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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가마 위에 걸터앉아 거들먹거리는 나운의 모습이 금연루의 대문 안으로 사라
지기 무섭게 옥색장삼이 잘 어울리는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 뒤를 따랐다.
"어서 오십시오!"
훤한 대낮에 주루를 찾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으나 해장술이 있어야 속이
풀리는 주당이나 후원의 기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밤낮을 가리지 못하는 얼치
기 한량도 더러 있었으므로 금연루 점원 중 최고참인 장팔(張八)은 매끄러운
목청을 길게 뽑으며 손님을 반겼다.
술꾼인지 난봉꾼인지는 모르지만 돈푼 깨나 있어 보이는 부잣집 도련님 치고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에 전낭을 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그의 경
험이 더욱 허리를 조아리게 했다. 게다가 문무(文武)를 겸전(兼全)한 장부라
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제법 칼까지 찬 귀공자들일수록 비위만 잘 맞추면
뜻하지 않은 횡재를 안기는 수가 많았다.
주색에 약하고 아부에 눈멀기 쉬운, 한심하고 고마운 부잣집 도련님들.
"후원으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전망 좋은 이층으로 모실까요."
일층의 대청을 벗어나 후원으로 향하는 나운의 뒷모습을 재빠르게 살핀 청년
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느긋한 표정으로 이층을 가리켰다. 금연루의 구
조로 보아 후원에 면한 이층 창가에 앉아 돌아가는 꼴을 살피는 것이 낫겠다
는 판단을 내린 까닭이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살아온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
주루의 점원으로 잔뼈가 굵은 장팔은 자신있게 결론을 내리고 너스레를 떨며
앞장섰다.
보주(寶珠)가 박힌 겁집이 한 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고, 헌칠한 체구에
준수한 용모는 좀스러운 골방서생 나부랭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층에는 대가들의 서화가 벽마다 걸려있으니 고아한 풍취를 지니신 분들께
는 아주 그만 입지요. 정갈한 안주를 곁들여 향기로운 술 한잔을 기울이면 그
야말로 진정한 풍류 아니겠습니까?"
혹, 청년이 분단장은커녕 아직 간밤의 주독도 풀지 못한 기녀들이 쓰린 속을
움켜쥐고 침상에 널브러져 있을 후원으로 향한다고 했어도 청년을 향한 장팔
의 눈길에는 여전히 최대한의 존경심이 담겨있을 터였다.
장부가 미희를 희롱하는데 아침저녁이 따로 있을수 없으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이 호걸의 풍모 아니겠냐는 간지러운 아부가 이미 매끄러운 혀
끝에 매달려 있었으므로.
"그런가? 항주에서도 제일 가는 풍류는 금연루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거
늘 영 거짓은 아닌 모양이로구먼. 하하핫!"
청년은 짐짓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춘색이 완연한 수풀사이로 아담한 누각과 정자가 곳곳에 자리한 후원이 한눈
에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은 청년은 과연 장팔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 항주는 초행이니 이 곳의 별미와 명주를 자네가 알아서 간단히 내오게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알아서? 암, 가장 비싸고 이문이 많이 남는 걸로 당연히 알아서!'
저절로 떠오르는 흐뭇한 미소를 감춘 장팔은 가장 공손한 자세로 허리를 굽히
고 물러났다.
잠시 후 장팔이 내온 술과 안주를 맛본 청년의 얼굴에는 감탄의 빛이 떠올랐
다.
신선한 야채를 곁들여 구운 생선은 입안 가득 그윽한 풍미를 자아냈고, 혀끝
을 감싸고도는 향긋한 주향은 저절로 감탄사를 발하게 하는 것이다.
"과연 일미로세! 자네에게 선택을 맡기기 잘했구먼."
청년의 찬사는 장팔의 귀를, 찬사에 이어 건네진 몇 푼의 은자는 마음을 행복
하게 만들었다.
"공자께서 만족하신 다니 그저 황공할 따름입니다. 뭐든 분부만 하시면 성심
껏 받들겠습니다."
언뜻 청년이 꺼낸 금낭 속의 은자를 가늠한 장팔은 잘하면 자신의 행복(?)이
이것으로 그치지 않으리라 예감하며 대대로 섬겨온 주인을 대하듯 공손히 인
사하고 물러갔다.
"흐음, 본가의 살림이 그리 풍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구나."
장팔의 모습이 이층에서 사라진 후 청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천히 술잔
을 기울였다.
