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
믿는 구석이 있으면 당당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자신감인 것이다.
설을 지내고도 용감하게 세배를 하러 가겠다고 통지를(?)했다.
수화기 너머로는 껄껄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한술 더 떠 세뱃돈을 미리 준비해 두시라고 염치를 걸어둔 말까지 하고
통화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과 점심사이에 회장님 사무실에 들르니 신문스크랩을 하시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런 거 하지말자고 만류하는 손짓을 피해 서둘러 ‘세배 받으십시오’ 하고
넙죽 엎드렸다.
회장님도 어이가 없는지 올해도 또 당했다는 표정이다.ㅎ
한 손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세뱃돈 주십시오’ 했더니 책상에서 봉투를
꺼내 주셨다.
봉투를 열려고 했더니 ‘그런 법은 없다 집에 가서 봐라’ 하셨다.
수년간의 눈치로 회장님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나다.
‘아닙니다. 여기서 봐야합니다’ 봉투 속에는 오만 원 권 지폐 몇 장이 보였다.
봉투를 책상위에 얌전히 놓으며 ‘못 받겠습니다.’ 하니
회장님 표정이 또 그런다는 듯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짓다가
오히려 봄바람같이 온화하게 ‘이거는 받아래이’ 하고 작전을 달리하셨다.
“못 받습니다. 주시려거든 천 원이나 만 원을 주십시오.”
“올해는 내가 세뱃돈을 다 줬으니, 아무 말 말고 그냥 받아라”
“싫습니다. 그거 아니면 못 받습니다”
“또 고집 피운다. 인제는 나이가 들어 옷도 못 사준다. 그러이 이거라도 받아라”
“싫습니다”
“그라모 배 선생 안볼끼다”
“잘 됐네요. 회장님 저도 안 볼랍니다”
맞받아치는 말에도 회장님은 노기 상충 없이 ‘못 말린다’ 하는 웃음을 짓고 계신다.
사 가지고 간 유제품을 먹으면서도 버릇없이 구는 나를 노기 없이 좋아하셨다.
회장님은 매일 출근, 위안부나 독도 이야기가 실린 우리나라와
일본신문 스크랩을 하신다.
위안부 할머니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재판을 수십 번이나 한 분이시기도 하고
작년에는 부산에 소녀상을 설치한 분이다.
“배 선생 밥 묵었나?”
“예, 먹었습니다. 회장님은요?”
“나는 별로 생각이 없다”
“회장님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세배 돈 가져가라”
“천 원이나 만 원을 주시면 가져가고 그게 아니라면 못 받겠습니다”
“올해는 내가 세뱃돈 모다(모두)줬다 그라이 암말 말고 받아래이 어에이”
“제가 그 돈을 받으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회장님 급히 따라 나오시더니 급하게 계단에다 봉투를 던지셨다.
“안 가져가면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난 인제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말씀하시곤 문을 닫고 번개같이(?) 들어가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안녕히 계십시오’인사만 드리고 그냥 나왔다.
수분 후, 아흔이 넘은 회장님이 문을 빼꼼히 열고 가져 갔나 안 가져 갔나 확인을 하니 봉투는 얌전히 계단에
있었다. 성격이 뭣 같은 인사라(?) 혹 안 가져갔으면 누가 주워갈까 싶어 확인하려 했던 것인데 사람마음도 모르는 인간,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다. 이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싶어 화가 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어딘데?”
“어디긴요. 집을 가는 길입니다.”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배 선생, 니 그랄끼가? 빨리 와서 가져가라. 누가 가져가면 어짤라꼬 그냥가노. 나이 많은 사람이 주면 그냥 받아 갈 것이지, 정말 그럴끼가?”
솔직히 노기보다는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미워서 호통을 치신 것이다.
더 이상의 논란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얌전히
“네 알겠습니다.”
했다.
그러나 노기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장님 제가 지금 있는 곳에 죽 집이 보입니다. 무슨 죽을 사다 드릴까요?”
