서 안부 바닥 치고 947m봉을 딱 그
짝으로 오른다. 스퍼트 낸다. 사면 쓸어 만리 발청향에 힘 받는다. 947m봉. 장미산의 전위봉
이다. 이제 물 먹을 일이 없겠지. 여태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짊어지고만 다닌 식수를 버린다.
드라큘라 백작처럼 지는 해와 경주하듯 줄달음 한다. 사세가 다급하니 칼바람이 무디게 느껴
지고 오히려 시원하다. 산릉은 두 번 출렁이고 장미산이다. 좁은 공터에 삼각점은 ‘303 재설,
77.6 건설부’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다. 게마을 가는 ┳자 갈림길. 오른쪽 등로도 뚜렷하고
수개의 산행표지기가 나풀대지만 왼쪽 덕수산 방향으로 가서 안부에서 사면 치고 내리는 편이
더 빠르리라.
왼쪽으로 간다. 쭈욱 내렸다가 나지막한 봉우리 넘고 얕은 안부 오른쪽 북사면이 펑퍼짐하다.
눈이 깊다. 앞으로 스패츠를 준비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빛(雪光)으로 간다. 어두
워지니 산속 만물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눈 속 벌목한 잔해는 너덜과 합세하여 발목 걸고 덩굴
은 목덜미 낚아채고 잡목은 가만있지 않고 배낭이라도 붙잡는다. 그렇지만 내 날랜 동작으로
빠져나오곤 한다. 산기슭 너른 눈밭에 내려 벗어난다.
대로인 농로 따라 내리고 게마을이다. 약간 가파른 마을길에 눈이 내린 그대로 쌓여 있고 곳곳
이 빙판이라 우리 차가 들어오기 어렵겠다. 그래도 두메 님이라면 올라왔을 걸 하며 개수리 봉
황교까지 대로 3.2㎞를 걸어간다.
21. 멀리 가운데가 오봉산, 그 왼쪽이 문재
22. 설사면 지치며
23. 무덤 지나고
24. 소나무 우러르며
25. 장미산 전위봉인 947m봉 오른다
26. 장미산 전위봉인 947m봉 오르는 길
27. 장미산 가는 길
28. 장미산 정상에서, 지나온 승두봉과 폐광터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남병산과 청옥산이 보인다
29. 마침내 해는 문재 뒤로 지고
30. 해피 님의 대물더덕 수확 기념사진. 더덕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신가이버 님이 나침반
을 대고 있다. 이런 사진을 올리면 비난받기 일쑤여서 삼가는데 이번만은 예외로 하련다.
첫댓글


이번만은 특
히..신동 해피님의 첫 작품을 위하여
,,,추운 날씨속에 사진찍으랴, 산행기 적으랴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독도공부도 집어치우고 ᆢ메모 하시랴, 사진 찍으랴, 거시기 거시기 하시랴 ㅎ
좀 미안키도 하구 안되기도 하구 ᆞ고생하셨어요~~
평시에도 정독하며 산행 갈무리 또는 대리만족하는 악수형님 산행기가 요즘은 더욱 새록새록 감흥이 짙네요. 제 마음이 그렇겠지요. 해피의 쾌거는 두 말 할 거 없이 청출어람이겠지요? ㅋ
얼굴이 얼었어요 부 럽기도하고 불쌍하기도하고 ..이럴때 쭈꾸미 사브사브를 먹고 그국물에 라면을 먹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