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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표행일보( 行一步)
①
각기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한 채 당당하게 표국의 대문을 나선 열 무리의 표행
이 구경꾼들의 시선 속에 관도위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그 시간.
인적이 드문 표국의 뒷문으로 두세 명씩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들의 모습을 주
의해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등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채 발길을 재촉하거나 나귀가 끄는 수레에 걸터앉아
등을 긁적거리는 그들은 언뜻 보아도 표국의 하인 행색이었고, 요란한 표행
의 출발이 아침부터 이어지는데 그런 구경거리를 마다하고 뒷문으로 드나드는
하인 나부랭이에게 신경 쓸 사람이 없는 까닭이었다.
둘 셋씩 짝을 지어 각기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태평하게 움직이는 여덟 명의
사내들 중 중간에 선 사내 둘이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머리를 맞대고 뭔가
두런거렸다. 워낙 낮은 음성으로 웅얼거리는 터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소리
가 아니더라도 듣기 힘든 음성이었다.
"크흐흐. 햇볕이 따갑지도 않고 바람도 제법 선선하거늘 잔뜩 굳어있는 걸 보
면 등에 짊어진 물건이 불알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모양이구나……."
"이런 말버르장머리하고…… 누가 겁을 낸다는 게야! 등에서 화약이 터져 몸
뚱이가 조각난다 해도 눈 하나 꿈쩍할 내가 아니다."
"이 어르신이 터뜨릴 마음이 없으면 불구덩이에 던져도 터지지 않을 터이니
아무걱정 말아라. 프흣, 행여라도 내가 자네에게 죽을 일을 시킬 사람인가?"
보자기에 싼 길쭉한 물건을 잔뜩 짊어진 사내, 왕충삼도 생각과 달리 괜스레
굳어져 있던 몸과 마음이 한결 풀리는 기분이었으나 팽상문이 빙글거리는 꼴
을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자고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 차라리 그냥 화약이면 뱃속이 편하겠다. 네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려 요상하게 만들었으니 그게 문제지……."
사실 속마음과는 정반대인 소리였다.
어젯밤, 적지 않은 은자를 챙긴 서역상인이 조심해서 다루라며 건넨 화약과
성안을 쏘다니며 구해온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고 알지 못할 수작을 부릴 때
부터 그는 팽상문을 믿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팽상문이 이제껏 보지 못한 진지한 표정으로 화약을 주무르며 처음 보는 요상
한 물건들을 만들던 지난밤부터…….
"아니, 그게 다 뭐 하는 데 쓰는 물건인가?"
놀란 눈을 치켜 뜬것은 고승후뿐만이 아니었다.
팽상문과 왕충삼이 등에 짊어지고 온 자루를 풀어놓는 순간, 후원의 낡은 정
자에 모여있던 사내들은 모두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고승후에게 들은 얘기가 있는지라 화약은 예상했으나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물건은 화약뿐이 아니었다.
팽상문이 줄줄이 꺼내놓는 것은 그야말로 해괴한 잡동사니들이었으니.
"이건 뭐요?"
최흘이 어린아이 머리통 만한 시커먼 덩어리를 집어들려 하자 팽가는 싱긋 웃
었다.
"함부로 만지지 말게. 말린 옻일세."
"이건 유황(硫黃) 같은데……?"
꺼림칙한 얼굴로 물러나는 최흘 옆에서 서수림이 작은 주머니에 코를 박고 킁
킁대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약의 주요성분이 유황이거늘 따로 필요한 이유가 있냐는 의문이었다. 화약
을 만들려면 유황과 초석(硝石), 목탄가루 따위를 섞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
이었다.
"프흐흣. 화약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닐세. 유황과 초석의 함량(含量)이나 비율
(比率)은 물론 순도(純度)에 따라 명절날 불꽃놀이에나 쓸 장난감도 되고 바
위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마물도 되는 법이지."
팽상문은 잠시 말을 끊고 눈앞에 펼쳐진 잡동사니들을 소중한 눈길로 하나하
나 훑었다. 군문을 떠난 지 어언 십 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대하는 물건들이라
그런지 새삼 감회가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군표횡분탄(群豹橫奔彈)은 평지에서 쓰는 물건으로 대규모 적을
살상하는데 적합하고, 소양산(搔痒散)을 담아 터뜨리는 극열통(極烈筒)은 누
구든 옴쟁이로 만들어 살갗이 벗겨지도록 긁어대게 만드는 효용이 있지. 에,
또…… 만무신연탄(萬霧神煙彈)을 쓰면 사오십 장 주위는 짙은 홍연(紅煙)에
휩싸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네."