했더니 회장님은 흡족한 마음이 드셨던지 단 일초의 망서림도 없이 ‘전복죽’하셨다.
회장님은 전복을 무척 좋아하신다. 입맛이 없어 식사를 못할 때도 전복죽만은 사양하지 않으신다. 그중에 전복회를 제일 좋아하신다. 작년에 위가 많이 안 좋으셔서 수개월간 설사를 하셨고 매일 죽만 드셨다. 그때 위로 한답시고 봄이 되면 전복회를 사드리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기에
“회장님, 빨리 나으셔서 전복회 사드린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게 다였다. 봄에 잡은 약속은 회장님의 건강 때문에 작년 연말이 되어서야 겨우 지킬 수 있었다. 기장바다를 눈앞에 두고 허름한 천막, 해녀가 잡아온 전복을 앞에 놓고 앉았다. 회장님은 맛나게 드셨다. 그리고 전복죽을 포장해서 정관에 있는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밀린 부채를 갚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던 기억이다.
시장에서 전복죽 두 그릇을 샀다. 점심 겸 저녁을 챙기고 사무실 문을 빼꼼히 여니 회장님 어색한 웃음을 웃으셨다. 스스로 화기를 상충시킨 것이 무안하셨던 모양이다.
“마, 진작 받아 갔으모 이런 일 없을 거 아이가”
“회장님, 천 원이나 만 원 만 주시면 안될까요?”
“또또 그란다”
회장님은 책상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봉투를 받아들고 문을 나왔다. 회장님도 문을 열고 따라 나오셨다. 설마 또 계단에 놔두고 가는지 확인하시려고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배를 다년 온 며칠 후 전화를 하셨다.
“배 선생님, 8일 날이 내 생일인데 시간 낼 수 있어요?”
하, 오늘도 첫출발은 좋다. 배 선생님이라니 가끔 아주 가끔 부르는 호칭이다. 그 다음이 배 선생, 다음이 ‘마, 아무 말 말고 가만있어’다.
나는 유독 회장님께 엉뚱한 소리를 잘한다. 마찬가지로 회장님도 나에게만은 격이 없이 대하여 주시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환갑이 가까운데도 아직 어린애로 보는 까닭이다.
“회장님, 그날은 좀 힘들겠는데요?”
“점심만 먹고 가면 안되나?”
간곡한 부탁을 내가 어이 거절하리.
2월8일 점심시간,
목에 새끼줄을 꼬고 빵집으로 가서 케이크를 사서 들고 택시를 탔다. 롯데 호텔 42층 뷔페는 한산했다. 회장님의 고명하신 지인들이니 다 같이 연세가 많으셨다. 아마도 평균연령이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회장님의 얼굴은 반쪽이었다. 며칠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다. 가져간 케잌으로 생일축하노래를 하고 케익에 불을 껐다.
연세 지극하신 정치 쪽으로 꽤 알려진 분이 건배사를 멋지게 해 주셨다.
연설을 좋아하시는 회장님이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었다.
종이를 꺼내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읽어 내려가셨다. 이야기 즉슨
애국자가 되자는 말씀이었다.
백수 처지에 눈이 뒤집어져서 불도장으로 시동을 걸고 양갈비, 쇠갈비, 랍스타 죽자고 먹다가 왔다.
5월 15일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배 선생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흔이 넘은 회장님이 얌전을 떨고 계신다. 레파토리가 뻔할 것이다.
“와 안오노? 내 죽으면 올라나?”
“예, 회장님 어쩐 일이 십니까?”
의심을 하고 만다. 의심병 환자도 아니면서 회장님은 자주 보고 싶으면 핑계를 대고 전화를 하신다.
“딴게 아이고 학생들 위안부 역사관 교육을 시키려는데 학부모들이 따라오면서 케익을 열 개 가져왔네. 와서 가져가요”
“싫습니다. 다른 분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와”
“우리 집에는 매일 00바케트 케익이 넘쳐 납니다”
2019년 2월1일
올해는 설 연휴가 길다. 회장님은 명절이면 따님이 있는 한양 인근으로 가신다.
