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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한 달 살기를 가기 전 심한 다리 화상을 입었고, 가기 직전에 첫째 현이의 손가락 부상이 있었다. 액땜이겠거니, 그래도 사이판을 가면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내심 생각했다. 물론 당연히 집이 아닌 낯선 곳에 가면, 힘든 일도 많을거라 각오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외의 일들이 계속 터질 줄은 정말 몰랐다. 가기 전부터, 가는 날, 사이판에 도착해서 며칠째 나에게 왜 이렇게 시련이 오는 걸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드디어 사이판으로 출발하는 날, 저녁 9시 인천 출발 비행기라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초행길이라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건 6시간 만이었다.
부산에서 6시간 만에 도착한 인천 공항. ⓒ 박혜정
급한 건 수속이라 먼저 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수속하는 직원이 나와 같은 휠체어 승객을 처음 겪은건지, 아니면 티웨이 항공사에 휠체어 승객이 내가 처음인건지(처음은 아닐텐데), 암튼 수속만 50분이 걸렸다.
하아~ 수동 휠체어를 기내 선반에 넣을까요? 휠체어 앞에 부착하는 전동 바이크도 기내 선반에 넣을지 말지 물어보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기내 선반에 안 들어간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넣어 보고 안되면 화물에 넣겠다고 하는 거다.
그런데다 내가 혹시 브릿지 안되면 리프트카를 해주거나 직원이 도와줘야 된다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브릿지'를 몰라서 '브릿지'가 뭐죠? 라고 되묻는 상황까지 있었다. 짐 하나에 택을 붙이는 것도 5분 이상 걸리고, 백신증명서를 내가 준비 안해서 쿠브(coov) 어플을 깔았는데 이것도 뭔가 오류가 나서 한참이 걸렸다.
휠체어 승객을 처음 해보는 듯한 직원때매 수속만 50분 걸렸다. ⓒ 박혜정
거기서부터 시련의 시작이었던걸까.
사이판 공항에는 새벽에 도착했고, 다행히 게하 사장님이 공항에 오셔서 숙소에는 잘 왔다. 그러나 다음 날이 문제였다.
다음 날은 현혜가 다닐 학교에 가서 교복을 사고, 학교를 둘러보고 선생님도 만난 뒤에, 렌터카를 찾으면 되는 일정이었다. 애들 학교는 숙소에서 가까워서 잘 갔다 왔다. 이제 렌터카만 찾으면 게하 사장님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게하 사장님 차가 SUV 밴이라 거동이 전혀 안되는 나를 거의 들어서 차에 태워주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우리끼리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츠렌터카 가라판 영업소에서 열심히 설명중이신 게하 사장님. ⓒ 박혜정
홈페이지에서 장애인 핸드컨트롤 차량을 분명히 예약하고 간 렌터카 영업소에서 게하 사장님이 직원과 거의 다 얘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마지막 카드 결제 단계에서 장애인 차량 확인을 하는데, 핸드컨트롤 차량이 없다는 거다!!! 아놔~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분명히 12월19일(한달 전)에 핸드컨트롤 차량 예약을 했다! 만약 그 차량이 없으면, 그 전에 메일이든 전화든 연락을 무조건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나는 아무 연락도 받은 게 없었다.
게다가 거기 직원은 아무 일도 아니란듯,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안되었다며 Sorry~ 한마디 뿐이었다. 나는 멘붕, 현타, 뇌절의 쓰나미가 몰려 왔다. 하지만 거기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돌아왔다.
홈페이지에 명백히 나와있는 핸드컨트롤 옵션으로 나는 분명히 예약했었다. ⓒ 박혜정
돌아오면서 여자 대장부 같은 게하 사장님이 '애들 학교 등하교는 내가 해주께~ 다른 건 또 차근차근 알아보자! 만약 안되더라도, 또 다른 얻는 게 있을 것 아이가~'라고 하셨다. 같은 부산이라 친정 사촌언니 같은 따뜻한 위로에 나도 겉으로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정말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사장님과 같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까 황당하게 직면한 순간에는 사실 엄청난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이왕 이렇게 현혜와 함께 사이판에 왔고 나는 엄마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계획했던 나의 야심찬 목표가 다 어긋나는 듯 했지만, 여행, 인생이 또 내가 마음 먹은대로 안되기도 한다. 차가 없으면, 또 다른 길, 여행의 묘미가 있을것이고, 그 나름대로 즐기고 가면 된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해 보려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급해지고 벼랑 끝에 선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대중교통이 아예 없는 사이판에서 차가 없으면, 휠체어로는 숙소 근처 동네를 밀고 다니는 것 외에는 이동이 전혀 안 된다. 현혜의 등하교도 걱정이 되었다. 해야할 것, 가야할 곳은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현실에 깜깜했다.
땡볕에도 숙소에서 1.5km 떨어진 마이크로 비치에 휠체어를 타고 가는 중. ⓒ 박혜정
렌터카 영업소에서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누워 버렸다. 그러나 좌절만 하며 숙소에 계속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게 또 엄마였다. 심심하다고 어디라도 가자는 현혜 때문에 숙소 근처 지도를 검색했다. 숙소에서 1.5km나 떨어진 곳에 마이크로 비치가 있었다. 한국은 당시에 최대의 한파였지만, 사이판은 너무 덥고 땡볕에 걸어가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와 현혜는 꿋꿋하게 휠체어 밀고, 걸어갔다.
마이크로 비치에서 현혜가 물놀이를 하며 노는 동안, 나는 그늘에 앉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면 택시를 타고 다니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조선족이 한다는 저렴한 택시도 알아 보았다. 다음 주에 사이판에 휴가를 오는 사촌 동생네에게 가져 오라 할까 싶어서, 휴대용 핸드컨트롤 대여를 알아봤다.
그런데 휴대용 핸드컨트롤은 차량 보험때문에 렌터카 회사에서 안 된다 할게 뻔하다. 또, 혹시나 만약 사고라도 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게 분명했다. 절박한 마음에 생각해봤지만, 이건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닌 것 같았다.
전세낸 것 같은 마이크로 비치에서 그래도 너무 신나하는 현혜. ⓒ 박혜정
도대체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솔직히 며칠동안 정말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든 택시타고, 게하 사장님 차 얻어타고 지내볼까 생각이 들다가, 한국으로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들고 좌절감이 계속 밀려왔다.
여태까지 26번이나 낯선 해외를 여행했지만, 이번처럼 감당이 안되는 돌발 상황은 나도 처음이었다.
우선 허츠렌터카 회사의 큰 실수 때문에 나의 사이판 여행과 우리 아이들 현혜의 스쿨링 한달이 모두 망쳐진 것에 대해 자세하게 써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허츠 대표 메일 뿐만 아니라 불편, 불만 접수 메일 몇군데에 파파고를 돌려서 조목조목 얘기를 했다.
핸드컨트롤이 있는 차를 3일 이내에 갖다 주던지, 안 되면 운전기사 딸린 차를 보내 줄것을 요구했다. 이것 마저 안 된다면, 모든 여행 경비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허츠렌터카에 보낸 메일 뒷 부분 내용. (영어) ⓒ 박혜정
허츠렌터카에 보낸 메일 뒷 부분 내용(한국어). ⓒ 박혜정
억지를 쓰는 진상 고객이 아니라 나는 정말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나의 한 달 살기와 현혜의 스쿨링, 꿈꿨던 여행이 모두 망해버렸으니까 말이다.
정말 이번 여행은, 내 인생은 시련이 왜 이렇게 많을까? 그 생각만 들었다.
*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나눠서 씁니다. 제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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