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父 이름은 이상우 1907 년생이다.
그는 21 세 때 일본으로 아내를 데리고 건너가 이명박씨를 비롯하여 다섯명의 자식을 나고 기르다가 이명박씨가 6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일본이 미국으로 부터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한 다음 해 1946 년까지 일본에서 살다 포항으로 귀국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이명박이란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지만, 한국에서는 명박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승만,정희,두환,태우,영삼,대중 등 이런 이름을 쓰는 일본인은 없다.
이명박씨는 1941 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 났는데 일본 호적에는 이명박씨가 어떤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 이명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일본토박이 “수모모 아키히로(あきひろ)”였던 것이다.
아키히로(あきひろ)란 이름은 일본에서 한국의 김씨처럼 많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明博 이란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부친이 무슨 마음으로 明博 이라 지었을까 ?
이명박씨의 형제들을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이상득,이상연,막내 이상필 등 모두 상 자 돌림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막내 이상필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인데도,
상자 돌림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
하지만, 유독 이명박씨만은 완전 일본인 이름을 지금도 쓰고 있다.
다음은 아키히로(明博)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들을 인터넷에서 아주 일부만 발췌한 것들입니다.
吉田明博:일본의 에프씨 요코하마 야구선수
(よしだ あきひろ=요시다 아키히로)
初鹿明博:일본의 민주당 정치인, 동경 도의회의원 간사장 대행
(はつしか あきひろ)
川又明博:일본 성성대학 졸,음악교사
(かわまた あきひろ)
三浦明博:일본의 문인 작가, 명치대 졸
(みうら あきひろ)
木島明博:일본 동북대 졸,농학박사
(きじま あきひろ)
森澤明博:조도전대학 공학부 졸, 주식회사 일건 설계부장
(もりさわ あきひろ)
浜田明博:일본 홍전시 청소년문제 위원
(はまだ あきひろ)
中村明博:동경 지방재판소 서기관
(なかむら あきひろ)
沼田明博:일립 시의회 의원
(ぬまた あきひろ)
小林明博:일본 동북대 졸, 의학박사
(こばやし あきひろ)
伊藤明博:일본 북해도대학 졸,동경대 부속병원 의사
(いとう あきひろ)
成松明博:일본 미츠비시 미국지사 사장
(なりまつ あきひろ)
蓮井明博:일본은행 지점장
(はすい あきひろ)
一宮明博:일본 대마시 시의회 위원
(いちのみや あきひろ)
松村明博:일본 경도시 사회복지 협의회 대표
(まつむら あきひろ)
上山明博;일본의 저술가
(うえやま あきひろ)
宗心明博:일본 웅본시 도시정비국 과장
(そうしん あきひろ)
田井村明博:일본 운동생리학 교수,의학박사
(たいむら あきひろ)
田中館明博:일본 북리대 조교수
(たなかだて あきひろ)
福島 明博 :일본의 사진작가
( ふくしま あきひろ)
이명박씨는 고려 대학을 다니던 중에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수교 협정을 반대하는 학생좌익 데모에 가담하고, 63 년에 징병 검사에서 영양 실조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기피 하였다.
1961 년 징병 검사에서 갑종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63 년도에는 석연치 않는 단순질병 (영양실조)으로 귀가 조치를 받을수 있는가 ?
또 64 년도에는 아예 고의로 병역을 기피하고 다니다가 65 년도에
병종으로 제 2 국민역으로 활동성 폐결핵과 기관지 확장증으로 다시 귀가 조치 면제를 받는다.
65 년도에 현대 건설 신입 사원으로 들어간 이명박은 현대 건설의 강릉 신입사원 환영 대회에서,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여 고 정주영 회장과 단둘이 끝까지 남아 술을 대작하기도 하였다.
기관지 확장증과 활동성 폐결핵 환자에게 술은 독약과도 같다.
좌우지간 예나 지금이나 한총련 등 운동권에서는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갖가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심지어는 군대를 안갈려고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들 중에서 보면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70 년대 결핵은 지금의 암과 같이 무서운 질병이었다.
또 약이 너무나도 독해서 속을 깍아 내리기까지 하였다.
기관지 확장증은 지금도 완치하기 매우 어려운 질병이다.
보통 최하 2 년을 치료해도 낫기가 힘든 것이 결핵이었다.
