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교와 문화] 종교와 여성
모든 종교에서 여성성은 초월적으로 존재하고 묘사된다. 인간은 여성에게서 태어나므로 어머니라는 존재와 역할은 위대하다. 어머니만이 신의 창조 사업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종교 신심에서 성모 마리아의 중요성 역시 하느님께서 육화하는 과정에 여성의 자궁을 빌려 역사하셨음에 근거한다. 여러 종교에서 여성의 존재와 어머니의 위대함을 강조하는데, 성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남성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여성 제자들은 함께했다. 부활의 첫 목격자이자 증인들 역시 여성들이었다. 이른바 거룩한 예루살렘 부인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했던 여성들의 존재와 역할은 현대 종교에서도 변함이 없다.
종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망인 다산과 풍요를 기복과 연결시킨다. 이 실존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 종교의 여신성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품어 주는 신’을 설정하고, 인간은 그 종교에 귀의한다. 신앙은 이성과 감성의 조합이다. 아무리 고등 종교, 계시 종교라 하여도 이성만으로 종교를 설명할 수 없다. 인간성 안에는 아니마(여성적이며 감성적 경향)와 아니무스(남성적이며 이성적 경향)가 존재하는데 이 두 성향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에 기인한다. 하느님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의 성향이 구분 없이 존재한다. 세상의 어떤 종교 안에도 그 구성 요소 안에는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고 이 양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종교적 삶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1. 노자의 철학에는 여성성이 특히 강조된다. 도덕경에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이 있다.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곡신(谷神)이란, 인체의 골짜기로 말하자면 여성의 사타구니 사이에 있는 생식기를 뜻하는데 단전에 형성된 기를 말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여성의 생식 능력의 원천인 이 기(氣)는 결코 죽지 않고 면면히 인류의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는 지나치게 부권적인 경우가 있다. 그런 배경에서 표현되는 종교는 신의 부성(父性)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심지어 신의 여성성이 완전 배제된다. 이스라엘의 유다이즘과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 그리고 이슬람 사회의 종교 문화 등은 극단적으로 신의 남성성과 초월성을 강조한다. 개신교 역시 절대적인 남성 편향의 종교 요소가 자리 잡고 있어 그 안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2. ‘신이 남성이면 남성은 신이 된다.’는 말이 있다. 메리 데일리라는 개신교 신학자가 남성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가부장적 종교가 지니는 폭력성과 권위를 드러낸 말이다. 힌두교나 인도 사상 역시 이런 경향이 강한데, 그 안에서 성장한 원시 불교도 본디 강한 부권적 종교였다. 그러나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인들의 심성에 맞게 변형되었는데 바로 관음보살의 여성화와 선종의 감성화이다. 특히 관음보살은 관음낭랑(觀音娘娘), 송자관음(送子觀音)으로 탈바꿈하여 여성성이 부각되었다.
신은 성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연결될 때는 신에게도 성이 가미되는데 대체적으로 남성성이 강조된다. 남성이 지니는 초월성과 강한 힘이 신과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부권 문화적 표현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물어보자. 신은 남성인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시기도 하다. 렘브란트 역시 ‘탕자의 비유’의 하느님을 묵상하다가 신의 두 손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으로 복합시켜 그리게 되었나 보다. 탕자의 형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부권 사회는 용납되지 않는 동생의 행동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정의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나 유다이즘은 구약의 정서와 가치관에 머무른 채 몇 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성숙하지 못하였다. 신약의 사랑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약에는 연약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자주 표현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명되는 신약의 하느님은 구약에서 표현된 하느님과 달리 한없이 인간적이고 부드러우며 약하신 분이시다. 그 연약하심은 사랑에 기인한다. 가냘픈 비둘기나 미풍, 함께 아파해 주고 치유해 주는 의사의 모습,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함께 가고, 겉옷을 원하면 속옷마저 넘겨주는 신은 분명 여성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응징하는 강력한 정의와 폭력마저 정당화시키는 심판적인 구약의 남성적 하느님과 상반된다. 그래서 ‘슬프고 울고 배고프고, 실패한 것이 복이다’라는 진복팔단의 말씀은 복음의 여성적 혁명인 것이다.
