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2023.11.3.-7 일본 무교회 전국집회 참관기)
진영선
한일 우화회에서 양국이 교차 방문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일본에서 먼저 제안해서 수십 년간 친선 도모 행사가 지속했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이웃인 일본을 처음 다녀왔다. 나이든 우리들의 방문은 실은 서로가 교대로 보내야 할 대학생들이 양국에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일 양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인구문제라 할 수 있다.
지구 환경을 인간이 날로 파괴해 가서 생긴 양상이다. 인류의 앞날이 예전과 달라졌다. 미래 예측이 전과 달리 몹시 불안한 젊은이들이 결혼도 거부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양육을 포기하는 어려운 현황이 벌어진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못한 일인데 이를 어찌하랴. 이의 해결을 위해 선한 힘을 모아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믿는다.
대학에서 일본어 초급과정을 배워서 간판이나 지하철 지도를 볼 수 있었다. 60년 전 당시에 도서관학과는 일본어 읽기가 중요했다. 우리는 도서관시설이 드물 뿐 아니라 소장한 많은 책이 일본도서였기 때문이리라.
이번 일본 방문에 당황했다. 일본어 찬송가를 일어로 불러야 하고, 성서 강독을 이삼일 간, 연속 일어로 읽고 들어야 해서다. 일어를 말하거나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젊은 시절 신문 방송이 대서특필한 일본 뉴스가 있다.
‘천만 엥 원고료 당선 작,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의 번역이 불티나게 팔렸다. 인기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3천 명 사병들 앞에서 일장 연설 후 할복자살 사건에 질겁하기도. 그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가장 유력했으나 나이든 노인 작가에게 양보했다고 칭송해서, ‘금각사’를 읽으며 슬퍼했다.
젊어 그리도 좋아했던 일본을 이번에 만났지만, 순전히 벙어리로 다녔다.
노 평구 선생을 통해 결혼 후에 기독교를 알게 되었다. 4년간의 대학 교육이 기독교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이끌진 못했다. 당시에 쏟아지듯 나오는 세계문학전집과 일본의 근현대 고전소설, 온갖 외국 영화 보러 다니기에만 대학 4년간 총력을 기울였다. 대학도서관 참고 열람실에서 영국과 일본서 나온 세계 대백과 사전들, 세계 예술 백과사전들의 그림들을 보며 감탄 감탄했다. 아름답고 좋은 책들을 그렇게 내는 일본을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현재 일본과 한국이 근본으로 다른 점을 비교한다.
역사상 한민족은 외세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 일본과 한국이 가장 다르다. 오천 년 동안 한민족이 세운 국가는 중국 한 나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중국과 적대하고 수없이 침략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중앙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온 백성이 봉기를 했던 게 우리 민족이다. 온 백성들이 외세와 끈질기게 싸워서 왕을 지키고 국토를 지켰다.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탄핵으로 몰아내서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국민들이 우리다. 현재 대통령도 행정부를 잘못 이끌기에 촛불시위가 일 년 이상 전국에서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온 세계에서 민주주의 진행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우리가 주목을 받는다. 투표권을 옳게 행사할 줄 아는 대한민국 국민인 셈이다. 나라의 주인은 우리 자신들인 줄 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어떠한가, 계속 한 정당이 지배하지 않는가. 민주화가 더딘 나라가 일본이라 생각한다.
기독교 믿음은 결혼하고 노평구 선생의 성서연구, 김 교신의 성서조선 영인본을 통해서, 유희세 선생 집회에 20년간 참석하며 굳히게 되었다. 세분의 선생님들이 성서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게 해주시어 감사한다.
성서를 세계최고 문학이라 알려주고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대신에 영어로라도 성서를 읽으라고 격려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예술문화의 영감을 주는 단테의 신곡까지 읽으면서 독후감도 쓰고 번역도 하게 이끌어주셨다. 이분들과 함께 한 일본여행이었다. 선생님들의 친구인 일본 선생님들을 이마이 관에서 정식으로 사진으로 인사했고 산소까지 참배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방문은 고려박물관 방문이 큰 목적이었다. 하라다 교코 상을 단테의 신곡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Y집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에는 일본 학생들을 인솔하고 오셨을 때 두어 번 만나며 존경의 염을 더해 갔다. 생각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런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려박물관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관동대지진 100주년 기념행사를 주도해서 이를 보았고, 일본에서도 크게 알려졌다고 해서 진지해졌다.
고려박물관에 기증할 목적으로 1980년대 한국 광주민주항쟁 사진집을 두 권 가져갔다.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따님, 김정옥 여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를 구할 수 있었다. 그 대신에 고려박물관의 책자들을 몇 권 구해왔다. 나아가선 그 사진집이 연말에 일어로도 나온다고 하니까 고려박물관과 광주 기록문화관이 교류가 이제부터 오가기를 바란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한국은 코로나 기간에 성장해서 GNP가 3만5천불에 가까워져 G7국가에 이탈리아 대신, 들어갈 정도였으나 정권이 바뀌고는 나날이 급 낙하중이다. 일본은 정치에 능한 기시다 정권이 잘 하고 있으나 과거사 사죄가 조금도 없기에 독일과 크게 비교된다. 독일은 매년 때가 되면 유럽에 사죄하는 행사를 거듭한다. 이런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않겠는가. 과거를 모르면 그 과오가 어느 날 되풀이 하는 비극이 다시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가 밑바탕인 EU 국가들과 전혀 다른 아시아 문화권에 우리들이 살기 때문이다. 정신대 문제라든가, 후쿠시마 핵 폐기수의 방류 중지 문제 등등, 양국이 속히 풀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한 게 한일 관계다.
더구나 한국은 222 개국이 넘는다는 지구상의 나라들에서 남북한으로 쪼개진지 70년이 넘어간다. 동서독이 30년 전에 통일할 때 가슴이 뛰었다.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의 38선을 손잡고 넘어설 때 감격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날 때도 그러했다.
내 고향 개성의 선죽교를 가보고 싶다. 고려시대 천년의 고도를 보고 싶다. 까짓거 통일은 아니 되어도 좋다. 그저 이웃 나라처럼 물건도 팔고 관광도 하고 왕래하기 바란다. 나의 세대는 고사하고 내 아이들 세대라도 그러한 날들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일본에서도 이를 도와주기를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한일 관계 해결에 양국의 무교회가 앞장서는 날이 오기를.
마지막에 덧붙일 사안.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는 2층 끝 방에 기증 단체와 개인들 명패가 한쪽 벽에 가득 적혀 있다. 처음 기록 줄에서 일본의 유명 출판사 이와나미를 읽고 놀랐다. 그 현판 끝에는 일본기독교협회도 있음을 아뢴다.
젊어서 일본 출판계에서 출세했던 시아버지께선 일본을 평생 그리다 일어로 자서전을 내고 돌아가셨다. 그 마지막 줄이 ‘나는 일본인인가 조선인인가’.
그분께서 생전 모신 두 어른 사진 액자가 방에 있었는데 일본 출판계 어른들이다. 이와나미 출판사 사장과 또 한 분, 그 사진들이 지금은 없다. 좌우간에 김대중 대통령 생명을 구해준 일본에 감사한다.