최초 신체 검사 받을때는 갑종을 받고 현역 입영 대상이었던 이명박씨가 왜 병역을 기피하였으며, 63 년도에는 왜 또 영양실조라는 이유로 재신검 대상이 되었으나, 64 년 다시 입영 기피를 하다가 자원 입대 형식을 빌려, 65 년에 결핵과 확장성 기관지 걸린 사람이 면제를 받자마자 현대 건설에 입사를 한다 ?
이런 기막힌 방법을 그 누가 알았으리..
아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
군대가기 싫으면 이명박씨에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
6.3 동지회 회장이 바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도 보면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다.
또 왜 열우당과 민노당에서 이명박을 더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
그토록 이명박을 감싸고 돌았던,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 시절부터 운동권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것이다.
언제까지 이 나라가 운동권이 설치는 나라 되어야 하는지 그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심판에 달려 있으니, 또 한번 속을 수도 있다.
이제는 한총련과 전대협을 넘어서서 6.3 왕국을 건설할 것인가 ?
이 것이 나라의 큰 문제라면 문제이다.
그래서 이명박씨는 이회창 전 총재보다 노무현이 좋다고 했던가?
노무현이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했던 발언과 비교하면 될 것이다.
학생 운동을 하고 반정부 데모 경력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너무나 설치고 다니며, 결국 이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는 제발 운동권 출신 대통령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데모하고 반정부 투쟁한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
당시 60 년대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비일비재 하던 때였다. 그 때 당시 대학에 다닌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며, 배가 불러서 굶어 죽는 국민들은 아랑곳 않고 이념 투쟁의 데모만 하였던 것이다.
이명박씨의 주장에 의하면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 단칸방에서 힘든 고생을 하며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사정은 이명박씨 혼자만 겪은 것이 아니고 그 때 당시 모든 국민들이 겪었던 일이며 심지어 소나무 껍질로 밥을 해 먹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명박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혼자만 고생한 것이 아니다.
글 쓰는 사람도 이명박씨 보다 17 년 젊었는데도 쌀밥 구경하기가
힘들었고 우동,국수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면 행복 했었다.
그렇게 서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한,일 수교 회담을 굴욕적이라며 학생 데모를 하였으니 이명박씨는 그때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명박씨는 현대 건설의 토목 공사장에서 샐러리맨으로 출발하여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1977 년에 현대 건설 최고 경영자에 발탁됨으로서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며 1992 년을 마지막으로 현대 건설을 떠나게 된다.
1992 년 민자당 간판으로 국회 의원이 되었으나, 1993 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앞두고서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것을 바로 권력이냐 재물이냐를 선택해야 하던 중요한 시기였다.
이명박의원 서초동
• 반값에 서둘러 팔았다 • 평당 2천5백만원을 천2백75만원에 • 재산공개 앞두고 서울변호사회 매입 |
발행일 : 1993.06.23 / 30 면 |
이명박민자당의원의 서초동 금싸라기땅이 헐값에 팔렸다.
매물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8의1과 1718의2, 서초동 검찰청사 바로 앞 4백70평 대지. 매수자는 이 땅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회관건물을 갖고 있는 서울 지방변호사회.
매매흥정이 시작된 것은 지난달 중순. 서울변호사회의 김창국회장은 당시 변호사회 직원으로부터 "재산공개파동때 이의원의 서초동 땅이 평당 4천만원선 으로 보도되자 이의원이 평당 1천만원 밖에 안나간다 고 반박했다"는 말을 들었다.
회관건물신축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김회장은 즉시 이의원측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의원측은 "당시 기자들에게 1천만원이 아니라 2천만원이라고 했다"며 그 이하로는 안판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이의원측은 평당 1천5백만원선을 제의해왔다. 결국 지난달 말 이의원과 김회장의 직접 대좌끝에 평당 1천2백75만원에 계약이 체결됐으며, 서울변호사회는 21일 임시총회에서 계약을 최종 승인했다.
이 땅의 공시지가는 평당 2천4백만원. 관할 서초구청에서도 너무 낮다며 허가를 주저했더 매매였던 것이다.
여기서 이명박씨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다.