신의 남성성이 강조되는 종교는 선교 의식이 강하고 강력한 주체 의식을 포함한다. 이슬람교나 개신교의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선교 경향은 어느 정도 부권 종교적, 남성 중심적 신관에 기인한다고 본다. 개신교가 성모 마리아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단순히 성서적 성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천주교에 반하여 일어난 종교 개혁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자신의 종교 개혁성을 정당화하고 주체성을 확립하자는 취지에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신의 여성성을 제거한 것은 자해적인 행동이다. 유럽의 어느 개신교 신학자는 성모의 존재와 가치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자신들을 반성하며 “우리 개신교는 왜 엄마 없는 고아가 되고 싶어 안달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교의 여신성은 신학이나 교의를 떠나 전인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서도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유물론자인 마오쩌둥마저도 여성의 존재와 가치를 긍정하는 명언을 남겼다. “여성들도 하늘의 반쪽을 받칠 수 있다(婦女能?半邊天)”라는 말을 통해 인민의 반은 여성이고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다는 교시를 내렸다. 그 후로 중국 공산당은 여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강조되었고 부녀절(婦女節)도 창설되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3월 8일 부녀절(三八節)이 여성을 욕하는 ‘산빠(3.8)’라는 말로 타락해 버려 마오쩌뚱의 명언이 무색해져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성모 마리아가 여신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안에서 하늘로 승천한 성모 마리아는 더 이상 순수 인간적 존재는 아니다.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존재를 뛰어넘는 위치에서 절대적 신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신성이 부여된 존재이다. 마리아의 위격 안에 이시스와 아세라, 밀리타, 아르테미스라는 고대 종교 문화의 여신들의 신성이 분여(分與)되어 있다. 에페소는 아르테미스의 판도이다. 거기 에페소의 한가운데에서 공의회가 열렸고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이라 선포한 데는 강력한 여신 아르테미스를 제압하고자 하는 선교적 의도가 엿보인다.
대만에서는 그리스도교 전교가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대만판 아르테미스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대만에 선교사로 도착해 교구청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붉은 글씨로 ‘天上聖母’라고 쓰인 간판을 많이 보았다. 나는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지만 실은 마조(瑪祖)라는 여신을 표현한 것이다. 마조라는 처녀신이 지니는 도교의 민중성과 분산성은 가히 전국적이다. 마조의 생일에 거행되는 도교의 ‘빠이빠이(拜拜)’ 행사는 무척 화려하고 풍부하며 재미있어 주일 미사와 겹치는 날에는 성당이 텅텅 빈다. 마조를 극복하거나 그 존재를 전환시키지 않으면 대만에서의 전교는 힘들다. 여신성이 지니는 기복성과 풍요로움이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기인하는 풍요와 다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중턱에 서서 산 아래 넓게 형성된 드넓은 평원을 바라본 일이 있다. 잉카의 후예들이 수백 년 동안 부쳐 먹던 땅이다. 그런데 잉카 평야의 논두렁이 내게는 참 특이하게 다가왔다. 산 밑에서 시작된 유선형의 긴 곡선이 지평선 멀리까지 끊이지 않고 쭉 뻗어 있다. 마치 물결처럼 번져 간 논두렁 한 겹이 끝나면 다음 줄에서 다시 똑같은 유선형의 파장이 길게 퍼져 간다. 그 유선형의 논두렁은 마치 잔잔한 호수 위의 파문이 끝없이 퍼져 가는 형세다. 그 모습이 오밀조밀하고 각진 내 고향의 논두렁과는 너무나 다른 아름다운 곡선 문양이어서 바라보는 자체가 가히 감동적이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잉카인들은 대지를 어머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이 우리를 먹여 살리기에 대지를 엄마의 유방 모양을 닮은 논두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대지를 굽어 내려다보는 잉카의 후손들은 엄마의 품을 더듬는 듯 시야를 멀리 지평선에 두고 있었다. 참으로 선량하게 살아온 잉카 문명의 후손들, 그 문명을 종교와 제국의 야만성이 멸망시킨 것이다.
