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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명사 열전
오성과 한음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 대감들의 일화
최근 백사 이항복 대감의 27대 종손이,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백사의 영정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평생 친구로 우정을 나눈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장난꾸러기 죽마고우였다.
이덕형과 이항복은 몰라도 오성과 한음은 알 것이다.
인품과 덕망 보다는 기행과 재치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것이 코메디언이 장관보다 더 유명한 이유이다.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게구장이어서 웃기는 일이 많았다.
새끼 밴 암소
아낙이 길을 가다 소피가 급해서 남의 밭에다가 실례를 했는데 그곳은 갈잎으로 햇볕을 가린 인삼 밭이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설에 의하면 두 갈래로 자란 인삼은 남정네 정력에 그만이라고 했다.
여자가 인삼밭에 소피를 보면 인삼 농사가 끝난 것이나 진배없다. 실제로 오줌은 비료이지 농사를 망치는 법은 없다.
아낙이 인삼밭에서 나오는 것을 본 참봉 영감은, 아낙의 새끼 밴 암소가 탐이 난 터라 불호령을 내렸다.
고을 사또 행차를 막고 도련님 둘이 가죽신발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다투고 있으니. 두고 볼 수 없어 사또가 학동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아! 글쎄! 이놈이 신발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빨리 쫒아가야 하는데!
누구를 쫒는단 말이냐?
고을에 나타난 암행어사 나리입니다.
뭐? 암행어사? 네가 어떻게 그걸 아느냐?
허리춤에서 말 3개가 있는 쇠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쫒아간단 말이냐?
얼울하게 빼앗긴 옥분 네 새끼 밴 암소가 걱정이 되어서요.
소상히 말 하렸다!
그때 이방이 나서서. 하인이 말하기를 왠 새끼줄이 땅에 떨어져 끌고 와보니 줄 끝에 소가 메어있었다고 합니다.
알았다. 그만해라! 당장 콩 닷 말을 아낙에게 주고 참봉에게 곤장 맞을 채비를 하도록 조치하라.
가리지 않는 한음의 장난
한음으로부터 전염병으로 일가족이 몰살한 집에 찾아가, 원인이 무엇인지 검시(檢屍)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오성은 한밤중에 그 집을 찾아갔다.
모골이 송연했으나 이를 악물고 검시를 하는데, 갑자기 시체가 벌떡 일어나 오성의 얼굴을 쥐어박았다.
혼비백산한 오성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시체인 척하고 누워 있던 한음의 장난이었다.
아버지의 담력 시험
마을 뒷산 음침한 곳에는 성황당에는 시체를 운구하는 상여 창고가 있었다.
평소에 성황당은 닫아 두는데 이상하게도 벽에 구멍이 나있어, 아마 귀신은 이 구멍을 통해 출입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부친은 아들의 담력을 시험하려고, 구멍 속에 손을 넣어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오성이 구멍 속으로 손을 넣자, 누가 안에서 손을 붙잡는데, 체온이 느껴졌다. 귀신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냥 넘길 말이 아니야!
오성은 한음의 마누라를 힐끗 쳐다보더니, 요즘 어떤 여인과 사통하는 재미로 산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오성에게 다가가 무엇을 억지로 먹였다. 거짓말에는 똥이 약이라고 하며
오성이 선보는 날
오성이 신부될 처자를 선보는데, 친구들에게 인절미를 나누어 주며, 끝날 즈음해서 몽둥이로 자신을 때려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했다.
친구들이 달려들어 두들겨 패는데. 오성은 도망치는 척하고 신부 치마폭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신부는 침착하게 “선을 보려면 겉 선이나 볼 일이지 속 선까지 보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만하면 신붓감으로 합격이다.
오성과 대장장이 아저씨
오성은 대장간에 자주 다니면서, 대장장이 아저씨가 만든 꺾쇠를 궁둥이에 숨겼다.
꺾쇠가 없어지자 아저씨는 오성의 장난인줄 알고, 불에 달군 쇠를 꺽쇠 위에 놓아 볼기짝에 화상을 입혔다.
뒷날 아저씨가가 곤궁해지자 오성은 모아둔 꺾쇠와 가지고 있던 엽전을 주어 가난을 면하게 했다. 한음도 도왔다.
권율과 오성
오성 네 감나무가 권율의 집 담장 위로 휘어들어오자, 권율은 하인을 시켜 감을 몽땅 따갔다.
이를 안 오성은 권율의 집 창호지에 주먹을 넣고 “이 주먹이 누구 것이냐?” 하고 물었다.
권율이 “네 주먹이자나!” 하자,
오성은 감을 가로챈 권율의 사리에 맞지 않는 행위를 추궁하였다.
어전에서
오성과 한음 두 대감이 서로 내가 "아비"라며 다투는 것을 본 선조 임금이 끼어들었다.
“도대체 누가 아비이고, 누가 아들인고?”
임금의 하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자기가 아비라고 우겼다.
