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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위' 대법 40여 년 유지해온 판결 뒤집어
흑인‧히스패닉계 '타격'…최대 수혜자는 백인 학생
한인 커뮤니티 "아시아계 덕볼지 모르나 백인 들러리"
바이든 "중대한 진보 후퇴"…트럼프 "훌륭한 날"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인종 우대입학 정책) 두고 미 국 연방 대법원 앞 찬반 시위. AP 연합뉴스
미국 대학입시 사정에서 적용하는 소수인종 우대는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십 년의 판례와 중대한 진보를 되돌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도 "인종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거대한 장애물을 놓은 것"이라며 소수인종의 교육 기회를 앗아간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이제 개인 성취를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미국을 위해 훌륭한 날"이라며 "우리는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소수인종 우대입학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에 대해 발언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2023. 06. 29. AP 연합뉴스
'보수 우위' 대법원, 대입 소수인종 우대 위헌 판결
연방 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제도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UNC)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 2, 6대 3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은 '보수 우위' 연방 대법원이 1978년 이래 40여 년 유지해온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SFA는 2014년 두 대학을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선 패소했다.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을 비롯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등 진보 성향 3명의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연방 대법원이 지금처럼 6대 3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된 것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였다.
이에 따라 흑인 민권운동에 힘입어 1961년 소수인종 배려 차원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도입한 이 정책은 62년 만에 미국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며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수십 년 선례와 중대한 진전에 대한 후퇴"라고 비판했고, 잭슨 대법관도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비극"이라고 가세했다.
SFA 창립자로 이번 소송을 주도한 에드워드 블럼은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대학 입시에서 인종적 선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모든 인종과 민족 대다수가 반길 결과"라고 환영했다.
미국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정책 찬성 시위. AP 연합뉴스
흑인‧히스패닉계 '타격'…최대 수혜자는 백인 학생
미국 대학에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도입된 것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계기가 됐다. 그 행정명령에 의하면, '정부 기관들은 지원자의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affirmative)인 조치(action)'를 취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고용 부문에서 차별금지 조치가 이뤄지고, 대학에서는 소수인종 우대입학 정책을 도입했다.
이 정책에 힘입어 미국 주요 대학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의 입학 비율이 올라가는 등 일정 정도 인종 차별을 완화하는 효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입학 사정 때 인종에 따라 사실상 가산점을 주는 이 정책이 백인과 아시아계를 역차별한다는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됐다.
이런 흐름을 타고 공립대 입학 사정 때 인종에 근거한 우대 정책을 금지한 주들도 생겨났다. 지금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로 늘어났다.
이번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수혜자인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직접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실제로 캘리포니아주가 1996년 이 정책을 금지한 후 공립 버클리대에서 흑인‧히스패닉 학생 비중이 50% 가까이 줄고. 한국 등 아시아계 비중은 높아졌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칼럼에서 하버드대가 "적극적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들을 차별했다는 증거가 압도적이라는 것이 핵심 팩트"라며 학업 성적 하위 40%인 흑인 학생의 입학 확률이 상위 10%의 아시아계보다 높다는 다수 의견서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번 판결에 하버드대 흑인학생연합은 "인종을 고려한 입학 제도의 폐지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기여,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워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과 관련해 시위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부분 자리, 아시아계 아닌 백인이 대체할 것"
이런 측면에서 성적이 더 좋지만,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따라 흑인‧히스패닉계에 자리를 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회를 빼앗긴 한국 등 아시아계가 얼마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백인 학생들이 이번 판결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미주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인에게 유리해질 것이란 전망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주 최대 여성 커뮤니티 미씨유에스에이(MissyUSA)의 한 이용자는 "그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불리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백인들을 더 많이 뽑고 싶어 라티노, 흑인들의 자리를 뺏겠다는 것"이라며 "아시아계 학생들 성적이 워낙 높으니 지금 비율보다야 더 뽑힐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백인들 들러리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아시아계 미국인 연합도 성명을 내고 "오늘 결정은 유색인종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제한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흑인, 라티노, 미국 원주민, 태평양계 출신 학생의 거의 절반이 줄어들겠지만, 그 대부분의 자리는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이 대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흑인·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사이의 인종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다른 미씨유에스에이 이용자는 "그렇지 않아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흑백 싸움에 죽어라 아시아인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데, 아시안에 대한 더 많은 증오 범죄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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