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해양실크로드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중국 광주,베트남 다낭,인니 자카르타,말레이시아 말라카,
인도 코친,뭄바이, 오만의 소하르를 거쳐
귀국길에 스리랑카를 들렀다. 스리랑카 남쪽에 있는 갈레라는 항구를 둗러보기 위해서였다.
콜롬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갈레까지 갔다. 시외버스는 완행버스로 군데군데 세우는데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렸다. 버스에는 젊은 남성 차장이 있어 허리춤에 돈가방을 차고 승객들의 차비를 받았다.
갈레에는 옛날 중국 명나라때 정화가 남해원정시 세운 비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유적지를 찾아 보려고 가는 길이었다.
그 비석은 근래 갈레시에서 도로공사중에 발견되어 지금은 콜롬보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버스 차장이 사라진지 꽤 오래됐는데 버스 차장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시내버스나 시외버스에는 차장이 있었다.
차장은 주로 젊은 처녀가 버스 문에 붙어서 승객이 타고 내릴 때 문을 여닫기도 하고
손님들의 차비를 받았다. 사람이 많을 땐 문 밖에서 힘껏 밀어 넣기도 하고 문을 손으로 두드려서
운전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였다. 물론 '오라이!'라는 출발음성신호도 보내면서.
우리나라에 버스 차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대 후반이라고 한다.
1928년 경성부청에서 운영하던 부영버스는 일본에서 들여온 22인승 마차형 버스를 굴렀는데 그 때 여성을 고용해 차장을
맡겼다고 한다.당시 차장은 지금의 항공기 스튜어데스처럼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나서 서울 부산간 고속버스가 등장했을때 고속버스 안내양도 한때 인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버스 차장이라 불렀다가 나중에는 안내양이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버스차장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있었는데
1971년 배를 타고 일본 구주 오이타항구에 들어 갔을 때 시내에 나간다고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문에는 '완만 버스'라고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문은 자동문이라고 유압식으로 운전기사가 조작하였다. 버스 정류소마다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완만 버스'라는 게 차장 없이 운전기사 혼자서(one man) 운행하는 버스라는 의미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탈 때 원목선을 타고 네들란드 암스텔담과 이탈리아 타란토에 입항 한 적이 있었다
시내에 나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차비를 주려고 해도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눈여겨 보니 그들은 그냥 돈도 내지 않고 타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정기권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돈을 내는 방법을 몰라 공짜로 타고 나갔다.
무임승차 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크게 물어야 한다는 이야길 나중에서야 대리점을 통해 들었다.
우리나라도 버스 문의 개폐가 자동화가 되면서 1990년부터 차장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