“그럴 것 없다. 아비와 아들을 확실하게 가려주겠다. 어명으로 받들 지어다."
내관에게 미리 준비한 "아비 父" 자와 "아들 子" 자를 가져오게 한 후, 대감들을 뒤로 도르라고 하더니 한참 지나자
"자! 이제 돌아라! 그리고 앞에 놓인 종이를 집어라."
먼저 한음이 “제가 아비입니다” 하며 "아비 父" 자가 적힌 종이를 펼치자, 오성은 얼굴이 찌푸리기는커녕 싱글벙글 했다.
임금이 " 아들 子 자를 집었는데 뭐가 좋으냐?" 고 묻자.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무릎 위에 앉혔으니, 아비의 마음이 어찌 즐겁지 않겠소이까?“ 하고 말했다.
국법으로는 두 다감을 어쩌하지 못했다.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李之函)이 길에서 장난치는 한음을 보고, 장차 나라의 큰 재목이 될 인물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영의정인 조카 이산해에게 사위 감으로 천거하였다.
한음은 17세 때 네 살 아래인 영의정의 13세 둘째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역시 토정(土亭)의 안목은 알아주어야 한다.
까꿍 아침산책 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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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막사발
20, 6, 25 외신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제작된 명품 막사발이
스위스 베른에 있는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치시대 미술상의 컬렉션의 일부입니다.
한국 문화재가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게 들어갔을까요?
임진왜란 때 수탈해간 막사발이, 일본을 통해 독일로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술관 측은 ‘아시아 도자기’라며 그 이상은 노 코멘트였습니다.
도자기 가운데 최고라는 막사발 기자에몬(喜左衛門)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2010년 70대 한 노인이 현금 9000유로를 들고 국경을 넘어 스위스 독일 등지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의 짐에서 모네, 르누아르, 고갱, 리베르만, 뭉크, 마네, 로댕과 그리스, 로마시대의 작품 등 예술품 1300여점이 무더기로 나온 것입니다.
출처가 명확한 마네의 1873년 작품인 ‘폭풍 치는 바다’는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에 400만 달러(약 48억원)에 팔렸습니다.
나치 잔재들의 추격을 피해 유랑하며, 81세로 사망한 그는 모든 재산을 독일이 아닌 다른 미술관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막사발
본차이나의 본 고장 영국의 한 박물관에는 가장 요지에 도자기 두 점을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상반된 도자기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만들고, 생동감을 주어 인생 자체를 아름답게 합니다.
그렇지만 막사발은 다릅니다.
물레의 축 위에서 한껏 휘 둘리다가, 가마에서 굽는 사기그릇이 막사발입니다.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이지만 오래되어 금이 가면, 막걸리 잔으로 더 험해지면 개 밥그릇이 됩니다.
궁중의 사옹원(司饔院)에서는 관요(官窯)를 두어 왕실용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사발은 서민용이라 소박하여 관요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관요에 있던 도공(陶工)과 함께 도자기(陶瓷器)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경남 등지의 이름 모를 가마터에서 만들어진 막사발은 국내에는 거의 없고, 일본에는 200여점이 남아있습니다.
도자기는 옥이나 보석같이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은 조선 막사발을 "생활 속 아름다움의 축소판"이라고 했습니다.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무심하고,
서럽지 않고,
과장이 없는
막사발은 일본과도 안 바꾼다고 할 정도로 아꼈습니다.
도자기는 아름다움을 작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막사발은 무심의 경지에서 욕심이 없고 꾸밈이 없는 사발입니다.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순수한 마음, 편한 마음, 때 못지않은 마음입니다.
내가 쓸 그릇을 직접 만든 것이니, 것 치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주인의 손때가 묻었습니다,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니 언제나 속살 그대로입니다. 항상 새것입니다.
생활도예 외길 25년
정 양모 전(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이윤신(60) 여사 작품에 대한 평가
여자를 닮은 막사발
미슐랭 스타셰프가 반한 그릇
못생겨서 미안해요.
내로라하는 외국 명품과 경쟁을 해도 손색이 없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순 투박해서
풍채 좋은 조선 한량이 챙 넓은 갓을 비껴쓰고, 옥색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휘적휘적 걷고 있는, 헐렁한 듯 자유분방한 멋을 풍긴다.
미슐랭 스타 셰프, 세계 3대 요리사인 프랑스의 장 조지가, 한식 다큐멘터리 '김치 크로니클'을 세계에 알리는 전시회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어느 스타 요리사와는 달리. 한국의 전통공예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는
서울까지 와서 한국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이윤신 여사의 막사발 그릇을 공수해갔습니다.
이윤신 여사는 "일개 밥그릇이나 만드는 여자일 뿐“이라고 소박하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브제 작가의 길로 갈 때, 저는 그냥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어요!
무슨 물건이든 감상용이 아닌 쓰임 있는 게 좋았거든요.
이윤선 여사는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든 그릇인데도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막사발을 만드는 장인의 소탈함이랄까?
