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여름을 좋아했다. (더 정확하게는 어렸을 때의 내가 모든 계절을 사랑했었지만 말이다.) 몸과 생각이 자라면서도 내가 제일 사랑한 계절은 단연 여름이었다. 그 계절에는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또 성장의 발판이 되는 시절이었고, 그리운 친구와의 계절이었으며, 너무 괴로운 기억도 품을 수 있을 계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을 미취학아동 시절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어서까지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캠핑을 갔다. 어렸을 때에 나는 머리끝까지 잠구고 수영하는 걸 좋아해서 수영장이나 계곡, 혹은 바다가 있는 캠핑장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추워서 입술이 파란색이 될 때까지 물속에서 놀았고, 추워진다 싶으면 물에서 나와 커다란 담요를 두르고 올챙이를 잡기 바빴다. 생수병에 생수 대신 계곡물과 올챙이가 헤엄치는 걸 보며, 오빠들과 내일은 누가 더 많이 잡을지 대결하자며 쓸데없는 승부욕을 펼치기도 했다. 2일차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먹고, 부모님들은 술잔을 기울이고, 다음 날 아침에는 다같이 신라면은 끓여 먹다 나는 매워서 못 먹는 루트가 우리에게는 익숙했다. 어렸을 때에도, 지금도 나는 호기심이 여전히 많다. 어떤 호기심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내게 좋아서 눈치를 채고 빠르게 포기하곤 하고, 알아버린 게 많아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도, 궁금한 건 다 알아야 했던 내게 계절의 시작과 여행이란 새로운 세상의 입구였다. 놀이터 구석 쯤 있는 개미집을 보며 저 개미들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하고, 장마로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엄마 몰래 우비와 장화를 신고 땅 위로 올라온 달팽이를 몇 시간씩 구경하다 나를 찾던 엄마에게 붙잡혀 집에 들어가던 경험도 잦았으며, 매미 우는 소리가 잘 들리던 예전 집에서 매미 울음 소리에 싫증내며 기상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아빠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열심히 탔다. 호기심과 동시에 승부욕도 강했던 나는 한 번 나갈 때마다 다리에 큰 상처가 생겨서 엄마는 여자애 다리가 그게 뭐냐며 속상해 했고, 아빠는 애들이 다 그러면서 자라는 거라고 엄마에게 답지 않은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오빠가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쯤에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아직도 히사이시 조의 Summer라는 곡을 들으면 희미한 여름의 조각들이 머리속에 조금씩 생기곤 한다. 열두 살의 여름에는 내 인생에서 꽤 중요했던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래, 그 아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 아이에게 많이 미안하고, 보고 싶다. 여름 방학식에는 같이 떡볶이를 먹었고, 학원 휴강 날에는 빈 학원에 들어가 놀기도 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매일 만났는데 그냥 즐겁기만 했다. 결국 똑같은 하루여도 내일은 뭘 할지 정하며 웃곤 했다. 그 아이도 여름을 좋아해서, 그 아이가 퍽 여름 같은 아이여서, 아직도 사실 많이 돌아가고 싶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있던 공간과 시간들이 모두 과거가 된다는 게 아직 과거에 머무는 나에게는 너무 힘든 사실이다. 머물 수 있는 만큼 그 날에 머물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후회없이 네게 고맙다고 할 걸 그랬어. 그 자리엔 분명 우리 둘이었는데 나 혼자 남을 줄 알았으면 말야. 변하지 않기로, 떠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난 아직 지키고 있어. 앞으로도 여름을 사랑할 것 같다. 과거는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푸른 잎들과 맑은 하늘은 여름이면 늘 찾아 올테니까. 그러니 내가 여름을 더 사랑하게, 다음 여름에도 내가 멀쩡히 살아 예쁜 추억을 만들게 해 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