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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한 달 동안 푹 쉬고, 6월 28일에 다시 만나자. 그동안 몸만들기 게으르게 하지 말고, 술 작작 먹고! 각자에게 내준 프로그램의 결과는 매 주말마다 컴퓨터로 보고하는 거다. 설마 이 중에 4년 동안 해온 보고서 작성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바보 녀석 따위 없겠지. 하긴, 난 그런 바보 녀석은 가르치지도 않아. 맞지?”
“네!”
“좋아. 우린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거다. 그 점 잊지 말고, 자신감을 갖도록 해. 우린 이제 프리미어리거다!”
“네!”
“됐어. 이제 다들 가 봐. 마음껏 쉬다 오라고.”
“감사합니다!”
크루이노프는 시원섭섭함을 느꼈다. 매 시즌이 끝나고 이렇게 선수들을 돌려보내지만, 이번 시즌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겨우 18명밖에 되지 않는 1군 스쿼드. 2군 선수들과의 수준 차이도 꽤 나는 편이어서 그들은 정말 이를 악물고 뛰어다녀야만 했다. 누구 하나라도 부상당하는 날엔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뛰고 또 뛰었다. 덕분에 18명이 모두 고루 경기를 뛸 수 있었고, 그 덕에 선수들의 실력이 매우 향상된 점은 그 수많은 마이너스 요소들 중에서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빈약한 재정 때문에 반반한 선수 하나도 영입하지 못한 채 그대로 뛰어야만 했기에 크루이노프가 선수들에게 갖는 애정은 남달랐다. 또 감독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선수들도 체스터필드에서 오래 머무르리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겨우 챔피언쉽에 올라섰던 2년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루니의 후계자로 체스터필드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대니 톰슨을 점찍었다는 소문이 퍼질 땐, 그야말로 완전히 뺏겨버릴 줄만 알았다. 덕에 2군과 유소년 팀 스트라이커 선수들이 수시로 1군 라커룸에 들락날락거리기도 했다. 전례 없이 맨체스터의 감독 퀘이로즈와 직접 대면까지 했던 대니 톰슨이지만, 결국 그는 체스터필드에 잔류하기로 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오직 하나, 그들의 보스, 알렉세이 크루이노프 때문이었다. 그의 지도하에 있겠다는 대니 톰슨의 허무맹랑한 발언에 퀘이로즈는 기가 찬다는 듯 일침을 가했다.
“평생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올 것이나 같으냐. 챔피언쉽에도 이제야 간신히 올라온 주제에!”
그러나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시즌 톰슨은 리그에서만 27골을 득점하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체스터필드는 7위라는 정말 아까운 성적으로 승격을 다음 시즌으로 미뤄야만 했다. 자존심 센 유나이티드를 제외한 토튼햄이나 리버풀, 찰튼 같은 구단이 톰슨을 영입하려 기를 썼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팀에 남았다. 체스터필드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로 가겠다면서. 이 정도로 선수들의 팀에 대한, 감독에 대한 충성심은 남달랐다. 크루이노프가 감독이 된 이래로 팀을 빠져나간 선수는 이적, 임대를 모두 합쳐 다섯 명 뿐이다. 이것이 그 증거물이었다.
“하지만, 선수가 너무 부족해요. FA컵, 칼링 컵 모두 지난번엔 일찍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이번엔 올라가야 될 것 아닙니까. 열여덟 명은 정말 너무 부족해요.”
“인정합니다. 인정해. 그래서 이번에 일부 지분을 푼 것 아닙니까. 시민주주들이 벌써 엄청나게 모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십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에서 시민주주들이 많이 모였다는 건.”
“어쨌든 감독, 영입할 만한 선수들은 알아보고 있소?”
“물론이죠. 후버드 구단주님은 돈이나 빨리 마련해 주세요. 영입은 저한테 맡기시고.”
“불안한데. 내가 없어도 될까? 세오나 문 모두, 너무 비싸게 주고 영입해온 선수들이잖소.”