도자공예의 본질은 그릇이에요!
달 항아리는 감상용이 아니라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이잖아요?
흰색 도자기는 너무 매끈거리고 차서 싫어요.
그릇에 화려한 색깔을 칠하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릇 본연의 기능은 음식을 담는 것이지, 그릇 자체가 화려하면 안 되지요!
미감 50, 음식 50이 합쳐져 100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백은 선조들의 가르침이기도 하구요.
외국 명품은 그릇 자체가 예술이라 음식이 그릇 속에 묻혀버려요.
따뜻하고 여유로워서, 무엇을 담아도 넉넉하게 받아주는 그런 그릇을 만들고 싶어요!
아무리 훌륭한 예술이라도 생활 속의 문화로 조화를 이루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릇의 경쟁력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단순하고 투박한 무색무취입니다.
이윤신 여사의 그릇은 단순함과 투박함에 있었습니다.
이윤선 대표 -
까꿍 아침산책 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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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전원생활?
현대인들은 흙과 가까이 살고 싶어 전원생활(田園生活)을 꿈꾼다.
그래서 무거운 짐도 내려놓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좋아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한지만.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그렇게 할 형편이 못되고.
엄두가 나질 않아 실행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발자국이 적은 곳 일수록
도시와 멀수록
산이 높고
골이 깊을수록 (山高水長)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룻밤이라도 자연과 가까이 해 보려고 숙박업소를 찾으니, 이에 부응하여 펜션마다 성업 중이다.
종로구 부암동
한동안 번화한 강남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이 탓인지 허전하고 무엇엔가 쫒기는 느낌이 들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야생화 전시회를 찾아갔지만 마음은 더 허전했다. 생활에 변화를 가져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청와대 뒷산 자하문 밖에 있는 평창동 인근 높은 지대다.
시골 같은 마을인데. 50미터 거리에 백사실 공원이 있다. 마을은 숲에 둘러싸여 청정하기 그지없었다.
사람 욕심이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소박한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했으나 100평짜리 3층 호화주택이 되고 말았다.
손수 만든 주택이라 손 볼일도 많았다.
서울의 아파트에는 거의가 정원이 없다. 주택의 장점은 정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원에 나가 나무와 꽃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옛날 같이 않아 120평이나 되는 정원 가꾸는 일이 힘에 부쳤다. 여기에다 겨울철이면 앞 도로까지 눈을 치우는 일은 여간 힘 드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부암동 단독주택에서 아웅다웅하며 13년을 살았다.
아파트 생활
나는 서울 근교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짐 정리를 끝내 자 마자 창밖에 바구니를 매달아 놓았다.
겨울이라 양지 바른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텃새들이, 이상했던지 하나 둘 살피고 갔다.
땅콩 사과 배 감 귤 콩나물대가리는 새들에게는 좋은 먹이었다.
조석으로 박새 직박구리가 20마리 쯤 다녀가는데.
박새는 열 배나 더 큰 직박구리에게 자기구역이라고 텃세를 부린다.
까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소문이 나겠지!
새들이 소파에 앉아있는 나와 눈을 마주칠 때도 있다.
봄철에는 창문을 열어두고 혹시 들어오면 가까이에서 지켜볼 생각이다.
새의 언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
여러분도 한번쯤 시도해 보세요.
베란다에는 덴마크 무궁화와 란타나가 화사하게 피어있고. 군자란 매화 철쭉이 다음 차례라고 줄서 있다.
거실의 하얀 벽에는 노란 개나리가 화분 체 걸려있고, 그 옆에는 지중해에서나 볼 수 있는 올리브 가지와 열매가 초록색으로 달려있다.
커다란 열대 토란잎과 화사한 흑 백장미도 보인다. 조화인들 어떠랴! 주인이 좋아하는데!
까꿍 아침산책 200730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생전에 스스로 작성한 부고가 공개되었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I, Ennio Morricone, have died)'로 원고지 6매 분량이다.
항상 내 주변에 있던 친구들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내 죽음을 알린다.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
모리코네는 친구 자녀 손주들 차례로 이별을 고한 후 아내에게는 고통스러운 작별을 보낸다고 끝맺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음악 작곡가 모리코네는 '시네마 천국(1988)', '미션(1986)', '황야의 무법자(196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 후보에 다섯 차례나 노미네이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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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임금이 " 아들 子 자를 집었는데 뭐가 좋으냐?" 고 묻자.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무릎 위에 앉혔으니, 아비의 마음이 어찌 즐겁지 않겠소이까?“ 하고 말했다.
국법으로는 두 다감을 어쩌하지 못했다.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李之函)이 길에서 장난치는 한음을 보고, 장차 나라의 큰 재목이 될 인물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영의정인 조카 이산해에게 사위 감으로 천거하였다.
한음은 17세 때 네 살 아래인 영의정의 13세 둘째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역시 토정(土亭)의 안목은 알아주어야 한다.
까꿍 아침산책 2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