현대인은 생태학적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인간의 유일한 삶의 공간인 지구의 자연 환경이 훼손되어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인 공기, 물, 땅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파괴는 이제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절박한 문제가 되었다. 환경 보호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이어 가야 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생태 사상과 페미니즘의 만남으로 에코페미니즘이 등장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지구와 인간을 정복하고 통치하려 했던 남성성의 문화는 이제 품어 주고 양육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류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한 자연 환경의 보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신의 여성성, 모성(the Mother)의 회복에 있지 않을까? 노자의 ‘곡신불사’를 현대 문명의 아픔을 치유해 줄 가르침으로 되새겨 볼 일이다.
[선교와 문화] 종교의 기복성과 미신성
실제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시골 본당의 신자가 성상이라면서 보자기로 싼 물건을 본당 신부에게 가지고 와서 축성을 부탁했다. 축성해 줄 테니 보자기를 풀어 보라고 하자 신자는 완강히 거부했다. 실랑이 끝에 결국 풀어 보니 관음보살상이 나왔다. 사제는 이 신자의 사악한(?) 행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젊은 중국 신부는 노발대발하고, 질책하고, 훈계하여 신자를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그 사제의 거룩한(?) 마음이 승리한 바는 무엇이고 얻은 바는 무엇인가? 다음날부터 그 신자는 성당에 발을 끊었다.
신자를 이기면 사목은 실패다. 선교사들은 낯선 문화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타문화의 이른바 ‘불순한 요소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야 할까?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신자들의 기복적인 태도를 우리 교회는 거룩함이라는 미명 아래 죄악시하고 불순하게 여겼다. 그러나 선교의 현장에서 기복과 미신은 구분되어야 하고 다르게 대처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목자는 기복 행위 밑바닥에 깔린 사람의 마음을 아량으로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한다. 기복 성향은 인종, 시대, 지역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의 공통된 바람이다. 문명과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뿐만 아니라 유물 사관에 지배당한 중국 사회 역시 기복 성향은 농후하다. 공산당의 반종교 정책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중국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소망과 기원을 실현하고자 이른바 ‘기복빠(祈福?)’라는 것을 만들어 종교의 대용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종교인들의 기복 성향이 비종교인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 역시 점을 보고 싶은 유혹에 근질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다가도 큰일을 앞두면 안절부절못하며 양심을 가리고 철학관을 기웃거린다. 성당에서 혼인 성사를 받으려는 사람들도 사주를 보고 웬만하면 손 없는 날에 결혼하고 싶어 한다. 이사를 가더라도 꺼리는 날짜를 당당하게 택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것도 예로부터 민간에 전해 오는 기복 의식과 유관하다. 복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정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점을 보고 싶어 할까? 점을 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실존과 관계있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실패,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바로 인간의 실존이다. 불행과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원,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는 기원이 문화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종교도 문화이기에 염원과 희망이 담겨 있는 인간의 기원이 기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모든 종교에는 기복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복성과 미신성은 (사실 이런 구분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고등 종교이든 하등 종교이든 모든 종교 형성의 기본적인 조건이자 부정할 수 없는 실체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고 종교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7,7)라고 말씀하셨다. 신 앞에서 부족한 인간은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종교든 기복성을 제거하면 성립이 가능할까? 아마 하루도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종교적인 감수성과 신앙적인 경향성은 기복성을 바탕으로 한다. 시골 할머니의 신앙 태도를 교의나 신학으로만 분석할 수 있는가? 미사 중에 묵주를 돌리고 예수님상을 쓰다듬고, 신부 손을 만지고 하는 동작들을 미신 행위라고만 폄하할 수 있는가? 단순한 신앙 외적 행위를 미신이나 기복으로 판단하거나 단죄할 것이 아니라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행위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실존을 이해할 수 있어야 종교는 인간을 폭넓게 포용할 수 있다. 종교의 기복성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살리면 신앙의 큰 에너지가 된다. 