팽상문이 두 손을 비벼대며 설명하는 소리에 좌중의 안색이 변화를 거듭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팽상문이 읊어대는 물건의 위력을
짐작키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면 우리가 도울 일은……?"
먼저 말을 꺼내는 사군명의 표정이 복잡했다.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출 수 없는 일말의 기대…….
"왜 할 일이 없겠소이까!"
팽상문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 재료들을 필요에 따라 끓여야 하니 크고 작은 솥을 서너 개쯤 걸어서
불을 때주시고, 우선 여기 있는 비소(砒素)와 백연(白鉛)을 곱게 갈아 주시요
. 불면 날아갈 정도로 말이오. 에…… 또, 그리고, 자네는 불에 달군 쇠꼬챙
이로 대나무의 격벽을 뚫어 없애고 기름이 끓거든 부어 주시게. 화약이란 놈
은 안 그래도 습기에 약한데 땅속에 묻어 두려면 대나무 속에 기름을 먹여두
는 게 안전하거든……."
팽상문의 지시를 받은 사내들이 할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후원에는 금
방 작은 공방이 차려졌다.
"난골화유신거(爛骨火油神車)도 만들면 좋으련만 시간이 없으니 생략해야겠구
먼……."
막상 판을 벌이자 일 욕심이 생기는지 팽상문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그건 또 뭔가? 이름으로 보아 불을 뿜는 수레라는 소리 같은데?"
커다란 무쇠 솥을 걸고 불을 붙이던 고승후의 물음에 팽상문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소이다. 맹화유(猛火油)에 불을 붙여 방사하여 적들을 열화지옥에 빠뜨
릴 수 있는 게 난골화유신거외다."
"맹화유라면 기름 중에도 휘발성이 강해 불씨만 튀어도 폭발하거늘 어찌 불을
붙여 무기로 쓴단 말이오? 자칫하면 다루는 사람이 먼저 숯덩이가 될 텐데…
…?"
말없이 대나무 속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쑤시는 중에도 복잡한 표정으로 팽
상문이 펼쳐놓은 물건들을 지켜보던 구태열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허어, 자네가 맹화유를 다 알고 있구먼!"
당시에도 땅에 묻힌 석유를 채굴해 쓰기는 했으나 석유를 증류시켜 성질이 가
볍고 폭발성이 강한 맹화유를 얻는 방법은 말할 것도 없고 맹화유란 게 뭔지
에 대해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구태열이 어찌 그런 걸 다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보다는 맹화유는 물론 난골
화유신포까지 아는 듯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한 팽상문은 신이 나
서 설명을 했다.
"자네 말대로 다루기 까다로운 맹화유로 불길을 쏘아대는 난골화유신거를 만
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나 풀무를 두 개 만들어 쓰면 되네."
"두 개의 풀무라……?"
"그렇지! 유조(油槽)에 연결된 풀무를 써서 양의 창자로 만든 관(管)으로 맹
화유를 퍼 올린 후 직경이 반 치쯤 되는 청동 관으로 흐르게 하지. 용도에 따
라 다르네만 대략 다섯 자 남짓한 청동 관에는 화약을 먹인 도화선을 연결해
불길이 뿜어지게 하는데 관의 한쪽에 연결한 또 다른 풀무로 바람을 강하게
집어넣으면 불길이 앞으로 뿜어지게 되는 걸세. 첫 번째 풀무가 맹화유를 퍼
올리면 두 번째 풀무는 불씨가 살아있는 관으로 그걸 강하게 밀어내 불길을
내뿜는단 말이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팽상문의 눈앞에는 난골화유신거가 불길을 뿜어내는 모
습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호오……."
"그런 게 다 있었구먼!"
눈치 빠른 서수림을 비롯해 팽상문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무슨 소린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뭐가 뭔지 잘 모르나 대충 그럴듯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었다.
멍청히 눈만 끔뻑거리는 것이 열심히 설명하는 팽상문에 대한 예의(?)도 아니
었고.