“아! 몇 번을 말합니까. 걔네들은 그 정도 활약을 해주고 있잖아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좀.”
“하하. 그건 그렇지만, 비싸긴 했어. 그렇죠, 리차드슨?”
“그럼요. 비쌌죠. 전혀 검증되지 않아서 워크 퍼밋도 박박 우기고 몇 번이나 빌어야 나올 만한 녀석들한테 6m에 7m이라니. 미친 짓이었죠. 데뷔 시즌에 데뷔 경기 하지도 못하고 짤릴 뻔 했잖아요.”
하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코리안 두 명을 영입하는데 13m이라니. 심하긴 했어. 하지만 녀석들은 그 만큼의 활약을 해 줬다니까!
“뭐, 이제 그건 중요한 건 아니고. 그럼 감독, 혼자 결정하지 말고 리차드슨이나 여러 코치들과 충분히 상의한 끝에 결정하도록 해요. 혼자서 또 거품값 물지 말고.”
“걱정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좋아요. 오늘은 이만 하죠. 일주일 전에 승격했는데, 뭡니까, 이게. 일주일 동안 기쁨은 누리지도 못하고 회의에 회의만 거듭하고 있어요. 어때요. 오늘은 술 한 잔 하죠?”
“좋죠. 리차드슨?”
“난 됐습니다. 만날 사람이 있거든요.”
“에~ 빼긴. 이럴 때나 좀 같이 술 먹어 봅시다. 난 리차드슨이랑 술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감독인 저도 마찬가진데요, 뭐. 어쨌든, 이따 여덟 시에 바에서 만나는 걸로 하죠, 구단주님. 구단주님이 쏘는 걸로 알고 돈 안 가지고 오겠습니다. 이만.”
크루이노프는 익살맞게 허겁지겁 일어났다. 후버드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고, 리차드슨은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나간다.
“아, 리차드슨. 만날 사람이 있다면서?”
“음, 네.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없을 겁니다.”
“좋아, 그럼 내일 알려주쇼. 재미없는 건 진짜 싫으니까.”
“하하. 좋은 소식이나 기대하세요. 어쩌면...”
“아! 재미없는 건 싫다니까. 나 먼저 가 보겠습니다.”
크루이노프는 리차드슨에게 인사를 건네고 클럽 하우스를 빠져 나온다. 승격 때문이리라. 기분이 날아갈 듯 좋고,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볍기만 하다. 물론 다시 두 달 뒤면 프리미어리그라는, 여태껏 마주친 적 없는 가장 큰 산을 만나겠지만, 또 그 높은 산에 부딪혀가며 엄청난 아픔도 겪겠지만, 지금은 그저 좋기만 하다. 어쨌든 남들은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산이니까. 크루이노프는 괜히 혼자 웃으며 체스터필드 시내로 향한다.
BBC, 더 선, 가디언...그 외 수많은 기타 가십 칼럼들은 이적 시장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하루, 아니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새로운 가십이 업데이트 되고 있고, 수많은 갈등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실제 수면은 잠잠한 편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아예 미약한 접촉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이 이렇게 크게 띄워줘야 실제 이적도 성사되곤 하는 법이다.
언론의 이득을 많이 보는 감독이 진짜 영리한 감독이라고 평가받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선수와 감독 간에 실제로 행해지는 거래에선 할 수 없는 일들의 대부분이, 언론을 통해 이뤄지곤 한다. 단적인 예가 첼시의 감독인 호세 무링요이다. 물론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어마어마한 갑부 구단주 덕을 많이 보긴 했지만, 그의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인정받았다. 나중엔 그 자존심 세고 남에게 숙이는 방법을 모른다는 맨체스터의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식장에서, ‘무링요의 천재적인 언론 플레이는 내가 감독생활을 하며 제일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이쯤 되었으니 그는 이미 축구계에선 언론 플레이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잠잠했을 뿐이지, 챔피언쉽과 리그1, 그리고 그 밑의 리그 쪽에서는 - 그러니까, 프리미어리그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곳에서는 - 우리의 보스인 알렉세이 크루이노프 역시 언론 플레이엔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었다.
