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닭
김해자
생강나무 옆에 서 있는데
등 뒤에서 서툴게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들리네
누가 내 등짝을 건반 삼아 딛고 갔을까
방금 새가 흔들고 간 가지 끝에서 노란 생강꽃이 피어나고
봄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아이는 병아리들을 샀어 삐약대는 노란 소리들은 노래가 되지 못하고 종이상자 안에서
스러져 갔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못했지 해마다 초등학교 앞에서 어른들이 팔던 솜털 보송보송한 유혹을 봄날이
면 다시 고개 드는 노란 꿈 병아리가 자라서 날개가 돋는 거짓말 같은 꿈을
닭은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 않을까
언제부터 날지 못하게 됐을까
어쩌면 제대로 날아 본 적이 없을지도 몰라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진화였을까
날기를 포기한 걸까 날개가 퇴화한 걸까
발로 피아노를 치는 닭의 연주를 들었다고 하면 헛소리라고 하겠지 갇힌 문을 열고 뛰어올라 피아노 건반을 눌렀
다고 하면 주근깨가 비칠 만큼 투명한 영창피아노 건반 위를 닭이 춤추듯이 걸어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하면
꿈이라고 할 거야 지나가 버린 연주를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꿈은 매번 발명되는 것, 봄날 가지 끝에는 노란 병아리
같은 꿈이 묻어 있어 공중에 소리를 낳고 가는 새의 노래에 맞춰 닭이 연주를 해
걷는 것이 음악이 되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니
그저 시간을 밟았을 뿐인데
발자국마다 으깨지지 않는 소리를 낳는 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