공직자였을 당시에는 재산 공개 파동으로 자신의 금싸라기 땅을 헐값으로 처분 하면서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마자 바로 재산을 다시 늘리려다 주가조작과 사기 사건에 연류된다.
1993 년 재산 공개 파동때 손해까지 보면서 소위 부동산 땡처리를 한, 이명박씨는 1998 년 부정 선거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재벌 부럽지 않은 고급 실업자로 전전하다,
2000 년에e - BANK 라는 증권 투자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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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미모의 여 변호사가 연루된 에리카 김 사건이다.
지난 95년 에리카 김 변호사의 자서전격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회에 참석한 이명박 씨가 김 씨 부모님과 함께 케익을 커팅.
때는 1994 년 이명박씨는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미국 LA 를 방문하게 되고, 여기서 에리카 김이란 미모의 여성을 만나서 이상야릇한 춤을 함께 함으로서 악연이 시작된다.
당시 에리카 김은 유부녀였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하게 퍼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후로 에리카 김은 한국을 자주 왕래하였고, 이명박씨 덕분으로 뜨기 시작한다.
<재미 변호사 에리카 김의 라이프 스토리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자서전 격에 에세이집을 출간해 한국 각종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기 시작했던 때도 이 무렵쯤이다.
지난 95년 10월 11일 서울의 힐튼 호텔에서 있었던 출판기념회에는 한국에서 ‘내 노라’ 하는 거물 정치인들이 ‘에리카 김 변호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대거 참석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이 날 참석한 정치인들은 꼽자면 강영훈 대한 적십자사 총재, 서영훈 공선련 사임대표, 홍인길 청와대 정무수석,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을 비롯 김덕룡, 이명박, 최영한(최불암), 구천서, 강인섭 의원과 김원기 민주당 고문, 허진석 대한주택 건설협회 회장 등 거물급 인사 2백 여 명이 참석해 사진을 찍는 등 거창하게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언론의 집중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씨는 에리카 김 변호사와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고, 그 리얼한 장면이 KBS 아침마당 프로에서 방영되었다.
그 때 에리카 김 변호사의 나이가 불과 30살 전 후였으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인 지난 74년 이민을 와 명문 코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에리카 김 씨 변호사는 이렇듯 순식간에 한국의 거물급 인사들과 연분을 맺고 있는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부터 서서히 이명박 씨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씨가 김 변호사의 후원자라는 설이 조금씩 신빙성 있게 흘러나왔던 것이다. 이후 에리카 김 변호사의 유명세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자 서영훈 씨는 이를 두고 “저렇게 설치면 한국 정치인들이 가만 두지않을 텐데,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을 그만 둔 이명박 씨는 두문불출을 거듭하던 중에 지난 2000년 e 뱅크 투자증권 회사를 설립 하였고, 에리카 김 동생인 김경준 씨가 전격 대표이사로 발탁되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바지 사장인 셈이다.
이명박 씨와 김경준 씨, 그리고 에리카 김 변호사는 본래부터 사업 파트너였다는 사실이 이미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세 사람은 LK e 뱅크라는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그 밑에 하위 파트너로 e 뱅크증권 / BBK / 하나은행 / 자동차 보험사 등을 엮는 거대한 사이버 금융 거래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주 회사 격인 LK e 뱅크의 L은 이명박 씨, K는 김경준 / 에리카 김 남매의 이니셜은 따 설립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씨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계설’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이 같은 점이 ‘이명박 서울시장 공모설’의 근원지로 대두되고 있는 역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 초 증권가에 솔깃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광주은행에 자회사 격인 (주)뉴비젼벤쳐캐피탈(종목코드 022780)이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 M&A 된다”는 호재성 뉴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001년 4월 27일 (주)뉴비젼벤쳐캐피탈 사는 ㈜옵셔널벤쳐스 코리아로 상호를 바꿔달고 새 주인을 맞았다.
이사진 8 인이 전원 미 시민권자들인 외국인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실상 내면을 살펴보면 1.5세 격인 김경준 대표와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가 이사진에 포함된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더욱이 이명박 씨가 이 회사의 대주주이며 회장이라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2001년 상반기에 가장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인 종목으로 즉 ‘황제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옵셔널 벤쳐스(022780)’라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거래가 재개된 이 회사 주식은 이 같은 소문이 사실화되는 과정에서 단기 3개월 만에 800%대의 고공행진(1,000원대에서 8,000원대에 육박)을 벌이며 ‘화제주’로 떠올랐던 것이다.