한 예로, 그는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두 코리안, 서효범과 문의혁을 영입하는데 무려 13m이나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13m 이상의 값어치로 다가왔다. 뭐, 그의 능력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언론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세오와 문에 대해 물어보는 숱한 기자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세오와 문의 성적으로 다가왔다. 작지만 강한 그의 언론 플레이가 두 선수의 자신감 상승과 함께 성적 상승까지 가져다준 것이다.
다른 예를 살펴볼까? 리그 1에서 챔피언쉽으로 승격한 시즌 체스터필드에 합류한 전 ‘에버튼’ 출신 스트라이커, 제이미 맥도널드를 영입할 때 크루이노프는 그를 싼값에 팔아넘긴 에버튼의 감독을 조롱했었다. 한창 전성기의 나이에 있던 맥도널드이긴 했지만, 그의 이적료는 세오의 이적료에 이분의 일(3m)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에버튼의 주전 공격수였던 마크 로세타와 막심 쇼호크츠에게 완전히 밀린 찬밥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체스터필드에 합류하면서 축구 인생의 꽃을 피웠다. 하부 리그로는 절대 이적하지 않겠다는 그를 돌려세운 건 크루이노프의 언론 플레이였다. 선수를 써 주지도 않는 못돼먹은 감독 아래서 계속 뛰느니 차라리 체스터필드에서 화려한 인생을 보내자는. 결국 맥도널드는 칼링 컵 첫 번째 라운드에서 에버튼을 상대로 두 골을 꽂아 넣으며 그들을 침몰시켰다.
드디어 오늘, 7월 1일, 프리미어리그의 이적 시장이 개방된다. 이적 시장은 다른 팀의 감독들과의 머리싸움장이기도 하고, 언론과의 머리싸움장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시즌 드디어 꿈의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은 알렉세이 크루이노프의 언론 플레이가 궁금해진다. ‘지존’ 무링요를 비롯한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감독들은, 너나할 것 없이 꾀 많고 교활한 여우들이다. 과연 'God of Chesterfield', 알렉세이 크루이노프는 어떤 멋진 플레이로 우리를 사로잡을까. 이번 시즌, 필자가 제일 주목하는 점이다.
“이런, 이런. 완전 칭찬 일색이로군. 역시 이 휴즈란 사람, 글 참 잘 쓴단 말이지.”
“그래봐야 이 동네에서만 팔리는 잡지 아닌가.”
“거, 사람 참 퉁명스럽긴. 어쨌든 말입니다. 글은 잘 쓰잖아요.”
“흠, 글쎄요. 내 얘기는 한 줄도 없는 걸 보니 결코 흐름 읽는 눈이 밝은 친구는 아니군.”
“구단주님, 지금 질투하시는 겁니까?”
“뭐, 그럴 리가.”
크루이노프는 웃으며 신문을 탁자 위에 툭 던졌다. 한 달 동안 도대체 어디서 뭘 했나. 후버드의 질문에 그는 대답을 쉽게 해 주지 않았다.
“사람, 뭘 그리 빼고 그러나. 어디 있었어? 한 달 동안.”
“글쎄요. 그냥 이리저리 여행 다녔어요. 왜요, 내 휴간데. 내 마음대로 못 합니까?”
“구단주에게 대드는 꼴 좀 보게? 그러지 말고, 그럼 여행 얘기라도 해 봐. 뭐, 건진 건 없나?”
“여행 가서 건지긴 뭘 건집니까? 낚시하러 다닌 것도 아니고.”
“사람하고는. 농담 따먹기 하는 그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군. 그래서, 진짜로 이 한 달 동안 아무도 못 건졌단 얘긴가?”
“글쎄요.”