기복은 신앙의 기초적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성서에도 기복적 행위에 관한 묘사가 적지 않다. 하혈하는 부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장면에서 주님은 그 사람의 신앙 내적인 요소와 가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신다. 행위는 미신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실존적 기복성을 볼 수 있어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또 예수님은 맹인 치유 의식에서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고 눈에 발라주는 행위나, 간음하다 붙잡힌 현장에서 땅바닥에 주문을 쓰는 것 같은 행동들을 하시는데, 단지 행위 외적으로만 이해하면 기복적 요소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종교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종종 미신으로 비쳐진다. 이를테면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의 성물·성상·성인 숭배를 미신으로 생각해 배척한다. 그리스도인은 힌두교의 여러 의식을 미신이라고 생각하며, '고등' 종교를 믿는 사람은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토템 신앙을 미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종교적 신념과 의식은 그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미신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천주교의 준성사 안에도 기복적 행위가 많다. 자동차나 집을 축복하고 성물 · 성인들에 대한 공경의 모습들 안에는 기복적 염원이 담겨 있다. 생미사와 연미사의 공동 봉헌을 금기시 하는 행동, 성수 마시기, 성직자 숭배 사상도 제각각이다. 특히 중국의 소도시 성당을 방문하면 신자들의 성직자 숭배는 도를 넘어선 듯 느껴지기도 한다. 공산당의 통치 아래에서 박해를 받아 온 중국 교회와 신자들은 공산당의 노선에 합류한 애국회 사제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신자들은 애국교회 노선에 있는 사제들의 미사에 참여하기를 꺼려하고 상대적으로 보편교회에서 온 사제를 대하면 “진짜 신부가 왔다”면서 손을 만지고 비벼 대는 동작은 거의 성폭력(?)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종교 안에는 감성적 요소가 농후하다. 그러나 종교가 참되고 신앙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감성적 요소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종교의 기복성과 미신성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미신은 올바른 길을 잃고 헷갈린 믿음이다. 곧 개인의 욕망을 신의 힘을 이용해 이루려고 하는 행위로 종교의 사사화(私事化)를 말한다. 미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되며,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이기적인 종교적 표현이다. 존재의 두려움에 대한 본능적 표현에서 나온 저급한 행위이다. 그러나 기복성은 방향만 제대로 잡아 주면 종교 생활에 큰 힘을 실어 주고 오히려 종교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선교 현장에서 느낀 바는 그런 기복적 성향을 반대, 질책, 단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 보면, 자녀의 대학 입시일에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자녀를 위하는 마음은 모두 같지만 한국의 입시 풍속도는 천태만상이며 가히 유치한 수준이다. 극단적인 미신 행위에 집착하면 대구 달성산의 영험하다는 바위에 돈을 붙여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기복성이 잘 방향 지어지면 수험생 자녀를 위해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자녀의 불안한 마음에 동참하고자 하는 행위로 표현될 수 있다. 수험생들도 자신의 부모가 지금 성당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침착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고 그러면 결과가 더 좋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방향만 잘 이끌어 주면 기복성은 종교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승화될 수 있다. 문화라 해서 모든 것이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순하고 정당하지 못한 문화가 있으니 ‘문화 길들이기’는 바로 복음의 역할이다. 종교의 기복성을 승화시키는 길이 선교와 문화의 차원에서는 중요하다. 기복은 신앙의 방편(方便)이지 목적은 아니다. ‘마음을 드높여’ 천상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역시 사람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어야 한다. 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당장 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기복과 미신은 초월적인 힘으로 현세의 개인적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갈망이다. 그래서 신앙과 현실이 충돌되는 것이다. 사목자는 신앙적 교의와 이성적 원칙 안에서 인간의 심리 밑바닥에 깔린 ‘불안에서 나오는 떨림’, 곧 종교의 기복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기복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선교와 문화] 문화의 교류에서 나타나는 역동성과 원리
문화의 충돌과 융합