검찰은 앞으로 김씨를 상대로 500억원대 사기사건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 헤칠 것이다. 그런데 2000~2001년 당시 김씨와 이 시장 사이에 고구마 덩굴처럼 얽혀 있는 행적엔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다.
이명박 100억대 소송 진행중
두 사람은 사이버뱅크 투자증권회사 LKe-뱅크를 설립, 2000년 2월18일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이 때 두 번째 소송 법정 대리인인 전 현대종금 대표이사 김백준씨가 이사로 등재된다.
회사 설립 초기자본 30억원은 이 시장이 부담했다.
김씨는 2000년 6월15일 1차증자 과정에서 30억원을 부담했고, 하나은행이 ‘외부감사를 선임하고, 회계장부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5억원을 투자했다. 두 차례의 증자를 거친 LKe-뱅크의 자본금은 6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서 두 번째 소송 사건이 발생한다.
이명박씨와 동업을 시작할 무렵 김씨는 BBK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이하 BBK)의 대표이사였는데, 2001년 3월 금감원으로부터 김씨가 조사를 받게 된다. 금감원은 김씨가 BBK 대표 시절 역외펀드 운용보고서 허위기재, 자금유용 등의 혐의로 대표이사 해임권고 및 등록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 시장과 김씨는 2001년 4월18일 LKe-뱅크 대표이사직에서 동시 사임했다.
김씨가 불러올 파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 번째 사건에 등장하는 (주)다스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대부기공의 후신인 다스는 이 시장의 친형인 이상은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고, 최대주주는 이 시장의 처남 김재정씨다.
이명박 친형도 거액 투자
당시 자본금 29억8,000만원이었던 다스는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김씨가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BBK와 무려 190억원의 ‘장기투자 일임계약’을 체결했다. LKe-뱅크가 설립된 지 한달이 지나서다.
이후 BBK는 김씨를 해임시켰고,
다스는 투자금 190억원 가운데 50억원만 회수하게 된다.
이 사건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다스가 김씨에게 투자할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과 김씨가 LKe-뱅크를 매개로 한 동업자 관계였다.
이 시장이 다스가 김씨에게 투자한 ‘배경’이 아니냐는 의혹이 남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이 시장과 김씨가 연관된 또 다른 사건이 다스 사건 이전 불거졌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7일, 이명박씨와 김씨가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된 사건이 있었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심텍을 상대로 50억원대의 투자사기를 벌였다는 혐의다.
당시 심텍은 김씨가 BBK 대표이사 시절인 2000년 말 심텍과 일임자문 계약을 맺고 50억원의 투자자금을 유치한 뒤 2001년 4월 BBK가 등록 취소된 이후 20억원만 돌려주고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12월7일 검찰에 긴급 체포됐고, 그는 이달 20일 도미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당시 심텍의 주장이다. “BBK가 자금을 유치할 때 이명박 전의원과 김씨를 각각 회장과 사장으로 명기한 자료를 제시한 만큼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이는 BBK와 법적으로 무관한 이 전시장까지 고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심텍은 이 시장 소유의 서초동 부동산도 가압류했으며, 검찰은 이 시장의 혐의가 드러날 경우 소환 대상임을 밝혔다.
당시 LKe-뱅크의 실패로 모든 대외활동을 접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던 이 시장은 “돈 문제는 심텍과 BBK간의 일이며 본인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이 설립한 LKe-뱅크에 김씨가 지분을 출자하면서 알게 됐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심텍의 주장은 달랐다. 애초부터 이 전시장을 보고 맡겼으며, 2000년 9월 자사 직원이 BBK를 방문,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에도 이 전시장이 동석했다고 주장했다.
200억원대 횡령 후 도미
김씨측은 두 개의 소송과 관련 “이명박씨가 은근슬쩍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반대의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이 전시장과 김씨. 과연 진실은 어느 쪽에 가까운 걸까.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미국 FBI 에 체포된 김경준씨.