이 놈, 분명 하나 건졌군. 후버드 구단주는 그제야 얼굴을 좀 폈다. 이 정도로 뺀다는 건 어쨌든 건지긴 건졌단 소리니까. 그는 잔뜩 기대감에 찬 얼굴로 다시 물었다. 도대체 누구야?
“몰라요. 먼저 일어납니다.”
크루이노프는 언제나 그랬듯 가까운 방문을 열고 빠르게 달려나가 버렸다. 뭐 저딴 감독이 다 있어, 하고 울컥할 법도 했지만 후버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4년 전엔 그랬지만 말이다. 리그 17위에서 19위 사이를 방황하던 그들을 한 시즌 만에 리그 8위까지 끌어올린, 그리고 다음 시즌엔 생각도 못했던 승격까지 시켜버린 감독인데 이 정도야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런 돌발 행동은 매우 잦아서 후버드나 리차드슨이나 모든 스탭들이나, 선수들까지도 모두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다. 어쨌든 그는 곧 다시 이런저런 자료들을 눈앞에 두었다. 다른 구단주 정도라면 부업 따위가 있어 축구팀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후버드는 그렇지 않았다. 축구가 아니면 도무지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그는 각종 스탭들로부터, 감독으로부터, 그리고 선수들로부터 모든 보고를 받았다. 체스터필드를 운영하는 데만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든든한 지지는 체스터필드의 기적 같은 성적 상승에 놀라운 도움이 되었다. 뭐,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녀석들을 영입해야 했다. 이적 시장은 바로 오늘 개방되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쫓기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최고의 무대에 서서 그런 탓일까. 누구도 조그만 체스터필드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급했다. 크루이노프가 건진 선수는 누구인지. 리차드슨도 며칠 전부터 계속 웃고 다니던데 무슨 좋은 선수라도 영입하는 건 아닐는지. 후버드는 정신이 사나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런 증상은 이적 시장이 개방될 때마다 나타났지만, 이번엔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이제까지의 이적 시장에선 어떻게든 우리 선수들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면, 지금의 이적 시장에선 별로 해본 적도 없는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버드는 편두통이 오려고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망할. 선수들 훈련 모습이나 돌아보러 가야겠군. 그러고 보니, 선수들 소집된 뒤 훈련 구경은 한 번도 못했으니까.
“좋아, 몸이 많이 가벼워졌어.”
“뛰어, 뛰어, 뛰어! 니오스키, 더 뛰어!”
“이베르센! 과감하게 오버래핑 들어가야지!”
크루이노프의 훈련은 제법 빡빡했다. 소집된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0대10 게임이라니. 이런 무자비한 훈련에도 암말 않고 따라주는 선수들이 대견스러웠지만,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프리미어리그라는 중압감 때문에 크루이노프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수석코치로써 이런 건 바로바로 조언해줘야 한다. 하지만 올 시즌 크루이노프의 각오는 유독 남달라 보였다. 휴가를 즐기는 동안 어디 가서 뭘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이 비장해졌다. 혹여 그런 비장감이 페이스를 망치는 건 아닐까? 전에 없던 이런 빡빡한 훈련을 선수들이 소화해낼 수 있을까.
“리차드슨, 너무 심한 것 같지?”
“에? 음,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좀 심하지 않아요?”
“심하죠. 심한데, 이제 이 정도는 해야지. 프리미어리건데.”
“프리미어리그라고 지금까지의 리그랑 다를 게 뭐 있습니까.”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감독님.
“올 시즌은 칼링 컵이라든지 FA컵에도 더 신경을 쏟을 생각이라서...체력적으로 조금 힘들더라도 빡세게 시키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당장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힘들 테니까. 칼링 컵이나 FA컵은 애들 사기 높여주고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최고의 방법이에요. 그 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우선 목푭니다. 물론 강등 면하는 건 당연한 거고.”