올해도 때를 놓쳐 연휴 직전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예
나는 여보세를 외치고 회장님은 목소리를 확인하시려고 예를 두 번이나 하다가 외친다.
-배 선생님!
자주 연락 안한다고 화내실 거면서 선생이라 부르시고
여기에서 한 번 웃으신다. 원망의 말을 뱉으시려다 어머니에게도 안하는 나의 재롱에 넘어가셨다.
회장님, 명절에 저 위쪽으로 가실 거지요?
8일 날 새배 하러 가겠습니다. 세뱃돈 준비하십시오. 하면
알았으니 오기나 해요. 근데 천 원짜리가 잘 안보이던데 하며 물타기를 하셨다.
2월8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보고싶었다는 말을 하시면서 활짝 웃으셨다.
사무실에서 넙죽 엎드려 새배하니 거금 만원을 내놓으셨다.
천 원짜리 아니면 안 받겠다고 버티다가 염치, 버릇없게도
이번만은 용서해 드린다고 거금 일 만원과 회장님 책에 사인까지 받아 들었다.
꽃무릇을 보러 가기 전에 나들이를 한 번 더 하기로 약속하고 나오려는데
힘도 없으시면서 문 앞까지 걸어 나와 배웅해 주셨다. 마음이 짠했다.
회장님은
영화 '허 스토리'의 실제 주인공. 현재 부산에서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하고 계시는 분이다.
첫댓글 그런 영화가 있었군요.^^울 동네 오면 꼭 챙겨 보겠습니다.
정말 좋을일 하신분이시고 대단한 분이시네요. 더불어 감사인사드립니다.
이쁜 여리미님~편안한 밤 되세요^^
네, 대단한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위안부재판 승소를 했지요.
@초록물고기* 이쁜 여리미님? 근거가 있는 이야긴가요?^^
@두주불사 제가 또 미모빼면 시체라~^^
@두주불사 알게 모르게 참 훌륭한 일을 하시는분들 많습니다. 말모이란 영화를 봤을때도 그렇고, 역사영화를 보면 거창한 이름 없이도 나라를 위해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죽기까지 했던 분들이 많아 이렇게 평안한 삶을 살수있었구나. 생각에 요즘 뉴스 는 먹먹하지만 그분들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리미 우리나라는 역사에 대해서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어요
난 수학. 영어보다 훨씬 중요한 과목이
역사(국사)라고 생각해요
자신들을 탄압했던 일본에게 충성하고
동포를 괴롭히며 잘먹고 잘살던 친일파가
해방 후 더 잘먹고 잘사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유일한 나라죠..
프랑스는 나치에 협력했던 자들을 찾아내면 지금도 벌을 주죠..ㅎ
이야기가 너무 나갔네요~
꿀잠 주무세용~~♡♡♡
@여리미 헐~~^^
진짜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아마 김희애가 맡은 역의 실제 주인공이신가 보네요
훌륭하신 회장님을 옆에서 모셨다니 부럽습니다^^
오랫동안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맞습니다.^^
지난 3.1절에 티비에서 방송을 해주었지요.
부산과 가까운 곳이라면 언제든 뵙게 해드리지요.
이쁜 형님두 평안한 밤 보내세요. ~ㅎ
모든걸 떠나서 부모님처럼 윗어른 모시는 님의 고운 마음가짐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 것은 아닌데 좋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두분의 언행에서
삼장법사와 손오공 같은 느낌이 ㅎㅎ
훌륭하신 삼장법사님~
좋은인연 잘 이어가시길요~^^
허-얼^^
기장에 천막치고 전복죽 팔던데..없어지고 고 아래 새건물로 이사갔드만요..
두 곳이 있는데, 은미님이 말하는 것은 아마 대변항 지나서 있는 곳인가 봅니다.^^
@두주불사 아하..대변항만 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