문화는 만남을 통해 상호 교류한다. 일반적으로 두 문화가 충돌하면 그 유기체성으로 말미암아 상호 역동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를 통해 긍정적으로는 상호 공존을 위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여 풍요로워질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문화에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어 대(大)와 다(多)가 지니는 폭력성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환경이라면 상호 견제하면서도 융합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문화와 충돌하면 희석되거나 대체(정복) 된다. 문화의 충돌과 융합에는 나름의 원리와 공식이 있으니 이를 이해하게 되면 복음 선교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파국을 최소화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문화 간 만남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희석(dilution, 稀釋 또는 淡化)은 말 그대로 물타기식 수법이다. 자신보다 강력한 문화를 만났을 때, 정복이나 대체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대체로 희석이라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에페소는 강력하게 토착화된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의 판도였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의 여신으로 다산을 기원하는 모든 에페소 사람들의 갈망을 채워 주었다. 또 달의 신이라고 불리며 모든 부녀자들의 신인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순결의 화신으로 각인된 강력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들고 에페소에 들어갔지만 그 강력한 여신의 세력에 전교가 쉽지 않았다. 이 아르테미스의 존재와 역할을 희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성모 마리아였다. 에페소 출신의 요한은 에페소 전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르테미스의 언덕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를 모셔와 집을 지어 드렸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성모 마리아가 ‘달을 밟고 서있는 여인’(묵시,12,1 참조)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아르테미스의 존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페소 거리의 끝자락에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열린 성모 대성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Theotokos)’으로 선포한 곳이다. 물론 에페소 공의회는 당시 키릴 주교와 네스토리우스 주교의 인성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입장 차이로 뜨거웠던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열린 것이지만 성모신심을 통해 아르테미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만에도 아르테미스에 버금가는 처녀신으로 ‘천상 성모 마조(瑪祖)’가 있다. 대만에서의 천주교 선교가 제자리걸음에 있는 이유 역시 강력한 마조 토착 신앙 때문이다. 마조의 탄생일에는 신자들마저도 성당에 가기보다 재미있는 축제에 참여하는 경향이 많은데, 종교학적으로 보면 마조의 세력을 희석시키지 않고는 대만 선교의 전망은 불투명할 것으로 본다. 필자가 대만에서 선교사로 활동할 때 그곳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군(聖母軍)이라 불리는 레지오 마리애에서 매우 열심히 활동했는데, 신자들의 마음속에는 마조의 강력한 힘을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본다.
두 번째로 고려할 경우는 문화의 정복(conquer, 征復)이다. 또는 대체(replace, 代替)라고 말하는 이 경우는 외래문화와 토착 문화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져 강력한 힘을 지닌 문화가 폭력적으로 상대를 통할하는 것이다. 정복은 일반적으로 문화 비중의 극명한 차이 속에서 발생하는데, 정복당한 문화는 소멸에 이르게 된다. 마야, 잉카, 아즈텍, 앙코르 와트 등의 문화가 정복되어 사라진 문명의 예다.
서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아폴로(태양신) 중심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태양절을 예수 탄생 축일로 바꾼 것은 문화의 정복 곧 대체인 셈이다. 원래 12월 25일은 동지 이후 해가 다시 커지기 시작할 때를 기념했던 ‘정복되지 않은 태양(Unconquered Sun)’이라는 로마인들의 축제일이었다. 로마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태양신을 섬기는 이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대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떠오르는 태양에 비교했고, 여기서 태양신의 탄생일을 정복한 성탄절이 생긴 것이다.
중국에는 강력한 한자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어 외부에서 들어온 문화들이 쉽게 살아남지 못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왔지만 결국 중화사상에 흡수되어 선종(禪宗)으로 변질되었다. 또 당나라 때 들어온 경교는 중국 문화 속에서 교류와 융합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중화의 강력한 문화 속에 흡수되어 소멸했다. 명말청초에 천주교가 중화의 영역에 들어와 재기를 노리지만 현재까지도 강력한 중화 문명과 사상에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다.
세 번째로는 융합이 있는데 문화의 밀도가 상호 균형을 이루거나 줄다리기를 하는 긴장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내어 공생하는 경우이다. 건강한 문화 교류는 서로에게 풍부한 생명력과 이상을 제공하여 상호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한 예로 켈트십자가를 들 수 있다. 켈트십자가는 십자가가 태양(원)과 겹쳐진 모양인데, 이는 성 패트릭에게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성 패트릭이 드루이드교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일랜드 토착민들에게 십자가를 알리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와 이교도의 원형을 합쳐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의 융합과 공존은 이 켈트십자가처럼,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게 한다.