흠. 칼링 컵, FA컵. 물론 리그보다 이런 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훨씬 쉽긴 하다. 역대 칼링 컵이라든지 FA컵의 우승자를 보면, 또 그 과정을 보면, 챔피언쉽의 팀이나 이제 막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온 팀들의 놀라운 성적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유독 약팀이라고 평가받는 팀들이 자신의 실력을 120% 발휘하는 곳이 바로 컵 대회이다. 그런 면에서 크루이노프는 칼링 컵과 FA컵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욕심이 이해가 간다.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그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감독으로선 분명히 중압감에 눌리게 되겠지. 지금껏 4년간 탄탄대로를 거침없이 달려 왔으니까. 그는 리그 1에서, 챔피언쉽에서, 항상 성공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팬들은 프리미어리그에 남기만 해도 그건 대단한 성공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뭔가 보여줘야만 한다는 부담감. 그것은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크루이노프가, 처음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느긋하게 생각해요. 이럴 땐.”
이틀 뒤, 어김없이 빡빡한 훈련이 끝나고 나서 그를 바로 불러 낸 리차드슨은 맥주를 가볍게 마시며 말했다. 크루이노프는 그제야 멋쩍게 웃는다.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다. 자기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걸. 뭔가 기분을 풀어주고, 느긋한 생각을 갖게 해줄 거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리차드슨은 오늘, 그 ‘거리’라는 선물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뭐 준비한 거 있지? 평소 나랑 이런데 절대 안 오는 리차드슨이 나를 여기로 불러냈다는 건 뭔가 있어. 뭡니까?”
“역시 눈치 하나는 빨라요. 눈치로 감독 해 먹은 줄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뭔데 그래? 흐흐흐. 멋진 와인을 세트로 준비해 놨나?”
“그럴 리가.”
마침 리차드슨의 팬드폰이 울렸다. ‘그래, 들어와.’ 리차드슨은 낮게 대답했다. 크루이노프는 금방 알아챘다. 한 명 됐구나.
크루이노프가 문 쪽을 향해 돌아앉자, 리차드슨은 장난스럽게 그의 시야를 가렸다. 얄밉네. 누군데 그래?, 하는 크루이노프의 물음에 리차드슨은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다. 저 쪽 입구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오오, 슈퍼스타인가? 웬일이야, 이게. 체스터필드에도 드디어 슈퍼스타가 들어오는가 본데?”
“기다리십쇼. 데려올 테니.”
리차드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한다. 동작이 빠른 사람들은 벌써부터 바텐더에게 펜이고 종이고를 빌려서 그의 앞에 들이대고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낀 채 멋쩍게 웃으며 리차드슨을 부른다.
“리차드슨! 도와줘요.”
“인기 하고는. 빨리 이쪽으로 와. 바텐더! 이쪽으로 팬들이 몰려드는 건 좀 막아 줘요. 부탁합니다.”
리차드슨은 황급히 그를 끌고 자리로 돌아갔다. 유럽에선 드물게 ‘방’형식으로 되어 있는 그들의 자리는 거의 체스터필드 구단의 자리라고 봐도 다름없는 곳이었다. 체스터필드 선수들이 바에서 간단히 술을 한 잔 하거나 조용히 있고 싶을 땐 이곳을 이용했다. 바텐더들도 이쪽으로 일반인이 들어가는 것을 자제시켰고, 또 팬들도 스스로 자제하곤 했다.
“자. 크루이노프 감독님. 선물이에요. 체스터필드의 첫 번째 영입 타깃이죠.”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그는 예의바르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크루이노프는 어안이 벙벙한 채 리차드슨에게 되물었다.
“이 친구가 진짜 우리 팀에 들어온다고?”
“뭐,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너무 얼 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리차드슨은 어리벙벙한 크루이노프의 표정을 보고 한바탕 웃었다. 리차드슨을 따라온 선수도 웃음을 참고 있었는지, 그제야 따라 웃는다. 크루이노프도 슬쩍 따라서 웃었다. 지금 눈앞의 이 선수를 믿을 수 없었다.
