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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첫째 되는 계명
(마 22:34-40)
1. 서론
① 예수님을 믿어 좋은 것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특권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기도의 특권이 있고 자녀로서의 권세가 있으며 예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말씀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으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야 할 것은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거룩함을 위해 죄를 짓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왜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다릅니다.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 건강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지위를 얻고, 권력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를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을 하면서 좋은 목사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목사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큰 액수의 사기를 당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외식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해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본론 1) 신앙생활의 목적
① 무엇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이기적이고 외식적인 믿음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로 시작하는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종교적인 지위를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예수님 때부터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항상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경제적인 이권에 개입되어 있었고 그러한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종교적 영향력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적하시며 화 있을진저를 외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교회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원함을 이루려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개교회의 성장과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하는 모습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반면에 사도들은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② 오직 복음
바울의 믿음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로마서를 통해 알려줍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 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이제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그 사명을 마치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려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바울도 자신의 생명을 버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향한 이런 사랑이 있습니까?
베드로의 믿음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한 사람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 홀로 남겨두고 모두 자신을 버릴 것이라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자신은 죽는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진심으로 한 고백이었지만 베드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죽음의 공포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힘들어 고기잡으러 간다 하고 나가 그물을 내렸지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던 날처럼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물을 내려 153 마리나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잡아 온 물고기로 조반을 준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드신 후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죄책감에 빠져 있는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바로 말하지 못하고 간신히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고백합니다.
이것을 세 번이나 반복하시며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베드로는 나중에 모든 것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것이라 말하며 성도들에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한다(벧전 1:8)'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다른 사도들도 순교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생명까지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생명까지 내어 놓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 순교입니다.
3. 본론 2) 예수님의 기준
① 가장 큰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신 6:4~5)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은 사랑한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죽기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던 사랑 고백은 진심이었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족과 배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백이 실제가 되려면 매일 점검해야 합니다.
매일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매일 나 같이 연약하고 쉽게 변하는 자와 함께 하기 위해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② 넉넉히 이기는 사랑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롬 8:37~39)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 사랑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로부터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데 그 승리의 근거는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경험할 때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보아야 하고,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우리의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 것들로 인해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기쁨과 평강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③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러한 사랑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자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이 정도 사랑이면 되었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 사랑이 있어야 공동체가 서로 도움을 받고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인간적으로 감동할만한 사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4.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① 왜 예수님을 영접하는가?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들
(벧전 1:8~9)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의 편지를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음을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하고 알았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자신의 기준과 생각으로 사랑하려 합니다.
저도 처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의 죄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내 생각과 기준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새벽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수련회 봉사를 시작으로 성가대, 교사, 대학부 임원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선교에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합당한 보답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보다 사역에 지쳐서 기쁨과 평강을 잃고 판단, 정죄, 미움과 다툼이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미 힘들어졌고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 주지 않으시면 불평과 원망도 생겨났고 나중에는 기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입술로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방금 헤어졌음에도 또 보고 싶고 3시간을 만나 이야기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도착해서 다시 전화하고 별 내용이 아니어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함께 있고 싶고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주님과 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어떤 고통이 온다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의 길을 갔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죽음의 고통이 밀려오는 그 순간 주님과 눈을 맞추었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묵묵히 아버지를 부르며 가셨던 그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이신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심한 고문을 당할 때 주기철 목사님을 심문하던 형사가 네가 섬기는 예수는 네가 이렇게 고통 당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조롱하자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고통 당할 때 나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혼자 고문을 당하고 있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그 자리에 함께 고통당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받기 원하셔서 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주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어려움과 고통 그것이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내 안에 오신 주님께서 함께 고난당하는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주님을 사랑할 때 견뎌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어려우십니까?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고통스러우십니까? 건강이 좋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 여러분이 직면해 있는 그 자리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붙들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 말씀처럼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삶 살기 원합니다.
5.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우리를 위한 명령임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더 깊이 잠겨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행하게 하셔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넉넉히 이기는 자 되게 하소서.
작은 예물을 드립니다. 열에 하나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제목으로 감사헌금을 드리며 선교헌금을 드립니다. 예물 드린 손길에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자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이 물질이 쓰일 때도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찬송 :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