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채샤 林彩霞 ! 금년 59세의 대만 여성인 그녀는 최고 여주인공 미용실, 最佳女主角美容美體 회사의 사장 董事長 이다. 그녀는 1991년 처음 중국에 여행을 왔다. 상해 上海, 난찡 南京, 꽝쪼 廣州 등을 다니며 중국의 투자환경을 열심히 공부했다. 여러 도시들을 비교해 본 뒤, 대만과 홍콩에서 가장 가까운 꽝조 廣州에 투자했다. 그녀도 초기에는 일반 대만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가공무역으로 투자해, 고무. 플라스틱 제품 사업을 생산, 수출했다. 원재료를 대만에서 가져와, 꽝쪼에서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한 것이다. 소위 당시 유행하던 싼래이뿌 三來一補 형식의 가공무역을 했다. 1997년, 그녀는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함께 사업을 같이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혼자가 되어, 4살짜리 아들을 키워야 했다. 공장을 파트너에게 넘겨주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감한 성격의 그녀는 꽝쪼에서 대형 미용실인 미용미체 美容美體 회사를 새롭게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것을 그녀가 직접 처리해야만 했다. 동시에 어린 아들을 유치원 기숙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데리고 다녔다. 이 때문에 그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녀는 미용 책을 보며 공부하고, 직원들을 직접 가르쳤다. 그리고 대만의 미용사들을 초빙해서, 중국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또 100여명의 중국 직원들을 대만으로 보내 훈련시켰다. 이렇게 키운 미용 사관생도들이 최고 여주인공 最佳女主角 미용회사를 중국의 정상급 미용회사로 성공시키는 힘이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미용원은 물론, 무역회사, 화장품 공장 등으로 사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녀는 꽝쪼에서 혼자 생존하면서 사업에 성공한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꽝뚱 廣東에는 기회가 사방에 널려 있다. 설사 학력이나 빽이 없어도, 자기가 정확하게 판단한 사업이 있으면, 빨리 시작해서 굳건하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녀가 꽝쪼에서 20여년간 몸부림치면서 여러가지 사업에 성공해온 꽝뚱식粵式 생존법칙이다. 그녀는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을 털어 놓았다. “초기 대만기업인들은 투자에 조심스러운 태도여서, 대부분 부동산을 임대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임대하지 않고 바로 구매했다. 세계무역빌딩 世貿大廈 사무실, 세무화원 世貿花園 아파트, 토찐루 淘金路, 쭈쨩신청 珠江新城 등에 구매한 부동산들이 20여년의 세월이 흐르자, 황금 노른자 지역으로 변했다."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금덩어리로 변한 부동산들이 그녀의 사업상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는 기초가 되었다. 과감하게 구매한 부동산들이 그녀를 어려움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업을 발전시킨 성공 스토리는, 꽝뚱성에서 사업하고 살아온 많은 대만 기업인들의 대표적 샘플이라고 할 수 있다. - 손자병법 연구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