“빨리 계약하죠. 난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하하하, 스티드. 앉자마자 바로 계약하자니, 자네답군.”
“물론이죠. 돈 문제로 질질 끄는 건 그야말로 성격에 정말 안 맞는 일이거든요.”
“...”
“뭐 해요, 감독님? 계약하자는데?”
리차드슨은 놀리듯이 물었다. 도대체 왜? 라는 표정이 가시질 않은 채 여전히 멀뚱히 앉아 있기만 한 크루이노프의 모습은, 분명히 웃겼다.
“여기서 얘기할 문제가 아닌가요? 그럼 클럽 하우스로 가죠. 아직 일곱 시밖에 안 됐으니까, 충분해요. 빨리빨리 가자니까요.”
“그러지 뭐. 감독님, 일어나요.”
“그래.”
어이, 우리 감독. 완전히 넋을 잃었는데? 너를 사랑하고 있기라도 했나? 크크크. 리차드슨이 스티드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스티드는 픽 하고 웃었다. 크루이노프가 뭔가 들은 듯한 표정으로 리차드슨을 노려봤지만, 그와 스티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먼저 걸어 나간다.
후버드 구단주의 얼이 빠진 모습에 크루이노프는 ‘내가 아까 저랬냐?’ 라며 리차드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리차드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계약서 주세요. 에이전트량 계약도 파기한지 꽤 돼서, 내가 해야 돼요.”
“좋습니다. 자...조금만 기다리세요. 비서실에 프린트 요청을 했으니까.”
“만족스럽군요.”
스티드는 계속해서 빼면서, 크루이노프와 후버드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체스터필드로 온 이유’를 얘기하지 않고 있다. 조금 뒤, 비서가 계약서를 들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며 뒤로 헛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며, 후버드와 크루이노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모습도 저랬으리라.
마침내 스티드는 사인까지 하고 후버드 구단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후버드는 행여나 놓칠까 싶어 얼른 손을 잡았다. 계약 끝. 스티드는 웃으며 돌아섰다.
“감독님, 제 숙소랑 라커 정도는 구경시켜 주시죠?”
“스티드. 그 전에, 이리로 온 이유 정도는 밝혀 드려야지.”
리차드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크루이노프는 원망의 눈길을 보낸다. 그동안 쭉 이걸 말하라고 눈치를 줬건만, 계약까지 끝내고 악수까지 하고 나서야 물어보다니.
“아, 그거요? 음...뭐, 프리미어리그에서 축구 인생을 마감한다느니, 뭐 이런 말들도 있겠지만...그냥요. 어차피 마지막 시즌이 될 것 같은데 강등권 팀에서 한 번 뛰어보는 것도 괜찮잖아요? 뭐, 이 팀엔 리차드슨도 있고.”
“리차드슨?”
“네. 좀 친했죠. 리옹에서 스카우터로 있었거든요, 리차드슨이.”
“정말? 왜 우린 몰랐지?”
“어쨌든, 그때부터 친했어요. 제가 리옹에서 풀햄으로 이적하던 시즌에 리차드슨도 같이 팀을 옮겼죠. 이곳 체스터필드로요. 그냥 옛정도 있고 해서, 한 번 뛰어보고 싶었어요. 한 달 전인가, 리차드슨이 연락을 했고, 안 그래도 은퇴나 할까 하던 차였거든요. 프랑스 리그도 점점 질려가던 차에. 내 나이 36인데 리차드슨이 내가 꼭 필요하다나요. 그래서 왔습니다.”
크루이노프와 후버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달 전이라...한 달 전...
“그래! 리차드슨, 미리 알면 재미없을 거라는 게 이거요? 스티드를 영입하는 데 미리 알면 재미없을 거라고? 왜! 난 좋아서 떠다녔을 것 같은데!”
크루이노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리차드슨은 하하 웃으며 스티드의 손을 잡고 회의실에서 나가며 말한다.