조사 결과가 나오면 명확하게 밝혀지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내일 모레 나이 70 이신 이명박씨는 공시지가 200 억 시가 수천억원의 대부호임에도 재물에 욕심내다 사고를 친 것 아니던가 , 부귀와 명예 그것으로도 모자라 권력까지 욕심 부린다면, 그 욕심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
고기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말이 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씨가 돈이 없어서 자식들과 친인척은 물론이고, 측근들까지 벌떼처럼 달려 들어 부정을 하였겠는가 ?
필리핀의 마르코스, 태국의 탁신, 이라크의 후세인이 돈이 없어서 부정 부패로 축재를 하다 나라를 망치고 쫒겨난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다 고기 맛을 잘 알고 먹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아무리 월급을 적선한다고 해도
결국 그 주머니 털어서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
이명박 시장의 직계 가족들도 구설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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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서 축구 운동보 차림의 남성이 이명박 시장의 막내 아들 시형 씨이고, 양복 정장차림이 이 시장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상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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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장에게는 1남 3녀가 있다.
이들 중 막내인 아들 시형 씨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차례 구설수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시장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이명박 시장이 2002년 월드컵 개최성공 공식행사에서 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 받던 히딩크 감독에게 막내 아들과 사위를 단독으로 소개하기 위하여 무대 위로 불러 올려서 친인척을 너무 감싼다고 비난을
한바탕 홍역아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시장은 잘 알려진 대로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과 사돈지간이다. 조양래 회장의 차남 현범 씨가 바로 이 시장의 사위다.
이 시장의 다른 사위로는 수원지검 여주지청 이상주 검사가 있다.
월간지 신동아는 지난 2002년 1월 호에서 '법조계 인사와 정재계의 인맥도'를 소개하는 한 기사를 통해 이상주 검사의 장인이 이명박 시장임을 밝히고, 이 시장의 약력 란에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아태환경NGO 한국본부 총재, 이뱅크 증권중개 대표이사라고 한다.
서울의 일반 시민이었다면 그 무대에 과연 올라갈 수 있었을까 ?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이명박 시장을 보고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
대학 운동권 시절에 카스트로란 별명답게 ..
이명박 前 시장의 재치(?) 넘치는 사건이 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 5 공화국의 정부를 이끌었으며..
광주를 무력 진압 하였던 전두환 초대 사건이다.
↑시사저널은 9월 26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서울시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만은 없는 손님이 지난 토요일 찾아왔다”고 주말에 있었던 전 씨 내외와 이 시장의 ‘청계천 투어’를 보도했다. ⓒ 시사저널
청계천 복원과 관련 이명박 서울시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내외를 초청해놓고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냥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청계천 완공을 전후로 이 시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전·현직 거물 정치인과 서울지역 신문사 사장단, 편집·보도국장단 초청, 지방언론사 사장단·논설위원 등 줄잡아 4000여명의 영향력 있는 인사를 초청했다.
이 때문에 단순한 홍보를 넘어선 의도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더구나 지난 9월 24일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방문했을 때는 이 시장은 전 씨 내외와의 ‘청계천 투어’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져 걷는 등 ‘반갑지 않은 손님’인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시사저널도 9월 26일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서울시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만은 없는 손님이 지난 토요일 찾아왔다. 전 씨 내외는 서울시에 미리 동아일보 앞 청계천 시작 지점부터 구경하고 싶다고 통보한 터였다”라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VIP가 찾아오면 자신이 앞장서서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설명하곤 하던 이명박 서울시장도 이 날 만큼은 전씨 내외와 30미터쯤 거리를 두고 걸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완전히 잘못 알려진 것.
전 씨 내외가 청계천 방문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이 시장이 전 씨 내외를 초청했고 청계천 투어 직전에는 서로 웃으며 저녁식사와 술까지 함께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전 씨는 기분이 좋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고 평소 술을 잘 하지 않던 이 시장도 상당량의 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자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플러스 암니옴니(이하 ‘암니옴니’)’에 따르면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은 먼저 전 씨가 방문을 희망했고 이 시장은 어쩔 수 없이 청계천 투어를 함께 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잘못됐다”며 “서울시 정무부시장실에 물어보라. 답이 딱 나온다”고 서울시의 주장과는 다른 말을 했다.
이에 MBC가 취재를 시작하자 서울시는 뒤늦게 이명박 시장이 전 씨 내외를 초대했다고 말을 바꿨다.