하나 구태열은 달랐다. 늘 무표정하던 얼굴에 모처럼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관을 연결한다해도 밀봉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고, 청동 관에 도화선을 연
결한다고 했는데 한 번에 터지거나 날아가지 않고 계속 불씨를 보존하는 게
가능하겠소이까? 또한, 풀무질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그 힘의 세기가 다를 것
은 당연하고, 그리되면 자칫 맹화유의 흐름이 일정치 못해 불길이 끊어지거나
한꺼번에 분출되어 터질 위험도 있지 않겠소? 그리고, 무엇보다 두 개의 풀
무가 번갈아 기름을 뿜어 올리고 바람을 집어넣는다 해도 불씨를 완전히 차단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외다. 맹화유는 공기 중에 두면 금방 날아가
버릴 정도로 성질이 가볍고 인화성이 강하지 않소이까?"
이번에도 서수림을 필두로 좌중의 고개가 일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마치 자
신들도 같은 문제점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
리는 사군명을 빼고 참으로 동료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내들이었다.
"관을 밀봉하는 건 말이지. 납과 송진을 함께 끓여 식힌 후 굳기 전에 황토
분을 섞어 바르면 되고. 풀무를 만들 때도 그 축이 탄력성을 지니도록 하면
되는데 그러려면……."
갑자기 무슨 화기공방(火器工房)에서나 있을 법한 토론이 벌어질 판이었다.
오랜만에 물을 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띄고 떠들어대는 팽상문에게 찬물을 끼
얹은 것은 왕충삼의 푸념이었다. 예의보다는 잘난 척 떠드는 팽상문을 향한
심통이 더욱 큰 것이다.
"이런 젠장맞을…… 그건 안 만들 거라며? 간단하고 쓸만한 것만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더니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겐가!"
"그 말이 맞네. 내일 표국을 나서면 표행을 마칠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텐데 어서 일을 마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한창 열을 올리던 두 사람만 빼고 모두들 고승후의 말에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
동료에 대한 예의도 지나치면 피곤한 법, 열성껏 떠드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
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공통된 판단인 모양이었다.
"그럼 일을 시작하지요!"
사군명의 말 한마디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구태열은 짙은 아쉬움을 감추고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굳게 입을 다문
채 부산하게 몸을 움직였고 팽상문은 다시금 이것저것 지시하며 어느새 활활
타오르는 화덕 앞으로 다가앉아 불길을 살폈다.
처음 보는 구태열의 열기 띤 모습에 내심 의아함이 고개 드는 것을 감추고 사
군명 역시 팽상문의 지시에 따라 작은 쇠 절구로 백연을 빻는데 몰두했다.
"여우 똥을 넣으면 더욱 좋으련만……. 아쉬운 대로 이놈이라도 써야겠군."
송진과 톱밥을 넣은 가마솥을 휘저으며 뭔가를 집어넣는 팽상문에게 왕충삼이
인상을 썼다.
"아니 그게…… 말 똥 아니냐?"
"그래 말똥이다. 이걸 화약과 섞어서 작은 옹기에 담거나 유지에 싸서 터뜨리
면 수령무(狩靈霧)라는 연기가 퍼지는데 제 아무리 무공이 강한 자라도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최소한 일각 동안은 정신을 못 차리게 되지, 암!"
"원, 별 지저분한걸 다 만드는구먼……."
"프흐흐. 그런 소리 마시게! 혹시 아는가, 이게 자네 목숨을 구하게 될지."
왕충삼에게 말을 던지면서도 팽상문의 눈길은 문득 구태열을 향했다. 그라면
자기가 지금 만들고 있는 여러 가지 물건의 위력과 효능에 대해 이해하고 있
을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어쩐지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해온
동료 같은 느낌이 든다 고나 할까?
팽상문이 흡족한 얼굴로 작업종료를 선언한 것은 날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겉
보기에는 대단치 않아 보이는 여러 개의 죽통과 옹기 속에 화약과 함께 섞은
잡동사니들을 정성껏 채워 놓은 새벽 무렵…….
날이 밝으면 떠나야 하는 험난한 표행에서 팽상문의 말대로 그들의 생명을 구
해 줄지도 모르는 요긴한 물건들이 만들어진 후에야 그들은 애써 짧은 잠을
청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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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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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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