무인의 행복은 무도의 성취에 있을 뿐이라는 선조의 유훈에 따라 일체의 사치
를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가풍 속에서 자랐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일상
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은 멀리한 채 오직 무도일로(武道一路)의 추구에 전념
해온 무적세가의 소가주 금사익.
가난한 농부의 그것처럼 무던한 그의 혀에 항주에서도 이름높은 금연루의 술
과 안주가 꿀처럼 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천하제일가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아니 어쩌면 가장 걸맞게 절제(節制)
와 검박(儉朴)을 미덕으로 삼는 무적세가의 소가주가 입맛은 물론이요 행동방
식에 있어 가장 무적세가의 사람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름의 목적이 있어 부잣집 도련님 행세를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았으면 장팔
을 행복(?)하게 한 금사익의 헤픈 씀씀이는 결코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금사익은 입안에 감도는 주향을 음미하며 술잔을 기울였고, 속 맛이 충분히
우러나도록 천천히 안주를 씹었다.
―즐기되 탐하지 말라.
오 년 전이던가, 첫 잔을 따라주던 아버지가 내린 교훈에 딱 어울리는 행동이
었다.
그러나, 미각을 제외한 금사익의 모든 감각은 나운의 그림자가 사라진 후원의
외딴 전각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
아직은 한밤중과 다름없는 주루의 늦은 아침이 주는 나른함과 달리 심상치 않
은 인기척이 새어나오는 전각.
금사익의 영민한 감각은 전각 안에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사람이 있다는 사
실을 전했다. 신중하고 은밀한 기세로 보아 고수라고 할만한 자들이.
금사익은 슬쩍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십여 개에 달하는 탁자가 놓인 이층에 그를 제외한 사람은 그와는 반대편인
길가에 접한 탁자에 앉은 왜소한 체격에 곱상한 인상을 지닌 청년 하나뿐.
그의 자리도 그렇듯이 창가에 접한 탁자는 주렴이 드리워져 있어서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기 쉬웠으니 몸을 움직이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상대는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렸는지 그
가 있는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영악한 점원 또한 다른 손님을 모시지 않는다면 그가 부르지 않는 한 다시 이
층으로 올라올 리 없었다.
자신이 앉은자리에서 나운이 들어간 전각까지의 거리와 중간에 펼쳐진 지형지
물을 가늠해 본 금사익은 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스르륵!
희미한 파공성도 없이 연기처럼 창문너머로 사라지는 신속한 몸놀림. 과연 무
적세가의 소가주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주루와 전각 중간에 서 있는 버드나무 꼭대기로 섬전처럼 쏘아간 금사익의 신
형이 일순간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솟구쳐 전각
의 지붕위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전각 앞 공터에는 사인교를 메고 온 가마꾼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건만 그들을 졸지에 눈 뜬 장님으로 만든 금사익은 지붕 위에 바짝 엎드려
전각 안의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운을 맞은 황대진은 형식적인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표행이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시오?"
이미 직속 수하들을 통해 세권표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지라 그의 질문
은 질책에 가까웠다.
"물론! 놈들이 머리를 쓴다고 표행을 여럿으로 분산시켰더군."
"내가 알기로는 아직도 계속해서 새로운 무리가 출발하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만……."
나운은 비윗장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마안기무전에 소속된 자들은 위아래도 없고 남의 뒤만
캐는 교활한 쥐새끼에 다름없었다.
"세권표국의 표사들을 다 합해야 이백 명. 설령 놈들이 한 사람씩 출발한다
해도 본인의 수하만으로도 충분히 뒤를 밟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시게!"
나운의 퉁명스런 대꾸에 황대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상부의 지엄한 명령에도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꼴이 도무지 못마땅한 것이다.
"누가 분타주에게 독자적으로 행동하라고 했소. 이번 일에 관한 한 항주일대
본 방 식구들을 지휘할 권한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벌써 잊으신 게요?"
"왜? 내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보고라도 할 텐가?"
나운은 버럭 큰소리를 지르며 되는 대로 쏘아붙였다.
"상부의 명은 놈들을 치는 게 아니라 뒤를 밟으며 동태를 파악하라는 것 아니
더냐! 이미 표행이 몇이든 놓치지 말고 뒤를 따르라 명해 놓았으니 걱정 말거
라!"
아예 아랫사람 대하듯 지껄이는 나운의 오만과 무지에 황대진도 마주 성을 냈
다.
"멍청하긴! 뒤를 밟는답시고 어중이떠중이를 멋대로 동원하면 놈들을 눈도 없
고 귀도 없는 바보로 안단 말이오?"