더군다나 전 씨와 이 시장은 청계천을 둘러보기 직전 인근의 한 고급 한정식집에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전 씨는 술에 취해 몸을 그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고 평소 술을 거의 하지 않는 이 시장도 이날만큼은 술을 많이 마셨다고 MBC는 보도했다.
당시 한정식집의 식당 종업원도 “(두 사람이) 아주 분위기 좋게 식사 잘 하고 청계천을 돌아보러 갔다”고 증언했다.
시사저널도 26일자 보도에서 “항상 씩씩한 모습이던 전 씨는 이날 몸이 불편한 듯 보였다”며 “네티즌 사이에서는 전 씨가 이날 몸이 아팠던 게 아니라 이명박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과 저녁을 하면서 술을 과하게 마신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얘기도 떠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들과 기자들 앞에 서자 두 사람의 좋았던 분위기는 달라진다. 이 시장과 전 씨 내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둥 뚝 떨어져 따로 걷기 시작한 것. 이 시장은 전 씨가 떠날 때가 돼서야 공개적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을 찾아온 대부분의 인사들에게 직접 나와서 브리핑을 했는데 전 대통령 부부가 왔을 때는 직접 브리핑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비켜갔다”며 “이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인사에 한해서는 시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부분이다”고 이 시장의 이중적 행태를 꼬집었다.
열린우리당도 “이번 일을 통해 이명박 시장이 갖고 있는 ‘오만함’과 ‘얄팍함’의 이중성을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영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8일 ‘이명박 시장의 이상한(?) 전두환 전 대통령 초대’ 제하의 논평에서 “오만에 빠져 청계천을 자신의 소유물인양 자랑하고 싶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초대해 놓고 한편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담스러워 초대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며 이 시장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그는 “청계천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 되찾아온 것이지 이명박 시장의 홍보도구가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의 ‘청계천은 먼저 전 씨가 방문을 희망했고 이 시장은 어쩔 수 없이 청계천 투어를 함께 했다’는 주장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잘못됐다”며 “서울시 정무부시장실에 물어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는 결국 이 시장이 전 씨 내외를 초대했다.
이런 이명박 시장의 이중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만약 이명박씨가 불교 신자이고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을 부처님께 공양 한다고 할 것이 아닌가 ?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선전,선동, 특히 운동권 대통령은 그만 두어야 한다.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
흐르는 역사 속에서 서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하며,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서울시 교통 카드 회사는 사돈 관계.
자신과 사돈 관계인 교통 카드 회사에게 특혜성 계약을 함.
이 회사는 결국 대기업 부럽지 않게 성장하고 있다.
무릇 지도자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청백리의 정신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백억대 재산가가 고작 1만원 건강보험료?
<주간동아 2002 년 8 월호>
( 의료 보험료 적게 내는 전략을 실천한 이명박 前 서울시장)
2002년 5월 말 서울시장 선거 당시 ‘쥐꼬리 보험료’로 말썽이 됐던 이명박 현 서울시장도 바로 그런 경우. 이시장은 자신 소유의 빌딩을 관리하는 종업원 6명을 직원으로 한 임대관리 회사를 만들었다.
그 대표로 있으면서 자신의 월급을 2000년 99만원, 2001년 133만원이라고 신고했다. 회사를 만들면서 그는 자동으로 직장보험에 가입됐고, 보험료는 종업원의 월급 수준에 맞춰 2만원 선으로 결정된다.
공시지가 175억원(신고금액)의 재산가인 이시장에겐 이보다 좋은 건강보험료 절세 방안은 없었으니 아무리 자신의 월급을 털어서, 불우 이웃을 돕는다 해도 한 손에 천사의 지팡이를 들고 뒤로 감추어진 한 손으로는 다시 거두어 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원치않은 임신이라도 무조건 법으로 낳도록 강제해야..."
낙태를 반대하는 소신은 좋지만,
역시 지도자의 말은 천금처럼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여자가 대통령을 하면 안된다.
신라 시대 천년전에도 선덕 여왕이 있었고, 4 명의 여왕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명박씨는 모르는 것 같다.
대한민국 여자는 모두 밥이나 짓고 아이나 낳고,
청소나 하는 식순이로 취급하는 것인가 ?
돈있는 사람이 정치할 때 되었다.
