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소 소세키 스님의 이끼정원 서방사(사이호지) 이야기 120여종의 이끼정원이 일본 내 최고라고 알려진 사이호지는 방문 절차가 까다롭기로도 제일입니다. 먼저 방문 전에 충분히 기간을 갖고 손편지를 써서 방문해도 좋냐고 우편으로 편지를 종무소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사이호지(서방사) 종무소에서 다시 손편지로 방문날짜와 시간을 써서 우편으로 방문 허가를 해줍니다. 그러면 미리 이야기된 날짜와 시간에 사찰로 가서 입장료 개념의 시주를 최소 3천엔(3만3천원)을 냅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반야심경 사경판에 가서 한문으로 된 반야심경을 모두 붓으로 씁니다. 사경하는 내내 바로 옆에서 스님이 독경을 해주시면서 사경하는 이의 복을 빌어준답니다. 반야심경을 모두 적고 그 옆에 자기의 소원을 적어서 내면 그 종이를 절에서 받아 평생 보관하며 소원성취를 빌어준다고 하네요.
이렇게 절차도 까다롭고, 번거롭다고 하니 왠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내년 가을 2차 간사이 문화답사 걷기여행 때 추진해보려고 한답니다. ^^
근래들어 사이호지와 얽힌 유명한 이야기로는 스티브 잡스가 사이호지를 매우 좋아해서 교토에 오면 꼭 들렸다는 것이죠. 2010년 7월 한여름에도 스티브 잡스는 병세가 심각했음에도 딸 에린과 함께 사이호지를 방문했죠. 잘 알려졌다시피 잡스는 말년에 아이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무척 애를 썼다는데, 딸 에린이 이 사이호지를 매우 좋아했답니다. 결과적으로 이끼정원이 황금연못을 둘러싼 사이호지에서 딸 에린인 많이 행복해했고, 아버지 잡스와의 관계개선도 성공적으로 도와주었다고 하네요. 그밖에도 그들은 교토에서 소박한 초밥집과 소바집 등을 다니며 잡스의 마지막 여정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도록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네요. |
드디어 도자기에 담긴 차가 서빙되기 시작합니다.
기모노를 입지 않은 것과 차잔이 이도 다완 스타일이 아닌 것이 아쉬웠지만
이 부족한 것들은 모두 정원이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한명한명에서 공손하게 절을 하면서 서빙을 합니다.
저도 달달한 화과자와 함께 쌉쌀한 말차(가루녹차)를 받았습니다.
이런 정원을 바라보며 마룻바닥에 앚아 마시는 일본식 녹차 한잔의 여유...
자, 지금부터 자유시간 50분입니다. ^^
차 한 잔 들고 이렇게 바라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파노라마로 남겨봤어요.
정원 쪽 계단으로 슬리퍼가 있어서 이것을 신고 크게 한바퀴 돌아서 저 안쪽 정원까지 감상하고 오면 된답니다.
이전 후기에서 이야기 했던 센노리큐가 전파한 와비차의 초암다실입니다.
센노 리큐(1522~1591)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후 시대를 뜻하는 모모야마 시대의 승려이자 정치가입니다.
일본에서는 다도의 정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여 와비차 전통의 원조로 다조(茶祖)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선생이기도 했는데,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여 황금다실을
만들어서 갖고 다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정 반대로 검소하고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다도 행위를 전파하여 지금 일본 미의식의 정신적 기초를 닦은 것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도 다완이라고 말하는 조선의 막사발(아래 사진)을 무척 사랑하여, 조선의 막사발을
매우 비싼 값에 사들여서 보관하여 전파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도자기는 너무 화려하여
센노 리큐가 추구하는 와비차의 정신과는 맞지 않아 조선의 도자기를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을 납치하고 조선 도자기를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조선 도자기에 대한 가치는 상등품의 경우 하급 무사의 토지와 녹봉 전체가 다완 하나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다도 예절 중에는 다도에 쓰이는 다구들을
감상하는 시간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다완에 대한 가치를 크게 따졌습니다.
하지만 센토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임진왜란을 끝까지 반대하여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밖에도 와비차라는 다도의식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치적 현실과 목적과는 배치되는 면도 보여줍니다.