"뭐라, 어중이떠중이! 본 분타의 인물들이 네놈의 수하들 보다 못 하단 말이
냐!"
이미 항주 경내를 벗어나는 주요 길목에는 마안기무전의 훈련된 이목들을 심
어 놓은 상태였으니 세권표국을 떠난 표행이 제 아무리 여럿이라 해도 모두
그들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관되고 효율적인 체계였다.
싸움이 목적이 아닌 이상 분타의 임무는 그들을 보조하고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일 뿐, 이렇듯 제멋대로 일을 벌이는 것은 중요하고도 명백한 과오임에 틀
림없었다.
아마도 임무가 수월하니 공을 뺏기지 않겠다는 치졸한 욕심의 발로이리라 생
각되자 반드시 전주에게 보고해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황대진의 마음을 채웠
다.
"좋소이다. 내 있는 그대로 보고할 터이니 뒤가 어찌 되는지 두고봅시다!"
"보고? 보고라 했으냐? 좋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과 싸우는 용맹한 수하들
과 쥐새끼처럼 숨어서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는 자들 중 누가 진정한 흑마방의
충신인지 가려보자!"
황대진의 민감한 반응에 혹 실수를 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기껏해야 내놓고 다니는 표사 놈들 뒤를 밟는 일인데 크게 잘못될 까닭이 없
었고,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흑마방의 불문율이었으니
그다지 켕길 것도 없었다.
더 이상 머물 필요를 못 느낀 나운은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놈들을 들이쳐서 무적세가로 가는 예물인지 뭔지를 빼앗으라는 명령이 아니
라서 섭섭한 내 수하들이다. 절강성을 벗어날 때까지 놈들은 범의 아가리에
든 토끼 신세니 좁아터진 속으로 끙끙 앓지 않아도 된다! 알겠느냐? 프하하핫
!"
자기 말이 스스로도 통쾌한지 요란하게 문을 열고 나서 사인교에 오른 나운은
시끄러운 웃음소리로 기녀들의 단잠을 깨우며 사라져갔다.
나운이 문을 박차고 나오는 소란을 틈타 동시에 몸을 날린 금사익은 아무 일
도 없는 듯이 탁자로 돌아와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안주를 씹으며 오연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쓸모 없는 오합지졸들……."
애초에 흑마방 따위를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았거니와 실제로 자기들끼리 다투
며 손발도 맞추지 못하는 놈들의 꼴을 지켜보니 더욱 가소롭게만 느껴지며 역
시 무적세가를 넘볼만한 세력은 없다는 자부심이 솟은 것이다.
금사익은 알싸하게 혀끝을 찌르는 향긋한 주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생각에 잠
겼다.
항주에 도착한지 사흘.
신부가 어떤 여인인지 확인하고픈 마음에 불원천리 항주까지 달려와 기회를
엿보았지만 얼굴을 보기는커녕 지금 신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처지였다.
하나 신부를 호송하기로 했다는 세권표국 주위를 맴돈 것은 헛수고가 아니었
다. 미심쩍은 자들을 발견하고 미행한 결과 흑마방 졸개들의 근거지를 파악하
고 놈들의 상황을 알게되지 않았는가.
엿들은 대화로 미루어 흑마방에서 아는 것이 적지 않았지만 표물의 정체는 아
직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석백송이라는 자가 제법 능력이 있다더니 헛소문은 아니었는 모양이군. 줄줄
이 깔린 놈들의 이목을 속이고 있으니…….'
북경까지는 칠천 리가 넘는 길.
아마도 세가의 위명을 두려워해서 감히 표물을 탈취할 생각은 못하고 뒤를 밟
을 뿐이고, 단순한 예물인줄 알고 있다 해도 무도한 무리가 자신의 신부가 될
여인의 뒤를 쫓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조용히 표행을 뒤따라가며 감히 무적세가의 일에 더러운 촉수를 들이미는 흑
마방의 마졸들을 응징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혼사이기는 하나 어쩌면 자신의 신부가 될 여
인을 은밀히 따르며 보호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부인될 사람에게 그나마
체면을 세우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그자를 혼내주는 것이 순서이리라!"
나운의 표독스런 얼굴을 떠올린 금사익은 망설임 없이 사인교의 그림자를 쫓
아 금연루를 나섰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을 응징하고 그로 인해 흑마방의 흉적들에게 혼란을 일으
킬 수 있다면 작은 수고쯤 번거로울 것도 없었다.