노자화호설에서 본 아전인수식의 종교 선교 전략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아전인수식 선교 전략을 지니고 있다. 곧 모든 종교와 문화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불리할 때는 상대에게 달라붙고 유리할 때는 떨어져 독립성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유일주의적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가 지니는 절대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적 이익을 위해 도모하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보자.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기 시작할 때 불교는 중국 문화 안에서 유교가 지니는 공고한 위치와 역할을 ‘큰형님’으로 이해하였고 이에 대한 승복으로 인해 유·불간의 충돌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도교는 유교에 비해 형성된 시기가 늦고 중국 사회에서 지니는 위치와 비중이 공고하지 못한 탓인지 언제나 불교의 경계와 경쟁의 대상이 되어 잦은 충돌이 일었다. 이 도·불의 충돌 관계 속에 ‘노자화호설(老子化胡?)’이라는 아전인수식 선교 전략이 몇 백 년 간 지속되었다.
먼저 도교 측에서 노자는 죽지 않고 서쪽으로 푸른 소를 타고 사라졌다는 신화를 이용하여 ‘노자화호설’을 만들었다. 곧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가 인도에 가서 무지한 인도인들을 구도하기 위해 석가모니로 환생한 것일 뿐이니 불교는 사실 원종교인 도교의 아류에 해당할 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백성들에게 설명한 것이다. 인도에서 들여온 불경은 노자가 석가모니로 환생하여 가르친 일종의 노자의 환생설법이니 중국인들이 여기에 혹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한편 처음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외래문화적 색채를 줄이고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은 ‘노자화호설’로 역공을 전개한다. 내용은 같지만 해석의 입장은 극명히 다르다. 불교 측에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불교의 교리와 경전은 사실 중국의 성현인 노자에 의해 전개된 것이기에 불교를 배타적으로 대하기보다는 도교와 같은 차원에서 불교를 수용하여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외래 종교라는 이질감을 극복하려는 선교 전략에서 나온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다.
이러한 노자화호설은 마태오 리치의 선교관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들어와 처음에는 승복을 입고 불교에 편승하려 했지만 실상은 유교가 대세라는 것을 알고 과감히 유화(儒化) 정책을 취했다. 뒤를 이어 온 모든 천주교 선교사들은 친유배불(親儒排佛) 정책을 견지하게 된다. 마태오 리치는 천주교가 중화의 땅에서 살아나려면 중국 문화, 특히 공맹사상과 조상 숭배의 특성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소위 ‘리마도우규칙(利瑪竇規矩)’이라는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유교 사상을 연구하다 보니 천주교 사상에 부합하는 것과 부합하지 않는 요소를 발견하여 그것들을 합유(合儒)와 초유(超儒)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태도 역시 밑바닥에는 선교학적인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곧 유교의 성분 중에서 선유(先儒, 초기 선진유학)는 취하고 후유(後儒, 송명의 성리학)는 버리는 취사선택을 하여 선교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마태오 리치는 신화를 위조하기까지 한다. “고대 중국의 역사에 보면 한나라 명제가 이미 서방의 천주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사신을 서쪽으로 파견하여 성경을 구해오라 하였는데 귀국 도중에 모함에 빠져 불경을 가져와 중국에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천주실의 제8편). 들어보면 노자화호설과 닮았다. 마태오 리치가 이러한 거짓 이야기를 꾸며낸 목적은 선교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다. 곧 과거 중국 사신이 가져온 불경은 사실 위경(?經)이고,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져온 성경이야말로 진경(?經)이기에 중국인들은 이제라도 천주교 교리를 배척하지 말고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로서,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히 아전인수식의 설법이라 할 수 있다.
문화와 선교는 칼의 양날과 같은 관계다. 칼을 갈 때 두 면을 고루 갈아야 칼이 잘 든다. 어느 한 면만 갈게 되면 날이 넘어, 갈면 갈수록 오히려 더 무뎌진다. 선교를 위해 문화가 필요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선교의 날에 무리수를 가하게 되면 문화의 날이 무뎌져 결국 양쪽 모두 실패하게 된다. 선교를 신앙의 차원에서 교회론적으로, 신앙적으로만 이해해 왔던 과거 식민주의 시절의 선교적 오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