(이 사진은 2015년 봄에 다녀온 일본 문화답사여행 1탄 때 히젠 나고야성 바로 옆 다실에서 다도 체험했을 때
제가 받아들었던 다완이었습니다. 이런 다완이야 말로 센노 리큐의 정신과 맞아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센노 리큐는 검소한 다도를 추구하면서 사치에 몰두하는 히데요시에게 임진왜란 반대를 포함하여
사사건건 진언을 하다가 결국 모함을 당해서 자결을 명령 받게 됩니다.
자결 명령의 직접적인 이유는 센노 리큐가 황실의 후원을 받는 대덕사(지금의 다이토쿠지)가
오닌의 난 때 불탄 것을 재건하면서 삼문을 2층로 설계하고 주도하여 만들게 됩니다.
이때 다이토쿠지 산문 2층에 센노 리큐를 본딴 등신대 목상을 만들어 안치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히데요시가 자신의 칙사가 "여기를 지나갈 때 센노 리큐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라는 것이냐!"라며
자결을 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격노하여 목상을 끌어내려 그 목까지 쳐서 저잣거리에 효수하였다고 하는데요.
지금 그 목상은 다시 잘 수습하여 산문 2층에 잘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대덕사(다이토쿠지)는 교토에서 한손에 꼽히는 대규모 사찰로 연이은 탑두사원(같이 붙은 말사 개념)들의
정원이 개성있고 아름다운 곳이 많아 교토 답사 1번지로 꼽히는 곳인데요. 내년 가을에 가볼꺼예요. ^^
아무튼 센노 리큐는 그 밖에도 다기 거래에 부정을 했다는 이유, 그리고 히데요시 말차에 치사량의
독을 센노 리큐가 넣으려 한다는 누군가의 모함까지 덧씌워져서 자신의 저택에 칩거하라는 명령에
이어 할복 명력을 받게 됩니다. 센노 리큐의 제자 중에는 영향력이 큰 다이묘(영주)들이
많았기 때문에 리큐의 탈출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히데요시는 자신의 가신들을 동원해
그의 저택을 포위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센노 리큐의 마지막 다회(茶會)현장 할복 명령을 받아든 센노 리큐는 "자신은 살 만큼 살았다'"며 마지막 다회(茶會)를 열게 됩니다. 슬픔에 젖은 손님들이 약속시간에 정원의 기다리는 공간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기 공간과 다실을 잇는 좁은 통로는 정갈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고, 그동안 맡았던 차향 중에 가장 그윽한 향내가 나고, 손님들이 안으로 청해졌다고 합니다. 어둑하고 단순 검박한 다실엔은 세상의 헛됨을 설파한 고승의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인 리큐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차를 타 주었고, 마침내 최후의 잔을 스스로 마신 후 자신의 다구와 걸개 그림을 손님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마신 자신의 찻잔 만큼은 자기 앞에 남겨두고 남에게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에 의해 더럽혀 졌기 때문에 두번 다시 다른 사람이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그 찻잔을 산산이 깨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가장 가까웠던 한 사람만이 남았을 때 다회의 웃을 벗어 다다미 위에 단정히 접어놓고, 순백색의 자결복장으로 갈아 입습니다. 그리고 피를 토하듯 시 한수를 읊고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날카로운 칼날로 자신을 몸을 그으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보냅니다. |
이렇게 우리가 바라보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갔을까요.
등지원 다실의 쓰쿠바이(蹲踞)입니다.
이는 다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손을 씻고 입을 행구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쓰쿠바이는 이후로 들리게된 용안지(류안지)의 것입니다.
한방울씩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파문에 마음도 함께 떨리네요.