"아니,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일층에서 탁자를 닦던 장팔이 아쉬워하는 소리에 구구한 설명대신 한 닢의 은
자를 던진 금사익은 거리를 오가는 인파 사이로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황당한 중에도 깊게 허리를 굽히는 예의 있는 점원(?) 장팔의 깍듯한 인사와
창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왜소한 청년의 날카로운 시선을 등뒤로
받으며…….
사군명은 서수림과 함께 일행의 선두에 서서 걸었다.
표국을 출발한지 반 시진.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은 고승후가 올라탄 수레에 실은 탓에 짊어진 짐은 그리
무겁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몇 번의 표행을 통해 적지 않은 경험을 얻었다는 자부도 없지 않
았지만 잘 닦인 대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이 이렇듯 힘이 들고 어려울 줄
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선택만 할 수 있다면 만근거석을 지고 험한 산
을 타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창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자신들을 감시하는 흑마방의 끄나풀들만 같아서 저절로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성실하긴 해도 소심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대범한 편인 그가 이렇듯 터무니
없이 긴장하는 것은 온통 가슴을 채우고 있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표국의 흥망을, 어쩌면 국주의 말대로 천하의 안위까지 좌우할지도 모르는 중
요한 표행을 맡았으니 기필코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과도한 사명감이 그를 짓
누르는 것이다.
잔뜩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사군명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 서수림이 짐짓 급한 목소리로 사군명의 귓가에 속삭였다.
"수상한 자가 있소이다."
"예에! 어디 말입니까?"
서수림이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군명의 어깨를 툭 쳤
다.
누가 본다면 길동무와 재미있는 얘기라도 나누는 듯한 모습이었다.
"참 나. 누굴 찾는 겁니까? 잔뜩 굳은 얼굴로 지나는 사람 모두를 노려보는
백기표사야말로 수상한 사람이거늘. 프흐흐흐……."
그제서야 서수림의 말뜻을 알아차린 사군명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내가 아직 경험이 일천하고 마음만 조급해서 그만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군
요."
서수림의 작은 눈을 덮고있는 눈꺼풀이 가늘고 긴 반원을 그렸다.
"후후후. 강호에 나선 지 십 년이오, 표사 노릇만도 육 년이 된 나도 속으로
는 백기표사 못지 않게 긴장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요."
사군명의 놀라운 무공이 표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라면 겸손하고 솔직한 품성
은 그의 갑작스런 출세에도 질투는커녕 오히려 자기 일처럼 흐뭇한 마음을 갖
게 만드는 근거였다.
일행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우두머리의 어수룩한 행동에도 불안감이나 불
만을 느끼기보다 실수 없도록 잘 받들어야겠다는 일종의 충성심이 생기는 것
도 그런 이유였다.
서수림은 바로 곁에서 걷고있는 사군명조차 눈치채기 힘든 은밀하고 예리한
눈길로 길가에 앉아 장기를 두고있는 노인네들까지 살피고 있었다. 그런 와중
에도 자신의 어수룩한 실수를 편안한 미소로 감싸는 서수림의 마음씀씀이 덕
인지 사군명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과도한 긴장에서 풀려갔다.
"혹, 놈들이 눈치를 채거나 꼬리가 붙은 것은 아니겠지요?"
어느새 서수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태도를 되찾은 사군명이 날씨얘기라도 묻
듯이 말을 건넸다.
"글쎄요. 특별히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긴 하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의심도 많은 법. 서수림은 신중했다.
"상대가 흑마방이라고 한다면 쉽게 마음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 상대는 흑마방이었다.
지금 그들에게 지켜야할 표물이 있는 것도 아니오, 한껏 눈에 띄지 않게 위장
한다고 애쓰긴 했으나 쉽게 마음을 놓기에는 흑마방이란 이름이 갖는 의미가
너무도 크고 무서웠다.
말없는 눈짓으로 서수림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 사군명은 흘낏 뒤를 돌아보았
다.
수레에 걸터앉아 흔들리는 고승후의 몸뚱이 너머로 각기 등짐을 지고 쫓아오
는 일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목적지인 북경까지 칠천 리.
표국을 떠난 지 이제 한시진도 채 되지 않았고, 아직 표물도 접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동료들을 이끌기는커녕 방금 전에도 서수림에게 지적 받았듯이 어수룩하기만
한 자신이 과연 무사히 표행을 마칠 수 있을지 암담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
이었으나 결코 물러설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볍게 입술을 깨문 사군명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치든,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든, 오늘은 황농현까지만
무사히 가면 성공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인 하루하루가 지나다 보면 결국 표행도 무사히 마치는 것이라
는 단순한 사실이 지금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만고의 진리요 유일한 희망이
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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