참 기가 막힌 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정치인들과 대통령들은 돈과 거리가 멀다.
이명박씨 말대로 하면 삼성 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대통령감인가 ?
오히려 이명박씨처럼 대부호인 사람은 욕심을 내면 안된다.
돈도 갖고 명예도 갖고 권력까지 갖는다면,
그 사회가 과연 공평하다 할 수 있겠는가 ?
욕심많은 사람일 수록 사고를 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명박씨가 깨달았으면 참 좋겠다.
이처럼 말 많고 사고 많은 이명박씨의 해부 결과이다.
이제 내년 2007 이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과연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또 한번 운동권 출신의 대통령을 만들어서 나라를 실험할 것인가 ?
아니면 선진국으로 바로 직행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
이것이 참 아니 궁금할 수 없는 것이 애국심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
2007 년에는 제발 좀 운동권 출신 대통령을 뽑지 맙시다 !!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질리지도 않았습니까 ?
그토록 속았으면 이제는 제발 정신 좀 차리도록 합시다.
노무현과 이명박씨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꼴입니다. |
첫댓글 2007 승리혜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장문이기는 하지만...그만큼 구린데가 많다는 증거라 생각하고 단숨에 읽었습니다..개명(改名) 축하합니다..^^*
위의 내용들은 많이 알려지고 언론에 회자된 일부에 불과하고 진짜 고급정보는^^
2007승리혜님, 내용이 좀 길기는 했습니다만 지겹진 않았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라이트박/2007승리혜로 개명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긴글이지만 소상히 기록한 정보 유익하게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실한 근혜님을 대통령으로 모십시다 ^^*
요즘 독일 메르켈 총리도 여성...얼마나 정치를 잘하던지...그 힘든 실업율을 단번에 한자리로 내림. 노조파업 거의 없음. 문화수준 프랑스를 멀리 따돌림. 등등 이루 말할수 없을만큼 잘하고 있음. 고로, 울 나라도 여성이 잡아야 나라가 산다.
좋은 글, 정보 잘 읽었습니다.. 교육용 지침 자료로 가져가겠습니다..닉네임 변경 축하 드립니다 ^.^...
라이트박님 왜 개명을 했나요? ㅎㅎ 좋은 정보 잘 봤습니다.^^*
지겨워서요^^
라이트박님의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정신 재무장 에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좋은정보 잘보았어요,,,,,,그런데....갑자기 대명을 바꾸고 그러십니까 ?ㅎㅎㅎㅎ수고 많이하셨어요,,
개명신청 필요없고 보증인 필요없고 비용안들고^^법원안가도 되고 온라인 카페의 장점 아니겠습니까^^한번씩 지겨울땐 머리자르듯 바꿔보세요.근혜님은 헤어스타일까지 바꾸시고 출전준비완료하셨는데 저는 달리 바꿀건 없고 닉이라도 ㅎㅎ그래도 저는 영원한 라이트박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여성이 머리스타일 바꾸면 그건 뭔가를 달리한다는 독한 마음가짐의 외적표현...근혜님 화이팅 ^*^
아~얄팍한 수법 흥분되네 시장직으로도 이권개입하는데(교통카드 사돈에게..)대통령되면 어떨까 이런것을 국민들이 잘 모르니까 지지도가 올라가고있지 이런 내용들을 우리는 구전 홍보해야되는데..^^*
선배님 너무 열받지 마소서
크리스마스 이브때 산타복 입고 깨춤추던 이명박씨의 꼴을 보고 기막혀 했는데 역시나... 그때 대선 주자들 다 비슷한 수준의 쇼를 벌였으나 조용히 기도하던 박근혜 님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었지요.
바로 개명 해버렸네
암튼 긴정보 좋은정보 항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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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 같은 청계천 복원을 대단한 업적으로 칭찬하는 자체가 한심한 일이지요, 그게 무슨 치적이 됩니까? 어른들 장남감이지요/ 16세기 운하를 21세기와서 논한다는 자체도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이 요런 얄팍한 일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은 요런 얄팍한 재주꾼이나 기회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구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다 하신 우리님 박근혜 대표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제발 좀 깨달음이 있기를 충심으로 빕니다. !!!^^^***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지나요 세월이 흐르면 달알게 되는것이 세상의 이치인것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