센노 리큐의 정신세계 = 일본적인 미의식의 세계 일본 미의 정신세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센노 리큐가 추구하는 미(美)의 가치를 알게되면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몇자 적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는데, 그중 특히 '리큐 칠철(利休七哲)'로 불리는 인물들이 있었고, 그 제자들에 의해 센노 리큐의 다도 정신이 계승되어 일본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가 최고의 정원 기술자로 소개했던 고보리 엔슈도 이 칠철 중에 한명인 오리베에게 차를 배우면서 센노 리큐의 정신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당대 최고의 문화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센노리큐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오래된 것들이 새로운 것이나 화려한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실천자였습니다. 좀더 본질에 가까운 정신세계 구현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내야 한다고 하였지요. 그래서 방의 아름다움은 천장과 벽으로 이뤄진 빈 공간에 있으므로 방 안의 공간은 최대한 비워두어야 한다고 하고, 건축의 소재는 최대한 소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센노 리큐는 다다미 2장 반의 초막이 다실로써 가장 완벽하고, 방안에는 소박한 족자 하나와 꽃 한송이 꽂을 수 있는 꽃병 하나면 된다고 하였지요. 그의 정신을 살필 수 있는 일화 중에 하나는 좌우 대칭이 완벽한 손잡이가 달린 물병 도자기에서 한쪽 손잡이를 깨뜨려 제거한 후에야 비로서 완벽한 도자기가 되었다 라고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더 높은 완벽함을 위한 불완전성, 완전히 채우기 위한 덜어냄 등을 들 수 있지요. 다시 말해 비어있음이 정신세계의 참모습이라고 설파한 것이지요. 이런 정신은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 미적관념을 나타내는 와비사비(わび・さび(侘・寂)로 연결됩니다. 와비사비는 다양하게 해석되곤 하는데, 대체로 투박하고, 조용하고, 검박하고, 소박한 것을 다 합쳐놓은 것으로 풀이되곤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와비사비란 단어를 자꾸 되뇌이면서 일본의 정원, 건축, 디자인들을 보다보니 이제는 어렴풋이 뭔가 느낌은 오더라고요. ^^ |
센노 리큐가 주장했던 초막(스키야) 다실에서 바라본 등지원의 정원모습입니다.
자유시간에 다들 정원 산책하시느라 흩어졌습니다.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다음에는 숲향기님과 함께 이러고 싶어요. ^^
좀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런 모습의 정원이 기다립니다.
길가의 이끼들은 참 일본스러워요.
이걸 두고 일본사람들은 "흙과 바위, 나무가 뿜어내는 본질적 아름다움"이라는 표현도 하다네요.
숨은 토로 찾기 해보세요. ^^
어디를 대충 촬영해도 그림입니다. ^^
지금처럼 단풍이 덜 든 상태를 와비사비의 정신에 부합시켜보면 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은 반영을 참 좋아하는데요. 쌩유 모델님... ^^
아, 정말 그리운 토지인(등지원)의 정원입니다.
본래는 인근의 키누산을 이 정원으로 차경(배경)하였었는데, 바로 옆에 리츠메이칸 대학이 들어서면서
대학 건물이 그 산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를 높게 키워서 대학 건물을 막았다고 하네요.
도라님의 작품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났지요.
무언가 덜어내야 한다는데, 제 사진은 꽉 차 있네요. 마음을 비워야 하는게야.... T,T
곳곳에서 포즈를 취한 님들도 풍경 속에 그렇게 잘 스며들수가 없었어요.
자연의 위대함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여 함께 아름다워진다는 것이지요.
다음 편 후기에서는 등지원(토지인)의 또하나의 볼거리인 본당인 방장과
무로마치막부의 역대 쇼균과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목상을 모신 영광전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편에 일본의 미의식과 센노리큐 관련 이야기를 쓰면서 제 마음도 차분해 진것 같아요. ^^
첫댓글 토지인에서의 쉼은 이번 여행의 백미 였던듯~~~
툇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정원도 좋았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어요~~~
사람도 꽃이라는 말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를 꽃이라 불러주는 시간이기도 했던 듯 싶습니다.
참으로 그리운 순간이었네요...
발견이님의 센노리큐와 일본의 미의식에 관한 글을 읽으니,2011년 NHK대하드라마의 고우히메의 명장면들이 떠오르는군요!
리큐역의 초연하고,소박하고,깨친자의 모습이 그가 말하는 와비챠의 정신과 하나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자결할 때의 장면도 죽음인데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와비사비의 미적 개념을 상세히 설명해주셔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과 후기 올려주셔 즐거이 읽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죽음의 순간까지도 미학적으로 꾸민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겉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그들의 행태 빗대어서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얼마전 미국감독이 만든 일본영화인 로닌47인가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살짝 떠오르네요. 비장미...
너무 멋진 토지인.......무슨 표현으로 해야 잘하는건지 모르겟네요..그저 감탄사만 나오네요...
토지인의 정원을 걷지 못하고 와서 많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