“감독님은 널 소개시켜 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오늘은 숙소만 구경해. 내일 선수들과 인사하고, 기자회견하고, 훈련장, 클럽하우스 둘러보고. 할 일이 많으니까. 구단주님, 비서실에 연락해서 기자회견 준비시키겠습니다.”
“...”
후버드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리차드슨과 스티드가 나가고 난 뒤, 크루이노프와 후버드 사이엔 몇분 간 정적이 흘렀다.
“...잘 됐어요! 그렇죠! 리차드슨이 선수를 치긴 했지만, 잘 됐습니다! 안 그래도 팀이 너무 젊어서 프리미어리그에 올라가면 노련미에 완전히 말려버릴 것 같은 게 걱정이었는데! 스티드, 스티드 말브랑크라니! 리차드슨이 말브랑크와 친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구단주님, 구단주님도 알죠? 2010월드컵이랑 유로 2012에서 보여준 말브랑크의 활약. 대박이에요! 대박이라고요!”
크루이노프는 하하 웃으며, 후버드에게 물어본 대답은 들을 생각도 않고 방문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제야 후버드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 스티드 말브랑크! 그가 체스터필드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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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끊기가 어색해서...=_ =; 그냥 비축분까지 질렀습니다...
첫댓글 굿
감사함니다'ㅁ'
아 누군가 했네 말브랑크였구나...... 그나저나 중간에 리차드슨의 팬드폰 압박
그정도 오타는 애교=_ㅁ
진짜, 대박재밌네요-,-b
감사합니다+_+!!
ㅎㅎ 재밌네요 근디 승격하기 전에 7위에요 ?8위에요 ?ㅎㅎ
7위요ㅇㅅㅇ 챔피언쉽은 6위부터 플레이오프로 승격 정하죠ㅇㅍㅇ
리그 17위에서 19위 사이를 방황하던 그들을 한 시즌 만에 리그 8위까지 끌어올린, 그리고 다음 시즌엔 생각도 못했던 승격까지 시켜버린 감독인데 <---- ㅎㅎ 여기선 8위라고 ㅎ
그건 리그1에서구요 ㅎㅎ 리그1 첫시즌 ->8위, 둘째시즌 ->승격. 셋째시즌 ->챔피언쉽 7위, 넷째시즌 -> 프리미어리그 승격. 헷갈리셨다면 죄송해요 -
내려오는데 조금 걸렸네요. 기대된다는..
비축분까지 지른 덕분이죠...다음부터 이렇게 길진 않을것 같네요+_+
재밌어요 ㅋ
감사합니다'ㅁ'
말브랑크 구나. 기대 되요. 이번에는 제발 끝내시길- ㅠ
앗앗앗 세이탈히디스옹이닷
가상선수인가 했는데 말브랑크였네=_=
에헤 속였다 ㅇㅍㅇ
이사람이 진짜!! 새로운글도 물론 좋지만!! 예전글들은?? 다시 읽어보지도 못하게 다 지워버리고...ㅜㅜ 제발 완결 소설 한번 보고 싶다!!
제가 안지웠어요 ㅇㅂㅇ!! 어느날 갑자기 뿅하고 사라졌음!! 아무래도 다음 시스템의 오류였던듯해요-_-; 제가 안지웠단말입니다!!
헉...체스터필드ㅠㅠ...fm하면 무조건 체스터필드시작하는데ㅋㅋㅋ 글잼나게 볼게요...고고 체스터필드~~데볼라선수나 허스트선수는 안나오나요?
2016-17 시즌이라서요...완전 새 선수들로 구성했습니다. 폴란 선수 같은 경우는 이름만 따왔죠. Folan..
컹 폴란ㅋㅋㅋ..2시즌 데리고 있다가 팔아버린 녀석 헤딩머신이긴 한데 결정력쥐쥐
헤딩 대박이죠=_= 근데 여기선 스타일을 바꿨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